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는 자신의 사적인 용도를 위해서(for Christ's own private use) 십자가를 지셨는가?
지금으로부터 이천년 전, 이스라엘의 한 도성 예루살렘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그리스도 예수의 죽음이 로마의 형극인 십자가에 의해 집행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Yet we considered him stricken by God, smitten by him, and afflicted)고 하였다.
그는 갈릴리 사람이었고, 갈릴리의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났다고 하였으며 자신을 종종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자신을 인자(仁者)라고 하였으며, 자신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고 말하였다. 또한 자신을 가르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고 말하였다. 예수는 자신의 사역의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그리고 대망의 메시야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러나 예수를 미워하고 살해할 마음을 가진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 그가 하나님을 모독하고 참람한 언사와 행동을 하며 유대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사역이 진행되는 어느 날 한 제자는 그를 팔았으며 그를 미워하던 사람들에 의해 본디오 빌라도에게서 재판을 받고 고난에 내어준 바 되었다(suffered under Pontius Pilate).
이천년 전 이스라엘의 지경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던 예수의 고난과 죽음은 이 땅에 살던 사람들과 아무 관계없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유익을 끼친 바 없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만 이루어지는, 아니면 그리스도 자신의 사적인 용도를 위해서(for Christ's own private use) 행하신 일(work)이라고 생각할 것인가?
가난하고 곤궁한(영적 빈곤의 상태 즉, 義의 결핍 된) 사람들을 부유하게 하기 위하여 독생자에게 주신 그 은총들을 수용(receive)하게 하려고 그리스도가 우리 밖에 머물고 계시지 않도록 성령으로 요청하실 뿐 아니라 그리스도가 우리와 분리되지 않도록 촉구하고 계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을 우리와 함께 나누시기 위하여 우리의 소유가 되시고 우리 속에 거하셔야 했다. 필자는 거듭 이렇게 말 할 것이다. 성부께서는 그리스도 자신의 사적인 용도를 위해서가 아니라 영적 빈곤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의 은총을 분배하고자 영적 결합 혹은 내주(內住)를 통해 믿음을 얻게 할 것이며, 그것은 그리스도와의 친교 중에 성장과 성령의 신비한 능력으로만 가능하다고 ........ 또한 그가 우리 밖에 머물러 분리되어 있는 한 그가 인류의 구원을 위해 받으신 모든 고난과 행하신 일들이 우리에게는 여전히 무익하고 무가치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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