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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8(토마스 왓슨)

토마스 왓슨

by 김경호 진실 2012. 11. 2.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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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장 부르심을 받은 자에 대한 권고

유효하게 부르심을 받은 것을 확인한 다음, 여러분에게 세 가지를 권고하라고 하면,
 
1. 당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에 감탄하며 찬미하라.
하나님은 매우 많은 사람을 건너뛰시고 지혜롭고 고귀한 자를 지나치신 반면 당신에게는 거저 주시는 은혜를 많이 쏟으셨다. 하나님은 마귀의 맷돌을 부수어 당신을 노예 상태에서 건져 내시고, 지상의 군주보다 당신을 높이시고 영광의 보좌를 상속하도록 부르셨다. 무릎을 꿇고 감사의 나팔을 불어 찬송하라. 당신의 마음을 십현금으로 삼아 하나님의 긍휼을 기념하는 소리를 발하라. 큰 빚을 진 자 가운데 거저 주시는 은혜를 받은 당신만큼 빚을 많이 진 자가 없고 감사의 산에 당신만큼 높이 오를 자가 없다.
아름다운 가수처럼 외치라.
“왕이신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 하리이다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영히 주의 이름을 송축 하리이다.”(시 145:1,2) 긍휼을 누구보다 많이 받은 자들은 마땅히 찬송의 나팔이 되어야 한다. 하늘에 있기를 바라라. 거기서는 당신의 감사가 더 순수하고 더 높이 소리를 낼 것이다.
 
2. 부르심을 받지 못한 자를 불쌍히 여기라.
진홍빛 옷을 입은 죄인은 시기의 대상이 아니라 동정의 대상이다. 그들은 “사단의 권세”(행 26:18)아래 있다. 그들은 매일 무저갱의 가장자리를 걷는다. 그러니 죽음이 그들을 집어던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회개하지 않은 죄인을 불쌍히 여기라! 길 잃은 소나 자귀를 불쌍히 여긴다면, 길 잃어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바른길과 건전한 정신을 상실하고 저주의 벼랑에 서 있는 영혼을 불쌍히 여기지 않겠는가?
그러나 죄인을 불쌍히 여길 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그들이 저주할지라도 기도하라. 당신은 정신 나간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할 것이다. 그런데 죄인은 정신 나간 사람이다. “스스로 돌이켜”(눅 15:17). 회개 전에 탕자는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불의한 자는 사형 집행을 당할 것이다. 죄는 그들을 질식시키는 밧줄이며, 사망은 그들을 사다리에서 떨어지게 하며, 지옥은 그들이 불타는 곳이다. 그러니 그들이 그런 위험에 처한 것을 볼 때 위하여 기도하지 않겠는가?

3. 유효하게 부르심을 받은 자신의 고상한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엡 4:1). 그리스도인은 예의를 지켜야 한다. 단정한 일을 행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다고 고백하지만 느슨하고 일정치 않은 행보로 신앙에 흠집을 내어 하나님의 길에 욕을 끼칠 때 이는 시기적절한 충고이다. 살비아누스는 이렇게 말한다. “이교도는 그리스도인이 창피하게 사는 것을 볼 때 무엇이라 말하는가? ‘분명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그 정도밖에 가르치지 않으셨군.’” 당신의 하늘의 부르심을 악용하여 그리스도를 비난하고 다시금 그분을 고난당하시게 할 것인가?
사람이 기도로 손을 높이면서 그 손으로 압제하는 것을 볼 때, 같은 혀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돌아서서 거짓말하고 비방하는 것을 들을 때, 한사람이 말로 하나님을 고백하고 행위로 하나님을 부인할 때 이는 가장 슬픈 광경 거운데 하나이다. 이 얼마나 가치 없는 짓인가! 당신의 부르심은 거룩한 부르심인데, 당신은 거룩하게 살지 않을 것인가? 다른 사람처럼 자유를 남용하려고 생각하지 말라. 다른 사람들은 포도주를 먹더라도, 맹세하고 하나님께 성별되어 절제하는 나실인은 포도주를 먹지 말아야 한다. 그처럼 다른 사람은 느슨하고 허영 되지만, 유효한 부르심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구별된 자에게는 적합하지 못하다. 꽃이 잡초보다 달콤하지 않는가? 당신은 “택하신 족속”(벧전 2:9)이어야 한다. 존귀한 점에서 특별할 뿐만 아니라 행동거지에서도 특별하다. 죄의 온갖 활동을 미워하라. 이는 죄가 당신의 고귀한 부르심을 경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질문. 우리의 하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대답. 그것은 격식 있게 행하는 것, 한결같이 행하는 것, 말씀의 규칙과 공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참된 성도는 성경에 순종하며, 성경의 규례를 따른다. “이 규례를 행하는 자”(갈 6:16) 이다. 우리가 사람이 만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제도를 고수할 때, 이스라엘이 불기둥을 따라 행하듯 우리가 말씀을 따라 행할 때, 이는 하늘의 부르심에 합당한 행보이다.
우리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은 독특하게 행하는 것이다. 노아는 그 세대에 의로웠다.(창 7:1) 다른 사람들이 마귀와 더불어 걸었을 때,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했다. 우리는 다수를 따라 행하지 말아야 한다.(출 23:2) 국가의 일에는 남다르게 행하는 것이 권할 만하지 않지만, 신앙에는 남다르게 행하는 것이 선하다. 멜란히톤은 당대의 영광이었다. 아타나시우스는 독보적으로 거룩했다. 시대의 흐름이 거슬러 흘렀을 때, 그는 하나님을 위하여 나타났다. 거룩함의 모범이 되는 것이 불의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보다 낫다. 무리 가운데 휩쓸려 지옥에 가는 것보다 소수와 더불어 하늘로 가는 것이 낫다. 우리는 세상 사람과 정반대로 행해야 한다.
우리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은 즐겁게 행하는 것이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빌 4:4) 영혼이 너무 축 처지는 것은 우리의 고귀한 소명을 무시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들은 경건한 생활을 우울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자신을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하신다. 카우시누스는 그림 문자로 사랑에 관하여 말하는데, 사랑의 날개는 달콤한 연고로 향기가 나며 비둘기를 앞세운다고 한다. 유쾌함은 다른 사람을 경건함에 이르도록 이끄는 향수이다. 신앙은 기쁨을 죄다 추방하지 않는다. 쓰라림 없는 진지함이 있듯이 가벼움 없는 즐거운 활기가 있다. 탕자가 돌이켰을 때 “저희가 즐거워하더라.”(눅 15:24)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면 누가 즐거워하겠는가? 그들은 성령님으로 거듭나자마자 면류관을 상속할 자가 된다. 하나님이 그들의 분깃이시며 하늘이 그들의 집이니 그들은 즐거워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은 지혜롭게 행하는 것이다. 지혜롭게 행하는 것은 세 가지를 함축한다.
 
1) 주의해서 걷는 것이다.

“지혜자는 눈이 그 머리에 있고”(고전 2:14, 한글 개역에는 “지혜자는 눈이 밝고”로 됨).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일관되지 못한 것을 지켜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관되어야 한다. 우리는 추문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모든 일을 주의해야 한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이 입을 열어 종교를 열심히 반대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경건이 사람을 회개시키지 못한다 해도, 우리의 신중함은 그들을 침묵하게 할 것이다.
2) 정중하게 행하는 것이다.
복음의 정신은 온유함과 솔직함으로 가득하다. “정중하며”(벧전 3:8, 한글 개역에는 “불쌍히 여기며”로 됨). 까다롭고 건방진 태도를 주의하라. 신앙은 정중함을 버리지 않고 세련되게 한다. “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거민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창 23:7). 그들은 이교 종족이었지만, 아브라함은 정중하게 그들을 존경했다. 사도 바울은 정중한 성품을 지녔다.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고전 9:22).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서 사도는 다른 사람에게 양보했는데, 이런 친절한 태도로 그는 다른 사람을 사로잡으려 했다.
3) 관대하게 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겸손해야 하지만 비천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의 정욕에 자신의 몸을 버리는 것은 합당치 못하다. 죄악적으로 부가되는 것은 열심히 반대해야 한다. 양심은 하나님의 감독 관구이다. 아무도 이곳을 찾을 권리가 없고 오직 우리 영혼의 감독(벧전 2:25)이신 하나님만 권리가 있다. 우리는 달아오른 철과 같아지면 안 된다. 달아오른 철은 쳐서 어떤 모양이든 만들 수 있다. 기개 있는 그리스도인은 양심을 어기기보다 고난당하려 할 것이다. 여기에 뱀과 비둘기, 지혜와 무흠이 결합된다. 이 사려 깊은 행보는 우리의 고귀한 부르심에 어울리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매우 아름답게 장식한다.

우리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한다는 것은 영향력 있게 행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선을 행하고 긍휼의 행위에 부요한 것이다. (히 13:16) 선행은 신앙을 존귀케 한다. 마리아가 그리스도께 향유를 부은 것처럼 우리는 선행으로 복음의 머리에 향유를 부어 복음이 향기로운 냄새를 발하게 한다. 선행은 구원의 원인이 아니라 증거이다. 우리는 구주와 함께 선을 행하고 관대함의 상쾌한 영향력을 널리 퍼드릴 때, 우리의 고귀한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한다.
여기에 유효하게 부르심을 받은 당신에게 위로가 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부요한 은혜를 많이 내리셨다. 당신은 천사와 협력자가 되고 그리스도와 공동 후사가 되는 큰 존귀에 이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이는 아무리 힘든 시대에도 당신을 소생시킬 것이다. 사람들이 당신을 비난하고 그릇되게 말하게 하라. 사람들이 그릇 말할 때 하나님이 당신을 부르심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당신을 핍박하여 죽이게 하라. 그들은 당신에게 통행증을 주어 곧 하늘에 이르게 할 뿐이다. 이는 마음의 떨림을 얼마나 훌륭하게 고치겠는가! 바다가 흉용하고 땅이 흔들리고 별이 제자리에 벗어나 흔들리더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당신은 부르심을 받았으며, 따라서 확실히 면류관을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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