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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에 대한 도전(2)

최더함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2. 12. 12.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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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신학>

 

자유주의 신학의 형성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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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경건주의

 

1. 사회적 배경

1) 독일 루터교회의 일치신조(1577년)와 칼빈주의자의 축출

2) 스콜라적 정통주의(죽은 정통주의)에 대한 반감 확산

 

2. 경건주의 운동가들

1) 스페너(Spener, 1635-1705)의 6가지 개혁

- 말씀운동/ 루터의 만인제사장 사상정립=평신도운동 / 사랑의 실천 / 논쟁에서 탈피 / 신학교육의 개혁 / 경건을 위한 설교의 강화

2) 프랑케(A.H. Francke, 1663-1736)

- 라이프니쯔 대학에 성경연구회 조직

-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을 위한 누더기학교 설립(1695)

3) 벵겔(J. Bengel, 1687-1752)

- 성경주석가

4) 고트프리 아놀드(G. Arnold, 1666-1714)

5) 진젠도르프(Nicolas. L, Zinzendorf, 1700-1760)

- 모라비아교의 창시자

 

3. 경건주의의 특성

1) 개인의 내적 변화를 강조

- 개인의 죄와 회개의 체험과 같은 개인적인 신앙의 내적 본질을 강조한다.

2) 교리보다는 삶

- 크리스천의 지식보다는 거룩한 사람을 실천하도록 강조한다.

- 지나치게 성화론을 강조하여 윤리적 요구와 금욕을 강하게 주장 / 교회 안에 작은 교회

3) 개인의 성경연구 강화

- 루터의 영향

4) 기존 교회에 대한 저항정신

- 스페너가 그의 책 <경건의 열망>에서 정부 교회를 비판

 

4. 경건주의의 비판

1) 윤리실천운동으로 전락

2) 지나친 금욕주의로 기독교 신비주의의 탄생

3) 독선과 신앙우월주의

4) 이신칭의 등 정통 신학적 교리를 등한시하고 신자의 내적 신앙의 성장에만 초점.

 

5. 자유주의에 끼친 영향

1) 신학의 주관주의화에 영향

- 누구든지 자신의 방법을 가지고 자유롭게 신학을 다룰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주었다.

2) 인간의 감정과 체험을 강조

- 슐라이에르마허는 경건주의의 개인적 체험에 영향을 받아 종교를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신학을 만들었다.

3) 정통주의의 탈피

- 경건주의는 딱딱한 신학이나 교리를 벗어버리고 신자의 윤리적인 면과 내적 성숙을 강조했는데, 이런 점들이 자유주의신학자들의 입맛을 당기게 하였다.

 

B. 계몽주의

 

1. 배경

1) 영국의 이신론(deism)

2) 르네상스 휴머니즘(Renaissance Humanism)

3) 소시니아니즘(Socinianism)

 

2. 원리

1) 폴 틸리히 - 칸트의 자율성, 발전, 자연, 조화

2) 그렌츠 & 오슨

- Reason / Nature / Autonomy / Harmony / Growth

 

3. 비판

1) 성경의 권위 의심

2) 인간의 자율성의 한계

3) 신학을 자연과학과 철학에 종속- 스콜라신학과 정반대

 

4. 자유주의에 끼친 영향들 - 버나드 램(B. Ramm)의 견해

1) 역사주의 historicism

2) 과학만능 scientism

3) 비평주의 criticism

4) 합리주의 rationalism

5) 관용주의 tolerationism

6) 낙관주의 optimism

7) 칸트주의 kantianism

8) 인본주의 humanism

9) 분리주의 separatism

 

 

C. 낭만주의

 

1. 배경

1) 고전주의에 대한 반발

- 산업혁명으로 인한 문명, 개화, 번영이 인간미를 상실

- 프랑스혁명으로 자유 진보 사상이 이성의 우위를 주장

2) 문예사조(18-19세기)의 등장

- 미의 추구

- 합리주의와 기계론적 우주관을 거부하고 정서를 중시

- 자연으로 돌아가자

3) 루소, 슐레겔, 졸거, 괴테 등이 주도

 

2. 특징

1) 자아의식에 근거한 주관성을 강조

- (피히테) 자의식이란, 자의식 이외에 어떤 것에 의해서도 한정될 수 없다는 것과 만사는 자아의 활동에 의해서만 존재한다.

2) 인간생활에 무엇보다 감정과 미적인 요소들이 중요

- 감정은 심지어 종교까지도 연구의 방법으로 사용

3) 신비주의와 범신론의 경향

- 현실의 구현은 합리적 사고에 의해서가 아니라 감정, 체험, 정신계몽을 통해 이루어짐

4) 내면주의

- 진리는 이성과 논리가 아니라 사색을 통한 내면의 기쁜 감정을 느끼는 것으로 획득함

5) 유한자와 무한자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전제의 붕괴

- 무한이 유한 안에 실제로 존재하고, 유한은 무한 안에 잠재적으로 존재함

- 즉, 신은 인간 안에 있고 인간은 신 안에 존재론적으로 있다며 신과 인간의 경계를 붕괴

 

3. 비판

1) 지나친 주관주의(知情意 중 情緖만 강조)와 독선으로 개관적인 전체를 보지 못했다.

2) 현실을 도외시하고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무책임성

3) 하나님을 제외한 상태에서 근본적이며 영적인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4) 유한과 무한의 경계를 붕괴시킴으로 철학적 모순을 가졌다.

 

4. 자유주의 신학에 끼친 영향

1) 자유주의자들은 신학연구에 미적 직관과 감정을 사용했다.

2) 슐라이에르마허의 경우

- 그는 모라비안 교도들의 낭만주의적 영향을 받아 종교론에서 우주의 미적 직관을 강조했다. 그는 美가 성경과 같은 계시로서 신을 만나는 수단이 된다고 했다. 그는 종교를 우주에 대한 직관과 감정이라고 정의했다. 즉, 인간의 직관을 사용함으로 계시 의존적인 신학 방법을 버리고(성경에 나타난 계시와 초자연적 영역을 부정하고) 인류학적인 신학의 방법론을 시도했다.

 

 

자유주의 신학의 태동과 특징

 

1. 자유주의 신학의 태동

1) 칸트와 헤겔

- 18세기는 칸트(I. Kant)를 중심으로 한 계몽주의의 시대였다. 칸트는 흄의 회의론적인 지식론을 바탕으로 플라톤이 이데아와 감각의 세계를 구분한 것처럼 세계를 현상계와 예지계(혹은 본체계. 오성으로 인식되는 체계)로 구분하고, 이성의 한계에서 종교의 가능성을 논함으로서 초자연의 세계를 부정하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종교의 초자연적이며 영적인 주제들을 도덕의 영역으로 격하시킴으로서 자유주의신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한편, 자유주의(Liberalism)란 18세기의 이성과 자유를 강조한 계몽주의와 이후 프랑스혁명으로 대표되는 정신적 자극에 의해 출현했다. 이로 인해 인간의 자율성이 강조되면서 인간은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가진다는 의식이 팽배해졌다.

- 헤겔(Hegel)은 대표적인 관념론자이다. 슐라이에르마허가 감정을 강조했다면 헤겔은 이성의 관념을 확대하여 정신의 모든 측면과 이성을 동일시하는 사상을 전개했다. 두 사람은 개인적으로는 같은 대학을 다니면서도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신학적으로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최근에 발표된 연구에 의하면 헤겔의 철학적 동기가 슐라이에르마허와 같이 원래는 기독교신앙을 사람들이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의 철학은 가장 포괄적인 체계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문제의식은 절대적 진리의 주장들이 어떻게 역사와 관계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그는 생각하기를 역사 전체를 하나의 합리적인 체계로 나타내 보여줄 수 있는 시각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절대적 진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여기서 그의 변증법이 출현했다. 즉, '상대의 세계는 자기에 대한 존재하는 세계이며, 모순을 지닌 채 운동과 생성하는 세계이다. 그런데 생성은 이 자기 모순을 지양하고 보다 높은 단계에 이르러 자기 안전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운동은 무한한 진행은 아니고 일체의 상대적 관계가 경과함에 따라 절대정신이 개현된다고 본다. 절대자는 정적 실체자일 수 없고 일체의 상대를 그 안에 포괄하고 있는 살아 있는 주체이다. 이 운동은 이성과 실체에 통하고 그 이성의 법은 변증법이다'라고 하였다. 헤겔의 이 변증법을 성경과 기독교의 본질연구에 적용한 대표적인 신학자로 스트라우스와 바우어가 있다. 그들은 역사적 예수와 이상적 예수의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풀어보고자 노력했다.

2) 자유주의 신학

- 칸트의 영향을 받아 자유주의가 발현했고, 자유주의는 개인주의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세상의 풍조들은 신학자들에게도 많은 도전을 주었다. 당시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종교를 멸시하는 풍조가 일었는데, 이 때 슐라이에르마허가 나타나 종교적 멸시 풍조를 공격하고 종교는 형이상학도 아니고 도덕도 아니며 또 그것들에 종속되지도 않은 종교라는 독특한 본질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런 시도는 당시로서는 매우 독창적이고 신선한 것이었다. 그는 종교에 대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철학을 가지고 세상의 그릇된 사조에 반기를 든 것은 높이 평가받을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잘못된 신학과 사상은 훗날 자유주의신학을 태동시킴으로서 그는 자유주의신학의 아버지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그는 종교를 우선 직관과 감정의 영역으로 설명하면서 새로운 자유주의신학의 체계를 완성시켰다. 그는 전통적인 신학의 방법을 버리고, 경건주의와 계몽주의, 그리고 낭만주의에 심히 고무되어 인간의 이성, 직관, 감정, 기타 체험을 이용하여 성경과 신학을 자유롭게, 역사비평에 근거하여 재해석하는 신학을 출현시켰다. 이후 대부분의 유럽의 신학자들은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심지어 현대신학의 아버지라 불리우며 슐라이에르마허를 혹독하게 비판했던 칼 바르트마저 슐라이에르마허의 영향을 벗어난 자는 아무도 없다고 할 만큼 그의 영향력은 강력한 것이었다.

- 한편, 칸트의 영향으로 자유주의신학자들은 인간의 윤리를 강조하게 되었다. 리츨과 그의 학파들이 대표적으로 이런 경향을 가졌다. 슐라이에르마허기 감정을 신학의 주제로 삼고, 헤겔이 정신에 역점을 두었다면 리츨은 윤리에 신학의 중심을 두었다. 그는 예수를 인간이 따를 위대한 윤리의 모범자로 보았으며,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예수와 함께 발전하고 성숙되어진 도덕적인 나라라고 했다. 그는 죄에 대해서도 말하기를 죄는 무지의 결과로서 도덕적 양육과 교육에 의해 교정될 수 있다고 하였다. 결국 리츨과 그의 추종자들은 칸트에서 나타나는 현세적이며 세속적인 왕국의 영역으로 종교의 수준을 끌어들인 결과를 낳으며 자유주의 신학이 종점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확실히 보여주는 결과를 낳았다.

 

2. 자유주의 신학의 특징

1) 기독교에 대한 재해석의 작업이다.

- 자유주의 신학은 신학자와 철학자들의 개인적 사상과 진술에 따라 기독교를 다시 해석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특정한 시대적 산물일 뿐이다.

2) 신학의 기초와 방법을 성경에 두지 않고 인간의 이성이나 감정, 경험에 두고 있다.

- 경건주의가 강조한 개인주의적 성경연구의 영향으로 전통적인 신학 방법을 벗어버리고 인간의 자율성을 활용하여 성경과 기독교의 근본 교리를 이성, 감정, 그리고 경험을 가지고 자유롭게 재해석하는 작업이다. 즉, 신학을 하나님 중심에서 보지 않고 인간의 경험에서 시작하는 신학의 방법으로 주장하게 되었다. 따라서 인간이 신학의 주체이고 인간의 이성적 노력으로 신학의 요구들을 성취할 수 있다는 인본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점은 어거스틴의 하나님의 은총론에 맞서 인간의 선택의 힘(possibilitias utriusque patris)을 강조했던 펠라기우스의 견해와 비슷하다.

3) 내재적인 신학이다.

- 유한자와 무한자의 관계성을 파괴시킴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초월성을 강조하지 않고 내재적인 신학으로 빠져 들었다. 슐라이에르마허는 초월적인 하나님을 느낌으로 이해했다. 그는 종교를 한 인간이 자기의 한계를 넘어 무한자(the infinite)와 교제하는 것으로 말한다. 이 점에 있어서 그는 이성의 한계를 넘지 않고 윤리만을 강조하는 칸트보다는 더 종교적이지만 그의 내재주의는 초월주의, 즉 하나님과 인간의 질적 차이(키에르케고르도 헤겔의 관념주의를 비판할 때 이것을 강조했다)를 강조한 칼 바르트에 의해 철저하게 공격을 받았다. 실상 자유주의신학은 칼 바르트에 의해 붕괴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언급이 아니다.

4) 낙관주의 신학

- 계몽주의는 인간의 자율성과 인간의 능력을 믿고 다분히 인간이 모든 역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즉, 인간은 충분히 선을 가지고 있기에 영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와 세상을 복된 낙원으로 만들 수 있다는 낙관주의를 생산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안일한 생각들은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여지없이 무너졌으며 이후 칼 바르트의 '위기의 신학'이 대세로 자리 잡는다.

5) 윤리의 실천을 강조하는 신학

- 자유주의신학은 성경의 초자연적인 주제들을 버렸다. 그들의 목표는 도덕적인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었다. 따라서 모든 영적인 주제들과 내세적인 소망들을 폐기시키고 오직 인간 이성의 한계 안에서 종교를 윤리적 실천의 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러한 영향으로 라우센부쉬가 주도한 사회복음주의운동이 태동하였고, 최근에는 해방신학, 민중신학, 여성신학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6)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는 신학

-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역사적 예수의 연구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것은 성경에 나타난 역사적 예수를 신앙의 차원에서 논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주의적 역사비평학적 입장(종교사학파의 입장)에서 예수를 연구하여 하나의 종교적 모델로서 제시하는 한편, 그런 차원에서 예수의 인간성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연구 등으로 예수의 신성은 사라지고 예수는 그저 타종교의 지도자와 같은 존재가 되고 만 것이다.

- 예수가 타종교의 지도자가 되는 순간, 기독교는 참 진리를 가진 구원의 종교가 아니라 여러 종교들 중의 하나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자 등장한 것이 바로 종교다원주의자들이다. 대표적으로 존 힉(John Hick) 같은 자는 성육신 사건을 상대화시킴과 함께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는 각자의 진리적 체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각 종교 간의 일치를 이루기 위해선 기독교가 주장하는 오직 예수만이 구원이라는 절대적이며 독선적인 주장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의 영향을 받아 WCC, KNCC 등이 중심이 되어 시도하고 있는 운동이 최근의 에큐메니칼 운동으로 그 본질은 종교다원주의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자유주의(Liberalism) 신학의 발전과 양태

 

1. 젬러(Semler, 1725-1781)

- 르네상스 이후 개인의 정치적 종교적 자유를 보호하고 확대한다는 의미에서 자유주의 신학의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

2. 슐라이에르마허(Schleiermach)

- 자유주의신학의 아버지로서 전통적인 교리신학을 비판하고 개인의 주관적, 심리적, 체험적 방법을 신학연구에 도입.

3. 헤겔 - 자유주의 신학에 철학적 방법론을 제공

4. 리츨학파 - 리츨, 하르낙, 헤르만, 카덴부쉬, 루푸스, 트륄치

5. 후 불트만 학파 - 불트만, 콘젤만, 반 두센, 하롤드 등

6. 급진파 - 본회퍼 등

7. 세속화 신학 - 반 부렌, 하비 콕스 등

8. 신정통주의 - 칼 바르트, 에밀 브룬너, 도드, 니버, 폴 틸리히

9. 독립파 - 몰트만

10. 구속사학파 - 오스카 쿨만, 슈바이처, 알란 리차드슨, 헌터 등

11. 신 자유주의 - 부로우스, 필슨, 조지 라이트, 브라텐, 앤드슨

12. 한국 - 송창근, 김재준, 정경옥 등

 

결론

 

1. 주관주의적 신학

- 종교개혁자들의 오직 성경(Sola Scripture) 중심의 신학방법을 따르지 않고 주관주의적이며 신비주의적, 감정적, 경험적인 새로운 방식을 사용함으로서 결과적으로 정통적인 신학의 체계를 허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 신학공동체의 약화

- 자유주의신학으로 인해 초대교회부터 종교개혁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지켜지고 계보를 이어왔던 기독교 신학의 공동체가 약화되고 말았다. 이것은 하나의 잘못된 사상이 얼마나 악한 영향을 끼치는 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산 교훈이 된다. 한편 한 개인의 신학의 방법과 내용은 성경과 기존의 건전한 신학적인 전통에 의해 검증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어떤 신학이 새로운 독창성과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고 긍정적인 부분이지만 어떤 방식으로 신학을 형성하였는지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3.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 물론 자유주의 신학은 현실의 상황을 직시하고 문제의식을 갖는 좋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왜 그들이 특수한 시대의 철학과 새로운 사상을 가지고 새로운 신학의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문제의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이러한 자세를 가질 때 그들의 실수를 통해 올바른 신학, 정통적인 개혁주의 신학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4. 성경을 벗어난 신학은 위험한 것이다

- 결국 자유주의 신학은 우리가 신학을 성경적이며 개혁주의적인 방법으로 다루지 않을 때 얼마나 위험해 질 수 있는 가를 보여준 단적인 실례라고 하겠다. 여기서 말하는 전통이란 로마 카톨릭교회가 만든 인위적이고 비성경적인 전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했던 역사적 교회들의 전통과 신조들, 그리고 개혁적 신학사상을 말한다. 개혁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인문주의자들의 역사적 문법적 해석방법들의 영향을 받았으나 그들은 인문주의의 수준에 머물지 않고 그러한 방법들을 성경과 연결하여 차원 높은 신앙적 원리로 승화시켰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은 처음부터 성경의 권위를 버리고 인문주의적 방법을 고수했기 때문에 그들의 사상은 철학의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다시 말해 그들은 지나치게 현실과의 조화에 치중하다보니 기독교의 근본진리를 부정하고 세상의 논리와 타협을 하는 결과를 낳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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