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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그리스도 최후에 유혹에 대한 분석

김영재박사

by 김경호 진실 2011. 11. 10.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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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콜세지가 감독하고 윌리엄 데포가 주연한 이 영화는 국제 CCC 총재인 빌 브라이트 목사로부터 이 영화가 신성 모독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제작을 포기하게 하거나 아니면 비싼 돈을 주더라도 아예 필름을 사 버리려는 시도를 했지만 둘 다 실패로 돌아갔다. 서울 올림픽이 열렸던 해인 1988년도에 이 영화는 미국에서 개봉되었고 일부 카톨릭 신자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성공을 거두어 미국 8대 영화로 뽑히기도 하였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1998년 5월 22일 이 영화는 한국에 공연 예술 진흥 협의회의 수입 심의를 통과하였다.

이 영화는 성경상의 예수의 삶을 좇아 진행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2003년 12월 25일 성탄절에 영화전문채널인 OCn에서 오전 8시경에 이 영화가 방영되었다. 성탄절에 이 영화가 TV에서 방영되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큰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다른 모습으로 묘사하며, 예수님을 유일한 구원자로 믿는 것을 무색케 한다. 그리고 이 영상물은 TV 화면 오른쪽 상단에 19세미만 금지가 삽일될 정도로 위험천만한 영상물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다루는 종교적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위험성이 있는 것은 성경에 비추어진 예수님과는 달리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영화에서의 예수님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성경에 비추어 분석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이 영화에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있을 때 수호천사라는 소녀가 나타나게 되는데 이 설정은 예수님을 나약한 인간으로 치부해 버리기에 충분한 것이다. 수호천사란 말 그대로 보호해 주며 지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인데 하나님이신 예수님에게 그러한 수호천사가 필요하다는 것은 신성모독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두 번째로, 이 영화에서 수호천사는 먼저 예수님의 머리위에 쓰여져 있는 가시 면류관을 벗기고 발에 박힌 못부터 빼며 그 못을 뺀 자국을 없애기라도 하는 것처럼 입맞춤을 한다. 또 손에 박힌 못을 빼고서도 그 상처 부위에 입맞춤을 한다. 그러나 그 못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박히신 것이기에 뺀다는 것은 구원이 무효화된다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며, 그 흔적 또한 우리를 구원했다는 증거의 흔적이므로 남아있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의심많은 도마에게 그 흔적을 보여주신 것처럼 말이다. (요 20:27) 사도바울도 갈라디아서를 마치면서 6장 17절에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하였다.


세 번째로, 이 영화에서 수호천사는 예수님께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삭을 제물로 원하지 않으시고 살리신 것처럼 예수님의 피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말은 실로 충격적인 말이며 인류의 유일한 구원의 표인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제거하고자 하는 사탄의 계략임이 분명한 것이다. 히브리서 9장 22절 하반부의 말씀처럼 피 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수호천사의 도움으로 십자가에서 내려온 예수님은 내가 메시야가 아닌가? 라는 의구심을 품게 되는데 이 대사는 보는 이로 하여금 예수님이 진정한 구원자인가에 대해서 의심을 품게 하는 것이다.


네 번째로, 이 영화에서 예수님은 수호천사와 길을 걷다가 세상이 달리 보인다고 말씀하시며 세상이 바뀐 것이 아니냐?고 물어보자 수호천사기 대답하기를 마음과 세상의 조화가 천국이라고 하며 세상은 그대로인데 예수님의 마음이 바뀌었음을 피력하는 것이다. 이는 지상천국주의를 의미하는 것으로써 이단의 사상인 것이다.


다섯 번째로, 이 영화에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은 한 여인을 만나게 되는데 그 여인은 막달라인으로써 마리아로 추정된다. 그 여인과 예수님은 외설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진한 포옹을 하고 예수님의 몸에 묻어 있는 피를 여인이 닦아준다. 피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예수님의 피는 다름 아닌 구원과 직결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피를 닦는다는 것은 구원을 희석시키는 것이며 제거하는 것이다. 피를 닦고 난 다음에 진한 입맞춤을 하고 서로 나체의 몸이 되에 예수님이 섹스를 유도한다. 그 섹스의 장면은 마치 성의 욕구에 굶주린 사람과도 같이 묘사되어 있기에 거룩한 분노를 유발시키기에 충분한 것이다. 또한 섹스를 하고 우리는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여인이 말하고 임신하는 장면이 묘사된다. 이는 철저히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고 인성만을 드러내는 것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정한 신앙을 저버리게 하는 것이다.


여섯 번째로, 이 영화에서 여인이 죽자 예수님은 날이 선 도끼를 들고 복수를 하기 위해 나아가는데 이는 마태복음 5장 44절에 기록되어 있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 말씀과 상반된 의미인 것이다. 그러한 예수님을 향해 수호천사가 말하기를 ‘당신의 아버지이신 신을 죽이러 가는 거예요’ 라고 한다. 그리고 슬픔과 비탄에 차 있는 예수님을 수호 천사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한다. 이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위로자이시지 위로를 받는 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위로을 받으시는 자로 묘사되어져 있는 것이다. 또한 그 여인의 죽음에 대해서 예수님을 향해 수호천사가 말하기를  ‘가장 행복할 때 데려간 거예요, 그 대신 당신을 살려 주었죠. 그녀의 몸 속에 당신의 아들이 자라고 있어요.’ 라고 한다. 이 말은 앞뒤가 뒤바뀐 말이다. 그 이유인즉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살아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인의 죽음으로 예수님이 살게 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인성을 지나치게 드러낸 나머지 예수님을 한낱 연약한 인간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수호천사는 예수님께 말하기를 ‘당신이 곁길로 빠지지 않도록 당신을 보호하겠어요.’ 라고 말한다. 이것 또한 예수님을 인간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임이 틀림이 없는 것이다.


일곱 번째로, 이 영화에서 수호 천사의 도움으로 십자가에서 내려 온 예수님은 이제 목수로 남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목수의 일을 했을 뿐이지 공생애 이후에는 목수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셨다. 예수님은 목수의 일을 행하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잘못을 저지른 것을 후회하게 된다. 그 후회 속에는 자신이 메시아로 잘못 알았던 것에 대한 후회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예수님의 후회를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예수님이 진정한 메시아인가? 에 대한 의심을 조장하는 것이다.


여덟 번째로, 이 영화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낳은 아이를 품에 안고 장바구니와도 같은 것을 손에 쥐고 자신의 부인과 함께 길거리를 행보하는 장면이 묘사되는데 이는 예수님은 단순한 인간으로 여기는 것이며, 그의 하나님 되심을 부인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아홉 번째로, 이 영화에서 예수님이 자신의 가족과 길거리를 걷다가 노상에서 사람들을 향해 웅변하는 자를 보게 되는데 그는 신약의 사도 바울이다. 그 연설 중에 사울이 자신의 과거를 말하는데 도적질과 계집질을 하였던 자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이는 전혀 성경에 없는 부분인 것이다.


열 번째로, 이 영화에서 예수님에 탄생에 대해서 소개되기를 천사의 씨를 심어서 태어난 자라고 한다. 그러기에 예수는 사람의 아들이 아니라 신의 아들이라고 소개되어진다. 이것은 구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동정녀 탄생이 철저히 부인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사람의 아들이 아니라 신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맞는 것 같지만 이 말이 천사의 씨를 심어 태어났다는 것에 근거한 것이므로 이 또한 합당치 않는 것이다.


열한 번째로, 이 영화에서 사울과 예수님의 대화를 살펴보면 예수님이 자신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사울에게 물어보기를 ‘당신이 사후의 예수를 보았소? 라고 하자 사울이 대답하기를 다락방에 나타났다고 대답하는데 이것은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 내용이다. 사울은 다락방에 아닌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사울에게 그가 한 말이 거짓말이라고 하면서 ’내겐 십자가도 없고 부활도 없다. 마리아와 요셉의 아들이 나다. 내가 십자가를 졌지만 신이 풀어주었다. 나는 버젓이 아들을 낳아 키우고 있다. 네가 계속 거짓말을 한다면 내가 진실을 말해 버리겠다. 거짓말로는 세상을 구원할 수 없다.‘ 라고 말씀 하셨다. 이 대사는 진실을 왜곡하는 것으로써 이 중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신이 풀어주었다는 것은 성경과 상반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26장 39절의 말씀처럼 십자가를 지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인 것이다.


열두 번째로, 이 영화에서 예수님을 판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한 자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향해 배신자라고 한다. 그리고 유다가 예수님이 십자가를 회피한 것에 대해서 책망을 하며 권면을 한다. 그 내용은 ‘ 당신의 자리는 하나님이 주신 십자가가 아니오, 죽음이 무서워서 도망한거요, 나는 당신을 만난 날을 저주하오, 난 당신의 말을 듣고 당신을 사랑한 나머지 배신했소, 여자 품에서 아이까지 낳으면서 왜 십자가를 버렸소, 당신은 모를 거요, 수호천사를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날 구해 주었소, 당신이 이렇게 죽으면 보통 인간이오,’ 이다. 이 대사는 인간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책망한 것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 생을 살면서 많은 만남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기쁘며, 복된 만남은 바로 예수님과의 만남이다. 그런데 유다는 오히려 그 만남을 저주한다고 말한다. 또 그가 예수님을 배신한 것을 사랑하기 때문이었다고 합리화 시킨다. 그리고 이렇게 죽으면 보통 인간에 불과하므로 십자가를 다시 지라고 권면한다. 예수님께 십자가를 지라고 권면할 자는 다름 아닌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이 대사는 유다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열세 번째로, 이 영화에서 유다의 권면을 들은 예수님은 몹시 괴로워하며 자신이 누워 있던 침대에서 내려와 몹시 힘겹게 꿈틀거리면서 집밖으로 나가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 이는 예수님의 연약한 인성을 지나치게 드러내는 것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예수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에 지나지 않는 자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열네 번째로, 이 영화에서 유다의 권면을 듣고 집 밖으로 나오신 예수님은 두 손을 하늘을 향해 높이 드시고 기도하신다. 그 기도의 내용은 ‘아버지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용서해 주십시오, 더 이상은 못하겠습니다. 인류를 구원할 기회를 주십시오, 다시 십자가에 달리게 해 주십시오, 메시아가 되게 해 주십시오,’ 이다. 이 기도의 내용 중에서 메시아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는 영지주의를 생각나게 하는 말이다. 예수님은 원래부터 메시아로써 세상에 오신 것이지 요한의 세례를 받고 메시아가 된 것이 아니다. 또한 이 대사처럼 메시아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는 예수님이 메시아가 아님을 입증하는 것이며, 유다의 권면을 듣고 예수님이 행동을 취하신 것 또한 예수님이 메시아가 아님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구약에서 예언한 진정한 메시아이시고 그 분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시다. 끝으로 이 영화에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다시 지시고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에서 다 이루었다는 말은 스스로 구원을 이루신 것이 아니라 유다의 권면을 들으시고 이루신 것이기에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이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라는 영화는 적 그리스도적이며, 진정한 구원관을 희석시키며, 혼란을 조장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무분별한 영상물을 통한 사탄의 역사를 말씀과 기도로 물리쳐야 하며,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대책과 방안을 모색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탄의 전략을 깨달아 알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할 것이다(엡 6:11).


출처 : CORAM DEO
글쓴이 : KIM YOUNG-JA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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