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천번제를 교회가 이해하고 있는 방향은 무엇인가?
다윗의 아들이었던 솔로몬의 왕위는 견고하여 갔다. 그리고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셨으므로 그의 나라는 창대하게 나아갔다. 그러나 솔로몬은 이 일을 자신의 영화로움으로 자리를 바꾸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여길 줄 알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존숭하고 사랑하였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여호와의 회막에 나아가 옛 조상들의 건축한 놋단에 이르러 그 위에 일천번제를 드렸다.
역대하 1:6 “여호와 앞 곧 회막 앞에 있는 놋단에 이르러 그 위에 일천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더라”(Solomon went up to the bronze alter before the Lord in the tent of Meeting and offered a thousand burnt offerings on it." 왕상3: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The king went to Gibeon to offer sacrifices, for that was the most important high place, and Solomon offered a thousand burnt offerings on that altar."), 한문으로 기록된 성경은 “~ 그 壇에 一千 燔祭를 드렸더니” 로 기록되어 있다.
솔로몬은 여호와께 제사하는 것을 그의 아버지 다윗으로부터 교훈을 받아 행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고 섬기느냐 하는 문제였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감사하며, 어떤 희생을 드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느냐 하는 과제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얼마나 많이 드릴 수 있느냐”도 아니며, “몇 번의 제사로 횟수를 많이 하느냐”도 아니다. 제물의 양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었다면 마가복음 12:41~44에 가난한 한 과부가 드린 헌금은 평범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을 50,000원으로 계산했을 때, 한 고드란트는 781원(두렙돈 ; 1 lepton=390원x2)에 불과하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들보다 많이 넣었도다”라고 하셨다. 그 여인이 오늘날 교회가 왜곡시킨 일천 날, 일천번의 계속적인 예물을 드릴 수가 있었을까? 과부의 헌금은 자기 모든 소유 생활비 전부였다.
상기한 두 본문은 "一千 燔祭", (즉 "a thousand burnt offerings")로 소이었든지 양이었든지 일천의 제물로 드리는 불로 태워 드리는 제사라는 의미이다. 역대하 7장 4~5의 말씀을 상기 시킨다면 솔로몬은 기브온의 제사를 능히 소를 일천을 드리는 번제(燔祭)였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一千 燔祭를 一千番祭(a thousand numbers offering) 즉 불(燔)을 셈(番)으로 바꿔 왜곡 해석함으로서 그것을 교회가 사적인 용도로(for the church`s own private use) 사용하고자 하는 잘못된 수단으로 주지시켰으며 성도들은 미신적 사술에 얽매여 영적 신령성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여 주기를 필자는 진심으로 바란다.
기브온 산당은 크고 넓었다(the most important high place, RSV=the great high place)
그러므로 일천의 희생물(제물)은 그렇게 많은 횟수(numbers)를 필요로 하는 제사가 아니었으며, 솔로몬은 왕위에 즉위하고 이스라엘백성을 돌아보아야 할 책무가 있었으므로 산당에 오래 머물러있어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므로 일천 희생물의 번제는 속히 드려져야 했을 것이다.
성경의 해석은 당시의 어떤 상황도 문제이지만 기록한 문자적 해석도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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