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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상에서 돌지 말고 비약하라

박윤선박사

by 김경호 진실 2012. 4. 27.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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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상에서 돌지 말고 비약하라

 

<故 박윤선 목사 _ 합신 초대원장>

 

“목사 되어 20~30년 교회에 손해끼치는 자들도 있어”잠언 26장 14절에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도느니라”고 했습니다.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도느니라.”

 

문은 제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잡아당겨 열면 요만큼 나왔다가 닫으면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이처럼 문이라는 것은 비약이 없습니다. 점프가 없어요. 이때까지는 늘 이만한 정도로 했지만 이제 지루하여 못 살겠다 하고서 뛰쳐나가는 법이 없습니다. 결단성이 없어요.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갈 줄을 모릅니다.

 

이 무궁무진한 하나님의 보물 세계에서 새로운 큰 보물을 찾아보겠다는 용기를 내지 아니하고 결단을 내리지를 않습니다. 그저 썩은 냄새 맡으면서 거기 그대로 머물기를 원해요.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돌 뿐입니다.

 

젊은 사람들의 생활 방식에 어떤 패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늘 안주합니다. 잘한다 하지만 그 속에는, 그 이면에는 쾌락주의가 지배적입니다. 주를 위하여 충성한다 하지만 겉모습뿐이지 생활 이면에 들어가면 쾌락주의에 너무 많이 젖어 있습니다. 쾌락 앞에서는 꼼짝 못할 사람들입니다.

 

물론 쾌락 심리가 왕성한 것이 그때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 젊어서 교역자가 됐다고 하지만 도무지 경건의 자리가 안 잡혀 있습니다. 은밀한 죄를 이겨내는 데 너무도 힘이 없고 이 세상을 그렇게도 사랑합니다.

 

좀 잘 살아보겠다는 것이 아주 강합니다. 입에서 나오는 말은 다르지요. 굉장히 힘이 있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표리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 아까운 시절을 허송세월합니다.

 

젊은 교역자들이 죽을 지경의 피곤을 이기고 계속 일을 해야 합니다. 기도를 한번 하려고 간다 하면 생명을 걸어놓고 들어가야 합니다. 젊어서 이것을 못하면 언제 합니까. 기도의 불도가니에 들어가서 녹아나야지 안 그러면 혈기가 그대로 있고 세상 사랑하는 마음이 여전히 남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없애지 못하고 혈육으로 주의 일 해보겠다 하면서 앞으로 안 되겠나, 첫 숟갈에 배부른가, 그저 세월을 더 보내면 나도 되겠지,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세월 보내면 됩니까?

 

한 20년 해보노라면 안 되겠나 하는 사고 방식은 남을 죽이는 사고 방식이에요. 20년 동안 머무는 교역자를 보는 교회는 그만 못쓰게 됩니다. 젊은 교역자들의 노름판이요 젊은 교역자들의 연습하는 마당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설교를 할 때에 심령을 흔드는 한마디도 들음직하게 하지 못하고, 참으로 능력에 사로잡힌 말 한마디 들려주지 못하고, 성령이 사용하시는 일꾼으로 나오지를 못하고 그저 설어 가지고 지지부진합니다. 하는 일이 모두 하나님이 쓰시면서 하는 일이 되지를 않습니다. 그렇게 20년, 30년 교회에 손해를 끼치는 목회를 해서 되겠습니까?

 

교역(敎役)을 한다면 진정한 교역을 해야 합니다. 내가 주님을 위하여 지금 나왔다 하면, 명실공히 주님을 위해서 전적으로 바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직업을 해서 살아야지요.

 

현재 한국 교회의 신학 졸업생들이 한 신학교에서도 몇 백 명씩 나오는 현상을 봅니다. 다 자격자들로서 나오면 오죽 좋겠습니까? 하지만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무엇보다도 영력이라는 것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탕수와 같이 나올 때에 한국 교계는 전적으로 손해만 보고 잘못된 방면으로 타락할 수밖에 없다 말입니다. 그렇게 되지는 않을 줄로 생각하려 합니다만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가죽을 이겨서야 비로소 구두를 만들지 피가 줄줄 흐르는 가죽으로 구두를 만듭니까? 나무를 찍어 말리고 깎아야 목재로 쓰지 방금 찍은 푸른 나무로 집을 지을 수 있습니까? 젊은 교역자들은 먼저 가죽이 이겨지듯 단련되고 단련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간적인 모든 못된 기질들이 다 빠진 뒤 하나님께 붙잡힌 사람으로서 주의 일을 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젊었을 때 기운을 다른 데 쓰지 말아야 합니다. 그 기운을 다른 데 쓰지 아니하고 은혜를 사모하여 은혜 받기 위해서 힘쓰며 애써 기도하고 주님의 수중에 들어가서 고생함으로써 단련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해야 과연 주님이 쓸 만한 그릇이 되는 줄로 확실히 믿습니다. 침상에서 구르는 게으른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출처 / “게으름의 적과 맞서라”, 『부르심, 네 꼴 보고 은혜를 받겠느냐』

 

 

 

http://rpress.or.kr/xe/index.php?mid=planning_special&page=2&document_srl=34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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