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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6 (토마스 왓슨)

토마스 왓슨

by 김경호 진실 2012. 10. 15.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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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장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권고
 
1.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라는 권고 - 하나님을 사랑하는 20가지 동기

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지닌 모든 사람을 힘껏 설득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게 하고자 한다.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시 31:23)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별로 없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외식의 입맞춤을 던지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별로 없다. 하나님을 힘껏 사랑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랑의 성정은 자연스러우나, 사랑의 덕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본질상 하나님을 미워한다.(롬 1:30) 불의한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피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으려 하고 그 세력 범위 안에 있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사랑하지 않는다. 사람과 천사의 어떤 힘으로도 사람의 마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게 할 수 없다. 규례 자체가 사람의 마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지 못한다. 심판도 마찬가지이다. 영혼에 사랑을 주입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신의 전능하고 억제할 수 없는 힘뿐이다. 이것이 매우 힘든 일이므로, 우리는 하늘로부터 오는 사랑의 덕목을 위하여 더욱 힘껏 기도하고 추구해야 한다. 이 덕목을 바라는 소망을 일으키고 불붙게 하기 위하여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20가지 동기를 서술하고자 한다.

1) 사랑이 없는 우리의 신앙은 모두 헛되다.
이것은 의무가 아니라 의무에 대한 사랑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보신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많이 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가이다. 종이 자원하여 사랑으로 일하지 않으면, 그 일은 합당치 못하다. 사랑과 결부되지 않은 의무는 우리에게처럼 하나님께도 짐스럽다. 그러므로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자원하는 심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라고 권한다.(대상 28:9) 사랑 없이 의무를 행하는 것은 희생이 아니라 고생이다.

2) 사랑은 가장 고상하고 탁월한 덕이다.
이는 하늘에서 불붙은 순수한 불꽃이다. 이로써 우리는 사랑이신 하나님을 닮는다. 우리는 믿고 순종하는 것으로써 하나님을 닮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써 하나님과 같아진다.(요일 4:16) 사랑은 하나님을 가장 즐거워하는 덕이며 하나님이 가장 즐거워하시는 것이다. 사랑이 가장 풍부한 제자는 그리스도의 품에 누워 있었다. 사랑은 모든 덕목에 생기와 광채를 더한다. 사랑이 덕목에 비치고 불꽃을 일으키지 않으면, 덕목들은 가려져 있는 것과 같다.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하지 않으면 참되지 않다. 회개의 물은 사랑의 샘에서 나오지 않으면 순수하지 않다. 사랑은 우리의 모든 봉사를 하나님께 향기롭고, 그분이 받으실 만하게 하는 향기이다.

3)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불합리한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사랑뿐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재산이나 몸의 열매를 요구하신다 해도, 우리가 거절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분은 우리의 사랑만을 요구하신다. 그분은 오직 이 꽃만을 따실 것이다. 이것이 어려운 요구인가? 이처럼 쉽게 갚아지는 부채가 있었던가? 그것을 갚는다고 해서 우리가 곤궁하게 되지 않는다. 사랑은 짐이 아니다. 부인이 남편을 사랑하는 것이 수고인가? 사랑은 즐거운 것이다.

4)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할 가장 적합하고 완전한 대상이시다.
피조물에 산재한 모든 탁월함은 그분 안에 연합되어 있다. 그분은 지혜와 아름다움과 사랑이시며 참으로 선의 본질이시다. 하나님 안에는 싫은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전혀 없다. 피조물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만족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는 신선한 아름다움이 번쩍인다. 우리가 하나님을 즐거워할수록 더욱 즐거움으로 황홀해진다.
하나님 안에는 우리의 성정을 무감각하게 하거나 우리의 사랑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없다. 통상적으로 사랑을 약하게 하고 차갑게 하곤 하는 결함이나 추함이 전혀 없다. 하나님 안에는 우리의 사랑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랑을 지배하는 탁월함이 있다. 하늘에 많은 천사가 있고 저 영광스러운 스랍들 모두가 그 마음에 영원토록 사랑의 커다란 불꽃을 갖고 있다 해도, 하나님 안에 있는 선(善)의 무한한 완전과 초월성에 어울리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우리를 이끄는 것이 얼마든지 있다. 우리가 사랑을 쏟을 수 있는 더 나은 대상은 없다.

5) 사랑은 신앙생활을 용이하게 만든다.
사랑은 성정의 바퀴에 기름을 칠하며 하나님께 봉사하는 일을 좀 더 생동감 넘치고 즐겁게 만든다. 사랑은 의무의 지루함을 벗겨낸다. 야곱은 라헬에게 사랑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7년을 짧게 생각했다. 사랑은 의무를 유쾌한 일로 만든다. 어째서 천사들은 하나님께 봉사하는 일에 그렇게 신속하고 빠른가? 이는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결코 지치지 않는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는 데 결코 지치지 않는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섬기는 데 결코 지치지 않는다.

6)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을 원하신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잃어버렸고 피가 더러워졌지만, 하늘의 왕은 우리에게 구혼하신다. 우리의 사랑 안에 하나님이 찾으실 만한 것이 무엇인가? 뛰어나신 하나님께 우리의 사랑이 뭐 필요하겠는가? 그분께는 우리의 사랑이 필요치 않다. 그분은 스스로 무한히 복되시다. 우리가 하나님께 사랑을 드리지 않는다 해도, 그분께는 즐거이 사랑을 바칠 더 숭고한 피조물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이 필요치 않으시지만, 우리의 사랑을 구하신다.

7)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을 받으셔야 할 분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우리의 성정은 하나님의 사랑의 불에 타올라야 한다. 사랑스러운 것이 하나도 없었던 우리를 사랑하시다니 그 얼마나 놀라운 사랑의 기적인가.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겔 16:6) 우리가 싫어하는 시간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시간이었다. 우리 안에는 화나게 하는 것이 있었지,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있지 않았다.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시다니 참으로 지각에 뛰어난 사랑이다.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하여 죽으시다니! 하나님은 하늘의 모든 천사로 하여금 이 사랑에 놀라게 하셨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한다. “십자가는 강단이며 그리스도가 거기서 전하신 교훈은 사랑이다.” 오, 죽어가는 구세주의 살아 있는 사랑이여! 나는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피를 흘리고 계시는 것을 보는 듯하다. 그분이 “네 손을 이리 내밀라. 내 허리에 네 손을 대라. 피 흘리는 내 심장을 느껴 보라.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지 살펴보라. 너는 내게 네 사랑을 베풀지 않으려 하느냐? 너는 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려 하느냐? 세상이 네게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렸느냐? 내가 이 모든 것을 행한 것이 아니냐? 그런데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으려느냐?” 하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우리가 사랑을 받았으니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의 책으로 삼아 그 피로 우리 위에 쓰셨으므로, 우리는 그처럼 아름다운 책을 뒤이어 쓰고 사랑으로 그분을 닮도록 노력하자.

8)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최고의 자기 사랑이다.
영혼을 구원받게 하는 것은 자기 사랑이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의 구원을 진척시킨다.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요일 4:16) 그리고 하나님이 그 마음에 계시는 자는 분명히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할 것이다. 그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가장 참된 자기 사랑이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9)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진실함을 입증한다.

“고결한 자가 너를 사랑한다.”(아 1:4, 한글 개역에는 “처녀들이 너를 사랑한다.”로 됨) 하나님의 많은 자녀는 자신이 위선자가 아닌지 두려워한다. 당신은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베드로는 자신의 죄를 느끼고 낙심했을 때,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시거나 자신을 사도의 일에 임명하실 만한 자격이 자신에게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스도께서 그를 어떻게 위로하시는지 보라.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요 21:15).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듯하다. “너는 두려워 나를 부인했지만, 네가 마음으로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너는 진실 되고 고결하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진실한 마음을 더 훌륭하게 입증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공의를 두려워했다. “하나님이 저희를 죽이실 때에 저희가 그에게 구하며 돌이켜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고”(시 78:34).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어떻게 되었는가? “그러나 저희가 입으로 그에게 아첨하며 자기 혀로 그에게 거짓을 말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 향하는 저희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에 성실치 아니하였음이로다.”(겔 36,37절) 그 회개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는데서 나올 뿐이었으며 사랑이 전혀 섞이지 않은 아첨에 지나지 않았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마음에 계심을 입증한다. 그리고 마음이 하나님의 것이라면 나머지 모든 것도 그 지배를 받을 것이다.

10)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써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마무리 짓는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 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을 내가 안다면 즐거워할 수 있다고 사람은 말한다. 당신은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그러면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확신할 것이다. 빛나는 유리는 태양이 먼저 유리에 비쳤기 때문에 빛이 나지, 달리는 빛날 수 없다. 그처럼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오른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먼저 우리에게 비쳤기 때문이지, 딜리는 우리가 사랑으로 타오를 수 없다. 우리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반사에 불과하다.

11)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다른 것, 곧 세상이나 죄를 사랑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당신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는가? 이런 것들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다음의 구체적인 것들에서 드러나듯이 세상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더 낫다.
당신이 세상적인 것을 사랑하더라도, 그것들은 만족을 주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공기로 몸을 만족시키고 땅으로 영혼을 만족시킬 수 있다. “풍족할 때에도 곤액이 이르리니”(욥 20:22). 그러나 풍족함에도 궁핍이 있다. 온 세상이 당신의 것이라도 그것이 당신의 영혼을 채우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결코 만족을 주지 못할 것을 사랑하려 하는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그분은 만족할 만한 것을 당신에게 주실 것이다.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 하리이다.“(시 17:15) 내가 죽음의 잠에서 깨고 하나님의 영광의 광선이 얼마간 내 위에 비췰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족할 것이다.
당신이 세상적인 것들을 사랑한다 해도, 그것들은 마음의 괴로움을 제거할 수 없다. 만일 양심에 가시가 있다면, 온 세상이라도 그것을 뺄 수 없다. 사울 왕이 마음이 당혹스러워도, 면류관의 모든 보석이 그를 위로해 줄 수 없었다.(삼상 28:15) 그러나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은 다른 무엇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주실 수 있다. 그분은
“사망의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하실”(암 5:8) 수 있다. 그분은 그리스도의 피를 써서 당신의 영혼에 원기를 불어넣으실 수 있다. 그분은 그 신으로 자신의 사랑을 속삭이실 수 있으며, 한 번의 웃음으로 당신의 모든 두려움과 불안을 흩으실 수 있다.
당신이 세상을 사랑하면, 당신을 하늘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을 사랑하는 젓이다. 세상적인 만족은 군대의 마차와 비교할 수 있다. 군인들이 싸우지 않고 마차에서 자기 배만 채우고 있는 한, 전쟁은 진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막 10:23) 많은 사람에게 번영은 배의 돛과 같다. 이 돛은 배를 빨리 뒤집어지게 한다. 그처럼 당신은 세상을 사랑할 때 자신을 위태롭게 할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늘을 잃어버릴까 하는 두려움이 없다. 그분은 당신을 숨기는 바위가 되시지 당신을 해칠 바위가 되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그분을 즐거워하게 한다.
당신은 세상적인 것들을 사랑할 수 있지만, 그것들은 당신을 사랑할 수 없다. 당신은 금과 은을 사랑하지만, 당신의 금은 당신을 사랑할 수 없다. 당신은 그림을 사랑할 수 있지만, 그림은 당신을 사랑할 수 없다. 당신은 피조물에게 사랑을 바치지만, 사랑을 되돌려 받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실 것이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하리라.” (요 14:23)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데 뒤떨어지지 않으신다. 우리는 한 방울만큼 사랑하여 대양만큼 사랑을 돌려 받을 것이다.
당신이 세상을 사랑할 때, 당신 자신보다 더 못한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다마스케누스가 말하듯이 영혼은 천상의 밝음의 불꽃이다. 영혼은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을 닮은 모양을 갖고 있다. 당신이 세상을 사랑할 때 당신의 영혼보다 무한히 뒤처지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굵은 삼베에 돈을 들이려 하겠는가? 당신이 세상을 사랑할 때, 돼지에게 진주를 걸어 주며 당신보다 열등한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날짐승을 언급하시면서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6) 하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나는 세상적인 것들에 관하여 당신이 그것들보다 더 귀하다고 말한다. 당신은 좋은 집과 아름다운 그림을 사랑한다. 당신은 이것들보다 귀하지 않는가?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면 가장 고상하고 숭고한 대상을 사랑하는 것이다. 당신은 자신보다 더 나은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혼보다 나으시고 천사보다 나으시고 하늘보다 나으시다.
당신은 세상을 사랑하고 자신의 그런 사랑에 대하여 미움을 받을 수 있다.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9) 곡물이나 포도를 생산하지 못하고 쐐기풀만 내놓는 땅에 돈을 들인다면 얼마나 화나겠는가? 달 아래 있는 모든 것이 그렇다. 우리는 그것들을 사랑하며 그것들은 찌르는 쐐기풀에 불과하다. 우리는 실망밖에 접하지 못한다.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삿 9:15) 우리가 피조물을 사랑하면 가시나무로부터 불이 나와 우리를 삼킨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은 사랑대신 미움을 베풀지 않으실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잠 8:17). 하나님은 징벌하시지만 미워하실 수는 없다. 모든 신자는 그의 지체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미워하실 수 없듯이 신자를 미워하실 수 없다.
당신은 피조물을 지나치게 사랑할 수 있다. 포도주를 지나치게, 은을 지나치게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리 사랑해도 지나침이 없다. 만일 지나칠 수 있다면, 여기서 지나침은 덕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충분히 사랑할 수 없다면 그것은 우리의 죄이다. “네 마음이 어찌 그리 약한가! 이는 그 속에 생명이 없는 호수의 물방울 하나와 같다. 우리가 지금보다 더욱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해도 그 사랑은 그분의 가치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처럼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에는 지나칠 위험이 없다.
당신은 세상적인 것을 사랑할 수 있지만, 그것들은 죽어 당신을 떠난다. 부에는 날개가 있으며, 친척들은 하나둘 떠나간다. 이곳에서 영구한 것은 없다. 피조물은 그 입에 약간의 꿀을 갖고 있지만, 날개를 갖고 있어서 쉬 달아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은 “영원한 분깃”(시 73:26)이 되신다. 하나님은 위로의 태양이라 불리시듯, 영원한 반석이라고도 불리신다. 하나님은 영원히 계신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더 나은 것을 본다.
세상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낫다면, 죄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나은 것은 명약관화하다. 죄 속에 사랑할 만한 것이 무엇인가? 죄는 부채이다.
“우리의 부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 6:12, 한글 개역에는 “우리의 죄”로 됨) 죄는 하나님의 진노에 묶이게 하는 부채이다. 그러니 죄를 사랑할 이유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부채를 지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죄는 질병이다. “온 머리는 병들었고.”(사 1:5) 그러니 죄를 사랑하겠는가? 누가 질병을 끌어안으려 하겠는가? 전염병을 사랑하겠는가? 죄는 오염이다. 사도는 그것을 “더러운 것”(약 1:21)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나병이나 살모사의 독에 비유된다. 하나님의 마음은 죄인을 대적한다.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슥 11:8). 죄는 흉물스런 괴물이다. 정욕은 사람을 짐승 같게 하고 악의는 사람을 마귀 같게 한다. 죄 안에 사랑할 만한 것이 무엇인가? 흉물스러움을 사랑하겠는가? 죄는 원수이다. 이는 “뱀”에 비유된다(잠 23:32). 죄는 네 가지 쏘는 것이 있으니, 수치와 죄책과 공포와 죽음이다.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추구하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그러므로 죄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확실히 더 낫다. 하나님은 당신을 구원하실 것이며 죄는 당신을 저주할 것이다. 저주를 사랑하는 자는 어리석게 되지 않겠는가?

12) 우리가 하나님과 맺는 관계는 사랑을 요구한다.
친밀한 관계가 있다.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사 54:5). 그리고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지 않겠는가? 그는 온유함으로 가득하다. 남편에게 아내는 그 눈의 사과와 같다. 신랑이 신부를 즐거워하듯 그는 아내를 사랑한다.(사 62:5) 그분은 그리스도를 사랑하시듯 신자를 사랑하신다.(요 17:26) 질적으로 동일한 사랑이지만 양적으로 동일한 사랑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과 연합되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지 않을 수 없다.

13) 사랑은 가장 영구한 덕이다.
사랑은 다른 덕이 안녕을 고하고 떠나갈 때도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다. 하늘에서 우리는 회개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죄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우리는 인내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고난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우리는 신앙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앙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히 11:1) 그때 우리는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고 볼 것이다. 그리고 보는 곳에서는 신앙이 필요 없다.
그러나 그러한 다른 덕목이 끝날 때에도 사랑은 계속된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는 사랑이 믿음보다 크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가장 오래 남기 때문이다
.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고전 13:8). 믿음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할 때 갖고 다니는 지팡이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고후 5:7). 그러나 우리는 하늘 문에서 이 지팡이를 버려야 한다. 그리고 오직 사랑만이 들어갈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다른 모든 덕목으로부터 면류관을 채간다. 사랑은 가장 오래 살아 있는 덕목이다. 이는 영원의 꽃이다. 우리는 하늘에서 유일하게 우리와 함께 살 것이며 어린양의 혼인 만찬에 우리를 데리고 갈 이 덕에서 뛰어나고자 노력해야 한다.

14)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마음에 죄가 번성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어떤 식물은 서로 가까이 있으면 잘 자라지 못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를 사그라들게 한다. 노인은 살지라도, 병자처럼 약하고 가쁜 호흡을 내쉰다. 사랑의 꽃은 죄의 잡초를 죽인다. 죄는 완전하게 죽지 않겠지만, 매일 죽는다. 우리는 죄를 파멸하는 유일한 부식제인 그 덕목을 위하여 얼마나 노력해야 하겠는가!

15)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은혜의 성장을 위하여 탁월한 수단이다.

“은혜……에서 자라 가라”(벧후 3:18). 은혜 가운데 자라는 것은 하나님이 매우 기뻐하시는 일이다. 그리스도는 은혜의 진리를 인정하셔서 여러 가지 은혜를 칭찬하신다. 그러니 하나님에 대한 사랑보다 은혜를 증진하고 증가시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사랑은 뿌리에 물을 대는 것과 같다. 그리하면 나무가 자란다. 그러므로 사도는 기도에서 이런 표현을 사용한다.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후 3:5). 그는 사랑의 은혜가 모든 은혜를 먹이고 간직할 것임을 알았다.

16)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얻게 될 큰 유익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고전 2:9). 눈은 희귀한 광경을 보아 왔고 귀는 달콤한 음악을 들어 왔다. 하지만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예비하신 것이 무엇인지 눈은 보지 못했고 귀는 듣지 못했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지 못했다. 얼마나 찬란한 상급이 쌓여 있는지,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하는 것처럼 믿음은 파악할 수 없다.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하셨다.(약 1:12) 이 면류관은 그 안에 모든 복된 것, 즉 부와 영광과 기쁨을 포함한다. 그리고 이는 시들지 않는 면류관이다.(벧전 5:4) 그래서 하나님은 상급으로 주셔서 우리를 자신에게 이끄실 것이다.

17)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오류를 막는 증거의 갑주이다.
마음에 사랑이 가득 차 있는 않기 때문에 사람의 머리에는 오류가 가득 찬다. 거룩하지 못한 견해는 거룩한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긴다. 왜 사람들은 강력한 속임수에 빠지게 되는가?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살후 2:10,11).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수록,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방탕한 상태로 이끄는 이단 사설을 더욱 미워하게 된다.

18)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모든 바람이 우리를 위하여 불고 세상의 모든 것이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작용함에 틀림없다.
우리는 사나운 시련을 만날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일이 틀림없이 선을 이룰 것이다. 그들의 십자가는 면류관이 될 것이다. 모든 바람은 그들을 천상의 포구로 보낼 것이다.

19)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결여는 배도의 근거이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뿌리가 없는 씨는 말라 비틀어졌다. 그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뿌리박지 못한 사람은 시험의 때에 떨어질 것이다. 룻이 나오미에게 달라붙듯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달라붙을 것이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룻 1:16,17).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는 자는 오르바가 시어머니를 대하듯 할 것이다. 오르바는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고 작별을 고했다. 사령관에 대한 사랑이 없는 군인은 기회가 오면 그를 떠나 원수의 편으로 달아날 것이다. 그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는 자는 배도자로 봐도 된다.

20)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께 되갚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화를 내시더라도 우리는 하나님께 화를 내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꾸짖으시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꾸짖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면, 우리는 다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다시금 반응할 수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다. 우리는 분명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말로 갚지 못하며,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사랑으로 갚아야 한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불러일으키고 불타게 하는 20가지 동기를 살펴보았다.

질문.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대답.
하나님에 관하여 공부하라. 우리는 하나님에 관하여 공부할수록 틀림없이 그분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의 더할 나위 없이 탁월하심, 거룩하심, 측량할 수 없는 선하심을 보라. 천사들은 우리보다 하나님을 더 잘 알며 그 엄위의 광채를 분명하게 주목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께 더욱 깊이 매료되어 있다.
하나님께 관심을 가지려고 힘쓰라.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시 63:1). “나의”라는 소유대명사는 사랑의 달콤한 자석이다. 사람은 자신의 것을 사랑한다. 우리는 믿을수록 더욱 사랑한다. 믿음은 뿌리이며 사랑은 그 위에서 자라는 꽃이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갈 5:6)인 것이다.
하나님께 열심히 간구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랑하고픈 마음을 당신에게 주실 것이다. 이는 받으실 만한 간구이며, 확실히 하나님은 그것을 거부하지 않으실 것이다.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10절). 그처럼 당신이 하나님께 “주여, 주를 사랑하는 마음을 제게 주소서. 주를 더 많이 사랑할 수 없는 이것이 저의 큰 슬픔입니다. 하늘로부터 이 불을 제 마음의 제단에 켜 주소서!” 하고 소리칠 때, 이 기도는 분명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은 그 신을 당신에게 부으실 것이며, 그 황금 기름이 당신의 사랑이라는 등잔을 환하게 타오르게 할 것이다.
 
2.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보존하라는 권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랑을 보존하기 위하여 힘쓰라. 이 사랑이 죽어 사그라들지 않도록 하라.
하나님의 사랑을 계속 받으려면, 하나님을 계속 사랑하라. 사랑은 불처럼 금방이라도 꺼지려 할 것이다. “너희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4) 사단은 이 불꽃을 꺼 버리려고 애쓰며, 우리는 종교적 의무를 게을리 하여서 그 불꽃을 잃어버린다. 연약한 몸이 옷을 벗어 던질 때 감기에 들기 쉽다. 그처럼 우리가 종교적 의무를 팽개칠 때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점차 차가워진다. 모든 은혜 가운데 사랑은 부패하기 가장 쉽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보존하기 위하여 더욱 세심해야 한다. 사람이 보석을 갖고 있으면 그것을 지키려 할 것이다. 기업이 있다면 그것을 지킬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랑의 은혜를 지키려면 얼마나 큰 주의가 필요하겠는가! 신앙 고백자들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서 후퇴하는 것을 보노라면 서글프다. 많은 사람이 영적 소진 상태에 있으며 그들의 사랑은 부패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소진 상태에 있음을 보여주는 네 가지 표시가 있다.

1) 그들이 맛을 느끼지 못할 때
심각한 소진 상태에 있는 사람은 입맛이 없다. 그는 음식의 향긋한 풍미를 이전처럼 느끼지 못한다. 그처럼 그리스도인이 약속에서 달콤함을 발견하지 못할 때 그것은 영적 소진의 한 표시이다.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벧전 2:3). 한때 그들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면서 위로를 발견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떨어지는 꿀과 같이 그 영혼의 미각에 아주 달콤했지만, 이제는 딴판이다. 그들은 영적인 일에서 달걀의 흰자위(욥 6:6)처럼 더 이상을 맛을 느낄 수 없다. 이는 그들이 소진 상태에 있다는 표시이다. 맛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처음 사랑의 상실을 입증한다.

2) 그리스도인이 그 식욕을 잃었을 때
심각한 소진 상태에 있는 사람은 이전처럼 식욕을 갖지 못한다. 한때 그리스도인은
“의에 주리고 목말라”(마 5:6)했다. 전에 그들은 천상의 일들, 성령의 은혜, 십자가의 피, 하나님의 얼굴빛을 생각했다. 그들은 규례에 대한 갈망이 있었고 배고픈 사람이 잔치에 가듯 규례로 향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그들은 식욕이 없고, 그리스도를 그다지 소중히 여기지 않으며, 말씀에 대하여 그다지 강한 애정이 없으며, 그들의 마음이 속에서 불타오르지 않는다. 이것은 그들이 소진 상태에 있으며 그들의 사랑이 부패하고 있다는 슬픈 조짐이다. 사람들이 다윗에게 옷을 덮어주었으나 그에게 온기가 없었던 것(왕상 1:1)은 다윗의 자연적은 능력이 감소된 표시였다. 그처럼 사람들에게 따뜻한 옷(즉, 규례를 뜻한다)을 강력하게 권했을 때, 그들은 사랑의 열기가 없고 마치 곧 앓아누울 것처럼 차갑고 뻣뻣한데, 이는 그들의 처음 사랑이 쇠하여지고 그들이 깊은 소진 상태에 있다는 표시이다.

3)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더욱 사랑하게 될 때, 이는 영적 사랑의 쇠퇴를 말한다.
그들은 한때 숭고하고 천상적인 성품을 갖고 있었고 가나안의 말을 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복음서에 나오는 입에 돈을 담고 있는 물고기와 같다.(마 17:27) 그들은 혀 짧은 소리로 세 마디 낱말을 말할 수 없다. 그나마 하나는 암몬에 관한 것이다. 사단처럼 그들의 생각과 성정은 여전히 땅을 돌고 있으며, 이는 그들이 언덕으로 빨리 내닫고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사랑이 소진 상태에 있다는 표시이다. 우리는, 본성이 부패하고 약해질 때 사람이 더욱 비천해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참으로 마음이 땅에 붙을수록 아주 비굴해져서 천상적 생각으로 거의 상승할 수 없을 때, 이는 처음 사랑이 서글프게 쇠퇴하고 있는 것이다. 녹이 금속에 달라붙을 때, 금속의 광택을 흐리게 할 뿐만 아니라 금속을 부식시키고 없어지게 한다. 그처럼 지상적인 것이 사람의 영혼에 달라붙을 때, 덕목의 빛나는 광채를 가릴 뿐만 아니라 점차 그 덕목을 부식시킨다.

4)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경배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때
신앙의 의무는 죽어 형식적인 방식으로 시행된다. 신앙의 의무를 행하더라도 형편없이 행한다. 영적 소진의 슬픈 징조이다. 의무를 저버리는 것은 처음 사랑이 쇠퇴해짐을 보여준다. 바이올린의 현이 느슨할 때,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없다. 사람이 종교적 의무에서 느슨해질 때, 기도하더라도 하지 않는 것과 진배없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귀에 조화로운 소리를 울릴 수 없다. 영적 운동이 느리고 둔할 때, 영혼의 맥박이 낮게 뛸 때, 이는 그리스도인이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표시이다.
이 영적 소진에 주의하자. 우리의 사랑이 약해지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사랑은 그것이 없이 우리가 어떻게 지낼지 알지 못할 그러한 덕목이다. 사랑 없이 그리스도인은 무기 없는 군인, 펜 없는 예술가, 악기 없는 음악가와 같다. 몸은 자연적 열기가 부족하면 안 된다. 영혼과 사랑의 관계는 몸의 열기와 관계와 같다. 사랑 없는 생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다른 덕목들에 영향을 주며, 성정을 불러일으키며, 우리로 하여금 죄에 대하여 근심하게 만들며,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한다. 이는 바퀴의 기름과 같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봉사하는데 신속하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살아 있게 하는 데 얼마나 주의해야 하겠는가!
 
질문.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사랑이 사라지지 않겠는가?
대답.
매일 당신의 마음을 살피라. 사랑의 덕목이 시초에 쇠퇴하는 것에 주의하라. 무미건조하고 생기 없어지기 시작하는 자신을 관찰하라. 그리고 기운을 돋우는 모든 방법을 사용하라. 기도와 묵상과 거룩한 만남을 많이 가지라. 불이 꺼지려 할 때면 연료를 공급하라. 그처럼 사랑의 불꽃이 사라지고 있을 때 당신의 불이 계속 타오르도록 하는 연료로서 규례와 복음의 약속을 사용하라.
 
3.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증진시키도록 하는 권고
그리스도인들이여,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증진시킬 것을 권한다. 여러분의 사랑이 더 높이 솟구치게 하라. “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라”(빌 1:9)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아침의 빛과 같아야 한다. 처음에는 새벽이며 그 다음에는 정오까지 더욱 빛난다. 사랑의 불꽃이 얼마간 있는 사람은 이 거룩한 불꽃을 화염으로 불러일으켜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에게 은혜가 있는지 없는지 의심이 들게 하는 미미한 은혜에 만족하지 말고 그 양을 계속 증가시켜야 한다. 금을 약간 가진 사람은 더 많은 금을 가지려 한다. 하나님을 조금 사랑하는 자는 더욱 사랑하려고 애쓴다. 경건한 사람은 세상의 것이 아무리 작아도 만족한다. 하지만 성령님의 영향에는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이 받고자 하며 사랑을 점점 더하려고 애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등잔에 기름을 더 많이 넣고 사랑의 불꽃을 더 크게 피우라고 설득하기 위하여 네 가지 거룩한 동기를 제안하고자 한다.

1) 사랑의 성장은 사랑의 진리를 입증한다.
나는 살구나무에 움이 돋아 잘 자라나는 것을 보면, 뿌리에 생명이 있음을 안다. 그림의 나무는 자라지 않을 것이다. 그림에 불과한 위선자는 자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엘리야의 구름처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더욱 크게 자라는 것을 보면, 우리는 사랑이 참되고 진실되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2) 사랑의 성장을 통하여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성도를 본받는다.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사랑은 성소의 물처럼 불어난다. 제자들은 처음에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약하여 그리스도로부터 도망쳤지만,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다음에는 그 사랑이 더욱 힘 있게 자라서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고백하게 되었다. 처음에 베드로는 사랑이 아주 약하고 시들해서 그리스도를 부인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 그는 얼마나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전했는가! 그리스도께서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 21:16)하고 그의 사랑을 묻는 시험을 하셨을 때, 베드로는 겸손하게, 하지만 확신 있게 그리스도께 호소할 수 있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그래서 전에는 시험의 바람에 쓰러졌던 연약한 나무가 백향목처럼 자라, 지옥의 모든 권세도 흔들 수 없게 되었다.

3) 사랑의 성장은 상급을 지키게 할 것이다.
우리가 사랑으로 타오를수록 영광 가운데 더욱 빛날 것이다.
우리의 사랑이 커질수록 우리의 면류관은 더욱 빛난다.

4)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사랑할수록, 그분으로부터 더욱 많은 사랑을 받을 것이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달콤한 비밀을 하나님으로부터 배우지 않으려는가? 그 얼굴의 웃음을 얻으려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더 높은 사랑을 위하여 애쓰자. 성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황금과 진주를 배설물로 여겼다. (빌 3:8) 그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올라 유대인 형제를 위하여 그리스도에게 저주받기를 원할 수 있었다. (롬 9:3) 그는 그리스도께로부터 저주를 받을 수 없었지만, 그의 뜨거운 사랑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경건한 열정이 그와 같았으므로, 하나님이 더 많은 존귀를 얻으실 수 있다면 형언하기조차 어려운 고통도 달게 받았을 것이다.
여기 죽을 인생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의 사랑이 있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갔는지 보라. 주님은 그를 잠시 하늘로 이끄사 그 품에 두셨고, 거기서 그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관경을 보고 듣고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고후 12:4)하고 말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다가가서 손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증진되지 않을 때, 곧 쇠퇴한다. 불은 활활 타오르지 않을 때 곧 사그라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고 불러일으키려고 해야 한다. 우리가 하늘에 이를 때 이 권고는 철지난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 우리의 빛은 밝아지고 우리의 사랑은 완벽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더욱더 넘치게 하라고 권고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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