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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칼빈주의)에 대한 도전(1)

최더함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2. 12. 12.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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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운동>

 

A. 오순절운동의 형성과 발전과정

 

1. 찰스 파함(C. Parham)

- 감리교회 목사로서 1900년에 캔자스에 벧엘성경학교를 세우고 성령세례의 표로서 방언을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1900년 12월 31일, 철야예배 도중에 아그네스 오즈만이라는 여학생에게 안수기도 하였는데 1월1일 새벽에 중국어를, 2일 저녁에는 보헤미안 방언을 말했다. 이것이 오순절성령강림 이후 20세기에 일어난 최초의 방언사건이다.

- 1905년 파함은 택사스의 휴스턴으로 성경학교를 이전했는데, 이 때 감리교회 목사이자 흑인인 윌리엄 씨모어가 입학하고 공부했다.

 

2. 윌리엄 씨모어(W. Seymour)

- 파함으로부터 수학한 씨모어는 1906년 LA 성결교회에 부임하여 방언해야 성령세례를 받은 증거가 된다고 가르쳤다. 그는 그때까지 방언을 받지 못하다가 1906년 4월9일 다른 7명과 함께 기도하다가 방언을 하게 되었다.

- 이로 인해 교회가 부흥되어 그는 아주사가 312번지에 감리교회당을 구입하여 사도적 신앙선교(AFM / Apostolic Faith Missions)라는 간판을 걸고 이후 1909년까지 부흥회를 연일 개최했다. 이것이 오순절 부흥운동의 시발이 되었다. 이 부흥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성령세례를 받고 방언을 하게 되었다.

 

3. 프랑크 바틀만(F. Bartleman)

- 그는 오순절운동을 널리 알리기 위해 문서활동에 매진했다. 그는 미국 성결회 계통의 신문들에 아주사 부흥운동을 자세히 보고하였고, 소책자들을 간행해 전 세계로 발송했다.

- 그의 활동으로 인해 오순절 운동은 급속히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었으며 세계 각처에서 특히 인도와 아프리카의 선교사들이 오순절의 체험을 얻기 위해 LA 아주사가의 AFM으로 몰려들었고 많은 미국의 목사들이 자기의 부흥회를 닫고 부흥회에 참가하였다.

 

4. 하나님의 성회 구성

- 1914년 오순절적 교회들이 '하나님의 성회'(The Assemblies of God)라는 이름의 새로운 교단을 만들었다. 그러나 흑인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는 교단을 만들어 독립했고, AFM도 별도의 교단이 되었으며 이후 1930년대까지 30여개의 교단을 발전 분파되었다.

- 1950년대 들어 이 운동은 내적으로 피폐해지면서 시들해졌다가 은사운동으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재도약의 계기를 이루게 되었다.

 

5. 오순절운동의 세계화

(1) 유럽

- 1906년 선교자금 모금을 위해 미국에 왔던 노르웨이의 감리교회 목사인 토마스 볼 바랫트가 방언받는 법을 LA의 지도자들로부터 배운 다음, 3개월 동안 매일 12시간씩 기도하다가 1906년 10월 6일 방언을 하게 되었고 12월에 오슬로로 돌아와 부흥운동을 일으켰다. 이 때 독일, 스웨덴, 영국 등지에서 많은 목사들이 찾아와 방언 받는 법을 배웠고,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가 오순절운동을 일으켰다.

- 영국의 도날드 기이, 스웨덴의 침례교회 레위 페드루스 목사, 프랑스의 더글라스 스콧트와 니꼴 등이 주도했다. 이외 독일 ,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칼에서 부흥되었다.

(2) 남아메리카

- 1905년 칠레의 윌리스C. 후버에 의해 시발되었다. 1909년에 발파라이소 교회에 1천 명이 모였는데 대부분 카톨릭교인들이었다. 이로 인해 그는 감리교회로부터 제명을 당하여 1910년 오순절 감리교회를 조직하고 100만 명이 넘는 교단으로 발전했다.

- 스웨덴계 미국이민자인 다니엘 버그와 군나르 빙그렌이 오순절체험을 한 뒤 1910년 브라질로 선교사로 파견되어 그곳에 하나님의 성회를 세웠다. 1983년까지 약 7백만의 오순절파 교단으로 성장했다.

- 1969년까지 남아메리카의 개신교중 약 63%가 오순절파였다.

(3) 아프리카

- 1908년 두 사람의 선교사가 아프리카에서 오순절운동을 시작했고, 남아프리카에 오순절교회를 세웠다.

(4) 아시아

- 인도네시아는 1960년대 들어 오순절운동의 영향으로 개신교인수가 1,500만명으로 성장했으며, 한국은 1950년 중반에 순천지역에 상륙한 뒤 1970년대 서대문 순복음교회(현,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에 의해 주도되어 단일교회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교인을 거느리게 되었다.

 

6. 은사운동

 

(1) 데이빗 뒤 플레시(D. D. Plessis)

- 오순절운동이 은사운동이 되어 기독교세계에 전파하는 일을 전개했다. 1936년 영국인 오순절파 부흥사인 위글즈워스의 예언을 받고 오순절운동을 기존의 기독교계에 전하는 것을 펠생의 사명응으로 삼은 이후부터 은사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 1952년 WCC 총회에 참석하여 오순절운동을 소개했으며, 1956년 미국 에큐메니칼운동의 지도잗을 만나 자기 교단을 떠나지 말고 오순절주의자가 될 것을 권고함으로 개신교계의 은사운동이 큰 무리없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 이어 그는 감독교회의 신부인 데니스 베넷트와 제임스 브라운을 설득했고, 1961년에는 교황청을 방문하여 오순절운동을 카톨릭이 받아들일 것을 설득했으며, 이어 1964년 제2바티칸 공의회 때 참관인으로 참가했고, 1972년 오순절파와 카톨릭교회의 대화에 공동의장으로 참가했다.

(2) 개신교회로의 확산

- 오순절운동이 성령운동이어서 많은 개신교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서서히 개신교회 안으로 침투해 들었다. 평신도들에게 방언은 매력적인 대상이었다. 은사운동은 성령세례와 함께 방언과 예언 그리고 신유의 은사가 강조됨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 개신교회의 은사운동을 주도한 사람은 일리노이 휘트과 이차드 윙클러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은사운동은 캘리포니아 감독교회 교구신부인 데니스 베네트로 인해서이다. 그는 1959년 자기 교회의 평신도로부터 안수 받고 방언을 했으며, 그 후 시애틀의 성누가 감독교회의 신부로 사역하면서 오순절경험과 방언을 전파함으로서 개신교회 주요 교단들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 이렇게 교회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은사를 특별히 강조하는 교회를 '은사적 개신교회'라고 부른다. 현재 한국교회의 상당수가 이런 유형에 속한다.

(3) 카톨릭의 은사운동

- 1967년 피츠버그 소재 디킨슨대학의 카톨릭 교수들이 장로교회 여신자인 F. 닷지 집에서 모여 기도하다가 방언을 받았다. 이후 학생들까지 파급되었으며, 1968년 미국 로마교회의 상징인 노틀담대학으로 확산되었다.

- 1975년 바티칸에서 교황 바울6세의 축복아래 만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세계은사자대회가 열렸다. 이어 1978년에는 영국 캔터베리에서 은사대회를 가졌다.

(4) 뉴에이지운동

- 은사운동이 갈수록 시들해지자 신 은사운동 혹은 교회성장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변화 발전되어 갔으나 이는 정통적 오순절신학을 변조하여 뉴에이지 신학을 수용, 혼합된 모습이다.

 

 

B. 오순절 신학

 

1. 중생 후 별도로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

 

(1) 성령세례와 방언추구

- 오순절운동은 처음부터 성령을 추구하였다. 성령을 충만히 받아 봉사를 위한 능력의 일꾼이 되고자 했다. 예수 믿으면 중생하여 구원은 받지만 성령세례를 받지 못하면 능력있는 일을 하지 못한다. 즉 성령세례는 중생과 구분되는 것이다.

- 20세기에 일어난 오순절 운동과 신자들이 성령 받는 것은 교회발생 시에 일어난 오순절의 반복이라고 말한다. 사도들이 받았던 동일한 성령을 지금 오순절운동과 은사운동이 받으며 그 표로 방언을 말해야 한다. R. A. 토레이는 오순절성령운동의 대표적인 신학자이다.

(2) 성경적 근거

1) 행 2:1-4

- 제자들은 이미 구원받은 상태에 있다가 오순절에 성령을 받았다. 이 오순절은 모든 신자들의 경험의 규범이다.

2) 행4:31

- 이미 예수 믿어 5천 명 정도가 되었을 때 합심 기도함으로 성령으로 충만해졌으니 그들의 개종 후에 성령세례가 발생한 것. 하워드 M. 어빈은 이 구절을 유대인 개종자의 오순절로 해석한다.

3) 행8:12-19

- 여기서 사마리아인들의 성령세례는 빌립의 전도로 예수 믿고 세례 받고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세례 받았으니 중생 후 성령세례 도식이 성립한다(L. Holdcroft)

4) 행9:3-18

-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를 대면하여 주의 제자가 되었고 3일 후 아나니야를 통해 성령충만함을 받았으니 여기서도 오순절의 유형이 성립된다. 즉 새 출생으로 개종하였고, 성령세례 혹은 충만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고전14:18의 진술로 보아서 바울이 방언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주: 그러나 갈3:2, 14, 22의 경우엔 둘을 구분할 수 없다. 바울의 경우엔 하나의 개종사건의 연속으로 보아야 한다.)

5) 행10:44-46

- 고넬료의 개종사건도 중생 후 성령세례가 성립하는 예이다. 고넬료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예수 믿고 설교가 끝날 때 성령세례 받았다고 주장한다. (주: 어빈은 이 부분을 가장 억지로 해석하여 오순절신학에 끼워 넣고 있다)

6) 행19:1-6

- 에베소 12제자들의 경우, 세례 받아 예수 믿고 그 후에 안수 받아 성령세례 받고 방언했으니 중생 후 성령세례가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7) 예수님의 성령세례

- 오순절파는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었고, 성령세례를 받아 권능을 입고 메시야로 일하였으므로 성령세례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이다. (주: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세례는 메시야 임직식이다. 그의 출생은 우리와 전혀 다르다. 그는 의인으로 완전 거룩자로 출생하였으므로 중생이 아니고 새 창조의 시작이다. 구주이고 새 인류의 머리가 성령세례를 받았으므로 믿는 자들은 그의 몸에 결합되므로 성령 받는다. 예수 믿음이 곧 성령세례이다.)

 

2. 조건을 이행하면 성령세례를 받을 수 있다

 

(1) 토레이의 7 단계설

① 회개하여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다.

② 죄를 폐기한다. 성령은 거룩한 영이므로 죄와 함게 거할 수 없다. 죄를 버려야 한다.

③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을 공적으로 고백한다.

④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께 자신의 의지를 양도하는 것이 순종이다. 양

⑤ 열렬한 욕망을 가져야 한다.

⑥ 성령세례를 위한 결정적인 기도를 해야 한다. 성령은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주어진다.

⑦ 성령세례를 기어이 받고야 말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 토레이는 성령세례는 그냥 중생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만이 아니고 증거와 봉사 의 유효성이라고 했다. 그는 조건 충족 후 성령세례 받았다고 믿으면 조용한 현상으로 세례가 나타난다고 한 반면에 오순절파는 황홀한 경험과 방언을 해야 한다고 한다. 토 레이는 1926년에 오순절파를 거부하고 이단으로 정죄했다.

(2) 랄프 리그스(R. Riggs)의 5 조건

① 준비과정으로 결정적인 중생의 경험을 해야 한다.

②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께 완전히 항복해야 한다. 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③ 요구해야 한다.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눅11:13)

④ 믿어야 한다. 성령을 받으려고 손을 내미는 것이 믿음이다.

⑤ 기도해야 한다.

(3) 찰스 칸(C. Conn)의 6 조건

① 죄에서 분리되어야 한다.

②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야 한다. 회개는 신앙의 내적 행동, 세례는 외적 행동이다.

③ 믿음을 들어야 한다. 성령은 믿음의 결과로 오는 것이다.

④ 순종해야 한다. 성령 못 받은 것은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⑤ 강렬한 욕망을 가져야 한다. 목갈하고 배고픈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

⑥ 하나님께 요청해야 한다. 요청이 상령세례를 결정한다.

(4) 기타:

- 퍼얼만(Pearlman)의 3 조건 ① 바른 태도 ② 구해야 한다. ③ 기도해야 한다.

- 기이(Gee)의 3 조건 ① 중생과 회개 ② 기도 ③ 믿음의기도와 하나님의 응답

 

3. 방언을 해야 성령세례를 받은 것이다.

- 오순절파는 방언을 성령세례의 확실한 증거로 교리화하였다. 특히 도널드 기이는 방언을 끝까지 고집하였다. 1914년에 하나님의 성회는 방언을 성령세례의 초기 증거로 확정하였다.

- 카알 브럼백은 '성령세례 혹은 위로부터의 능력을 입었는지의 여부는 방언을 말함으로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그 이유를 일곱 가지로 말했다.

① 방언은 외적 증거이다 ② 일률적인 증거이다 ③ 말함은 인격적 기능이므로 방언은 성령의 인격성을 계시한다. ④ 방언은 성령이 신자를 완전히 장악했다는 상징이다. ⑤ 방언은 성령이 신자의 진리와 발언의 원천임을 현시한다 ⑥ 방언은 인간 언어에 하나님이 두신 명예를 지시하기 때문이다. ⑦ 방언은 하늘 언어의 보증이다.

 

C. 오순절 신학의 오류들

 

1. 성령세례는 믿음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아들을 주신 하나님은 아들을 믿는 자에게 성령을 값없이 조건없이 주신다. 부르너는 신약에서 성령세례는 그리스도인의 노력의 기초이지 그 목표가 아니라고 말했다.

 

2. 조건들 이행으로 받는 성령세례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에 의한 획득이 된다. 이것은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면 성령을 받는다는 유대 율법주의의 현대적 변형에 불과하다.

 

3. 공로주의는 알미니안신학이다. 웨슬리의 감리회 신학이 18세기 미국의 대각성운동 때에 장로회 개혁주의신학에 침투하여 낳은 것이 알미니안 신학이다. 찰스 피니는 장로교회에 감리회 사상을 침투시켜 알미니안 신학을 보편화시킨 장본인이다. 그는 완전성화를 인간의 자연적 능력에 의해 이룰 수 있다고 가르쳐 은혜보다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주도성이 강조되었다. 피니의 후계자인 D.L. 무디는 성령세례는 개종과 구분되는 경험으로 봉사를 위한 오순절적인 능력을 입음이라고 전파했다. 무디의 동역자인 토레이는 성령의 이중 역사를 강조하며 별도로 사역을 위해 위로부터의 능력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감리회가 성결운동의 순간 성화를 거부하자 성결교단들이 별도로 결성되었다.(1867년). 성결운동은 중생, 성화, 신유, 재림의 4중 복음의 교리를 만들었고, 19세기 미국 성결운동에서 비롯된 오순절은 성결교리의 성화 자리에 성령세례를 대신 집어넣어 중생, 성령세례, 신유, 긴박한 재림이라는 순복음(Full Gospel)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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