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빛 바랜 안식일 10 (월터 챈트리)

월터 챈트리

by 김경호 진실 2013. 4. 3. 09:09

본문

양심의 문제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빌 1:9-11)

그리스도인들은 이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도 오랫동안 안식일에 관한 의심과 의문으로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문제를 붙잡고 싸우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하여 그 혼란의 몇 가지 주요한 원인들을 여기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기독교에도 안식일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처럼 보이는 본문들

만약 당신이 이방인 교회들에게 보내는 바울의 편지들을 자세히 읽어 본다면, 제4계명과 분명하게 관련된 3개의 구절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3개의 구절들은 모두 다소 강경한 어조로 그리스도인들에게 특정한 날을 거룩하게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부인합니다.

그러한 첫 번째 진술은 그리스도인들이 똑같은 것을 서로 다르게 사용하는 것에 대한 바울의 철저한 논의 가운데서 발견됩니다.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롬 14:5,6).

나머지 2개의 예들은 그리스도인들이 특정한 구약의 규범에 얽매이는 것은 더 이상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바울의 편지 속에 들어 있습니다. 이 2개의 예들은 날을 지킨다는 것에 대해 훨씬 더 부정적인 어조로 말합니다.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아시 저희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갈 4:9-11). 가장 두드러지고 문제가 되는 것은 마지막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 이니라”(골 2:16-17).

언뜻 보면 이 구절들은 신약에는 특별히 신성한 날이란 도무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로마서 14장은 한 날을 거룩하게 생각하는 것은(그것이 어떤 날이든지)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어떤 날을 중요하게 여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가라디아서 4장은 보다 더 엄격합니다. 거기서 신자들은 날을 지키는 것(그것이 어떤 날이든지)과 같은 구약의 예배 유형으로 되돌아가는 것 때문에 책망을 받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이전의 노예생활로 되돌아가는 것을 무척이나 슬퍼했습니다!
우리는 그림자의 실체, 즉 그리스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그림자를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본문들은 십계명에서 요구하고 있는 매주일의 안식일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까?

대답을 시작하기 위하여, 먼저 우리 주 예수께서 매주일의 안식일이 모든 인간을 위한 것이라고 하시면서 자신의 왕국에 포함시키셨고 그것에 대한 권위를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셨던 것을 상기해 봅시다(막 2:27,28). 히브리서에서 우리는 복음의 시대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히 4:9). 그렇다면 왜 위의 3개의 본문들은 다른 신약성경의 구절들과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요? 만족스러운 대답은 율법에 대한 성경적인 교리를 보다 넓게 연구함으로써 발견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결론은 이 주제에 관해 신약성경이 가르치는 모든 것을 지지하는 결론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말씀에도 정말로 서로 반대되는 것들이 결코 없습니다.

로마서 14장과 갈라디아서 4장, 그리고 골로새서 2장의 구절들은 모두 같은 날에 관해 말하고 있는데, 그날이란 그리스도인들이 더 이상 지켜야 할 의무가 없는 유대인들의 예배하는 날인 것입니다. 로마서에서는 어떤 사람들은 그날을 거룩하게 지키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않는다는 관례의 다양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단지 그들에게 자기들의 관례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이러한 유대인들의 날을 지킬 수는 있지만,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는 어떤 지도자들이 그리스도인들도 할례를 받고 이러한 날들을 지키는 것을 포함하여 모세의 율법에 순종해야 한다고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날에 관한 그러한 규정들의 시민법적 성질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노예제도 자체처럼 제한적이고 속박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아무도 노예상태로 되돌아가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골로새서에서 바울은 날에 관한 이러한 제도들의 의식법적인 성질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그것들을 오실 메시아에 관한 엄청난 진리를 묘사하기 위하여 모세의 언약 안에 제정된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희미한 모습이 이러한 제도 속에서 유대인들에게 주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친히 오셨고, 우리는 그의 인격과 사역에 관한 완전한 계시를 받았기 때문에,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그림자를 제쳐두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림자 대신에 우리는 놀랍게도 그의 얼굴을 직접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3개의 본문들이 의식법적이고 시민법적인 모세의 율법들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들을 시키는 것이 유대인들에게는 요구되었지만, 그것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아무런 권위도 행사하지 못합니다. 유대인 신자는 이러한 의식들을 지켜오던 자신의 관습을 계속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그렇게 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다신 한번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겠습니다. 매주일의 안식일은 정말로 시민법적이고 의식법적인 율법인가요?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매주일의 안식일법은 십계명의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 계명들은 모두 도덕법들이며, 시민법적인 성격이나 의식법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도덕적인 의의 요약이 도덕의 기독교적 표준으로서 신약에 제시되어 있습니다(마 5:17-18; 롬 13:8-19; 약 2:10,11 그밖에도 더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특히 제4계명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자주 강조하셨습니다. 도덕법은 신약에서 시민법이나 의식법처럼 중단되지 않습니다.

로마서 14장과 갈라디아서 4장, 그리고 골로새서 2장에 기록된 날에 관한 언급은 제4계명이 요구하는 것으로서 매주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른 일시적인 의식들이 제정되던 모세의 시대에 도입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매주일의 안식일은 결혼제도와 함께 창조의 법령입니다.
모세가 그렇게 말했습니다(창 2:1-3)!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막 2:27,28)!
히브리서 저자도 4:3,4에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십계명의 제4계명은 그리스도의 그림자로서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구속 사역을 제1일에 끝내심으로써 안식일 지키는 날을 제7일에서 제1일로 바꾸셨지만, 여전히 그날의 의미는 사람이 세상의 창조 때부터 완전히 누려 오신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창조의 제7일에 하나님이 들어가셨던 그 안식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매주일의 안식일은 의식법이 아닙니다. 이사야는 그것이 부담스럽고 우리를 예속시키는 시민법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로마서 14장과 갈라디아서 4장, 그리고 골로새서 2장은 무슨 날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제4계명이 말하는 매주일의 안식일 이외의 다른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까? 제4계명이 요구하는 매주일의 안식일 이외도 모세 치하의 유대인들은 매년 많은 다른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당신은 레위기 23장에서 그것들 대부분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유월절, 초실절, 칠칠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 등으로서 매우 거룩하게 지키는 날들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상징합니다. 그것들은 그림자인 것입니다. 이러한 안식일들은 상세한 요구사항들(시민법적 규정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에서 말하는 ‘날과 달과 절기와 해’, 그리고 골로새서 2자의 ‘절기나 월삭’은 이러한 안식을 말합니다. 이 ‘날들’과 ‘안식일’을 매주일의 안식일로 생각하려는 시도가 성경 말씀 사이에 충돌과 모순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럽의 개혁자들은 제4계명을 삭제하지 않았는가?

역사를 개괄하여 어떤 교리를 세운다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역사가들이 선택하여야 할 역사적 증거들에는 여러 가지 서로 다른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프로테스탄트 개혁자들의 지혜와 지도력을 매우 존중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셨으며, 그들은 매우 성시하게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공정을 기하기 위하여, 존 칼빈이나 다른 개혁자들은 안식일에 관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견해를 고수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그들이 종종 기독교의 예배를 위한 한 날을 주장했었다는 것도 언급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주님의 날이 제4계명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현명한 목사들은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영적으로 건강하기 위해서는 예배를 위한 온전한 하루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안식일법이 실천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흥미 있는 보증입니다.

유럽의 어떤 개혁자들과 개혁신조들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선한 행위로 하나님의 총애를 얻으려 하지 않고 구원받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사역에 의존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의 길로서의 행위를 중단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시에 그분의 일로부터 쉬셨다는 것과 비슷합니다. 구약에서의 매주일의 안식일은 그리스도에게서 쉰다는 것을 예시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실체를 가지고 있으며 더 이상 그림자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 역시 예배할 날이 필요하지만, 주님의 날이 제4계명의 안식일과 동일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이것은 빈약하기는 하지만 공들여 연구한 사상들을 뒤범벅 해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 어떤 개혁자들은 우리를 이 지경까지 잘못 인도했습니다. 어떤 개혁 사상가들은 그들이 다루었던 주제에 적용되지도 않는 교리들의 영향을 받기도 했습니다.

새롭게 은혜의 교리에 눈을 뜬 사람들은 모든 성경 구절이 하나님의 주권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 주제를 모든 메시지에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당한 수의 개혁자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의 성격을 정의할 때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행위를 중단한다는 것은 구원받기 위하여 행위의 종교에 의존하는 것을 중단하는 것만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그 비유가 그 주제에 관한 성경 구절에도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광스럽고 의로운 일을 마치시고 그의 안식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행하신 일에 만족하고 기뻐하시면서 안식에 들어가셨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들의 창조주를 본받아 6일 동안 일하고 제7일에 쉬라는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것은 그들이 그 율법에 순종함으로써 구원을 얻으려고 애써야 한다는 것을 제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어디에서도 그런 방식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은 분명히 그러한 입장을 부인합니다. 모든 인류에게는 그들의 정당한 일을 해야 할 6일이 주어졌습니다. 제7일에 그들은 이러한(선한) 일을 중단하고 주님을 섬겨야 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하신 일속에서 하나님의 기쁨을 나누어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 안식은 이전의 비참한 행위의 종교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제4계명을 행하는 것이 그의 왕국의 원리와 목적에 합당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처럼,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에게 있어서 끝난 일이란 바로 아버지와 아들의 선한 일인 것입니다.

이제 안식일에 관한 질문의 다른 범주에 우리의 관심을 돌려야 할 때입니다. 기독교의 도덕법으로서의 제4계명의 타당성에 대한 매우 다양한 공격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이러한 공격에 대답하는 것이 곤란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는 반(反) 안식일주의자들의 주장과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데 있어서 장애물들을 모두 통과하지 못한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원리를 실제로 적용하는 데는 많은 어려운 결단이 필요합니다.

 

 

 

http://thevine21.hompee.com/v2.0.asp

728x90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