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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9(토마스 왓슨)

토마스 왓슨

by 김경호 진실 2012. 11. 12. 09:15

본문

 

제 9 장 하나님의 목적에 관하여

1. 하나님의 목적은 구원이다.


앞으로 간단하게 살펴볼 본문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것은 우리의 유효한 부르심의 근거이며 기원이다. 이는 이런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 뜻을 따라”(엡 1:11). 안셈은 “그 선한 뜻을 따라”로 번역한다. 순교자 피터는 “그 작정을 따라”로 번역한다.
하나님의 이런 목적 혹은 작정은 영적 복의 원천이다. 이는 우리의 소명과 칭의와 영화를 추진하는 원인이다. 이는 구원의 황금 목걸이에서 가장 높이 있는 고리이다. 한 사람은 부르심을 받고 다른 사람은 부르심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영원한 뜻이다. 하나님의 작정은 사람의 구원에 결정표를 던진다.
그러므로 은혜의 모든 활동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에 돌리자. 하나님은 우리가 자격이 있기 때문에 택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택하심으로써 자격 있게 만드신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가 되었다고 가정하고 지나치게 오만해지기 쉽다. 많은 사람은 소리쳐 교회를 비방하지만, 반면에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으며 더욱 신성 모독적인 죄를 범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머리에 구원의 면류관을 쓰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돌려야 한다. 구원의 표시는 성도에게 있지만 구원의 원인은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의 뜻 때문에 구원이 있다면, 그것은 자유 의지에 의한 게 아니다.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은 자유 의지를 줄기차게 주장한다. 그들은 사람이 스스로 회개할 수 있는 본능적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본문은 그것을 논박한다. 우리를 부르심은
“하나님의 뜻을 따른” 것이다. 성경은 자유 의지의 뿌리를 뽑는다.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롬 9:16).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다. 죄수가 법정에서 유죄 선고를 받을 때, 왕이 그를 구제할 뜻이 없으면 그를 구원할 길은 없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대권적 왕권이다.
만일 하나님의 뜻 때문에 구원이 있다면, 그것은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니다. 벨라르미누스는 선행이 죄를 사하고 영광을 얻을 공로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본문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부르심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과 비슷한 성경 구절이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우리를)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은혜대로 하심이라.” (딤후 1:9) 공로 같은 것은 없다. 우리의 가장 훌륭한 활동도 본질적으로 흠과 결점이 있어서 반짝이는 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르심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된 것이다.
 
반론. 그러나 카톨릭 신자들은 공로를 지시하는 성경 구절을 내세운다. :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딤후 4:8). 이것이 그들이 내세우는 주장의 근거이다. 의로우신 하나님이 우리의 행위에 상급을 주신다면 우리의 행위는 구원을 얻을 공로가 있다.
 
답변. 그 점에 관하여 이렇게 대답하겠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으로 상급을 주시되, 우리의 행위가 자격 있어서 주시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가 자격 있어서 주시는 것이다.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은 우리가 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에 상급을 주시는 게 아니라 그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에 주신다. 하나님께서 두 법정이 있으니, 하나는 긍휼의 법정이며 하나는 공의의 법정이다. 주님은 공의의 법정에서는 이 행위들을 정죄하시고, 긍휼의 법정에서는 면류관을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행복의 원천이라면, 우리는 예지된 믿음으로 구원받지 못한다. 우리 안에 어떤 것이 우리의 선택에 최소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부조리하다. 어떤 사람들이 말하기를,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 믿을 것을 미리 보시고 그들을 선택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 안에 있는 어떤 것에 구원의 일이 달려 있게 만들려 한다. 반면에 하나님은 믿음 때문에 우리를 택하신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가지도록 택하셨다.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하신 것이다. 즉 우리가 거룩할 것이므로 택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로 거룩하게 하려고 택하신 것이다. 우리는 거룩하도록 택함을 받은 것이지 거룩하기 때문에 택함을 받은 게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오염과 거역 외에 무엇을 보실 수 있었겠는가! 어떤 사람이든지 구원받았으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된 것이다.
 
질문.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뜻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
 
대답. 유효하게 부르심을 받음으로써 안다.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벧후 1:10) 우리는 우리의 부르심을 굳게 함으로써 우리의 택하심을 굳게 한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살후 2:13). 물길을 따라 결국 수원에 이른다.
우리는 성화의 물길이 우리 영혼에 흐르고 있는 것을 발견하면, 이로써 선택이라는 수원에 이를 것이다. 사람이 하늘을 볼 수 없을 때, 달이 물에 비치는 것을 봄으로써 달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처럼 나는 하나님의 뜻의 비밀을 꿰뚫어 볼 수 없지만, 거룩하게 하는 은혜가 나의 영혼에 비침을 보고 선택받았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마음에 새겨져 기록된 것을 발견하는 자마다 의심할 나위 없이 자신이 선택받았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2. 하나님의 뜻은 확신의 근거이다.

여기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말할 수 없는 위로의 최고 영약이 있다. 그들의 구원은 하나님의 뜻에 근거한다.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딤후 2:19)
우리의 덕목은 불완전하고 우리의 위로는 조수 같지만, 하나님의 터는 견고히 서 있다. 하나님의 영원한 뜻이라는 이 반석위에 선자는 떨어질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사람의 능력도 시험의 맹렬함도 그들을 뒤엎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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