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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칼빈의 기독교강요 / 표지 ,서론>

조영일목사(전주)

by 김경호 진실 2012. 7. 2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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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기독교강요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칼빈의 신학과 사상에의 초대

전북신학교 (교수) 조 영 일

 

 

 

 

강의 안내

 

1. 기독교강요의 장점

1) 성경진리의 독보적인 해석과 복음주의적인 신앙의 보루를 지켜 격찬의 옹호를 받았으며

2) 모든 신자에게 신앙의 영향을 끼침이 지대하다.

3) 예배를 금기한 시대를 살아 온 기독교인들에게 인내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4) 영적 고전으로서 가치를 지닌다.

 

2. 기독교강요의 탄생 동기

1) JOHN CALVIN(요한 칼빈)은 1509년 7월 10일 불란서의 피갈디현의 노용에서 태어나 파리대학을 거쳐 오를레앙(Orleans)과 부르그(Bourges)에서 법학을 공부하였으나 그후 법조계를 떠나 고전문학에 관심을 가졌으며, 그 중에 성서학과 사회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당대의 종교적 위기를 체감하고 있었다.

2) 그의 친구 니콜라스 콥(Nicolas Cop)이 대학의 학장이 되었을 때(1533.11.1) 연설문에 기록한 개혁주의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키며 바젤로 피신하게 된다.

3) 그의 영향은 성서적 휴메니즘의 선구자 마가렛드 앙굴렘(Marguerite d'Angouleme)에게서 비롯되었고,

4) 그녀는 성서를 불어로 번역했던 노 학자 르페브러(Lef'evre Jacques)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본다.

5) 르페브러 영향을 받아 개신교도의 대열에 서는 회심을 한다.

6) 불어판 성경이 1535년 6월에 출간 될 무렵 칼빈의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원고는 상당히 진전되어 있었으며, 1535년 1월 프랑스를 떠나 바젤에서 저서를 기록하게 된다.

7) 1535년 2월 ~ 8월까지 본서의 저술이 진행되고, 프랑스의 중대사건의 소식을 접하면서 ~ 프랑스 기독교 박해는 R.C에 의한 것으로 뒤쁘라(Duprat) 추기경의 사망과 함께 소강상태를 유지한다.

8) 1535년 프랑크푸르트 가을 전시회까지 출간을 기대하면서 “프란시스 1세에게 드리는 서언(the Prefatory to Francis I)"에 그의 이름과 함께 날짜를 써 넣은 1535년 8월 23일에야 탈고되었다.

9) 바젤의 인쇄업자 프렛터(Thomas Platter)와 라지우스(Balthasar Lasius)는 오포린(Jean Oporin)의 협력을 받아 1536년 3월에 이 논문이 발행된다.

 

3. 기독교강요의 원어 해석

Institutio는 “훈련, 교훈(instruction)" 또는 ”교육(education)"이라는 의미를 가졌고, 종교적 심성에 대한 기본적 관심은 생존을 위한 투쟁과 깊은 관련이 있었으며, 강요는 박해당하는 성서적 신앙의 소유자들을 항구적으로 유력하게 변호하는 변론서이다.

초기 1536년 판 본문은 6장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후에 추가하여 “하나님에 대한 지식, 구약과 신약의 차이점과 유사점, 예정과 섭리 및 기독교인의 생활등과 같이 칼빈의 사고의 구조에서 그 중요성이 인정되어진 것들을 다루었다. 최초의 프랑스어판(1537년 번역문)은 없으나 1541년 판이 프랑스어로 남았고 이 번역본은 1538년 라틴어판을 직접 번역한 것으로 본다(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4. 기독교강요의 범위

기독교강요는 개신교신학의 고전적인 진술이며, 기독교신학의 전 분야를 다루었다. 칼빈의 저술 당시의 마음의 자세에 대하여는 -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굴복시켜 가르침을 잘 듣도록 온순하게 하셨다.”- 그 심오하고 지속적인 내적 변화의 결과로서 그는 하나님을 의식하는 사람으로 살았고 저술활동을 하였다.

1) 하나님은 어떻게 자신을 알려주시는가?

2) 하나님의 형용할 수 없는 위엄, 주권적 권능, 인간에게 함께하시는 것에 대한 경외감으로 가득 채운다.

3) 하나님을 사변적 사유의 결과로 인식하지 않고 인간의 지적 능력을 스스로 잠재움으로써 인간의 능력으로 다룰 수 없는 주재임을 역설한다. 따라서 인간의 이성으로 하나님을 찾게 하지 않으시고 예배와 순종으로 하나님을 배우겠다는 사람들에게만 자신을 알려주신다.

 

5. 칼빈의 신학과 신앙의 본질

1) 칼빈의 지성과 영성 그리고 감정적 기술은 “그 마음을 보라 그리고 써라”는 말과 같이 직업적인 신학자가 아니라 천부적인 재능에 믿음의 의미들을 글로 표현함으로써 마음의 충동을 따른 독실한 신앙인이었다. 따라서 이 책은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이라 하지 않고 “경건대전”(Summer Pietatis)라고 하여 경건의 산물로서의 그의 신학이다.

2) 그의 사유의 원천은 신비 즉 하나님의 초월에 연관한다.

3) 성만찬의 신비는 인간의 이론적인 표현으로는 불가능한 실재이다.

4) 경건이란 외형적 겉치례의 제한된 위선이 아니라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얻기 위한 선결요건으로 본다

“경건”(제1권 2장 1절: 본서 73p) - 칼빈에게 있어서 종교와 경건은 하나의 동일한 것으로 여겼으며 감사와 사랑과 순종은 건전한 신학의 불가결한 선결조건으로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덕택으로 돌리고자 하였다”고 -

“I call piety that reverence joined with love of God which the knowledge of his benefits induces."

5) 칼빈의 강요는 후대 사상가들과 신앙의 사람들에게 사유의 창고이며,

6) 창조하신 세계를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충분히 암시한다는 것이다(삿13:17~18).

 

6. 구원의 본질적 계획

1) 하나님께서는 이 밝은 우주를 눈 먼 채로 더듬고 다니는 이 곤경에 빠진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 어거스틴의 은총론, 칼빈의 예정론

2) 전능과 공의와 지혜와 자비로우심을 피조물들에게까지 베풀어 주심에 의존한다.

3)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우림, 둠밈)들 속에서 그분을 발견할 수 없을 때 그분의 말씀으로 계시하신다. 그의 영원한 지혜는 그리스도시다 - 조정의 원리

4) 성경의 무오성 - 논증에 맞지 않는 성서의 본문을 끌어내어 자의적인 영해(allegorical exegesis)하는 것으로 사용을 정당화 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 일천번제(왕상3: )

- 성서의 권위를 칼빈은 의심한 적이 없으며, 그 본질은 그 메시지 자체에 의존한다.

① 성서의 신적권위는 교회의 선언에 의존하지 않고 교회의 토대가 되는 성서 그 자체에 있다.

② 성서의 권위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자들에 의해 확실해진다.

③ 성령의 증거는 모든 이성적 사고보다 훨씬 탁월하다.

④ 진리는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들어오심으로만 우리의 것이 된다.

⑤ 성령은 성경의 해석자이며 독자의 마음에 성경의 가르침을 인 치신다.

⑥ 성경의 지시에 의존하면 성도의 무오한 진리의 책이 된다.

⑦ 성경은 계시성이 있으며, 생명의 주를 소유하도록 하는 원리가 성서의 임무이다.

⑧ 성경은 그리스도를 발견 할 목적으로 읽어야 한다.

⑨ 강요의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항구적 만남에 목적이 있으며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에 의존할 뿐이다.

 

5) 교회와 조직과 예배의 원리는 성경에 의존한다.

6) 말씀의 권위에 대하여는 우리의 마음을 포로로 잡아 하나님께 저항하지 못하게 하고 마음을 겸손하게 하여 그 의미에 대하여 감히 반역하지 못하게 한다.

 

7. 신학적 주자들의 계보

1) 칼빈은 어거스틴의 신학사상에 큰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어거스틴의 제자로 위클리프(Wycliffe)였고, 죤 후스(John Hus)는 위클리프 보다 더욱 어거스틴적 인물이었다고 평가하였다.

- 어거스틴은 ① 도덕적 무기력함을 인하여 하나님의 은총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② 은총은 과거의 공적에 따라서가 아니라 은혜로 말미암아 주어지며, “예정”은 공적과는 전혀 무관하게 하나님의 자유로우신 뜻에 따른다.

2) 종교개혁의 내적승리는 어거스틴의 교회론에 대한 어거스틴의 은총론의 궁극적 승리이다.

3) 어거스틴의 최대의 제자는 칼빈이다.

4) 칼빈은 - 선택되지 않는 사람에 대한 영벌도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에 따른 특별한 예정(결정)이라는 [이중예정]을 주장하여 어거스틴의 지적한계를 넘어섰다.

 

8. 칼빈신학의 구성요소

1)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한 확신은 매우 확고하다.

- 선택되지 않는 사람에 대한 영벌과 선택하여 영생에 속한 구속을 부여 받게 되는 자의 결정은 하나님의 고유한 권한에 의한 것으로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결정된 예정이다.

2) 인간은 자신의 구원에 기여할 능력이 상실되어 있다.

3) 선택은 미리 아신다는 예지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4) 모든 사람의 사후에 관한 결정은 하나님의 영원한 선고에 따라 결정된다.

5) 선택받지 못한 자의 [간과]는 누락이 아니라 영벌에 속한 결정이다.

 

9. 중생에 관하여

1) 신실한 회개를 수반하여 영혼의 변화를 가져오며, 금욕과 영의 부활을 포함한다.

-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옛 본성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의 원리에 의하여 하나님의 형상대로 새롭게 되고, 완전에 도달할 수 없는 완전을 향하여 나아가며, 본향을 향하여 현실적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순례를 시작하여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2) 성화는 인생행로의 소명을 추구하고 경건의 진보를 이루는 것이다.

3) 신앙은 그리스도를 신앙의 대상으로 수용하고 성령의 은사에 의존하여 자신의 공로와 율법(행위로 하려는 수고)을 멀리한다.

 

10. 칼빈의 교회관

“그리스도의 사회”란 “거룩한 공회로서의 교회”를 의미하며 선택받은 자들로 이루어진 불가시적교회의 구성원으로 오직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는 권속이다.

그러나 불가시적 교회는 구성원들을 알고 있는 지상교회의 가시적인 조직교회와 구별되기는 하지만 분리되지는 않는다.

1) 교회를 신자들의 어머니로 묘사한 키프리안(Cyprian)의 비유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그의 자녀들을 잉태하고, 낳고, 양육하며, 가르친다. 그러므로 그들은 결코 교회를 떠나서는 안 된다.

2) 성례전을 두어 그 안에서 교회의 구성원을 세워나가는 것은 지상교회의 임무이다.

3) 말씀의 참된 선포, 성례전의 바른 집행, 교회의 훈련(권징)을 표지로 한다.

4) 가시적 교회는 표지를 성취한 면에서가 아니라 그것의 발전과 목표상 거룩하다.

5) 교회를 떠나서는 안 되지만 조직을 이탈할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말씀과 성령의 사역이 왜곡되었을 때

② 그리스도를 배우는 훈련이 실패한 그 때에만 가능하다.

6) 사소한 이유로 성도의 교제가 단절되어서는 안 된다.

- 중세 로마교회의 교황권은 교회의 질서를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

7) 훈련이란 - 교회의 그 지체들을 결합시키는 끈이며, 자제를 위한 고삐이며, 아버지의 징계하는 회초리와 같은 것이어서 이것을 [그리스도의 법정]이라 칭하기도 한다.

 

11. 성례전

성례전이란 외적 표징에 의해 확증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증거이며 동시에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을 입증하는 것이다.

~ 어거스틴은 “불가시적 은총의 가시적 형태로서의 성례전”이라 하였으며 ~

1) 성례전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수난을 예표한 성찬뿐이다.

2) 견진, 고해성사, 서품, 혼인성사 등은 성례에 예속할 수 없다.

3) 언약의 공동체 내에 있는 자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

~ 세례 가운데 유아세례를 옹호하다 ~

4) 세례가 구원의 경륜에 중요한 예식이지만 구원의 의식은 아니다.

5) 만찬은 그리스도의 진정한 몸과 피에 영적으로 참여한다는 기념설에 기인한다.

~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것(Communion)은 성령의 은밀한 역사를 통해 가능하다.

로마교회의 미사론(Mass)에 대하여는 죄에 대한 보상행위라고 하는 주장과 관련하여 칼빈은 반박하였는바 - 그 미사가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를 부정하고 보속을 격하시켰기 때문이다.

 

12. 칼빈의 국가관 (Calvin's civil Government)

교회는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그러나 국가의 호의와 지원에 의존할 수 있어야 한다. 프란시스 1세에게 보내는 헌사에서 밝힘과 같이 “진정한 왕권은 하나님의 공사(公使)임을 인정하는 것이며 그의 의무는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통치하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하나님께 복종(협력)하는 곳에서는 정부와 협력할 것을 촉구하고, 그것들이 억압하는 곳에서는 인내할 것을 요청한다.

그리스도께서 대단히 귀중한 희생을 치루고 구속하신 우리들은 신앙을 양보하거나 인간의 욕망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모든 것을 인내해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인간의 목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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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은 라틴어 작가로 성공한 사람이며 목회자요 신학자이다. 그는 파리대학의 마두렘 꼬르디에(Mathurin Cordier)에게 라틴어를 수학했다. 이로써 칼빈은 인문주의 고전문학을 습득하였으며, 법학과 신학을 바탕으로 휴메니즘의 산물인 르네상스의 문예부흥을 기독교문화의 개혁적인 전기로 수용하고 경건의 산물로 기독교강요를 저술하는데 그의 문체나 서술한 내용에 거추장스럽거나 불필요한 단어를 사용할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출처 : 창문
글쓴이 : youngil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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