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그리스도인 4 (호라티우스 보나르)

호라티우스 보나르

by 김경호 진실 2012. 6. 23. 11:08

본문

은 것을 굳게 붙드십시오

변덕을 경계하십시오.
여러 가지 이상한 교리들에 끌려 다니지 마십시오.
자신의 입장을 자주 변경하고 새로운 견해를 취하는 것은 나쁜 신호입니다.

"마음을 은혜로 굳게 함이 선하며"(히 13:9).
우리가 처음에 가진 확신을 끝까지 견고히 잡는 것이 선한 것입니다(히 3:14).
당신은 "하나님의 의(義)"로 시작하였고, 그것이 넓은 덮개이며 충분한 안식처임을 알았습니다. 당신의 슬픔이 너무 무거워 감당할 수 없었을 때, 당신의 죄를 그리스도께 옮기시고 그리스도의 의를 당신에게 옮기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기쁨이요 화평이었습니다.
당신이 붙잡고 있는 이 진리를 결코 놓지 마십시오.
이 복된 교환을 항상 기뻐하십시오.
"의로우신 분"의 의가 날마다 당신을 덮도록 하십시오.

오래된 것에 싫증을 내고 항상 새로운 것을 붙잡으려고 하는 사람은 속임을 당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단순함에서 벗어나고, 그리스도께 속한 것들에 대하여 흥미를 잃어버린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결코 "사랑 안에 뿌리내리고 터를 다진"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새로운 것들을 사랑하다가 파선하였습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은 비단 아테네 사람들만 열망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교회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도 열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정함이 없이 여러 가지 이상한 교리들에 끌려 다닙니다.
오래된 진리들은 신선미가 떨어져 식상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엡 4:14; 히13:9; 요일 4:1). "가려운 귀들과 선생을 많이 두는 것"을 경계하십시오(딤후 4:3).

이와 더불어 논쟁을 즐기는 것을 자주 보게 되는데, 비록 진리를 옹호할지라도, 이것 역시 거의 같은 정도로 해롭습니다.
음식을 먹는 것보다 음식에 대하여 논쟁하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은 몹시 야위어 있을 것입니다.
범죄와 마찬가지로 때로는 논쟁을 해야 하지만, "날카로운 면도날(削刀)"처럼 논쟁은 간교한 면이 있으며 안전하게 다루기가 어렵습니다(시 52:2).
논쟁은 비록 믿음을 파괴하지 않을지라도, 사랑을 삼켜버리는 경우가 흔합니다.
하지만 진리는 굳게 지켜야 합니다.
만일 거짓이 당신을 공격한다면 "성도들에게 단 한번 전달된 믿음을 위하여 힘써 싸우십시오"(유다 1:3).
사단이 어두움의 왕으로 오든지 빛의 천사로 오든지 그를 대항하고, "믿음 안에 굳게 서십시오."
거짓을 희롱의 대상으로 삼지 말고 진리를 유희의 대상으로 삼지 마십시오.
어떤 값을 주고라도 "진리를 사되"(잠 23:23), 세상의 모든 금은보화를 준다고 해도 "그 진리를 팔지 마십시오."
당신이 거짓과 변개(變改)에 대비할 때에 흥분을 경계하십시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마음"은 평온하며, 들떠있거나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평온하게 하고 흥분시키지 않으며, 복음의 성향은 성경의 모든 진리가 그렇듯이 평온하게 하고 선동하지 않습니다.
강한 어투나 자극적인 문구나 거친 표현을 사용하지 마십시오.
이것들은 사람을 두려워 떨게 하는데 적합한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불이나 지진이나 태풍 가운데 계시는 것이 아니라, 조용하고 나지막한 음성 가운데 계십니다.
종교적 체험이나 사실을 진술하고 진리를 설명할 때에 흥미위주가 되지 않도록 경계하십시오.
감정적이거나 감상적인 것은 사라질 뿐만 아니라, 흔히 양심이 마비되는 후유증은 아닐지라도, 냉담하게 될 뿐입니다.
우리의 스승께서는 항상 평온하셨으니, 평온함은 참된 힘이거나 적어도 힘의 결과입니다.
거센 폭풍이 휘몰아쳐도 정작 폭풍이 지나가는 수면은 잔잔하듯이, 참으로 강렬한 영적인 느낌은 요란스럽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혼을 통하여 발산되고, 또 조용하고 단순하며 짧은 말로 표출되는 평온함의 깊이와 경건함에 의하여 자신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부흥집회에 따르는 영적 "흥분(excitement)", 곧 영의 뜨거운 상태에 대해 세속적인 사람들이나 미지근한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말을 전부 믿지는 마십시오.
회심은 영적 흥분(영의 뜨거움)이 아닙니다.
열심은 영적 흥분이 아닙니다.
혼들을 사랑하는 것은 영적 흥분이 아닙니다.
말씀에 두려워 떠는 것은 영적 흥분이 아닙니다.
"부흥집회"에 영적 흥분이 약간 있을지라도, 혼들이 멸망하는 것보다는 영적 흥분이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극장이나 연회장이나 연주회, 또는 정치적 모임이나 국회의원 선거나 심지어 "조용한 저녁 파티"라 불리는 것들에 더 큰 흥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불평을 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습니다.
어찌하든지 평온하십시오.
그러나 모든 흥분이 죄나 위선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흥분은 좋지 않으나 이보다 더 나쁜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둔감하고 잠자는 기독교 신앙은 더 나쁘며, 훨씬 더 안 좋습니다.
딱딱하고 얼어버린 형식주의는 더 나쁘며, 훨씬 더 안 좋습니다.
안이한 세속적 신앙은 더 나쁘며, 훨씬 더 안 좋습니다.
"항상 열심히 사모함을 받는 것"과(갈 4:18) "영이 뜨거운 것"(롬 12:11)은 좋은 일입니다.
"네 손이 할 일을 찾으면 무엇이든지 힘을 다하여 하라"(전 9:10).
조금이라도 할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잘 하십시오.
거기에 혼을 쏟고, "마음을 다하여" 하십시오(골 3:23).


http://thevine21.hompee.com/

728x90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