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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가서 7장> 아담의 노래에 대한 하와의 노래

송영찬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2. 9. 17.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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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 7장

아담의 노래에 대한 하와의 노래

 

송영찬 목사, 기독교개혁신보 편집국장 

 

 

 

 

아가서는 솔로몬에 대한 술람미 여인의 열정적인 사랑이야말로 혼인의 정신에 입각하고 있으며 혼인제도가 가지고 있는 본의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기에 여자들 중의 여자인 술람미 여인을 가리켜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같이 아름답고 해같이 맑고 기치를 벌인 군대같이 엄위한 여자가 누구인가”(6:10)라며 최상의 찬사를 보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가서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이 서로를 가리켜 가장 존귀한 자로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2:23)고 노래한 아담의 감동이 그대로 이들에게서 발견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아가서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을 아담과 하와를 그 원형으로 삼고 있는 지상의 인물들로 제시하며, 이 두 인물들이 아담과 하와를 통해 에덴동산에서 보여주었던 혼인과 가정제도를 온전히 구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온 인류에게 증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아가서는 오늘날 인류에게 혼인의 정형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특별히 6장에서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존귀한 나의 사랑이라는 의미를 가진 암미 나디브’(בידנ ימע)로 부르고(6:12), 이에 병행하여 여인들이 술람미 여인을 솔로몬의 여자라는 의미의 슐람미트(תימלושׁ)라고 부르는(6:13) 장면은 이어 술람미 여인의 애칭으로 등장하는 존귀한 자의 딸또는 존귀한 여인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바드 나디브’(בידנ תב, 7:1)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는 점에서 이 두 사람을 통해 묘사될 사랑의 순수한 열정을 예견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7장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솔로몬의 사랑 노래(7:1-9) : 술람미 여인에 대한 솔로몬의 사랑을 극적으로 노래하며 신비한 부부간의 사랑을 보여준다.

술람미 여인의 사랑 답가(7:10-8:4) : 사랑의 고백과 함께 신비한 합일을 이룬 부부간의 사랑이 충만한 가운데 솔로몬의 사랑 노래에 대해 술람미 여인이 응답한다.

이로써 제4부가 끝나고 제5부가 이어지는데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은 사랑의 언약을 재확인하는 가운데 상호간에 결합된 깊은 사랑을 노래하면서 아가서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다.

 

1. 술람미 여인에 대한 솔로몬의 사랑 노래(7:1-9)

 

1) 존귀한 여인 술람미 여인(7:1-5)

 

7:1 귀한 자의 딸아 신을 신은 네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네 넓적다리는 둥글어서 공교한 장색의 만든 구슬꿰미 같구나

7:2 배꼽은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 같고 허리는 백합화로 두른 밀단 같구나

7:3 두 유방은 암사슴의 쌍태 새끼 같고

7:4 목은 상아 망대 같구나 눈은 헤스본 바드랍빔 문 곁의 못 같고 코는 다메섹을 향한 레바논 망대 같구나

7:5 머리는 갈멜산 같고 드리운 머리털은 자주 빛이 있으니 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이었구나

 

(필자역)

솔로몬의 사랑 노래 1(독창)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신발 속의 네 발들이

존귀한 자의 딸아!

네 둥근 허벅지는 조각품 같으니

장인이 손으로 만든 작품 같구나.

네 배꼽은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 같고

네 배는 백합화로 두른 밀단 같구나.

네 두 가슴은 새끼 노루들 같으니 쌍둥이 암노루 같도다.

네 목은 상아 망대 같고 네 눈은 헤스본 바드람빔 문 곁의 연못 같고

네 코는 다메섹을 향한 레바논 망대 같구나.

네 머리는 갈멜산 같고

네 머리채는 자주 빛이 있으니 왕이 그 머리다발에 묶였구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것이 애칭이든 별칭이든 상대의 인격에 대한 인식과 깊은 관련이 있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에 대해 다양한 이름을 부여하고 있는데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나의 비둘기(5:1,2)를 비롯해 나의 완전한 자(5:2; 6:9)라고도 하며 대부분은 나의 사랑(1:15; 4:1; 6:4)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러한 호칭들은 그만큼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에게 중요한 존재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앞에서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에게 암미 나디브’(בידנ ימע)라는 각별한 호칭을 부여하고 있는데 이는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존귀한 존재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6:5b-9)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은 이미 서로에게 속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는 점에서(2:16; 6:3) 이처럼 서로를 존귀하게 여기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솔로몬은 또 다시 술람미 여인의 인품을 찬미하고 있다.

귀한 자의 딸아 신을 신은 네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네 넓적다리는 둥글어서 숙련공의 손이 만든 구슬꿰미 같구나 배꼽은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 같고 허리는 백합화로 두른 밀단 같구나 두 유방은 암사슴의 쌍태 새끼 같고 목은 상아 망대 같구나 눈은 헤스본 바드랍빔 문 곁에 있는 연못 같고 코는 다메섹을 향한 레바논 망대 같구나 머리는 갈멜산 같고 드리운 머리털은 자주 빛이 있으니 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이었구나”(7:1-5).

이 단락을 6장에 이어서 신부 술람미 여인이 춤추는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대다수 주석가들은 이 단락에서 솔로몬 앞에서 춤추고 있는 술람미 여인에 대한 묘사라고 이야기하는데(이 묘사는 9절까지 이어진다고 말한다) 그것은 너희가 어찌하여 마하나임에서 춤추는 것을 보는 것처럼 술람미 여인 여자를 보려느냐”(6:14)에서 솔로몬이 그동안 함께 술람미 여인과 있었던 예루살렘 여인들을 돌려보내고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만 남아 있는 상태에서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 앞에서 성애의 춤을 추었다고 추측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일부 주석가들은 이 장면은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과 사랑을 나누기 위해 춤추는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이 장면은 오로지 솔로몬만 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특히 이후 전개되는 내용들이 최소한도 내에서 신체를 가리고 거의 온 몸을 드러낸 채 춤추는 술람미 여인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고 추정하고 이 단락은 부부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인 것처럼 해설하면서 여기에 등장하는 여러 신체 부위들에 대한 묘사들을 성관계와 관련을 짓고 있는데 사실 그러한 해석은 그다지 설득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으며 신뢰하기조차 쉽지 않다.

아가서는 그 어디에서도 에로틱한 성애에 대한 묘사를 통해 남녀 간의 성관계 장면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다양한 용어를 사용하는 은유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남녀 간의 인격적인 사랑에 대해 그 모습이 어떤가를 다채롭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가서는 에로틱한 성애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따라서 아가서에 등장하는 많은 은유적인 용어들을 신체의 은밀한 부분에 대한 간접적인 묘사라고 볼 수 없다.

비록 아가서에 신체의 각 부위들과 그에 상응하는 단어들이 등장한다고 할지라도 그 단어들은 두 사람 사이에서 발전되고 승화되는 인격적인 사랑의 숭고함을 묘사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한다.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 사이에 실제로 흥분이 넘치는 성적 교감이 있었다 할지라도 아가서의 시문학적 특성은 이러한 에로틱한 장면들을 얼마든지 순화시켜 묘사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아가서의 기록 목적은 남녀 간의 에로틱한 성행위를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독자들에게 성적 흥분을 유발하거나 혹은 성적 수치심을 심어주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아가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남녀의 인격적인 만남에 근거한 부부간의 인격적인 사랑이 얼마나 숭고하며 아름다우며 순수한가를 보여주기 위해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이 단락에 등장하는 발, 넓적다리, 배꼽, 유방, , , 머리, 머리털에 대한 상세한 묘사들은 여성의 신체 부위를 성적인 특성에 대한 표현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방법은 술람미 여인의 고매하고 고상한 인격과 품성을 신체적인 언어를 통하여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아무리 술람미 여인의 신체적 특성이 여느 여인들과 비교해 볼 때 뛰어나다 할지라도 어느 한 면에서는 결함이 발견될 수 있기 마련이다. 이 세상에서는 그 아무리 미모가 출중한 여인이라 할지라도 결코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매우 미모가 빼어난 여인과 비교한다면 그 어떤 아름다운 여인이라 할지라도 어느 한 면에서는 결함이 발견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아가서가 이처럼 상식이나 보편성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무리한 방법으로 술람미 여인의 모든 신체 부위들을 다른 여인들에 비해 유독 뛰어나게 아름답다고 묘사할 이유가 없다. 만일 그랬다 한다면 그 사실성에 대해 독자들의 의구심만 증폭시킬 뿐 아니라 지금까지 전개해 왔던 이야기들의 신빙성조차도 의심의 여지를 남기게 되는 치명적인 이유가 될 것이다.

또한 아가서가 무리를 하면서까지 술람미 여인의 신체 부위들을 아름답게 치장할 이유도 딱히 없다는 점에서 이 단락의 묘사들이 각 신체의 특성을 통해 술람미 여인의 성적인 아름다움을 묘사하기보다는 술람미 여인의 인격과 품성에 대한 묘사로 보아야 한다.

특히 술람미 여인의 인격과 품성을 묘사함에 있어서 아무리 아름다운 동식물이나 웅장한 사물들로 표현한다 할지라도 이미 그 자체가 비인격적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인격체에 대한 표현의 한계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때문에 아가서는 보다 더 술람미 여인의 인격과 품성을 묘사하기 위해 부득이 인체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동식물이나 사물들을 통해 그 특징을 표현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어떤 여인의 고매한 인격을 찬미할 때 그녀의 이목구비 중 하나를 매우 아름다운 것으로 묘사함으로써 그 효력을 훨씬 잘 드러내게 하는 아주 보편적인 문학적 기법 중 하나이다. 이러한 아가서의 문학적 특징은 본 단락에서 사용된 발, 넓적다리, 배꼽, 유방, , , 머리, 머리털 등의 용어들이 신체의 가장 은밀한 부분들에 대한 구체적인 유비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혹 여기에 등장하는 신체의 부위들이 에로틱한 성적인 행위를 위한 대상이라 할지라도 이런 단어들이 등장했다고 해서 이 단락이 그러한 성적인 행위를 묘사하는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따라서 본 단락은 여러 가지 신체 부위에 대한 비유를 사용하되 그것은 어디까지나 술람미 여인의 내면으로부터 발산되고 있는 인격의 고귀함과 고상함에 대한 다양한 모습들을 다채롭고 풍부한 방식으로 묘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에 대한 보다 확실한 증거는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바드 나디브’(בידנ תב)라고 호칭하면서 이 단락이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서 예루살렘 여인들은 술람미 여인을 가리켜 여자들 중 극히 어여쁜 자”(1:8; 5:9; 6:1)로 부르고 있는 것처럼, 사실 이러한 표현은 객관적으로 그녀의 인품이 인증되었음을 제시하는데 이와 더불어 솔로몬 역시 여자들 중의 여자인 술람미 여인의 인품에 대해 최상의 찬사를 통해 묘사하기 위함이다.

특히 이 단락을 시작하면서 술람미 여인을 존귀한 자의 딸이라고 부르고 있는 바드 나디브’(בידנ תב)는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존귀한 나의 사랑이라는 의미의 암미 나디브’(בידנ ימע)라고 호칭한 것(6:12)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아가서는 이 두 호칭 사이에 솔로몬의 여자라는 의미의 슐람미트(תימלושׁ)라는 호칭을 술람미 여인에게 부여함으로써(6:13) 이 두 사람의 관계가 부부의 전형을 이루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만일 이 단락이 성적인 행위를 연상시키기 위한 것이라 한다면 신을 신은 네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7:1)라는 묘사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성적인 묘사를 목적으로 한다면 신발을 신지 않은 발이 더 어울리기 때문이다. 오히려 신발을 신었다는 것은 그녀가 높은 신분의 사람처럼 기품을 가진 여인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신발은 사치품들 중의 하나였다(16:10). 반면에 맨발인 사람은 슬픔에 잠기었거나 가난한 사람이거나 포로가 된 자들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극명하게 대조된다. 이 사실은 그녀가 귀족적인 품위를 가지고 있음을 암시하는데 본문에 사용된 ’(מעפ)은 복수형으로 이 단어는 대개의 경우 신체의 한 부분인 발을 가리키기보다는 발로 하는 행동들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이 표현은품격 있게 움직이는 발걸음들로 번역하는 것이 훨씬 타당하다. 이러한 정황들은 본 단락이 매우 높은 품위와 인격을 가지고 있는 술람미 여인을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정적으로 보여준다.

이 단락은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네 머리털은 길르앗산 기슭에 누운 염소 떼 같구나 네 이는 목욕장에서 나오는 털 깎인 암양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구나 네 입술은 홍색 실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네 목은 무기를 두려고 건축한 다윗의 망대 곧 방패 천 개, 용사의 모든 방패가 달린 망대 같고 네 두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태 어린 사슴 같구나”(4:1-4)와 깊은 관련이 있다.

나아가 네 머리털은 길르앗산 기슭에 누운 염소 떼 같고 네 이는 목욕장에서 나온 암양 떼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고 너울 속의 너의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왕후가 육십이요 비빈이 팔십이요 시녀가 무수하되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 그는 그 어미의 외딸이요 그 낳은 자의 귀중히 여기는 자로구나 여자들이 그를 보고 복된 자라 하고 왕후와 비빈들도 그를 칭찬하는구나”(6:5b-9)의 문맥과 연속선을 가지고 있다.

이 두 와스프가 술람미 여인의 기품 있는 인격에 대한 솔로몬의 노래인 것처럼 본 단락 역시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언급하면서 총체적인 술람미 여인의 고상한 인품을 노래하는 와스프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솔로몬의 노래는 앞서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에 대한 극찬의 노래로 자신의 사랑이 품고 있는 열정을 노래한 것에 대한 응답이며, ‘여자들 중의 여자이자 내 뼈 중의 뼈이며 살 중의 살이라고 유일하게 고백할 수 있는 아내인 술람미 여인을 위해 솔로몬이 해줄 수 있는 최상의 사랑 노래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솔로몬은 먼저 술람미 여인의 외형적인 아름다움을 통해 그녀의 내적인 사랑의 열정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와스프에 등장하는 묘사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아가서가 거듭 동일하거나 엇비슷한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아가서의 용어들이 아무렇게나 선택된 것이 아니며 일정한 정형의 원칙(formula)을 가지고 있어서 매우 주도면밀하게 취사선택되었다는 사실을 가늠하게 한다. 이것은 독자들이 각 용어들이 상징하는 의미들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잘못에 빠지지 않도록 강화시켜주고 있다. 따라서 해석자들마다 각 용어들이 상징하고 있는 의미들에 대해 아가서가 보여주는 정형의 원칙에서 벗어나거나 독자적으로 자의적인 해석을 적용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이유에서 본 단락에 등장하는 각각의 신체 부위들이 상징하는 바를 일일이 해석하기보다는 이미 앞서 등장한 솔로몬의 와스프들에서 사용된 용어들이 상징하는 의미들을 먼저 충분히 인지하고 본 와스프에서 솔로몬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보다 분명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초두에 밝힌 것처럼 이 단락의 와스프는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존귀한 자의 딸이라고 부른 바드 나디브’(בידנ תב)에 대한 다양하고 다채로운 표현들을 앞선 와스프의 단어들을 사용하여 묘사하고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2-5절까지의 내용들은 한결같이 바드 나디브’(בידנ תב)에 대한 묘사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하며 앞서 등장한 와스프들의 용어들이 상징하는 바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어야 한다.

 

2) 사랑의 화신 술람미 여인(7:6-9)

 

7:6 사랑아 네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어찌 그리 화창한지 쾌락하게 하는구나

7:7 네 키는 종려나무 같고 네 유방은 그 열매 송이 같구나

7:8 내가 말하기를 종려나무에 올라가서 그 가지를 잡으리라 하였나니 네 유방은 포도송이 같고 네 콧김은 사과 냄새 같고

7:9 네 입은 좋은 포도주 같을 것이니라 이 포도주는 나의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미끄럽게 흘러 내려서 자는 자의 입으로 움직이게 하느니라

 

(필자역)

솔로몬의 사랑 노래 2(독창)

너는 어찌 그리 아름답고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가,

참으로 귀여운 여인아!

네 키는 종려나무와 같고 네 가슴은 그 열매 같구나.

내가 말하기를 내가 종려나무에 올라가 그 가지들을 잡으리라하였도다.

이제 네 가슴은 포도나무 송이들과 같고

네 코의 향기는 사과와 같구나.

네 혀는 가장 좋은 포도주와 같아서

달콤하게 내려가 잠든 자의 입술로 말하게 하는구나.

 

앞 단락에서 술람미 여인을 존귀한 아내로 묘사한 솔로몬은 이어서 사랑아 네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어찌 그리 화창한지 즐겁게 하는구나”(7:6)라고 노래하고 있다. 그런데 이 문장만으로는 도무지 어떤 의미를 함의하고 있는지 파악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따라서 이미 등장했던 솔로몬의 와스프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앞 단락은 존귀한 자의 딸로 번역된 나의 존귀한 여인이라는 의미의 바드 나디브’(בידנ תב)에 대한 다양한 묘사이다. 그리고 이 두 번째 단락 역시 사랑아라고 번역된 사랑 그 자체인 여인이라는 의미의 아하바’(הבהא)에 대한 묘사가 진행된다. 여기에서 아하바는 지금까지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지칭했던 모든 호칭들의 총체적인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관심을 가지게 한다.

이전에 솔로몬은 흠조차 찾을 수 없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술람미 여인을 노래했다(4:1-5, 7-15). 그리고 모든 여인들보다 귀한 여인으로 노래했다(6:4-9). 이러한 맥락에 따라 앞 단락에서는 나의 존귀한 여인이라는 의미의 바드 나디브’(בידנ תב)라 부르고 술람미 여인이 왜 자신에게 존귀한 여인인가에 대해 다양하게 신체 부위들을 묘사함으로써 설명하였다. 본 단락에서도 그와 동일한 방식으로 술람미 여인을 아하바’(הבהא)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 아하바의 특성에 대해 다채롭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아하바는 뒤따라 나오는 즐거움, 기쁨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타아누김’(םיגונעת)의 수식을 받고 있는 추상명사인데 이 두 단어가 사랑이 주는 즐거움또는 기쁨의 원천인 사랑으로 술람미 여인을 상징하기 위해 의인화되어 있다. 이것은 솔로몬에게 유일한 기쁨과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사랑이라고 하는 아내가 바로 술람미 여인이라는 사실을 강화시키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서 술람미 여인이야말로 솔로몬에게 있어서 기쁨의 원천이 된다는 의미이며, 술람미 여인을 떠나서는 그 어떤 곳에서나 그 누구에게서라도 기쁨과 즐거움을 찾을 수 없다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서 술람미 여인은 기쁨과 즐거움을 가진 사랑이라는 이름, 아하바’(הבהא)로 불리고 있다.

따라서 사랑아 네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어찌 그리 화창한지 즐겁게 하는구나라는 본문은 히브리 성경의 어순에 따라 어찌 그리 어여쁜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나의 기쁨의 사랑아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때 나의 기쁨의 사랑은 술람미 여인을 호칭하는 고유명사처럼 사용된다. 이에 비해 영어 역본들이나 한글 역본들은 상당히 이 단어를 의역함으로써 본의에 충실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이처럼 술람미 여인을 가리켜 나의 기쁨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른 후 이어서 솔로몬은 왜 술람미 여인이 자신에게 기쁨의 원천이 되는가를 다양한 용어들을 사용하여 증거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술람미 여인의 어떤 모습이 솔로몬에게는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쁨이 되는가에 대한 내용을 7-9절에서 노래하고 있는데, 그것은 곧 아하바’(הבהא)에 대한 묘사이다.

이 노래에서 솔로몬은 네 키는 종려나무 같고 네 유방은 그 열매송이 같구나 내가 말하기를 종려나무에 올라가서 그 가지를 잡으리라 하였나니 네 유방은 포도송이 같고 네 콧김은 사과 냄새 같고 네 입은 좋은 포도주 같을 것이니라 이 포도주는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미끄럽게 흘러내려서 자는 자의 입을 움직이게 하느니라”(7:7-9)고 하면서 술람미 여인이 자신에게 유일한 기쁨을 주는 나의 기쁨의 사랑이라는 이름에 합당하다고 독자들에게 선언하고 있다. 즉 솔로몬에게 있어 술람미 여인은 아하바’(הבהא), 나의 기쁨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림에 있어 조금도 부족함이 없음을 선언하고 있다.

이 두 번째 단락 역시 첫 번째 단락과 같이 성적인 결합을 묘사하거나 혹은 여성의 신체 부위들을 아름답게 묘사하거나 성애의 대상으로 삼기 위한 노래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본문에 등장하는 키, 유방, 콧김, (입술) 등을 여성의 은밀한 부위와 연관지어 상상하든지, 혹은 성애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유추해서도 안 된다. 솔로몬이 자신에게 유일한 즐거움을 주는 아내를 나의 기쁨의 사랑이라고 부르면서 왜 그 아내가 어여쁘고 아름다운지를 7-9절에서 표현하고 하고 있을 뿐이다.

때문에 이 단락에서는 성애를 추구하거나 심지어 성을 제의적 사건으로 다루지도 않으며 술람미 여인을 신격화시키는 경우도 없다. 아울러 유방으로 뒤덮인 에베소의 아데미 여신처럼 형상화시키지도 않으며, 다산을 유추하거나 성적인 쾌락이나 남자의 정열적인 사랑의 대상으로 상상할 그 어떤 것도 발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본 단락에서는 술람미 여인의 성품과 인격 그 자체가 솔로몬에게 기쁨의 원천이라는 내용 외에 그 어떤 성적 행위와 관련된 것도 유추하거나 유비해서 해석되어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솔로몬의 의도는 술람미 여인만이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2:23)고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며 그녀로부터만 기쁨을 찾을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 사실은 다음에 등장하는 술람미 여인의 노래인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7:10)에서도 확인한다. 여기에서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의 사랑 노래가 바로 자기 자신을 사모하고 있음을 표현한 것이며, 이로 인해 술람미 여인 자신 또한 솔로몬에게 속해 있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2. 술람미 여인의 사랑 답가(7:10-13)

 

7:10 나는 나의 사랑하는 이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7:11 나의 사랑하는 이여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

7:12 우리가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꽃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서 내가 나의 사랑을 네게 주리라

7:13 합환채가 향기를 토하고 우리의 문 앞에는 각양 귀한 실과가 새 것, 묵은 것이 구비하였구나 내가 나의 사랑하는 이 너를 위하여 쌓아둔 것이로구나

 

(필자역)

술람미 여인의 사랑 노래 1(독창)

나는 나의 사랑하는 이의 것이며 그의 사모함은 나를 향해 있도다.

오소서, 나의 사랑하는 이여,

우리 들로 나가서 고벨화 숲에서 밤을 지내요.

우리 일찍 일어나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나무들이 꽃을 피웠는지 보아요.

거기에서 내가 내 사랑을 당신에게 주리이다.

 

술람미 여인의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7:10)라는 노래는 이미 독자들에게 익숙한 표현이다. 이와 비슷한 표현이 앞서 나는 나의 사랑하는 이에게 속하였고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다”(6:3)에서 이미 등장하였으며, 좀더 멀리는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다”(2:16)에서도 등장한 바 있다. 단지 ’(사랑하는 자)라는 자리가 바뀌어 등장하고 있을 뿐이며, 그 표현이 의미하는 바는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

이 표현은 창세기에서 아담이 하와를 향하여 불렀던 노래의 의미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데 아담은 하와를 향하여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2:23)고 노래한 내용과 상응한다. 이와 동일한 의미에서 술람미 여인은 이제 솔로몬을 향하여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라고 응답을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술람미 여인의 노래는 사실상 하와의 노래를 대신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특히 본문의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에서 사모하다’(הקושׁת)는 단어는 성경에 3번 등장하는데 창세기 47절에서는 죄가 가인을 먹이로 삼으려고 매복하여 웅크리고 있는 맹수를 상징하는 은유로 사용되며, 창세기 316절에서는 에덴동산에서 인류가 범죄한 이후 하나님께서 하와에게 하신 말씀으로 여자가 남자를 사모하지만 그것은 건강치 못하고 의존적이거나 지배적인 욕구가 될 것이며, 남자 역시 복된 형태가 아니라 냉엄한 억압자로서 여자를 다스리게 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여기에서 사모함다스림은 범죄이후 혼인의 이상이 깨어지고 치명상을 입은 것을 암시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반면에 아가서에서는 매우 이상적으로 이 단어가 사용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에게 속해 있고 솔로몬의 사모함(הקושׁת)이 술람미 여인을 위한 것으로 그 내용이 바꾸어지고 있다. 이러한 술람미 여인의 표현은 범죄로 인한 저주의 파괴적인 결과들이 발생했지만 혼인을 통해 그 효과를 뒤엎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새로운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범죄가 인간관계 안으로 이끌어 들인 파멸로부터 혼인을 통해 인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가 회복되는 수단들 중의 하나로 승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혼인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게 된다는 것은 어느 면에서 에덴동산의 회복에 대한 소망을 일깨워주고 있다.

이처럼 나는 나의 사랑하는 이에게 속하였고 그 남자의 사모함은 나를 위하여 있도다”(7:10)라고 하면서 솔로몬의 사랑 노래에 응답한 술람미 여인은 그 응답이 헛되지 않고 그 둘 사이에 참으로 그렇게 사랑이 실현되었다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 내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7:11)고 하며 즉각적인 반응으로 솔로몬에게 보답하고 있다. 이 보답은 술람미 여인에 대한 숭고한 사랑을 고백하면서 청혼했던 솔로몬의 구애(2:10-14)를 기억나게 한다. 그런데 이처럼 실감나는 술람미 여인의 노래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것을 상징하기 위한 것인지 쉽게 와 닿지 않는 아쉬움이 있다. 그 이유는 본문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동네라고 번역된 단어 때문이다.

동네라고 번역된 단어인 케파림’(םירפכ)을 대부분 역본에서 성벽이 없는 마을, 동네’(삼상 6:18; 대상 27:25; 6:2)를 지칭하는 말로 번역하고 있는데 아가서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는 이 단어는 고벨화를 지시하고 있다(1:14; 4:13).

특별히 고벨화는 술람미 여인에 대한 솔로몬의 사랑이 마치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움을 장식하는 상징으로 묘사되며(1:14),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에게 주는 다양한 기쁨을 상징하는 것을 묘사된다는 점에서(4:13) 본문은 야생의 고벨화들이 만발한 곳, 즉 사랑의 향기가 온통 자기들을 감싸고 있는 모습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때 들로 나간다는 표현은 나의 사랑하는 이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2:10-13)에서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에게 청혼하기 위해 노래했던 것처럼 일정한 어떤 장소를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라 그들이 지향하는 일정한 사랑의 교차점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많은 주석가들이 이 노래를 해설하면서 마치 솔로몬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술람미 여인이 부부관계를 하기 위해 들로 나가자고 솔로몬을 종용하는 것으로 말하는데, 문맥의 흐름으로 볼 때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해석이다.

따라서 이 노래는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 사이에 맺어진 사랑의 교차점을 제시해줌으로써 서로 사랑의 동질성을 확인하게 하는 결과로 이어지면서 마침내 공동의 목적을 향해 함께 출발하자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 사실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 술람미 여인은 우리가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꽃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에서 내가 내 사랑을 네게 주리라”(7:12)고 솔로몬에게 말하고 있다.

이 술람미 여인의 요청은 당연히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2:1)라고 하며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에게 청혼했던 내용에 대해 이제 함께 그 사실을 확인하러 가자는 권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이 포도원에서 탐구하고자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이 서로 확인하고 있는 동질의 사랑에 대한 것이다. ‘거기에서 내가 내 사랑을 네게 주리라는 술람미 여인의 말처럼 이 탐구의 권유는 사실상 자신의 사랑을 솔로몬에게 주기 위해 함께 사랑을 찾아 나서자는 의미였던 것이다.

여기에서 술람미 여인은 계속해서 우리라는 인칭을 사용함으로써 그 두 사람 안에 동질의 사랑이 충만하게 형성되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에게 주겠다는 그 사랑에 대해 묘사하기를 합환채가 향기를 뿜어내고 우리의 문 앞에는 여러 가지 귀한 열매가 새 것, 묵은 것으로 마련되었구나 내가 내 사랑하는 자 너를 위하여 쌓아 둔 것이로다”(7:13)라고 말한다.

합환채가 어떤 효능이 있는지 분명치 않지만(30:1-16 참고) 본문에서는 합환채의 향기만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합환채의 향기가 최음제 내지는 다산을 촉진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회자된다 할지라도 여기에서는 그 기능을 함축하거나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즉 합환채가 성욕을 부축이거나 임신을 가능하게 하는 효력이 있다고 하는 풍문 때문에 합환채를 등장시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본문의 흐름을 따라서 내가 내 사랑을 네게 주리라’(7:13)고 언급했던 바로 그 사랑을 가리켜 너를 위하여 쌓아 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그 사랑의 성격을 보다 아름답게 묘사하기 위해 합환채의 향기를 등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을 마치 여러 가지 귀한 열매들, 즉 온갖 종류의 열매들로 상징화시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따라서 본문은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에게 주고자 하는 것은 온갖 비싼 보화들을 아무렇게나 내어놓지 않고 감추어두는 것처럼 깊이 숨겨두었던 사랑으로 솔로몬이 찾고자 했던 바로 그 동질의 사랑을 솔로몬에게 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동시에 그 사랑우리가 함께 찾아 나섬으로써 얻을 수 있는 그 대상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찾을 수 있는 그 사랑은 마치 합환채 향기를 내는 것처럼 향기로운 것으로 온갖 귀한 열매들처럼 언제든지 손만 뻗기만 하면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모티프는 온갖 과일들이 풍성하게 열린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마음껏 과일들을 취하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사실 이 세상에서는 에덴동산처럼 언제든지 귀한 과일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없다. 반면에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이 이룬 가정이라고 하는 동산에서는 진한 합환채 향기를 담은 사랑이라는 진귀한 과일들을 언제든지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강화시키고 있다.

특히 본문에서 우리의 문 앞에는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는 정한 때가 되면 열어 놓는 동산의 문에 그들이 이르렀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여자가 남자의 아내가 되기 위해서는 여자 자신이 자기의 닫힌 동산의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술람미 여인이 말한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이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열매 먹기를 원하노라”(4:16)고 했던 암시가 이곳에서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로써 솔로몬이 그 동산에 들어가서 사랑이라는 이름의 그 아름다운 열매를 먹고자 했던 소원은 마침내 술람미 여인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사랑은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호칭했던 나의 기쁨의 사랑이라는 의미를 가진 아하바’(הבהא)라는 이름을 가진 사랑으로(7:6), 처음에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통해 언제든지 풍성하게 얻을 수 있었던 바로 그 과일인 것이다.

이러한 모티프는 과거에 에덴동산에서 아담으로 하여금 죄를 범하도록 만들었던 과일을 하와가 주었던 장면을 되돌아보게 한다. 당시에는 하와로 말미암아 아담으로 하여금 죄를 범하게 만들었지만 이제는 동질의 사랑으로 맺어진 혼인의 신비함 안에서 술람미 여인이 주는 사랑이라는 과일은 솔로몬을 기쁘게 하는 아하바’(הבהא), 나의 기쁨의 사랑이라는 이름의 바로 그 과일인 것이다.

출처 : 교회와 성경
글쓴이 : 송영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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