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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인정하시는 사랑

박윤선박사

by 김경호 진실 2012. 4. 2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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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인정하시는 사랑

 

< 故 박윤선 목사, 합신 초대원장 >

 

“말씀대로 순종하고 파수할 때 주님의 역사도 우리에게 임하는 것”

 

주님이 알아주실 수 있는 그 사랑은 어떠한 사랑인가요? 우리가 주님을 사랑할 때에 주님이 알아주실 수 있는 사랑, 그것은 어떠한 사랑일까요? 지식적으로는 성경을 잘 알아서 주님이 나를 알아주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정도, 주님의 살아 계심을 느끼는 그 심리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과 나 사이에 심리적 접촉이 없이 어떻게 주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나대로 있고 주는 주대로 있으며 무슨 장벽이 막힌 것같이 생각되는 상태에서 어떻게 주님이 나를 알아줄 정도로 ‘내가 주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아무래도 영과 영의 접촉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무엇으로 감정합니까? 성경 말씀을 정말 잘 알고 깊이 알고 바로 아는 그 심령만이 이것을 감지합니다. 이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를 사랑해서 하신 일이지만 성경을 몰라 놓으면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구나, 하는 그런 느낌이 들 수가 있습니다.

 

과연 우리의 마음이 성경 말씀으로 재건되고 새로워져서 우리의 사상이라는 것이 없어지고 성경의 사상이 바로 내 사상이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주님의 역사가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가 있습니다.

 

가령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는 그 겸손을 배우려고 할 때에 어떻게 배우는가요? 덮어놓고 다른 사람이 나보다 낫다고 어떻게 생각할 수 있습니까? 분명히 기술과 지식으로 말하면 내가 저 사람보다 나은데 어떻게 억지로 내 지식이 저 사람만 못하다 할 수가 있을까요? 그러한 기준에서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것은 책임의 문제로 말하는 것입니다.

많이 받은 자에게서 많이 찾으신다고 성경이 말씀했습니다. 많이 받은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많이 찾으신다는 말입니다. 책임 추궁한다는 말이지요. 은혜를 많이 주었지만 그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그 은혜로 봉사하지 않고 있다면 그런 경우에는 은혜를 도무지 못 받은 사람만 못합니다. 우리 자신에게 달란트가 있고 다른 사람에게 달란트가 없는 경우에 단지 그것만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낫다 할 수가 있겠는가? 아닙니다. 내가 그 달란트를 가지고 우리 주님이 기대하는 책임을 제대로 했느냐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있는 말씀을 제대로 알려면 그야말로 영과 영이 접촉될 정도로까지 심각하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지식적으로 말하자면 성경을 잘 알아서 예수님이 나를 알아주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일상생활에서 내가 험한 일을 당했는데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인지 알아주시는 것인지, 이것을 우리가 분별할 수 있어야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성경으로라야 압니다. 따라서 이렇게 지식적으로 주님이 나를 알아주시는 것을 체험하는 동시에 주님이 살아 계신 것을 내가 느낀다 말입니다. 여기에 과연 영과 영의 접촉이 있습니다.

주님은 영이시기에 내가 성경 말씀을 깊이 알고 이 성경 말씀을 귀히 여겨서 이 말씀대로 순종하고 견고히 파수할 때에 주님의 역사가 우리에게 임함에 따라서 주의 영과 내 영의 접촉이 있습니다.

 

혹은 뜨거움으로 혹은 밝음으로 혹은 힘으로, 이러한 접촉이 임할 때 그것이 바로 주를 사랑하는 특징의 하나로 확인되는 것입니다.

 

<출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부르심, 네 꼴 보고 은혜를 받겠느냐』. pp. 90-92>

 

 

http://rpress.or.kr/xe/index.php?mid=planning_special&page=2&document_srl=4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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