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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5 (토마스 왓슨)

토마스 왓슨

by 김경호 진실 2012. 9. 19.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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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장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알아보는 시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수에 우리가 속하는지 사심 없이 시험해 보자. 그 여부를 결정하기 위하여 우리의 사랑은 그 열매로 가장 잘 알 것이므로 나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14가지 표시 혹은 열매를 나열할 것이다. 그러니 이 열매 가운데 어떤 것이 우리의 뜰에서 자라는지 세심하게 살피는 것이 우리의 관심사이다.
 
1. 사랑의 첫 번째 열매는 마음이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는 마음이 늘 그 대상에 머문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에 대한 명상에 기뻐 어쩔 줄 모른다. “내가 깰 때에도 오히려 주와 함께 있나이다.”(시 139:18) 마음의 생각은 여행자와 같다. 다윗의 생각은 하늘가는 길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오히려 주와 함께 있나이다. 하나님은 보물이시니,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는 법이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시험할 수 있다. 우리의 생각은 어디에 가장 많이 머무는가?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기쁨으로 황홀해진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의 생각은 날개 짓했는가? 높이 날았는가? 우리는 그리스도와 영광을 묵상하는가? 하나님을 생각하는 일이 좀체 없는 자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와 얼마나 다른가!
“악인은……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시 10:4) 죄인은 생각에서 하나님을 몰아낸다. 죄인은 재판관을 생각할 때처럼 공포에 사로잡힐 때가 아니면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다.
 
2. 사랑의 두 번째 열매는 교제에 대한 소망이다.
사랑은 친밀함과 교제를 원한다.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시 84:2) 다윗 왕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가시적 표시인 성막이 있는 하나님의 집에서 쫓겨났을 때 하나님을 향하여 숨을 헐떡이며 거룩하고 절절한 욕망에서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사랑하는 자들은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규례를 소중히 여긴다. 왜냐하면 거기서 하나님과 만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께 말씀드린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살피자. 우리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원하는가? 사랑하는 자들은 서로 오래 떨어져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거룩한 애정을 갖고 있어서 하나님과 떨어져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부재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견딜 수 있다. 그들은 건강과 친구가 없어도 되며 식사가 충분치 못해도 행복할 수 있지만, 하나님이 없이는 행복할 수 없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을까 두려워하나이다.”(시 143:7) 사랑하는 자들은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할 때 현기증을 느낀다. 다윗은 하나님을 보지 못했을 때 아찔아찔하여 죽을 지경이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규례를 지키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건 잔을 핥는 것이지 꿀을 핥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 평생을 살 수 있는 자들에게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그들은 하나님이 없어도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건강이 좋지 않고 장사가 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 불평하지는 않는다. 불의한 자는 하나님과 친하지 않다. 친하지 않은 자들이 어떻게 사랑하겠는가! 그러나 더욱 나쁜 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친숙해지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말하기를 우리를 떠나소서. 우리가 주의 도리 알기를 즐겨 하지 아니하나이다.”(욥 21:14) 죄인은 하나님과 친하기를 피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짐으로 여긴다. 이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인가? 남편이 있는 것을 참을 수 없는 여인이 남편을 사랑하는가?
 
3. 사랑의 세 번째 열매는 슬픔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을 사납게 거스르는 우리의 죄 때문에 크게 슬퍼하는 일이 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자녀는 아버지의 가정을 상하게 한 것을 두고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으로 불타오르는 마음은 눈물로 녹아내린다. 내가 그렇게 소중한 구주에 대한 사랑을 남용하다니! 나의 주님은 십자가를 지실 정도로 고난을 당하셨는데, 내가 그분을 더 고통스럽게 해서야 되겠는가? 내가 담즙과 식초를 그분께 드려 마시게 해서야 되겠는가? 나는 얼마나 불충실하고 부정직했는가! 나는 얼마나 그 신을 슬프시게 하고 임금님의 명령을 짓밟고 그 피를 사소하게 여겼는가! 이리하여 경건한 슬픔의 봇물이 터지며 마음은 선홍피를 흘린다.
“베드로가……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마 26:75)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얼마나 끔찍이 사랑하셨는지, 변화산에 갔을 적에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이상 가운데 하늘의 영광을 보여 주셨는지 생각하니, 그렇게 뛰어난 사랑을 받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부인했다는 사실에 그 마음이 슬픔으로 찢어졌다. 그는 밖으로 나가 심히 울었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시험하자. 우리는 경건한 슬픔의 눈물로 뿌리는가? 하나님을 거스른 사나운 태도, 긍휼을 욕되게 한 태도, 은사 계발에 지지부진한 태도를 슬퍼하는가? 매일 죄를 범하지만 그 마음이 결코 동요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그들은 죄의 바다에 빠졌고 그 중에 슬픔의 물방울은 하나도 없다. 그들은 전혀 괴롭지 않으므로 죄를 즐거워한다
. “그가 악을 행하며 기뻐하도다.”(렘 11:15) 참으로 비참하다. 그리스도께서 죄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는데 당신은 비웃는가? 이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친구에게 해를 끼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친구를 사랑하는가?
 
4. 사랑의 네 번째 열매는 담대함이다.
사랑은 용감하여 겁쟁이를 용기 있는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사랑은 아무리 힘든 곤경과 장애도 맞서게 할 것이다. 겁 많은 암탉도 새끼를 보호하려고 개나 독사에게 덤벼들 것이다. 사랑은 용감함과 강인함의 정신을 그리스도인에게 주입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대의명분에 굳게 서서 그분을 위한 변호자가 될 것이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 4:20) 그리스도를 소유하기를 두려워하는 자는 분명 그분을 별로 사랑하지 않는다. 니고데모는 밤에 몰래 그리스도를 찾아왔다.(요 3:2). 그는 낮에 그와 함께 있으면 남의 눈에 띌까 두려워했다.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는다. 해가 안개와 증기를 몰아내는 것처럼, 거룩한 사랑은 육적인 두려움을 모조리 쫓아낸다. 하나님의 복된 진리에 대적하는 소리를 듣고 침묵하는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인가? 친구를 사랑하는 자는 두둔하며 친구가 비난당할 때 변호한다.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우리를 위하여 나타나시는데 우리가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나서기를 두려워해서야 되겠는가? 사랑은 그리스도인에게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 마음에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용기로 그 마음을 단단하게 한다.
 
5. 사랑의 다섯 번째 열매는 민감함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불의한 자가 하나님께 부정직한 태도를 보이는 것에 마음이 쓰리다. 말하자면, 종교의 제방뿐만 아니라 도덕의 제방도 무너져 불의의 봇물이 흘러 들어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안식일이 더럽혀지고 하나님의 서약이 깨지고 그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을 볼 때 우리 안에 하나님에 대한 무슨 사랑이 있다면 우리는 이런 것들을 마음에 담아 둘 것이다. 롯의 의로운 영혼은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상하였다. (벧후 2:7) 소돔의 죄는 많은 창처럼 그의 영혼을 꿰뚫었다. 하나님의 불명예에 전혀 동요치 않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서 얼마나 먼가? 그들은 평안과 장사 말고는 마음에 아무것도 두지 않는다. 죽을 정도로 술을 마신 사람은 다른 사람이 옆에서 피를 흘리고 있어도 개의치 않고 영향도 받지 않는다. 그처럼 번영의 포도주에 취한 많은 사람은 하나님의 명예가 해를 입고 하나님의 진리가 피를 흘리고 있을 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이 해를 입고 종교가 희생되고 있는 것을 한탄할 것이다.
 
6. 사랑의 여섯 번째 열매는 죄를 미워함이다.
불은 금속에서 불순물을 제거한다. 사랑의 불은 죄를 깨끗하게 한다.
“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지라.(호 14:8)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죄와 싸우는 일이 아니고는 죄와 상관치 않을 것이다. 죄는 하나님의 존귀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를 공격한다. 국왕을 배반하는 자를 숨겨 주는 자가 군주를 사랑하는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께 친구가 되겠는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죄에 대한 사랑은 함께 거할 수 없다. 애정은 동시에 상반되는 것에 쏟아질 수 없다. 한 사람이 건강과 독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다. 그처럼 사람은 하나님과 죄를 같이 사랑할 수 없다. 마음에 무슨 은밀한 죄가 있는 사람은 하늘과 땅이 서로 먼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서 멀다.
 
7. 사랑의 일곱 번째 열매는 십자가에 달림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세상에 대하여 죽는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 6:14) 나는 세상의 존귀와 쾌락에 대하여 죽었다. 하나님과 사랑에 빠진 사람은 다른 어떤 것도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세상에 대한 열렬한 사랑은 모순된다.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일 2:15) 모세의 지팡이가 애굽인의 지팡이를 삼켰듯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다른 모든 사랑을 삼킨다. 사람이 태양 안에서 살 수 있다면 온 땅은 그 사람에게 얼마나 초라하게 보이겠는가! 그처럼 한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을 찬탄하고 사랑하여 세상 위로 올리울 때, 아래 있는 것들은 얼마나 초라하고 빈약한가! 그것들은 그의 눈에 아무것도 아니게 보일 것이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했다. 그들은 마음에 자신의 재산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기”(행 4:34,35) 때문이었다.
이로써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시험하라. 세상에 대하여 만족하지 못하는 자들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그들은 부를 향하여 만족할 줄 모르고 목말라 하는 탐욕의 수종에 걸렸다: “땅(한글 개역에는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으로 됨)의 티끌을 탐내며”(암 2:7). 이그나티우스가 말했듯이, 극상품 진주보다 세상을 사랑할 때 그리스도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말하지 말라. 그처럼 하나님보다 황금을 소중히 여기는 자가 많지 않은가? 그들은 남방 땅을 가지면 생명수를 개의치 않는다. 그들은 돈 때문에 그리스도와 선한 양심을 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그렇게 비천하게 평가 절하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보다 반짝이는 먼지를 더 좋아하는 자들에게 하늘을 베푸실 것인가? 우리가 그런 것에 우리 마음을 두다니 대체 그게 무엇인가? 오직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확대경을 통하여 세상을 보게 만든다. 세상은 참으로 본래적인 가치를 갖고 있지 않고 그저 허식과 속임수일 뿐이다.
 
8. 사랑의 여덟 번째 열매는 두려움이다.
경건한 자에게 사랑과 두려움은 서로 입 맞춘다. 사랑에서는 이중적인 두려움이 생긴다.
1) 언짢게 했다는 두려움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므로 남편을 언짢게 하지 않고 스스로 자제하려 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수록 그의 신을 슬프시게 할까 두려운 것이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 39:9) 여 황제 에우독시아가 크리소스톰을 추방하겠다고 위협했을 때, 그는 죄밖에 두려워하는 것이 없노라고 여 황제에게 대답했다. 그리스도인은 뜨거운 열정과 차가운 두려움에 빠뜨려서 흔들리고 떨리게 하여 가히 하나님을 화나시게 하지 않게 하려는 것은 복된 사랑이다.
2) 질투와 뒤섞인 두려움
엘리는 그 마음이 하나님의 궤로 인하여 떨렸다.(삼상 4:13) 그의 마음은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 때문에 떨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궤 때문에 떨렸다. 왜냐하면 궤를 빼앗기면 영광이 떠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교회가 병들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다. 그는(나병이 전염되듯) 세속적인 태도가 번질까, 천주교가 기반을 얻을까,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서 떠나실까 두려워한다. 하나님이 그 규례에 계심은 한 민족의 아름다움과 힘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한 백성과 함께하는 동안 그들은 안전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불타오르는 영혼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가시적 표시가 사라지지나 않을까 두려워한다.
이 시금석으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시험하자. 많은 사람들은 지금 누리는 평안과 장사가 엉망이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지 하나님과 그 복음이 사라지지 않을까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일시적인 복보다 영적인 복을 잃을까 두려워한다. 의의 태양이 우리의 지평선에서 사라지면 흑암 말고 무엇이 따라올 수 있겠는가? 복음이 사라지면 오르간이나 찬미가 무슨 위로가 되겠는가? 장례식에 울리는 나팔 소리나 사격 소리와 같지 않겠는가?
 
9. 사랑의 아홉 번째 열매 -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한다.

1)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한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이 꿀보다 달고(시 119:103) 금은보다 귀하다(시 119:72)고 칭송했다. 성경의 한 구절 한 구절은 황금 광산보다 부요롭다.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하늘로 인도하는 북극성이며, 극상품 진주가 숨겨져 있는 밭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지 않고 그 말씀이 너무 엄격하다고 생각하여 성경의 어떤 부분이든지 찢어 버리기를 바라는(간음하는 자가 제7계명을 찢어 없애기를 바라듯이) 사람은 그 마음에 사랑의 불꽃이 전혀 없다.

2)우리는 하나님의 날을 사랑한다.
우리는 안식일을 지킬 뿐만 아니라 사랑한다.
“(너희가)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사 58:13). 안식일은 우리 가운데 신앙의 체면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 날은 주님께 영광스럽게 성수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집은 큰 왕의 궁전이다. 안식일에 하나님은 그 집에서 자신을 보이신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다른 모든 날보다 하나님의 날을 소중히 여긴다. 이 날이 없다면 일주일 내내 어두울 것이다. 이 날에 만나가 두 배로 떨어진다. 그러면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이 황금 소나기 가운데 임하신다. 이 복된 날에 의의 태양이 영혼에 비친다. 하나님을 즐거워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그 날을 덕스러운 마음은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가!

3)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한다.
덕스러운 영혼은 율법이 죄악의 무절제함을 억제하므로 율법을 즐거워한다. 만일 하나님의 율법이 부가하는 복된 제한이 없었다면 죄 가운데 사납게 날뛰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율법, 회개의 법, 자기 부인의 법을 사랑한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율법을 싫어한다.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시 2:3). 여기서는 하나님의 교훈이 밧줄에 비유되어, 사람을 선한 행동에 얽매이게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불의한 자는 이 밧줄이 너무 단단하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그것을 끊자고 말한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사랑하는 체하지만, 왕으로서의 그분을 미워한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멍에에 관하여 말씀하신다.(마 11:29) 죄인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네 머리에 면류관을 씌우시게 하려 하지 자기네 목에 멍에를 메시기 하지 않으려 한다. 법 없이 통치하는 왕은 이상한 왕이다.

4) 우리는 하나님의 모습을 사랑한다.
우리는 성도에게 비치는 하나님의 형상을 사랑한다.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요일 5:1) 한 사람을 사랑하되, 그를 성도로서 사랑하지 않고, 다른 무엇 때문에 가령 그의 재주 때문에 혹은 그가 정중하고 관대하기 때문에 그를 사랑할 수 있다. 짐승이 사람을 사랑하지만, 그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먹을 것을 주고 여물을 주므로 사랑한다. 그러나 성도를 성도로서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시이다. 우리가 성도라는 이유로,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의 무엇이 있기 때문에 성도를 사랑하면 우리는 다음 네 가지 경우에서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1) 우리는 가난한 성도일지라도 사랑한다.
황금을 사랑하는 자는 황금이 누더기에 싸여 있어도 황금 조각을 사랑한다. 그처럼 성도가 누더기를 입고 있어도 그 안에 그리스도의 무엇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사랑한다.
(2) 우리는 성도가 개인적인 약점을 많이 갖고 있어도 사랑한다.
이 세상에서는 완전이 없다. 어떤 데서는 경솔한 분노가 이기고, 어떤 데서는 비일관성이 이기고 어떤 곳에서는 세상에 대한 지나친 사랑이 이긴다. 이 세상에서 성도는 광석 속의 황금과 같다. 그에게는 결점의 찌꺼기가 많이 붙어 있지만 우리는 그 안에 있는 은혜 때문에 그를 사랑한다. 성도는 흉터진 잘 생긴 얼굴과 같다. 우리는 거룩함이라는 아름다운 얼굴에 흉터가 있어도 그 얼굴을 사랑한다. 아무리 좋은 에메랄드도 흠이 있으며, 아무리 밝은 별도 깜빡이며, 가장 훌륭한 성도라도 결점이 있다. 약점이 있다고 해서 서로 사랑할 수 없는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겠는가?
(3) 우리는 좀 사소한 일에서 우리와 의견을 달리하긴 해도 성도들을 사랑한다.
아마 어떤 그리스도인은 우리보다 말씀의 빛이 적어서, 어떤 일에서 실수할 것이다. 그가 당신만큼 말씀의 빛이 없기 때문에 당신은 곧바로 그를 성도로 인정하지 않을 것인가? 근본적인 일에서 하나를 이루면 사랑에서도 하나를 이룸에 틀림없다.
(4) 우리는 성도가 핍박을 받아도 그를 사랑한다.
우리는 풀무에 있어도 귀금속을 사랑한다. 사도 바울은 그 몸에 주 예수의 흔적을 지녔다.(갈 6:17) 이 표는 군인의 흉터처럼 존귀한 것이었다. 우리는 범죄한 성도를 사랑하듯 사슬에 묶인 성도도 사랑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그의 핍박받는 지체도 사랑한다.
우리가 성도 안에 반짝이는 하나님의 형상을 사랑할 때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라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얼마나 적겠는가! 하나님을 닮은 자를 미워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원수 갚겠다는 정신으로 가득 찬자들이 그리스도의 인격을 사랑하는가? 남편의 그림을 찢는 아내가 어찌 남편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는가? 확실히 유다스와 율리아누스가 아직 죽지 않았으며, 그들의 정신이 여전히 세상에 살고 있다. 무흠한 자가 아니고서 누가 유죄이겠는가? 마귀가 대배심원 가운데 하나라면 거룩함보다 더 큰 범죄가 있겠는가? 불의한 자는 세상을 떠난 성도에게 큰 존경을 표하는 체한다. 그들은 죽은 성도를 시성(諡聖)한다. 그러나 살아 있는 성도는 핍박한다. 사람들은 헛되이 신조를 붙들며 신조 가운데 한 조항인 성도의 교통을 질색하면서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세상에 말한다. 확실히 은혜가 결여되었을 뿐만 아니라 은혜를 미워하는 이것보다 지옥에 더 합당한 표가 인간에게는 없다.
 
10. 사랑의 열 번째 복된 열매는 하나님의 선한 생각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친구를 사랑하는 자는 친구가 행하는 것을 가장 좋은 뜻으로 해석한다.
“사랑은……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고전 13:5). 악의는 모든 것을 가장 나쁜 뜻으로 해석한다. 사랑은 모든 것을 가장 좋은 뜻으로 해석한다. 사랑은 섭리에 대한 탁월한 주석가이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에 대하여 좋은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혹심하게 고통을 받지만 그 영혼은 모든 것을 좋게 여긴다.
덕스러운 영혼의 언어는 이와 같다. “나의 하나님은 내 마음이 얼마나 강퍅한지 아신다. 그러므로 그분은 잇따른 시련을 몰고 오셔서 나의 마음을 부수신다. 그분은 내게 나쁜 체액이 얼마나 많고 내가 늑막염으로 얼마나 심하게 앓고 있는지 아신다. 그러므로 그분은 나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피를 흘리게 하신다. 이 힘든 세대는 어떤 부패를 억제하거나 어떤 덕목을 발휘하게 한다. 내가 계속 범죄 하지 않게 하시고 나의 영혼을 구원하려고 나의 몸을 치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선하신가!”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선을 이루게 하신다. 사랑은 하나님의 모든 행동을 더없이 빛나게 꾸민다. 하나님이 악하게 대하시는 듯이 불평하곤 하는 사람이라면 이 점 때문에 겸손해진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하라. “내가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면, 하나님에 대하여 더 좋게 생각할 게 틀림없다.”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 스스로를 좋게 생각하게 하고 하나님을 나쁘게 생각하게 만든다. 사랑은 모든 것을 가장 공평한 뜻으로 받아들인다.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11. 사랑의 열한 번째 열매는 순종이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요 14:21).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명을 사소하게 여기면서 그리스도의 인격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헛된 짓이다. 아버지께 순종하지 않으려 하는 자녀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자인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인간에게 일어나는 일들에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1) 까다로운 일에서
즉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의복처럼 우리에게 가까이 있을 뿐만 아니라 눈처럼 우리에게 친근한 죄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목적과 실천에서 이런 것들에 반대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죽음의 고통을 당하면서도 용서하라고 명령하신다.
“서로 사랑하라”(엡 4:32). 이는 힘든 일이다. 이는 물살을 가로지르는 일이다. 우리는 친절은 잊고 손해는 기억하기를 잘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죄짓는 일을 지나쳐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많이 용서하셨는지, 우리의 손으로 저지른 모욕과 도전을 얼마나 많이 참으셨는지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모습을 닮아, 받은 손해를 앙갚음하기보다 그것을 덮으려고 할 것이다.

2) 위험한 일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우리로 하여금 고난을 당하게 하실 때 우리는 순종해야 한다. 사랑 때문에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다. 그리스도는 사랑의 사슬로 십자가에 묶이셨다. 그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분을 위하여 기꺼이 고난을 받아야 한다. 사랑은 묘한 특성을 갖고 있다. 사랑은 가장 참지 않는 덕목이면서 가장 잘 참는 덕목이다. 어떤 의미에서 사랑은 가장 참지 않는 덕목이다. 즉 사랑은 영혼에 남아 있는 회개하지 않은 죄를 참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독설과 모욕을 참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가장 참지 않는 덕목이다. 하지만 사랑은 가장 잘 참는 덕목이다. 사랑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책망과 속박과 옥살이를 참을 것이다.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행 21:13). 참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이 순교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마음에 순교의 정신이 있다. 바울처럼 “내가 결박당할 것을 각오하였다”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이 부르시면 고난당할 마음을 갖고 있다. 사랑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 힘에 지나도록 행하게 한다.
터툴리안은 이교도가 조국에 대한 사랑 때문에 얼마나 고난을 당하는지 지적한다. 자연의 수원이 아주 높이 속구치지만, 은혜는 더 높이 솟구칠 것이다. 조국에 대한 사랑이 사람으로 하여금 고난을 당하게 한다면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은 더욱 그렇게 만들 것이다.
“사랑은……모든 것을 참으며”(고전 13:7). 바실은 불에 던져주는 저주를 당한 한 처녀에 관하여 말한다. 그 처녀는 우상에게 절하면 생명을 살려 주고 재산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을 때 “생명과 돈은 마음대로 하라. 하지만 그리스도는 기꺼이 모셔 들여라”고 대답했다. 이그나티우스의 고상하고 열정적인 연설이 그러했다. “내가 하나님의 참된 알곡이라면 야수의 이빨로 나를 찢으라.” 초창기의 성도들은 거룩한 사랑 때문에 생명에 대한 사랑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참으로 초월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었고, 누가는 감람나무에 매달려 죽었으며, 베드로는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다. 이 거룩한 영웅들은 겁에 질려 하나님의 이름이 욕되게 하기보다 기꺼이 고난을 당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맨 쇠사슬을 얼마나 높이 평가했는가! 크리소스톰이 말하듯이, 이 여인이 보석을 자랑스러워하듯, 그는 쇠사슬을 자랑했다. 거룩한 이그나티우스는 다이아몬드 팔지를 끼듯 족쇄를 찼다.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히 11:35). 그들은 죄악 되게 옥에서 벗어나기를 거부했고 자유보다 결백을 택했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시험하자. 우리는 순교의 정신을 갖고 있는가?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어떠한가?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조금이라도 안락을 포기하거나 십자가를 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는 너를 크게 사랑하며 너를 소중히 여긴다. 그러나 나는 너를 위하여 고난을 받을 수 없고 내 생명을 내놓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크게 의심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체하고 그분을 위하여 아무것도 견디지 않으려 한다면 그리스도는 우리를 의심하시지 않겠는가?

12. 사랑의 열두 번째 열매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다른 사람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보도록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사랑하는 자는 자신이 사랑을 베푸는 자를 칭찬하고 아름답게 하고 온화하게 대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뛰어나심을 세상에 퍼뜨릴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명성을 높이고 하나님이 더욱 존경을 받으시도록 함이며 다른 사람도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함이다. 사랑은 침묵할 수 없다. 우리는 많은 나팔처럼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와 초월하신 사랑과 그 나라의 영광을 선전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은 불과 같다. 사랑이 마음에서 불붙으면 입에서 터져 나올 것이다. 사랑은 하나님을 우아하게 찬양할 것이다. 사랑은 표출하지 않을 수 없다.
 
13. 사랑의 열세 번째 열매는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갈구하는 것이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 에게니라.”(딤후 4:8) 사랑은 하나 됨을 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이유를 설명한다. 기쁨은 하나 되는데서 흘러나온다. 우리와 그리스도의 하나 됨이 영광 가운데서 완전할 때, 우리의 기쁨은 충만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는 그의 나타나심을 사랑한다.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은 성도에게 복된 나타나심이 될 것이다. 지금 그리스도께서 대언자로서 우리를 위하여 나타나실 때 그의 나타나심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된다.(히 9:24) 그러나 그분이 우리의 남편으로서 우리를 위하여 나타나시는 또 한 번의 나타남은 우리에게 무한한 위로가 될 것이다.
그날, 그분은 우리에게 두 가지 보석을 주실 것이다. 그분의 사랑이라는 보석을 주실 것이다. 그 사랑은 너무 크고 놀라워 말로 표현하기보다 느끼는 것이 더 좋을 정도이다. 그리고 그분과 닮는 젓이라는 보석을 주실 것이다.
“그가 나타나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요일 3:2)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로부터 무한한 기쁨이 영혼에 흘러들 것이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는 그의 나타나심을 간절히 바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17,20)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시험하자. 스스로 정죄하는 불의한 자는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두려워하여 그분이 절대 나타나지 않으시길 바란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는 구름 가운데 그분이 오실 것을 생각하고 즐거워한다. 그때 그들은 그 모든 죄와 두려움에서 벗어날 것이며, 사람과 천사들 앞에서 무죄로 선고받을 것이며, 하나님의 낙원으로 영원히 옮기 울 것이다.
 
14. 사랑의 열네 번째 열매 -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가장 비천한 직분도 받아들이게 할 것이다.
사랑은 겸손한 덕목이다. 이는 높은 신분을 갖고 활보하지 않는다. 손을 모으고 살며시 걸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섬길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몸을 구부리고 받아들일 것이다. 우리가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에게서 보는 것처럼, 둘은 존귀한 사람이지만 한 사람은 자신의 손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내리고 다른 한 사람은 향유를 그 몸에 바른다.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그런 봉사에 임하게 되는 것이 대단한 일로 보이지만, 사랑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하게 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리스도의 지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것이든지 그렇게 비천한 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까다롭게 굴지 않는다. 병든 자를 방문하고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성도의 상처를 씻겨 줄 것이다. 자녀를 사랑하는 어머니는 수줍어하거나 까다롭게 굴지 않는다. 어머니는 다른 사람이라면 수치로 여길 일을 자녀를 위하여 행할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리스도와 그 지체를 위해 아무리 비천한 사랑의 직분이라도 겸손히 받아들일 것이다.
이런 것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열매이다. 이 열매들이 자신의 본성에는 아주 낯설지만 자신의 영혼에서 자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자는 복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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