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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론2-하나님의 본성과 속성

신론

by 김경호 진실 2012. 6. 16.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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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론2-하나님의 본성과 속성

 

1.신론을 공부하는 자세와 마음

이 위대하고도 중심적인 교리를 공부하면서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존재를 논증하지 않고 너무나 당연한 사실로 선언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신학, 특히 신론을 공부할 때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와 그로 말미암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근대신학이 인간에서부터 출발하여 하나님에 대한 교리로 가는 신학의 순서를 택했지만 그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다른 모든 지식의 근본이며 총합이기 때문입니다. 바른 신학은 인간으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제임스 패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인간을 가장 존귀하게 하기에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목적과 궁극적 성취는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에 있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공부는 지식의 축적이나 지적인 즐거움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모든 신학도는 요17:3절의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는 말씀처럼 자신의 공부가 영생을 맛보는 공부가 되기 위한 열망과 목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출3:5절의 말씀,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는 말씀처럼 큰 경외감을 가지고 청결한 마음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말씀 앞에 서야 할 것입니다. 이런 열망과 간절한 믿음의 자세가 아니면 신론은 공부할 이유가 없습니다.

 

2.하나님의 본성

하나님의 본성이란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독특한 하나님의 본질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본성을 말할 때는 언제나 하나님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는 영광스러운 분이며 심오한 분이며 완전한 분이며 충만한 분이라는 것을 전제하여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이런 것이 하나님의 본질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마치 컵으로 태평양의 물 전체를 담아보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크신 분이며 위대한 분이십니다. 경외감을 가져야 합니다.

 

1)자존성

출3:14절에 의하면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다른 무언가로부터 유래한 것이 아니며 영향을 받지도 않는 절대적인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궁극적이며 절대적인 존재! 가장 높으시며 탁월하시며 말할 수 없는 위엄을 가진 그분이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유한하지 않습니다. 무한한 분입니다. 다른 모든 것의 원인이며 모든 구속과 한계로부터 자유로우십니다. 인생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반드시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2)영

요4:24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물질적인 존재가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육체적인 감각으로 결코 인지될 수 없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시며 신체기관도 몸도 없으시며 시공간의 어떤 제한도 받지 않으십니다. 십계명의 첫 두 계명에서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 이유도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어디에나 계십니다. (편재성) 하나님은 하늘에 충만하십니다. 땅에 충만하십니다.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렘23:24) 하나님이 영이시며 어디에도 계신다는 이 사실은 우리에게 한없는 위로가 되는 동시에 경고를 줍니다. 시139:7-10절을 보십시오. 만약 우리가 죄를 지었다면 우리는 어디에서도 하나님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신실하게 하나님을 향하여 있다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겠습니까? 오늘 영이시기에 무소부재하시며 편재하시는 하나님 앞에 나의 삶은 위로를 받습니까? 아니면 경고를 받고 있습니까?

 

3)인격성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범신론자들의 말처럼 하나님은 위대한 정신이나 혹은 힘이나 에너지가 아니라 인격이십니다. 인격은 마음, 지성, 의지, 이성, 개별성, 자의식, 자기 결정을 가지고 있을 때 그론 존재를 인격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인격이라고 단언합니다. 시115편은 하나님이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는 우상과 달리 살아계셔서 그가 지으신 모든 피조세계를 다스리시며 인생들에게 말씀하시는 살아계신 인격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합니다. 무엇보다도 성육신 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의 인격 안에서 하나님이 인격이심을 가장 확실하게 증거하셨습니다.

 

3.하나님의 속성

속성이란 하나님의 본성의 일부로 우리에게 알려진 하나님의 덕의 일부분입니다(벧전2:9).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이러한 하나님의 덕(속성)을 선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하시기를 기뻐하셨고, 어느 정도는 우리가 이해할 수도 있는 하나님에 대한 사실, 하나님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영원한 본성의 몇 가지 측면들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비 공유적 속성과 공유적 속성들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1)비공유적 속성

인생과 공유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자신만 가지고 계신 독특한 속성들로 하나님과 피조물을 구별시키는 속성입니다. 여기에는 이미 언급한 하나님의 본성인 자존성과 무한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①영원성(불변성)

하나님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신 분입니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시90:2)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며 불변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본질상 달라질 수 없습니다. 유한하고 너무나 자주 달라지는 인생과 달리 하나님은 영원히 동일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13:8),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1:17)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영원하시고 불변하시기에 자신이 약속하신 모든 것을 신실하게 시행하실 것이며 그러하기에 우리가 그분을 신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여기서 하나님의 영원성과 불변성을 이야기 할 때 하나님의 인격성의 개념을 부인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불변성은 기계적 불변성이 아닙니다. 인격적 불변성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방법으로 사람과 관계를 맺으시기 때문에 그분의 행동에는 변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토록 의로우시고 거룩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불변성은 성품의 불변과 존재의 불변성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뜻의 돌이킴은 하나님의 성품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맺으시는 관계의 모습이 변한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섭리는 다양하게 변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불변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사변적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성을 지금으로 바꿀 수 있는 믿음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오늘도 살아계십니다. 지금 살아계시는 영원하신 하나님! 그러하기에 하나님은 찬송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②전지성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되 완전하고도 완벽하게 아십니다. 그의 지식은 완전한 지식이며 절대적 지식이며 완벽한 지식입니다. 우주의 모든 일을 알고 계시며 시139:2-4의 말씀처럼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아십니다. 나의 모든 행동과 행위를 익히 아시며 나의 모든 말을 아십니다. 믿음과 지식의 부족으로 인생들이 너무나 자주 “하나님은 지금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시는가?”라고 탄식하지만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심지어는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십니다(눅12:7). 하나님은 처음부터 결말까지 다 아십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바울이 롬11:33절에서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라고 감탄한 것이 전혀 놀랍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도 그런 탄성이 있는지요?

 

③전능성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실 뿐 아니라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창18:4절에 아브라함에게 “여호와께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고 물으신 하나님의 물음처럼 하나님께는 능치 못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모든 것을 만드신 전능하신 창조자입니다. 흔히 인생들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상고할 때 너무나 빨리 자신의 소원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죄인을 구원하기에 충분한 능력으로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는 죄를 짓지만 죄를 처리하거나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비참과 곤고와 불행이 죄의 삯으로 인생에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처리하시는 능력자입니다. 참으로 인생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소원을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하기 이전에 모든 불행의 원천인 죄를 처리하고 극복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기대하고 갈망해야 할 것입니다.

 

2)공유적 속성(도덕적 속성)

우리에게도 주신 속성으로 우리가 늘 추구하고 닮아가야 하는 도덕적 속성들입니다.

 

①거룩성

거룩이란 죄와는 완전히 분리된 본질적이고 완벽한 순결을 의미하는데 성경은 어디에서나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라고 가르칩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말한 것을 보십시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합1:13), 또한 사도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느니라.”(요일1:5). 뿐만 아니라 우리 주님도 하나님을 항상 거룩한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가장 잘 보여주시는 곳이 갈보리입니다. 하나님은 완벽하게 거룩하시기에 죄를 그냥 용서할 수 없는 분입니다. 갈보리의 끔찍한 죽음-죄에 대한 심판-이 없이 구원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성경의 가장 큰 선포이며 증거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죄에 대한 그릇된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정말 심각한 죄인이라고 느껴본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자신을 살펴서입니다. 죄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끔찍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바울처럼 내 안에 선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고백하는 것은 자신의 행실을 살필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설 때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묵상할 때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우리의 거룩함을 촉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벧전1:16)

 

②의로우심

거룩하신 하나님은 동시에 의로우십니다. 의는 하나님의 옳으심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옳으신 분입니다. 그러하기에 잘못된 어떤 것도 하실 수 없으며 언제나 바르고 옳은 것만 하시는 의로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필연적으로 악한 것과 바르지 못한 것에 대한 공의로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기에 죄를 혐오하시고 미워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 모든 자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있습니다. 렘5:1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이 왜 망합니까? 정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자 한 사람이 없어서 망했습니다. 주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오늘 주리고 목마른 마음으로 핍박을 받기까지 주님이 찾고 있는 의를 행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요? 신학도의 진지한 자기 물음이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③사랑(선하심)

하나님의 공유적 속성을 논할 때 순서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부터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거룩함, 의로우심부터 생각하고 그다음으로 사랑과 선하심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순서가 바뀔 때 때로 사람들은 사랑의 하나님을 말하면서 믿음이 파선하도록 죄 가운데 자신을 방치하는 끔찍하고도 위험한 일을 자행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속성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모든 피조물을 관대하게 다루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입니다. 성경 가운데 나오는 인자함, 선하심이란 표현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입니다. 이 성품이 일반피조세계에도 선인과 악인의 구분 없이 해와 비를 내리게 하며(마5:45), 공중 나는 새도 먹이게 합니다(마6:26).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이 나타나는 또 다른 방식은 은혜입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가 은혜라면 이것은 분명히 선하심과 사랑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복의 원천이 바로 이 은혜와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수많은 단어로 나타나고 표현됩니다. 자비, 긍휼, 은혜, 인자하심, 인내, 오래참으심...고전13장의 사랑장을 보십시오. 거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노래하고 있는지? 이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④신실하심(미쁘심, faithfulness)

이 속성은 어떤 의미에서 의와 불변성의 개념에도 포함될 수 있지만 성경에 신실하심이 매우 강조되어 있기에 따로 생각하는 것도 유익합니다. 신실하시다는 것은 약속을 진실하게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절대로 어기지 않는 분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의 종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구해주실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이 신실하다는 것은 우리가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안전하게 기댈 수 있는 분이 바로 하나님인 것을 확인시켜줍니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5:24),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요일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1:9)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해야 합니다. 허드슨 테일러의 말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매달려야 합니다.

 

3)하나님의 속성을 생각할 때 주의할 점

하나님은 방금 우리가 생각한 이 모든 속성을 동시에 모두 갖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속성을 생각할 때 그 어느 하나라도 따로 분리시켜서는 안 됩니다. 또한 한 속성과 다른 속성을 대치시켜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사랑을 대조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시면서도 동시에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거룩이 따로 있고 사랑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은 거룩한 사랑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모든 속성은 완벽하게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기억할 때 우리의 사고도 균형성을 유지하게 될 것입니다.

 

출처 : 한우리성경강해
글쓴이 : 한우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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