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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인류가 아담의 범죄에 빠졌습니까?(토마스왓슨)

토마스 왓슨

by 김경호 진실 2012. 6. 6.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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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맺어진 언약은 그 자신만이 아니라 그 후손들과도 맺어진 것으로써, 그로부터 일방적 생식의 방법으로 나온 모든 일류가 그 안에서 범죄함으로써 그의 첫 범죄에 빠졌습니다.

이러므로 "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롬 5:12)
아담은 대표적인 인간이어서 그가 서 있는 동안은 우리도 서 있고 그가 넘어지자 우리도 넘지게 되었다. 즉, 우리는 아담 안에서 범죄하였다. 그래서 성경은 "그 안에서 모든 사람이 범죄하였으니"라고 기록한 것이다.
아담은 인류의 머리로서 그가 유죄이면 곧 우리도 유죄인 것이니, 이는 매국노의 자식이 형통은 이미 더럽혀져 있는 것과 같다. 어거스틴은 말했다. "우리들 전체는 아담 안에서 범죄하였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담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만일 아담이 타락했을 때 온 인류가 그와 더불어 타락한 것이라면 한 천사가 타락했을 때 모든 천사들이 함께 타락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 경우는 다르다. 천사들은 피차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들은 새벽별라고불리고 있는데, 별들은 피차 의존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경우는 이와달라서 우리는 아담의 허리 안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자식이 그 부모의 한 줄기인 것처럼 우리는 아담의 일부였다. 그러므로그가 범죄했을 때 우리도 함께 범죄한 것이다.

어떻게 아담의 죄가 우리 죄로 되는가?
1) 전가됨으로.
고대의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은 아담의 범죄는 전가가 아니라 단지 모방을 통해서만 후손들에서 해를 끼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그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하였으매"라고 말씀하고 있다.
2) 아담의 죄악은 유전을 통해 우리 것이 된다.
아담의 죄책만 전가를 통해 우리 것이 될 뿐아니라 그 본성의 타락과 부패도 우리에게 옮겨지는 것이니, 이는 마치 독이 샘으로부터 물통으로 옮겨지는 것과 같다. 이것이 소위 원죄이다.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 마치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이 게하시에게 옮겨 갔듯이 아담의 문둥병은 우리에게 달라붙어 있는 것이다(왕하 5:27). 이 원죄에 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ㄱ. "옛 사람"(엡 4:22).
옛 사람이라는 표현은 노인처럼 연약하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오래되고 추하다는 의미이다. 늙으면 아름다운 미모의 꽃봉오리도 떨어져 버린다. 이같은 의미에서 원죄는 옛 사람인데,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을 시들게 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흉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ㄴ. 원제는 죄의 법이라고 표현된다(롬 7:25).
원죄는 종속된 사람을 묶는 법적인 강제력을 지니고있다. 인간이 죄를 사랑하고 또한 자신을 강제하는 죄의 법 아래 있으면 반드시 죄가 뜻하는 바를 행해야만 하는 것이다.

원제에는 결핍의 측면과 적극적인 측면이 있다.
결핍의 측면.
우리 소유가 되었어야 할 의의 상실. 우리는 한 때 우리 것이었던 저 탁월하고 본질적인 영혼의 모습을 상실해 버렸다. 죄는 우리의 힘의 근원이었던 본래의 무죄성의 머리털을 잘라 버렸다(삿 16:19).
적극적인 측면
원죄는 우리의 순결한 본성을 오염시키고 더럽혔다. 로마인들에겐 샘을 오염시키는 것은 곡 죽음을 의미했다. 원죄는우리 본성의 근원을 오염시켰고 아름다움을 변하여 문둥병으로 바꾸었으며 우리 심령의 창창한 광채를 한밤의 어두움으로 뒤바꾸어 놓고 말았던 것이다. 원죄는 우리에게 제2의 천성이 되고 말았다. 인간은 본성상 죄짓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유혹하는 마귀나 모방할 만한 실예가 없다할지라도 인간 속에는 죄짓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하는 본유적인 요소가 존재한다(벧후 2:14). 그는 마치 다리를 말 절뚝거리지 않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죄를 멈출 도리가 없다. 원죄 안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1) 선에 대한 반감
인간은 행복해지길 갈망하지만 자기의 행복을 증진하는 일에는 반대한다. 즉, 그는 거룩함에 대해 염증을 느끼며, 회개하길 싫어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이래로 그분께 돌아가려하지 않고 있다.
2) 악을 해하려는 성향
만일 펠라기우스주의지들의 주장처럼 타락한 후에도 우리 속에 많은 선이 남아 있다고 한다면 선을 행하려는 본성적 경향이 악에로의 경향만큼 크지 않은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가 경험으로 알게 되는 것은 영혼의 본성적인 경향은 악한 방향으로 향한다는 사실이다. 이교도들 자신이 본성의 깨달음을 통해 바로 이 사실을 직시하였다. 철학자 히에로클레스는 "우리는 천성적으로 죄에 접붙여져 있다"고 말하였다 사람들은 자기 혀 밑에 죄를 마치 꿀인양 감싸고 있다."하물며 악을 짓기를 물 마심같이 하는"(욥 15:16). 계속 물을 마시고 싶어 하되 마셔도 만족이 없는 수종병환자처럼 그들은 일종의 갈증을 품고 죄짓기를 목타게 갈망한다. 그들은 죄로 인해 기진맥진해 하면서도 여전히 범죄한다. 엡 4:19. "저희가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이는 마치 피곤하면서도 사냥이 즐거원서 자기 사냥감을 추적하는 일을 계속하여 이를 떠날 수 없는 사람과 흡사한 것이다(렘 9:5). 하나님은 사람이 죄짓는 도중에 중지시키기 위해 도중에 수많은 화염검을 두셨지만 그들은 계속 범죄하길 멈추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이 금지된 실과에 대해 얼마나 강한 욕구를 품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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