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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과 사랑을 보여 주시기 전에 먼저 비참을 깨닫게 하심(조나단 에드워드)

조나단 에드워즈

by 김경호 진실 2011. 12. 14. 09:58

본문

 

긍휼과 사랑을 보여 주시기 전에 먼저 비참을 깨닫게 하심(조나단 에드워드)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서 저희가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기다리리라. 저희가 고난을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여 이르기를”(호 5:15).

호세아 5장의 앞 부분에는 에브라임을 멸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위협이 나타나 있습니다. 선지서들에서 에브라임은 유다 나라와 구별되는 이스라엘 나라, 곧 열 지파를 뜻하며, 에브라임과 유다에 대해서 말할 경우에는, 열 두 지파 전체를 가리킵니다. 이 호세아 5장 12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좀 같으며 유다 족속에게는 썩이는 것 같도다”라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유다는 이스라엘 지파 중 유다와 베냐민 두 지파를 가리킵니다. 그 두 지파는 유다 왕의 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에브라임은 이스라엘 왕의 통치를 받고 있는 지파를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나라 전체를 가리켜 에브라임이라 하는 것은 그 나라의 수도인 사마리아가 그 지파 중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본문에 있는 14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에브라임에 대하여 얼마나 무서운 방식으로 대하실 것인지에 대한 경고가 선언되어 있습니다.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가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나 곧 내가 움켜갈지라. 내가 탈취하여 갈지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 15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사자처럼 그들을 찢으신 다음에 어떻게 그들을 다루실 것인지를 선언하십니다. 그래서 여기서 다음과 같은 요점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로부터 얼굴을 돌리실 것을 선언하십니다.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때 사자처럼 그 백성들을 찢으십니다. “나는 떠나가리라. 나는 그런 조건에 그들을 내버려 둘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서 떠나고 그들은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2.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긍휼을 베푸시기 위해 돌아오시기 전에 그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것인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세 가지 요점이 지적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그들이 죄책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라고 하였는데, 원어에는 “그들이 죄책감을 느끼기까지”로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들이 죄지었음을 깨닫게 되고 자기들의 죄책을 인식하기까지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라는 표현과 같은 의미입니다.

둘째로,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라는 말씀 속에 함축되어 있는 뜻은 그들이 비참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찢고 그들을 내버려두시기 전에 이미 큰 재앙이 그들에게 밀어 닥쳤습니다. 그러나 교만과 부패함으로 말미암아 자기들의 비참한 조건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바로 이 호세아 7장 9절에서 “저는 이방인에게 그 힘이 삼키웠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얼룩얼룩할지라도 깨닫지 못하는도다”라고 이 선지자가 주목하는 바와 같습니다.

셋째로, 그들은 하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신들의 입장을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간절히 찾는다는 것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크게 염려하면서 간절하게 하나님의 얼굴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에 그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무능한 처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5장 13절에서 “에브라임이 자기의 병을 깨달으며 유다가 자기의 상처를 깨달았고 에브라임은 앗수르로 가서 야렙 왕에게 사람을 보내었으나 저가 능히 너희를 고치지 못하겠고 너희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리라”라고 말하는 바와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야렙 왕은 에브라임을 치료하지 못했고 고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모든 도움을 베풀어주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백성에게 상처를 내셨고, 젊은 사자처럼 그들을 찢으셨습니다. 그리고 선언하시는 어느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을 그만두고, 그 누구도 자신을 치료할 수 없음을 깨닫고 치료할 이는 오직 하나님뿐임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교리

사람들에게 긍휼과 사랑을 베푸시기 전에 자기들의 비참과 무가치함을 깨닫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식이라는 교리입니다.

표적적인 긍휼을 베풀어주시는 방식도 특이함

바로 그것이 당신의 긍휼과 은총을 이적적으로 베풀어주시기 전에 취하시는 하나님의 보편적인 방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식의 섭리를 매우 보편적으로 밟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 사람들을 감화시켜 자기들의 본래의 비참한 조건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시며, 자기 스스로에게서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다는 절망적인 생각을 갖게 해서, 아니면 육체의 힘을 통해서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런 후에 그들에게 나타나십니다. 또한 자기들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만한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자신들의 조건을 알게 하십니다. 이 점은 성경에 나타난 바, 당신의 백성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식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큰 지위에 오르기 전에 먼저 그를 겸비케 하는 구덩이에 던져져야 했습니다. 그는 그 구덩이에서 그처럼 명예롭고 큰 번영을 누리게 될 때를 준비한 것입니다. 요셉이 자기 형제들을 만났을 때, 그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혀 그들로 큰 기쁨을 누리게 하고 큰 명예와 번영을 누리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그 야곱의 아들들은 혹독하고 어려운 난제들과 큰 염려의 골짜기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깊은 절망의 나락에 서야했고, 지난 날 요셉에게 행한 자기들의 죄를 반성하면서 “우리가 우리의 동생에게 큰 잘못을 행했다”는 말을 하는 입장에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섭리를 통해 그들을 겸비케 하셨고, 결국 그들의 모든 난관을 끝내시고, 요셉이 자기의 신분을 밝힘으로써 그들의 슬픔을 큰 기쁨으로 변하게 하셨습니다.

야곱은 요셉이 아직 살아 있다는 기쁜 소식을 듣기 전에 먼저 베냐민과 떨어져 있어야 하는 큰 고통을 감수해야 했고 시므온마저 잃어 버렸다는 깊은 절망감에 빠져야 했습니다. 야곱은 말로 할 수 없는 깊은 조바심을 갖기까지 하였습니다 창세기 42장 36절에 보면 야곱은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후에 금방 참으로 말할 수 없는 큰 기쁨의 소식, 즉,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어 애굽 땅 총리가 되었더이다”라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을 묶은 결박이 점점 더 조여들었습니다. 그들을 얽매는 그 멍에 가 극에 달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더 많은 일을 그들에게 시킬 것을 명했고, 사역을 감독하는 자들은 벽돌을 찍을 때 짚을 그들 스스로 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그런 후에 그들에게 구원이 주어졌습니다.

그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이 홍해에 이르게 되었을 때, 애굽 사람들이 그들의 발꿈치를 닿을 지점까지 추격해 왔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크게 당황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적을 베풀지 않으시면 영락없이 죽게 되었음을 그들은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사방으로 갇혀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 앞에는 홍해가 가로놓여 있었고, 그들 뒤에는 애굽 군사들이 진 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돕기 위해서 놀랍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홍해를 통과하게 하시고, 구원의 노래를 그들의 입에 두셨습니다.

그렇듯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기 전에 사십 년 동안 무서운 광야에서 헤매며 계속되는 고통과 시험을 겪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존재가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배우게 하셨고, 그들의 마음이 죄악스러움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신32:10)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그런 시련과 어려움을 겪게 하사 그들을 낮추시고, 그들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그들로 알게 하셨습니다.

그런 시험을 당했을 때 그들 마음속에 있는 부패가 드러나게 하여 정말 자기들의 악함을 온전히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백성으로 삼으시어 가나안 땅을 주신 것이 자기들의 의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말 그 이스라엘 자손들은 완고한 백성들임을 아주 명백하게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에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라”(신 8:2-3)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없는 건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신8:5-7).

우리는 사사들의 역사 속에서 그와 같은 실례들을 자주 대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반역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 원수들 손아귀에 두셨습니다. 그들이 크게 곤고해져서 자기들이 어쩔 수 없던 처지에 있음을 깨닫게 되고 반성하며 여호와께 부르짖기까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 원수들의 손에 머물게 하셨습니다. 그런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한 구원자를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먼저 그들을 낮추시고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무가치함을 깨닫게 하시며, 자기들이 정말 하나님의 장중에 있음을 인정하게 하십니다. 그런 다음에 그들을 구원해 내셨습니다. 사사기 10장 10절 이하의 말씀은 이러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시되 내가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에게서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였느냐. 또 시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마온 사람이 너희를 압제할 때에 너희가 부르짖으므로 내가 너희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였거늘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치 아니하리라.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서 너희 환란 때에 그들로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짜오되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의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날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하고, 자기 가운데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백성들과 함께 동행하시는 순간부터 바로 그 방식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들이 자기 죄와 그 열조의 죄와 그 및 그들이 나를 거스린 허물을 자복하고 또 자기들이 나를 대항하였으므로 나도 그들을 대항하여 그 대적의 땅으로 끌어 갔음을 깨닫고 그 할례 받지 아니한 마음이 낮아져서 그 죄악의 형벌을 순히 받으면,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생각하며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을 생각하고 그 땅을 권고하리라. 그들이 나의 법도를 싫어하며 내 규례를 멸시하였으므로 그 땅을 떠나서 사람이 없을 때에 땅이 황폐하여 안식을 누릴 것이요, 그들은 자기 죄악으로 형벌을 순히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대적의 땅에 거할 때에 내가 싫어 버리지 아니하며 미워하지 아니하며 아주 멸하지 아니하여 나의 그들과 세운 언약을 폐하지 아니하리니, 나는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기 위하여 열방의 목전에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그들의 열조와 맺은 언약을 그들을 위하여 기억하리라 나는 여호와니라.”(레 26:40-45)

‘나는 개’, 어찌 자녀의 떡을 먹을 수 있으리요.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의 응답으로 그런 복락을 부여하실 때 먼저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죄지었음과 곤고함을 인식시키고,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어 그 복락을 구하게 하십니다. 열왕기상 8장 38절, 39절의 “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이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이 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든지,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유하시며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 모든 행위대로 행하사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인생의 마음을 다 아심이니이다.”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여기서 마음의 재앙을 깨닫는다는 말은 자기들의 죄와 비참을 깨닫는다는 말입니다.

그들의 비참을 인식하는 것이 “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이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과 고통을 깨닫고 이 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대하6:29) 이라는 솔로몬의 기도에서 명백히 드러납니다. 바로 이 말씀은 사람이 자기 자신의 죄와 비참을 깨닫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그 기도의 기초가 됩니다.

고린도후서 1장 9절과 10절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행하신 일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을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이 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절망케 하신 후 큰 구원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가나안 여인의 마음을 낮추시어 자기의 무가치하다는 의식을 실제로 표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신 다음에 그녀의 기도에 응답하여 그녀의 딸을 치료하셨습니다. 그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계속 울부짖는 그녀에게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으시고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으시는 것 같은 모습을 추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녀를 멀리 쫓아보내 주십사고 주님께 아룁니다.

계속 그녀가 주님을 따라오면서 울부짖자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에게 던지는 것이 마땅치 않다.”라고 멸시하는 투의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냉정한 대답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자기는 자녀의 떡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음을 인정하면서 다만 부스러기를 구하였을 때, 그리스도께서 그녀의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모든 세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의 체험은 바로 그런 예들과 부합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놀라운 긍휼과 사랑을 베풀어주시기 전에, 특히 영적인 긍휼을 통해 그런 이을 하시기 전에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그들을 겸비케 하십니다. 그들의 곤고함과 자기 자신들이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그들 자신의 비열함과 무가치함을 인식하게 하십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통상적인 방식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주목할 만한 섭리적인 경륜을 통해 그들을 낮추시거나, 성령의 감동을 통해 그들 자신의 무가치함과 비열함을 깨닫게 하시는 일을 먼저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영적 구원을 이루시는 방식도 마찬가지로 특이함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영혼에 사랑과 긍휼을 베풀어주시기 전에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비참과 무가치함을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끄심으로써 그들에게 베풀어주시는 긍휼은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크고 놀라운 사랑과 긍휼의 표증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긍휼과 선하심을 사람들에게 나타내실 때 다른 것들도 있습니다. 곧 세상에 있는 동안 필요한 많은 좋은 은총들입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그 긍휼은 하나님의 옛 백성들에게 부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요셉을 높이 들어올리신 것,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건져내신 일,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마른 땅에 이르게 하신 일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신 일, 그들 앞에서 이방인들을 쫓아내신 일, 때때로 그들의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신 일 등은 큰 긍휼입니다.

그러나 그런 긍휼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죄의 책임과 죄의 지배에서 건져내신 것과 같지 않습니다. 그런 긍휼 가운데 여러 가지가 바로 이것을 모형적으로 드러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비참을 깨닫게 하심으로써 보다 나은 긍휼들을 받을 준비를 하게 하셨다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당신의 큰사랑을 백성들에게 먼저 알리시기 전에 먼저 특별하게 그 일을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긍휼을 베풀 의향을 가지실 때, 먼저 그 죄인들을 그렇게 다루십니다.

우선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들을 반성해 복, 자기들이 어떤 존재들인가를 생각하고 깨닫게 하십니다. 또한 자기들이 처한 조건이 어떠한지도 알게 하십니다. 이마 말씀드린 것이 바로 그 점을 입증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적인 경륜들 사이에는 일관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다른 크고 주목할 만한 긍휼을 베풀어주시고 은총의 여러 표증들을 나타내실 때 바로 그런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알았습니다. 그와 같은 절차를 취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식임을 확증해 주는 것이 바로 그 점이기도 합니다.

먼저 죄인임을 깨닫게 함

하나님께서는 먼저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어떤 죄를 지은 존재인가를 생각하게 하고 깨닫게 하십니다. 그 전에 사람들이 그 점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계속 죄를 지으면서도 자기들이 행한 것을 돌아보지 않고, 지기들이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지 전혀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또한 그것으로 인해 괴로운 마음을 품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깨닫게 하실 때,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들에 대해 생각하도록 인도하시고, 순서상 자신들의 죄를 보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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