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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1 (토마스 왓슨)

토마스 왓슨

by 김경호 진실 2012. 7. 1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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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1 (토마스 왓슨)

 

제 1장 가장 좋은 것들이 경건한 자에게 선을 이룬다.

1. 하나님의 속성은 경건한 자에게 선을 이룬다.

1) 하나님의 능력은 선을 이룬다.
이는 영광스러운 능력(골 1:11) 이며 택하신 자의 선을 위하여 개입한다.
하나님의 능력은 괴로운 가운데 있는 우리를 도우려고 선을 이룬다.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신 33:27) 무엇이 사자 굴에서 다니엘을 들어 올렸는가? 무엇이 고래의 배에서 요나를 들어 올렸는가? 무엇이 히브리인 세 사람을 풀무에서 들어 올렸는가?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다. 상한 갈대가 자라서 번성하는 것을 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닌가? 어떻게 해서 약한 그리스도인이 고난을 견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난 가운데 즐거워할 수 있는가? 그는 전능자의 팔에 의하여 들려올리운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필요를 공급함으로써 우리를 위하여 활동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방법이 실패할 때 위로를 주신다. 까마귀를 통해 엘리야에게 음식을 주신 그분은 자기 백성에게 양식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 병의 기름”(왕상 17:14)을 보존하실 수 있다. 주님은 아하스의 일영표를 10도 뒤로 돌리셨다. 그래서 우리의 외면적 위로가 쇠퇴하고 있고 태양이 거의 지려고 할 때, 하나님은 종종 부흥을 일으키시고 태양을 많은 각도 되돌리시곤 한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타락을 정복한다.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미 7:19). 당신의 죄가 강력한가? 하나님은 힘 있으셔서, 이 리워야단의 머리를 부수실 것이다. 당신의 마음은 강퍅한가?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피로 그 돌을 녹이실 것이다. “전능자가 나로 두렵게 하시나니”(욥 23:16). 우리가 여호사밧처럼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나이다.”(대하 20:12) 하고 아뢸 때, 주님은 우리와 더불어 오르시며 우리를 도와 우리의 싸움을 싸우신다. 주님은 우리가 상대하기에 너무 강한 저 골리앗들의 머리를 잘라 버리신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원수를 정복한다. 하나님은 대적의 교만을 추하게 하시고 그 신념을 부수신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시 2:9). 원수가 격노하고 마귀가 악의를 품지만, 하나님께는 능력이 있다. 하나님은 불의한 자의 마귀가 악의를 품지만, 하나님께는 능력이 있다. 하나님은 불의한 자의 모든 세력을 얼마나 쉽게 패주시키실 수 있는가! “주밖에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대하 14:11)
하나님의 능력은 그 교회의 편에 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오 너의 영광의 칼 이시로다.”(신 33:29)

2) 하나님의 지혜는 선을 이룬다.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를 교훈하는 우리의 신탁이다.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듯이, 모사이시기도 하다 (사 9:6). 우리는 자주 어둠 가운데 있으며 복잡하고 미심쩍은 문제에 빠져 어떤 길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한다.
“내가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시 32:8) 여기서 “눈”은 하나님의 지혜를 표시한다. 성도가 통찰력 있는 정치가보다 더 멀리 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악을 예견하고 스스로 숨는다. 사단의 궤변을 본다. 하나님의 지혜는 앞서 행하여 그들을 인도하는 불기둥이다.

3) 하나님의 선하심은 경건한 자에게 선을 이룬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우리를 유익하게 하는 수단이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선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신다.”(롬 2:4) 하나님의 선하심은 마음을 녹여 눈물을 뿌리게 하는 신령한 햇살이다. 영혼이 말한다. 오, 하나님은 내게 얼마나 선하셨던가? 하나님은 나를 지옥에서 건져 그렇게 멀리 벗어나게 하셨으니 어찌 내가 더 이상 하나님의 영을 근심하게 하리요? 어찌 내가 선하심을 거슬러 범죄 하겠는가?
하나님의 선하심은 모든 복을 이끌어 오므로 선을 이룬다. 우리가 받는 호의는 하나님의 선하심이라는 샘에서 흘러나오는 은물결이다. 선하심이라는 하나님의 속성은 두 가지 복을 생겨나게 한다.
보편적인 복 : 선인이든 악인이든 모든 자가 이 복에 참여한다. 달콤한 이슬은 장미에도 엉겅퀴에도 떨어진다.
최고의 복 : 이 복에는 오직 경건한 자가 참여한다.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시 103:4)
그래서 하나님의 복된 속성은 성도에게 선을 이룬다.

2. 하나님의 약속은 경건한 자에게 선을 이룬다.
약속은 하나님의 손의 표이다. 안전을 얻는 것을 좋은 일이 아닌가? 약속은 복음의 젖이다. 그리고 젖은 어린 아이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닌가? 이 약속들은 “보배로운 약속”(벧후 1:4) 이라 불린다. 이는 곧 실신하려는 영혼을 일으키는 영혼의 강심제이다. 이 약속들은 덕으로 충만하다.
우리가 죄책 아래 있는가?
“자비롭고 은혜로운 여호와” (출 34:6)라는 약속이 있다. 여기서 하나님은 예전처럼 빛나는 옷을 입으시고 황금 홀을 내미셔서 가련하게 떨고 있는 죄인을 자기에게 오라고 격려하신다.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다.” 하나님은 벌하기보다 용서하기를 원하신다. 우리에게 있는 죄보다 그분 안에 자비가 더 많다. 자비는 그분의 본성이다. 벌은 본성적으로 꿀을 주며 화나게 할 때에만 침을 쏜다. 범죄한 죄인은 “그러나 나는 자비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분은 은혜로우시다. 그분은 우리가 자비를 받을 자격이 있어서 자비를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 자비 베푸시기를 기뻐하기 때문에 베푸신다. 그러나 그것이 내게 무슨 상관인가? 어쩌면 내 이름은 면죄부에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인자를 천대까지 베푸신다.” 자비의 창고는 고갈되지 않는다. 하나님께는 보화가 쌓여 있으니, 어찌 당신이 자녀의 몫을 받지 않으리요?
우리가 죄의 오염 아래 있는가? 선을 이루는 약속이 있다.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호 14:4)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실 뿐만 아니라 은혜도 베푸실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자신의 신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셨다. (사 44:3) 이 약속은 성화시키는 성격이 있기 때문에 성경에서 때로는 그릇을 씻는 물에, 때로는 밀을 까부르고 공기를 정결하게 하는 키(fan)에, 때로는 금속을 정련하는 불에 비유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은 영혼을 정결케 하고 성결케하여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하신다.
우리가 큰 곤란에 처해 있는가? 우리에게 선을 이루는 약속이 있다.
“저희 환란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시 91:15).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곤란에 빠지게 하지 않으시며 거기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그분은 그들 옆에 계실 것이다. 그들의 힘이 빠질 때 그 머리와 가슴을 붙드실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약속이 있다. “그는 환란 때에 저희 산성이시로다.”(시 37:39) 영혼은 “오, 나는 시련 때에 넘어질 것이다”하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힘이 되실 것이며, 자신의 힘이 우리에게 있게 하실 것이다. 그분은 그 손을 더 가볍게 움직이시거나 우리의 믿음을 더 강하게 하실 것이다.
우리가 외적인 궁핍을 두려워하는가? 이런 약속이 있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34:10) 만일 우리에게 좋은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가질 것이다. 우리에게 좋지 않은 것이라면 손대지 않는 것이 좋다.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출 23:25) 이 복은 단물이 잎에 내리듯이 떨어진다. 이 복은 우리가 갖고 있는 작은 것을 달콤하게 한다. 내게서 고기를 거두어 가라. 그러면 내가 복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생계를 잇게 못하게 될까봐 두렵다. 다음 성경을 숙독하라.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시 37:25)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다윗은 자신의 경험으로 말한다. 경건한 자가 그처럼 실추된 상태를 보지 않았으며, 경건한 자가 아주 낮아져서 먹을 떡 한 조각을 얻지 못하는 것을 결코 보지 못했다. 주님이 경건한 부모에게는 잠시 궁핍의 시련을 주시겠지만, 그 자손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경건한 자의 자손은 먹을 것을 공급받을 것이다. 다윗은 의인이 떡을 구걸하거나 버림을 받는 것을 결코 보지 못했다. 그는 큰 곤경에 내몰릴지라도, 버림을 받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하늘의 후사이며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신다.

질문. 약속이 어떻게 선을 이루는가?
대답. 약속은 믿음의 양식이다. 그리고 믿음을 강하게 하는 것은 선을 이룬다. 약속들은 믿음의 젖이다. 아이가 젖가슴에서 양식을 빨듯이, 믿음은 그 약속에서 양분을 빨아들인다. 야곱은 심히 두려웠다. (창 32:7) 그의 영혼은 곧 넘어질 것 같았다. 이제 그는 약속으로 나아간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정녕 네게 은혜를 베풀어”(창 32:12) 이 약속은 그의 음식이었다. 그는 이 약속에서 아주 큰 힘을 얻어 기도로 주님과 더불어 밤새도록 씨름할 수 있었고 복 주실 때까지 주님을 보내 드리지 않으려 했다.
이 약속은 또한 기쁨의 샘이다. 이 약속에서 위로하는 것은 세상에서 당황하게 하는 것보다 많다. 우르시누스는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29)는 약속으로 위로를 받았다. 이 약속은 기절하는 자에게 잘 듣는 강심제이다.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다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시 119:92) 약속은 그물에 달린 낚시찌와 같아서 마음이 괴로움의 깊은 물에 빠지지 않도록 붙든다.

3. 하나님의 긍휼은 경건한 자에게 선을 이룬다.
하나님의 긍휼은 우리를 겸손하게 한다.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삼하 7:18) 주여 어찌하여 내게 그런 존귀를 주셔서 나로 왕이 되게 하시나이까? 양을 따르던 나를 주님의 백성 앞에서 출입하게 하시나이까? 그래서 덕스러운 마음을 이렇게 말한다. “주여 내가 누구이관대 나를 다른 이보다 낫게 하시나이까? 다른 이가 쓴 쑥의 잔을 마실 뿐만 아니라 피의 잔(혹은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마실 때 포도나무의 열매를 마시게 하시나이가? 내가 누구관대, 나보다 나은 이들에게 없는 그런 긍휼을 얻게 하시나이까? 주여 어찌하여 내가 온통 무가치한데도 매일 새로운 긍휼의 물결을 보내시나이까?” 하나님의 긍휼은, 죄인을 교만하게 하지만 성도는 겸손하게 한다.
하나님의 긍휼은 영혼을 녹이는 영향력을 갖고 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 안에서 영혼을 녹인다.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고, 하나님의 긍휼은 우리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한다. 사울의 마음이 인자한 대접을 받을 때 어떻게 움직였던가! 다윗은 사울의 허를 찔러 그의 옷깃뿐만 아니라 그의 머리도 벨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사울을 살려주었다. 이 인자는 사울의 마음을 녹였다.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삼상 24:16) 하나님의 자비는 그처럼 마음을 녹이는 영향력을 갖고 있다. 하나님의 긍휼은 사랑의 눈물을 흘리게 한다.
하나님의 긍휼은 마음이 결실케 한다. 밭에 많은 돈을 들이면 더 좋은 곡물이 맺힌다. 덕스러운 영혼은 자신의 재산으로 주님을 존귀케 한다. 보석과 귀고리로 금송아지를 만든 이스라엘과 달리 그는 자기가 받은 긍휼로 황금 송아지를 만들지 아니하고, 금고에 놓은 돈으로 주님을 위한 성전을 지은 솔로몬처럼 행한다. 긍휼의 황금빛 소나기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하나님의 긍휼은 감사하는 마음이 되게 한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시 116:12,13) 다윗은 화목제를 드릴 때 손으로 잔을 들곤 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인용하여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모든 긍휼은 거저 주시는 은혜의 구호품이다. 그리고 이는 영혼으로 하여금 더욱 감사하게 한다. 선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긍휼을 묻는 무덤이 아니라 하나님께 찬송을 돌리는 성전이다. 암브로시우스가 말하듯이 온갖 새가 조물주께 감사의 노래를 지저귄다면, 긍휼 때문에 그 삶이 부요롭고 향기롭게 된 참된 그리스도인은 더욱 그리할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은 소생시킨다. 하나님의 긍휼은 사랑을 끌어당기는 천연 자석일 뿐만 아니라, 순종을 일으키는 숫돌이다.
“내가 생존 세계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시 116:9) 자신의 복을 다시 살피는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을 위하여 활동할 자라고 본다. 그는 긍휼의 아름다움에서 의무의 신속함으로 나아간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쓰고 또 쓰임 받는다. 그는 자신을 하나님께 바친다. 로마인 가운데 다른 사람에 의하여 속전된 사람은 후에 속전해 준 그를 섬기게 된다. 긍휼에 감싸인 영혼은 하나님께 봉사하는데 열심이다.
하나님의 긍휼은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베푼다. 그리스도인은 임시적인 구원자이다. 그는 가난한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고 궁핍 가운데 처한 과부와 고아를 돌아본다. 그는 그들 가운데 자선의 황금 씨앗을 뿌린다.
“은혜를 베풀며 꾸이는 자는 잘 되나니”(시 112:5) 몰약이 나무에서 나오듯 그에게는 자선이 거저 떨어진다. 그래서 경건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긍휼이 선을 이룬다. 하나님의 긍휼은 경건한 자를 하늘로 데려가는 날개이다.
영적인 긍휼도 선을 이룬다.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은 선을 이룬다. 이는 생명의 구주이며, 영혼을 변화시키는 말씀이며, 마음이 그리스도를 닮도록 하며 확신을 낳는다.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살전 1:5) 이는 구원의 마차이다.
기도는 선을 이룬다. 기도는 사랑의 부르짖음이다. 기도는 영혼의 거룩한 욕구와 열심을 불러일으킨다. 기도는 하나님과 더불어 능력을 갖는다.
“내(여호와)게 부탁하라”(사 45:11) 기도는 하나님의 긍휼의 보화를 여는 열쇠이다. 기도는 마음이 하나님께는 열려 있게 하고 죄에게는 닫혀 있게 한다. 기도는 사나운 마음과 정욕의 일어남을 완화한다. 시험에 들려 한다고 깨달은 친구에게 루터는 기도에 전념하라고 충고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총 이어서 원수에게 발사된다. 기도는 영혼의 최고 영약이다. 기도는 모든 자비를 거룩하게 한다. (딤전 4:5) 이는 눈물을 내쫓는다. 기도는 큰 슬픔을 터뜨리게 함으로써 마음을 가라앉힌다. 한나가 기도한 후에,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었다.” (삼상 1:18) 그리고 기도는 이처럼 진기한 결과를 낳으므로, 선을 이룬다.
성찬은 선을 이룬다. 성찬은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대한 상징이며 (계 19:9), 우리가 영광 가운데 그리스도와 함께할 교제의 보증이다. 성찬은 기름진 음식의 잔치이다. 우리에게 하늘에서 오는 떡을 주어, 생명을 보존하고 사망을 막는다. 성찬은 경건한 자의 마음에 영광스러운 결과를 낳는다. 경건한 자의 성정을 활기 띠게 하고, 그 덕을 강하게 하고, 부패를 억제하고, 소망을 되살리고, 기쁨을 증가시킨다. 루터는 “낙담한 영혼을 위로하는 것은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것만큼 큰일이다”하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복된 성찬에서 경건한 자의 영혼에게 이루어질 수 있고 때때로 그렇게 되곤 한다.

4. 성령님의 은혜는 선을 이룬다.
은혜와 영혼의 관계는 빛과 눈, 건강과 몸의 관계와 같다. 덕스러운 아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그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치 아니하는” (잠 31:12)것과 같이 은혜는 영혼에게 그렇게 행한다. 은혜는 얼마나 비할 바 없이 풍요한가! 믿음과 두려움은 나란히 간다. 믿음은 마음을 즐겁게 하고 두려움은 마음을 진지하게 한다. 믿음은 마음을 즐겁게 하고 두려움은 마음을 진지하게 한다. 믿음은 마음을 낙담치 않게 하고 두려움은 마음이 뻔뻔하게 돌아다니지 않게 한다. 모든 은혜는 아름답게 모습을 드러낸다. 소망은 “투구” (살전 5:8) 이며 온유는 “장식” (벧전 3:4)이며, 사랑은 “온전하게 매는 띠” (골 3:14)인 것이다. 성도의 은혜는 성도를 보호하는 무기이며, 높이 날개 하는 날개이며, 부요롭게 하는 보석이며, 향기 나게 하는 향신료이며, 장식하는 별이며, 원기를 회복시키는 강심제이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은 선을 이루지 않는가? 은혜는 하늘에 대한 우리의 증거이다. 우리가 죽음의 시간에 그런 증거를 갖고 있는 것은 유익하지 않는가?

5. 하나님의 천사는 성도에게 선을 이룬다.
선한 천사는 언제라도 하나님의 백성에게 사랑의 모든 직무를 행하려 한다.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히 1:14) 몇몇 교부는 모든 신자에게 수호천사가 있다는 의견을 가졌다. 이 주제에는 뜨거운 논쟁이 필요치 않다. 전체 천사가 성도의 선을 위하여 종사한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선한 천사는 생활에서 성도에게 봉사한다. 마리아를 위로했다. (눅 1:28) 천사들이 사자의 입을 막아 다니엘을 헤칠 수 없게 했다. (단 6:22)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주위에서 천사의 보이지 않는 호위를 받는다.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시 91:11) 천사는 성도의 생명을 호위한다. 천사장도 그러하다.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이 아니뇨?” 가장 높은 천사들이 가장 낮은 성도를 돌본다.
선한 천사는 성도가 죽을 때 봉사한다. 천사는 성도의 죽음의 침상 곁에서 그들을 위로한다. 하나님의 그 영으로 위로하시듯이 그 천사로도 위로하신다. 고뇌 가운데서 계신 그리스도께 천사들이 힘을 도왔다. (눅 22:43) 죽음의 고뇌 가운데 있는 성도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성도의 호흡이 끝날 때, 그 영혼은 천사의 호위를 받아 하늘로 옮기운다. (눅 16:22)
선한 천사는 심판 날에 또한 봉사한다. 천사는 성도의 무덤을 열어 그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때 성도는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처럼 될 것이다
.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마 24:31) 심판 날에 천사들은 경건한 자의 모든 원수를 제거할 것이다. 이 땅에서 성도는 원수에게 괴롬 당한다. “내가 선을 좇는 연고로 나를 대적하나이다.” (시 38:20) 참으로 천사들은 곧 하나님의 백성에게 평안의 말씀을 줄 것이며 그들을 그 모든 원수에게서 자유롭게 할 것이다.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 13:38-42) 심판 날에 하나님의 천사들은 가라지, 곧 불의한 자를 모아다가 묶어 지옥의 풀무 불에 던질 것이니, 경건한 자는 더 이상 원수 때문에 괴롭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선한 천사는 선을 이룬다. 여기서 신자의 존귀와 위엄을 보라. 그는 하나님의 이름이 그 위에 쓰여 있으며(계 3:12), 성령님이 내주하시며 (딤후 1:14), 천사의 호위를 받는다.

6. 성도의 교제는 선을 이룬다.
“우리가……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고후 1:24) 그리스도인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신앙을 굳게 하는 수단이다. 아치의 돌이 서로를 튼튼하게 하듯이,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체험을 나눔으로써 다른 그리스도인을 뜨겁게 하고 소생시킨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히 10:24) 거룩한 모임으로 은혜가 얼마나 번성하는가! 그리스도인은 선한 이야기로 신앙의 등불을 더 밝게 하는 기름을 서로에게 떨어뜨린다.

7. 그리스도의 중보 기도는 선을 이룬다.
아론이 황금패를 이마에 쓰고 귀한 향을 갖고 있듯이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신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사도를 위하여 기도하셨듯이 모든 신자를 위하여 기도하신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요 17:20) 그리스도인이 연약하여 스스로 기도할 수 없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신다. 그분은 세 가지를 위하여 기도하신다.

첫째, 성도가 죄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신다
(요 17:15)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우리는 격리 병원에서 지내듯이 세상에서 산다. 그리스도는 성도가 시대의 전염병 같은 악에 감염되지 않도록 기도하신다.

둘째로, 자기 백성이 거룩함 가운데 전진하도록 기도하신다.

“저희를……거룩하게 하옵소서.” (요 17:17)그들이 성령님의 지속적인 공급을 받고 신선한 기름으로 부음받게 하게 하옵소서.

셋째로, 그들의 영화를 위하여 기도하신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함께 있어” (요 17:24) 그리스도는 성도가 그 팔에 안길 때까지 만족하지 않으신다.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하신 이 기도는 하늘에서 드리시는 기도의 모범이며 복사판이다. 이 얼마나 큰 위로인가! 사단이 시험하고 있을 때 그리스도는 기도하고 계신다! 이 기도는 선을 이룬다.

그리스도의 기도는 우리의 기도에서 죄를 없이하신다. 암브로시우스가 말하듯이, 어린 아이가 꽃다발을 가지고 아버지께 선물하려고 정원에 가서 꽃도 꺾고 잡초도 함께 꺾어오지만, 어머니께 보이자 어머니가 잡초를 빼고 꽃을 묶어 아버지께 드리게 하는 것과 같이, 우리가 기도를 드렸을 때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잡초, 곧 우리의 기도에서 죄를 제거하시고 향기 나는 꽃만 자기 아버지께 드리신다.

8. 성도의 기도는 경건한 자에게 선을 이룬다.
성도는 신비한 몸의 모든 지체를 위하여 기도하며, 그들의 기도는 크게 효과를 본다. 이 기도는 병을 고치는 데 효과가 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약 5:15)
성도의 기도는 원수를 이기는 승리에 효과가 있다.
“당신은 이 남아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사 37:4)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 인을 쳤으므로” (사 37:36)

성도의 기도는 감옥에서 벗어나는 데 효과가 있다.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그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행 12:5-7)
천사가 베드로를 옥에서 빼내었지만, 천사를 불러온 것은 기도였다.
성도의 기도는 죄 용서에 효과가 있다.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기쁘게 받으리니”(욥 42:8) 그래서 성도의 기도는 신비한 몸에 선을 이룬다. 그리고 이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적잖은 특권이며, 그는 늘상 기도의 일에 이끌린다.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곳에 갈 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나는 기도한다. 아니 온 세상에서 나를 위하여 드리는 기도가 많이 있다. 기도할 마음이 없고 기분이 나지 않을 때 생기 넘치고 활기찬 다른 사람들이 나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 그래서 가장 좋은 것들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선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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