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장로정치사(종교개혁 이전)

최더함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2. 12. 10. 09:50

본문

<장로정치사>

 

1. 교회의 시작

 

1) 교회는 하나님에 의해 시작되었고 신약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엡2:20) 위에 세워졌다.

 

2) 구약교회는 모세 때부터 있었으며 이 교회를 ‘광야교회’(행7:38-스데반)라 불렀다. 구약교회는 신약교회를 예표하지만 다만 경륜과 교육방법에서 차이가 날 뿐이다. 바울은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이면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갈3:29)라고 했다.

 

2. 장로정치의 구약적 배경

 

1) 인간사회를 다스려 온 최초의 통치형태는 족장정치(창12:4, 욥1:5)이다. 노아 이후 족장들은 연륜과 경험으로 가정을 다스렸다. 인구의 증가와 함께 장로정치로 발전했다. 이때부터 모세시대의 지도자들을 가돌(gadol) 또는 자켄(zaqen)(창50:7 이후 구약에만 178회 사용)이라 했다.

 

2) 장로제도의 기원은 모세이전으로 올라간다. 하나님이 미디안 광야에서 “너는 가서 장로들을 불러 모으라”(출3;16)고 명하신 말씀에서 장로들이 이미 존재했음을 확인한다.

 

3) 모세이후 장로제도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이끄는 정치체제가 되었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백성을 구출하기 위해 장로들을 소집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했고(출3:16), 숫자는 70인으로 제한되었다(출24:1).

 

4) 이스라엘 사회에서 장로는 성격상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자로, 백성들은 장로를 공인으로 인정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장로들에게 진술했고(출19:7), 장로들은 백성이 속죄제를 드릴 때 제물에 안수함으로써 제사 업무에 참여했으며(레4:15), 모세와 아론과 함께 백성들을 다스렸으며(민9:1), 고라 일당이 반역했을 때엔 치리하는 역할을 수행했다(민16:25).

 

5) 장로들은 온 회중을 대표하는 자들이었다.(민11:24-25).

- 모세는 머지않아 죽을 것을 예감하고 장로들에게 가나안 땅을 점령하라고 명령했다(신29:10). 그리고 모세는 광야교회를 세우면서 이스라엘 중에서 ‘재덕이 겸비한 자’(출18:24)를 선발하게 함으로서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상향식 제도를 만들었다.

- 여호수아는 장로들 앞에서 고별사를 행했다(수23:1-24:25)

- 사무엘시대에는 장로들이 사무엘을 찾아가 백성들의 뜻이라며 왕을 세워달라고 했다(삼상8:4-5)

- 솔로몬은 장로들과 함께 성전을 봉헌했다(왕상8:1)

- 에스라는 장로들과 함께 백성을 다스렸다(스10:14)

 

**그러므로 구약교회가 주교나 군주에 의해 다스려졌다는 감독주의자나 교황주의자들의 주장은 성경의 가르침을 곡해한 것이다.

 

6) 구약교회에서 성막과 성전에서 봉사하는 일은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의 고유한 업무였고, 장로들은 이스라엘 공동체인 교회를 말씀으로 다스리는 일을 했다. 그들은 교회에 들어오기에 합당한 자와 부당한 자를 구별하였고, 교회 안의 부도덕한 자를 치리했다.

 

7) 포로시대 이후부터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되자 회당중심으로 모였다. 회당에는 장로석이 따로 배치되었고, 장로들은 회중의 영적인 상태를 돌아보았고, 믿음이 연약한 자를 붙잡아 주고 악한 자를 추방함으로써 교회를 보호했다. 회당은 10가족이면 조직할 수 있었고, 회당 운영을 위해 3인의 장로를 두었다.(Hays, 1892)

 

8) 이후 산헤드린공회가 최고의 통치기관이 되었다. 그러나 최종권위는 회중들에게 있었다. 최고의 판단기준은 율법이었고, 중대사는 다수의 의결로 결정했으나, 인간의 차원에서 결정할 수 없는 것은 우림과 둠밈으로 결정했다.

 

3. 장로정치의 신약적 배경

 

1) 신약성경은 교회를 다스리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고 가르친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교회를 통치하므로 말씀과 성령이 임하는 곳에 교회가 세워진다.

 

2)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교회 직분자의 종류와 자질, 의무를 규정하시고(딤전3장, 딛1장), 성령을 통해 각 사람을 부르시고 신자로 만들며, 각종 은사를 주시어서 직분자로 세우고 능력을 주신다.(엡4;11).

3) 바울은 소아시아와 고린도에 교회를 설립하면서 장로들을 세웠다.(행14:23). 특별히 디도를 그레데에 남겼는데 그것은 교회의 그릇된 일을 바로잡고 장로를 세우기 위함이었다.(딛1:5).

 

4) 감독주의자와 교황주의자는 ‘하나의 교회에는 한 명의 감독(bishop)'이 있다는 명제를 설정한다. 그리스도께서 신약교회를 위해 감독과 장로, 집사의 세 직분을 주셨고, 이 직분들은 계급 구조를 형성한다고 가르친다. 무엇보다 교회는 감독중심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감독은 성직자에 대한 언급이며 치리장로는 평신도로서 감독을 돕거나 교인을 다스리는 직분이라고 한다. 장로의 사역은 단지 교히를 다스리는 것이며 그에게 결코 가르치는 일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정리하면 한 교회에는 한 감독이 있고 그를 보좌하는 장로와 집사가 있을 뿐이라고 하는 것이다.

 

5) 그러나 성경은 감독과 장로는 동직이명임을 가르친다. 다만 장로가 권위를 상징하는 용어라면 감독은 임무를 강조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음이 다를 뿐이다.

- 히브리서 기자는 장로에 대해 ‘너희를 인도하는 자’라 했다(히13:7)

- 바울은 장로를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라 했고(살전5:12-13), 회중을 감독하는 일과 관련해서는 감독이라 호칭했고(행20:28), 양떼를 먹이는 일에는 목자라 호칭했고(벧전5:2-4),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역하는 자를 책망하며 각성하게 하는 일에는 교사라고 호칭했고(딤1:9, 딤전2:7, 딤후1:11),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맡긴 일을 행하는 일과 관련해서는 교회의 사자라고 호칭했다(계2:1).

- 특히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을 밀레도로 초청한 후 신앙 안에서 살 것을 권면하면서 그들을 감독이라고 칭하였다.(행20:28). 즉 치리장로인 그들을 감독(episkopos)이라 한 것이다.

- 사도시대에는 한 교회에 한 감독이 아니라 여러 명의 감독이 교회를 섬겼다.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편지하면서 ‘성도와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문안했다(빌1:1). 그레데교회에도 여러 명의 감독들이 있었다(딛1:5).

- 사도 베드로는 자신을 감독이라 하지 않고 장로라고 소개했다.(벧전5:1)

- 사도 요한도 자신을 장로라고 소개했다(요이1:1, 요삼1:1)

- 예루살렘교회는 자신을 장로라고 부르던 사도들과 일곱 집사만 존재했다(행6:2-3)

 

6) 장로에는 여러 명칭이 등장한다. 다스리는 치리장로(살전5:12),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강도장로(히13:7)가 있다. 특히 가르치는 장로는 목사와 교사(신학교수)로 나누어지는데 누가는 바울과 바나바를 목사요 장로요 교사라고 언급했다(행13:1). 성경은 장로들을 귀하게 여기되 목사에 대해 특별한 관심과 존경을 표할 것을 명하고 있다.

 

4. 감독정치의 등장

 

A. 교부시대

- 로마의 클레멘트(~101) : ‘고린도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 이그나티우스, 안디옥(35-107)

- 이레니우스, 리용(130-220) ‘이단논박’

- 키프리아누스(200-258) ‘공교회의 일치에 관하여’

- 도마수스(304-420) ‘로마교회의 우위성’ - 로마감독을 ‘대사제’로 호칭

- 제롬(342-420)

 

B. 로마감독의 영향력 강화

- 5세기 중엽에 로마감독이 지방주교들에게 칙서하달

- 레오 1세(440-461)가 교회구조를 중앙집권화하고 자신을 베드로의 후계자로 자처

- 476년 서로마제국 멸망 후 그레고리 대제(540-604)가 침략자인 롬바르드족을 웅변술로 물리치고 교권을 장악. 로마교회가 제국의 구심점

- 607년 보니페이스 3세 이후부터 교황으로 호칭. 반석(베드로)논쟁과 교황정치의 시작

- 622년 마호메트 등장으로 3대교구가 이슬람화

- 750년 카롤링왕조 창건이후 상부상조

- 800년 샤를마뉴 대제 + 교황 레오 3세

- 841년 루이 왕 + 스티븐 4세

- 875년 찰스 왕 + 루이 2세

- 교황 레오 9세(1049-1054), 알렉산더 2세(1054-1072), 그레고리 7세(1073 -1085)때 교황권의 절정 : 독일 하인리히 왕을 파문, ‘카놋사의 굴욕’ 사건

- 1302년 보니페이스 8세의 칙서 ‘세속적 권위는 영적인 권위를 따라야 한다’ - 이후 교회의 타락화 가속화. 말씀-미신, 성찬-미사, 교리-교황명령

 

C. 감독주의 신학

- 안셀름, 캔터베리(1033-1109) :모노로기온, 프로스로기온 등. 성경이 아닌 이성에 기초하여 신학을 연구하여 신학을 철학의 시녀로 삼음.

- 피터 아벨라드(1079-1142) : ‘로마서 주석’ 도덕적 감화설 주장

- 피터 롬바르드(1100-1160) : ‘명제’ , 교회직분 세분화(사찰, 선창자, 독서자, 퇴마사, 시종, 부제, 사제 등)

 

5. 장로정치 회복운동들

 

A. 피터 왈도의 장로정치운동

- 성경을 프랑스어로 번역 보급. 재산분배, 가난한 이웃 구제, 설교운동

- 1220년 왈도파의 신앙고백서, 1224년 교황 인노센트 3세가 이단으로 정죄. 1447년 인노센트 8세가 약 100만명 처형

 

B. 존 위클리프(1328-1384)의 성경적 개혁운동

- 영국왕의 사절로 아비뇽 방문 후 교황청의 심각한 부패와 타락(성직매매, 교권투쟁, 재정적 부패 등)을 목격하고 교회개혁을 결심.

- 영국은 위클리프의 주도로 아비용과의 관계를 끊고 교회 개혁을 실시함.

 

C. 얀 후스(1369-1415)

- 위클리프를 뒤를 이어 교회 개혁을 주도함.

728x90

'최더함목사(서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혁주의(칼빈주의)에 대한 도전(1)  (0) 2012.12.12
종교개혁 이후사(CCK)  (0) 2012.12.11
성령세례와 성령충만   (0) 2012.12.08
기독론  (0) 2012.12.07
교회사 요약(초대~종교개혁)  (0) 2012.12.06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