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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론1-하나님의 존재

신론

by 김경호 진실 2012. 6. 16.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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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론1-하나님의 존재

 

1.조직신학에서 신론의 위치

전통적으로 신학자들은 조직신학을 신론으로부터 시작하여 왔습니다. 하나님이 계신가? 아니 계신가?(하나님의 존재) 계신다면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의 속성은 무엇인가? 삼위일체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사역 등을 다루어왔고 대부분의 조직신학 책들도 거의 다 이 순서를 따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조직 신학 첫 시간에 배운 것처럼 신학을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에 관한 체계적인 지식을 추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한다면 이것은 당연한 논리입니다. 그러나 19세기에 오면 지금까지의 하나님 중심의 조직신학이 인간 중심으로 넘어가버리는 데 그 배후에는 자유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슐라이에르 마허가 있습니다. 슐라이에르 마허는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 믿지 못하고 인간 자신의 정서적 혹은 이성적 이해에 근거하여 신학 작업을 시도한 사람입니다. 그에 의하면 신학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을 믿음으로 알아가는 것이 아니고 인간 스스로 종교적인 의식과 거기에서 내포된 교리들의 연구와 분석으로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신학서론을 마치고 신론을 공부하면서 지금 신학계의 흐름이 어떤 경향인지를 이해하고 하나님 중심의 신학을 견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도 신론을 공부하면서 비슷한 순서로 진행할 것인데 단지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철학적인 논증을 다 소개하지는 않을 것이고, 하나님의 속성과 삼위일체를 그 순서를 바꾸어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2.하나님의 존재

이 전제가 없다면 신학이 불가능하므로 하나님의 존재는 신학의 확정적인 대전제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존재를 전적으로 믿고 시작하지만(히11:6) 이것을 이성적인 논증으로 다 증거 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카이퍼의 말처럼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하려고 하는 시도는 부질없는 노력이거나 성공할 가망이 전혀 없는 것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우리의 믿음은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고 일차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감 된 말씀에 기초하며 이차적으로는 일반계시 가운데 발견된 객관적인 증거에 기초합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철학적이고 합리적인 논증은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3.하나님에 대한 인식

이는 사실 서론에서 다룬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해서, 성경을 통해, 성령의 조명을 받아 하나님을 인식합니다. 다른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방법은 없다는 것이 전통적인 입장이죠.

 

4.삼위일체

삼위일체는 대부분의 신론 책에서 그 중요성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과 따로 때어서 다루었지만 우리는 이 시간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다루면서 삼위일체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삼위일체의 교리는 신론을 총망라하는데 이는 삼위일체가 아닌 하나님은 참된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고 삼위일체 밖에서 하나님의 속성이나 존재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1)삼위일체에 대한 이단적 주장

삼위일체를 공부하면서 먼저 양대 이단을 다루는 것은 이 교리가 바로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이단들의 주장 때문에 자극을 받고 확립되었기 때문입니다.

 

A. 양자론(역동적 단일신론)

주후70년 경의 에비온파부터 260년 경의 바울루스와 312년의 루시아누스와 아리우스까지 발견된 사상으로 예수님은 피조되었고 인간이었는데 수세 시에 혹은 부활과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로 승격되었거나 혹은 점진적으로 신격화 되었다는 주장입니다. 에비온파와 알로기파와 바울루스는 수세 때에 양자로 승격되었다고 하며, 바울루스는 예수가 양자로 승격된 후에도 그 안에 있는 로고스가 점진적으로 인간예수를 신격화 함으로 신적영광을 받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데오도투스는 성령이 예수에게 임함으로 그리스도가 되었고 능력을 받았지만 성령이 임한 것만으로는 하나님 되기에는 부족하다고 하여 부활 후에야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아리우스는 절대자인 하나님은 세계를 직접 창조할 수 없기 때문에 완전한 피조물인 중간존재(아들)를 먼저 지으시고 그 중간존재를 통해 만물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 아들은 완전한 피조물이지만 하나님은 아니며 선과 악을 택할 수 있으나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은 시작이 없으나 아들은 시작이 있으며 아들이 지음 받았을 때 하나님도 비로소 아버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의 이런 양자론을 역동적 단일신론이라고 부르는 것은 피조물인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승격되는 과정 중에 역동적인 발전의 면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입니다.

 

B. 양태론(양태론적 단일신론)

양자론 못지않게 삼위일체를 부인한 위험한 사상이 양태론입니다. 이 사상은 180-300년 사이에 사벨리우스를 비롯해서 여러사람이 주장한 것으로 하나님은 오직 한 분 뿐이고 삼위는 하나의 신적 본질에서 나온 세 얼굴로 밖으로 나타나는 모양과 명칭에 불과하다는 주장입니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삼위는 단지 나타난 얼굴이며 나와 너의 관계를 가지는 격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먼저 창조자와 입법자로서 아버지의 얼굴, 혹은 모양으로 나타났고 그 후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부터 승천까지 구속주로서 아들의 얼굴로 나타났고 그 후에 생명을 주고 살리는 성령의 모양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한 하나님이 여러 가지 양태로 모습을 바꾸어 나타났다고 양태론이라고 불리우는데 양자론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을 숫자적으로 지키려다 생긴 이단입니다. 노예투스의 성부고난설도 여기에 포함되며 클레오메네스와 프락세아스도 동일한 주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삼위일체 이해도 양태론적인 이해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많이 들어왔던 유비들, 물, 얼음, 수증기, 나무, 뿌리, 잎, 아버지, 남편, 가장 등등.....하나님이 한 분이라고 할 때 한분을 너무 숫자적으로만 고집하면 양태론적인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한 자리에서 하늘에서는 아버지의 음성이 있었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고 아들은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몇 분입니까? 기독교의 삼위일체는 단일신론이 아니라 유일신론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삼위 하나님만이 유일한 참 신이라는 의미에서 유일신론입니다.

 

C. 삼신론

양태론자들은 전통교회의 삼위일체론을 삼신론적이라고 공격했는데 실제로 삼신론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양자론과 양태론이 단일신론이라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면 삼신론은 삼위의 구별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삼위를 각각 종류가 다른 신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2)삼위일체의 정의

이러한 이단들의 삼위일체 부인 때문에 교회는 313년에 니케아 회의에서 삼위일체에 대한 최초의 공식신조로 하나님은 숫자적으로 한 분이 아니라 3위(three persons),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라는 신조를 채택했습니다. 웨스트 민스터 신앙고백서에는 삼위일체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In the unity of the Godhead there be three persons, of one Substance, power, and eternity; God the Father, God there Son, and God there Holy Ghost. The Father is of none, neither begotten nor proceeding; the Son is eternally begotten of the Father; the Holy Ghost eternally proceeding from the Father and the Son"

 

이것을 “하나님의 본체는 하나이시나 삼위로 계신다. 즉 한 본체와 한 권능과 한 영원성이다. 아버지로서의 하나님, 아들로서의 하나님, 성령으로서의 하나님이시다. 성부는 무슨 물질로 구성되거나 거기서 나오거나 그것에서 유출되는 것은 아니다. 성자는 영원토록 성부에게서 탄생하시고 성령은 영원토록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온다.”로 번역해서 양태론적인 오해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본질은 하나이나 삼위로 계신다고 아닙니다. 삼위가 계시는데 그 본질이 하나다가 맞는 번역이죠. 로서가 아니라 바로 성부 하나님이고 성자하나님이고 성령하나님입니다. 여기서 쓰여 진 격은 가면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구별된 세 위격이 존재하지만 이 세 위격이 상호분리 된 세 분 하나님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연합되고 통일된 한 분 하나님으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페리코레시스라는 개념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한 하나님이 서로 구별된 세 위격으로 계시면서 동시에 분리될 수 없는 한 분으로 존재하는가?라고 할 때 초대교부들은 페리코레시스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상호내주, 혹은 상호침투라는 개념으로 존재한다는 것이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분명히 구별된 존재이지만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성부는 성자와 성령 안에 내주하시고 성자는 성부와 성령 안에 내주하시며 성령은 성부와 성자 안에 내주하시는 방식으로 존재하신다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1. 하나님은 삼위이시다. 2. 각 위격은 서로 구별되지만 분리될 수 없는 한 하나님이시다. 3.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이 세 명제들은 서로 조화될 수 없어 보이지만 셋 중에 하나라도 부인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삼위일체의 교리는 신비요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진리입니다.

출처 : 한우리성경강해
글쓴이 : 한우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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