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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에 대하여 ( 토마스 왓슨)

토마스 왓슨

by 김경호 진실 2012. 5. 2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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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시 147:3)

그리스도께서는 여느 의사보다도 많은 사람을 자기 병자들에게 베푸신다. 이런 사랑은 하늘나라에서 땅위로 오신 그의 머나먼 여행에서, 그리고 청하지 않아도 자기 병자들을 찾아오신다는 사실에 나타나 있다.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사 65:1). 거기다가 이 의사는 자기 병자를 치료하시고자 스스로 피를 흘려주신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채찍에 나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라고 하였다. 그리스도의 상처를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가 마셨어야 할 쓴 잔을 마셨으며, 그가 그 쓴잔을 마셨음을 인하여 우리가 치유도 받으며 구원도 받은 것이다.

그리스도는 가장 염가로 고쳐주시는 의사이시며, 그는 아예 치료비를 받지 아니하신다. “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옷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눅 8:43-44)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드리기를 바라시는 것은 우리의 상한 마음 밖에 아무 것도 없으며 우리를 치료하시고 난 후에 그에게 바치기 바라시는 것은 우리의 사랑밖에 아무 것도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여느 의사보다 성실히 치료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 한 마디로 마귀를 내어 쫓으신다(막 9:25). 아니, 그는 한번 바라보시기만 해도 치료하실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바라보시자 베드로가 누그러져 회개하였다. 이것이 치료의 시선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영혼을 힐끗 쳐다보시기만 하여도 그 영혼을 회복시키실 수 있다. 그런고로 다윗은 하나님께 자기를 한번 바라봐 주시라고 기도하였다. “내게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시 119:132)라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다정다감하신 의사이시다. 그는 수난(passion)을 끝마치셨으나 연민(compassion)은 끝마치지 아니하셨다. 그는 뛰어난 능력못지 않게 연민의 정으로 충만하시다.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시 147:3). 병자의 모든 신음소리는 이 의사의 마음에 가 닿는다.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치료에 실패하시는 법이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무 사람이나 치료에 착수하시면 반드시 치료하시고야 만다.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존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요 17:12)라고 하였다. 의사들은 병든 사람이나 치료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도 치료하신다. “너희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라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를 치료하시는 의사이시기에, 누구든지 그리스도께 치료받는 사람에 대하여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눅 15:32)라고 말할 수가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아낌없이 주시는 의사이시다. 여느 병자들은 치료해준 의사들을 부자로 만들어 주지만, 여기 이 의사는 병자들을 부자로 만들어 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병자들을 도리어 더 사랑하신다. 그는 병자들을 치료하실 뿐 아니라 면류관도 씌워주신다(계 2:10). 그리스도께서는 병상에서 일으켜주실 뿐 아니라 보좌에까지 앉혀 주신다. 그는 건강뿐만 아니라 하늘나라도 주신다. 그리스도께서 의사이실찐대, 우리의 병든 영혼을 위하여 이 의사를 활용하자. “해질 적에 각색 병으로 앓는 자 있는 사람들이 다 병인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눅 4:40)라고 하였다. 그 동안 의사를 무시하고 살았던 당신, 이제 복음의 태양이 그리고 인생의 태양이 막 저물어 가는 마당에 당신의 병든 영혼을 그리스도께 데려다 고침을 받으라. 그리스도께서 한탄하시는 것은 사람들이 죽을 병이 들었는데도 의사에게 오려하거나 청하려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 하는도다”(요 5:40)라고 하였다. 그러나 가련한 영혼들이 반론을 제기하기를, “나는 하찮은 사람이기 때문에 편히 지내겠다고 그리스도께 나아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런 하찮은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누구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려주셨는가?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딤전 1:15)라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절름발이와 몸저 누운 영혼들의 일행을 찾아 병원에 오신 것과 다름이 없다. 어떤 사람이 행여 훌륭한 사람이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는가? 어떤 사람이 행여 “주 예수여, 나는 훌륭하오니 나를 치료하소서”라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는가? 회심의 전의 바울에게 무슨 훌륭한 점이 있었는가? 일곱 귀신이 쫓겨나간 막달라 마리아에게 무슨 훌륭한 점이 있었는가? 다만 값없는 은혜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치료해 주었을 뿐이다. 하나님은 아무리 우리에게서 훌륭한 점을 찾지 못하시며, 다만 우리를 훌륭하게 만들어 주실 뿐이시다.

만일 훌륭히 되기 전엔 그리스도께로 절대로 고침 받으려 가지 않겠다면, 우리는 절대로 가지 않아야 마땅하다. 그리고 이렇게 훌륭함 운운하는 데는 교만의 기미가 보이고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 자신의 인간성에 집착하는 감이 있다. ‘우리가 그런 대비책과 우월성을 갖추고 있으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주실 텐데’ 그래서 우리는 나아가 치료받을 수 있으련만, 그야말로 우리의사에게 수수료를 지불하겠다는 식이다.

아아, 하찮다는 열병의식 때문에 낙담하지 말고 그리스도께로 나아가 고침을 받으라.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막 10:49)라고 하였다. 우리가 이곳에서 머물러 있을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 생각하며, 그리하여 서둘러 치료를 받으라. 솔로몬은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전 3:2)라고 말하였지만, 살아있는 때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것은 혹시 생존기간은 너무 짧은 것이라서 거명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 아닐까?

아아, 영혼의 치유를 급히 서두르라. 죽음은 신속한 행진을 계속하는 중이며 그러다가 죽음이 당신을 불시에 엄습하면 무덤에서 시술할 치료란 전혀 없다. “무릇 네 손이 이 일을 힘을 다하여 할찌어다 네가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혜도 없고 지식도 없음이라”(전 9:10)고 하였다. 지금이 치료할 시간이고 지금이 은혜의 날이며 지금 그리스도께서 치료의 향유를 부어주신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고후 6:2)라고 하였다. 우리가 은혜의 날을 소홀이 한다면 그 다음은 진노의 날이 되리라(롬 2:5).

사람들이 은혜의 신청을 수락하려하지 않으면 그리스도께서 마음 아파하신다(막 3:5). 그는 눈에 눈물을 머금고 형을 언도하시는 재판장 같으시다. “성을 보시고 우시며”(눅 19:41)라고 하셨다. 아아, 죄인들아, 내가 너희를 구원하려왔건만 너희가 구원을 물리치는구나 나의 날개 아래 치유법을 품과 왔건만 너희는 너희 의사를 몰아내는구나. 너희가 마음을 열어 나를 영접하기만 하면 좋으련만 그러면 하늘을 열어 너희를 영접하겠는데 너희는 내게로 와서 사느니 차라리 너희 죄와 함께 머물다 죽기를 바라는구나“이스라엘이 나를 원치 아니하였도다”(시81:11)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너희 장례식에나 가서 슬퍼하리라.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아름다우심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는 가치적인 부족이 없으시건만 사람들은 보는 눈이 부족하다. (오스틴은 말하기를) 오오,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하면서 그리스도를 모르는 불행한 사람이여! 그대의 지식은 그대의 지옥 길을 비추는데나 도움이 되겠구나.

그러면 당신은 치유를 받았는가? 치유를 받았다면 감사함에 넘치는 찬양을 발하라 “그 입에는 하나님의 존영이요”(시 149:6)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감사함에 넘치는 마음을 바라신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온 자가 없느냐”(눅 17:17-18)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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