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아홉 차례 총회를 중심으로 본 WCC의 정체성 / 문병호 목사

WCC

by 김경호 진실 2013. 9. 24. 19:15

본문

 

<우리는 왜 WCC를 반대하는가? 02>

아홉 차례 총회를 중심으로 본 WCC의 정체성

문병호 목사, 총신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1. WCC 기원과 목적

 

WCC1910년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Edinburgh)에서 열렸던 세계선교사대회’(World Missionary Conference)를 계기로 만들어졌던 국제선교협의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신앙과 직제위원회’(Faith and Order Committee) 그리고 삶과 봉사위원회’(Life and Work Committee)가 합쳐져서 형성되었다. 이후 국제선교협의회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Committee on World Mission and Evangelism)로 흡수되었다.

교회 연합과 일치에 대한 소망은 역사적인 상황 가운데 추구되었다.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깊은 자성(自省)과 함께 동방정교회를 중심으로 교회연맹이 추진되었다. 그 과정에서 모든 기독교인들이 가시적인 교제를 이루되 그것이 각 교회의 신학에 어떠한 해()도 끼쳐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대두되었다.

 

우리 교회는 다양한 기독교 교회들 간의 화해와 교제가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교리적 차이점 때문에 배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입장을 주장하는 가운데서 1927년 스위스 로잔에서 개최된 제1신앙과 직제위원회는 교리를 묻지 않고 교회의 일치를 추구한다는 소위 근대적에큐메니칼 운동의 이념을 선포하였다. 초창기 WCC의 핵심 지도자였던 영국 성공회 대주교 윌리엄 템플(William Temple)WCC 헌법 해설서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진리들을 수용하는 교회들의 교제가 되기를 희망하지만, 교회들이 이러한 진리들을 해석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기본원칙에 근거하여 각 교회가 협력할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각 교회의 책임이 될 것이다.

 

이 원칙은 지금까지도 WCC의 불문율로 여겨진다: 무엇을 믿는지만 묻되, 어떻게 믿는지는 묻지 말라; 각 교회가 확신하고 있는 바를 묻되, 그 핵심적 진실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말라. 이후 아홉 차례 총회를 통하여 더욱 교묘해지는 WCC의 교리적 모호성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2. WCC의 역대 총회와 그 정체성

 

1차 화란 암스테르담 총회(1948)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계획’(Man’s Disorder and God’s Design)이라는 주제로 모였다. 여기에서는 WCC의 정체성을 수립하고 앞날의 사업에 대하여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표지판을 세우자고 했다. 이 표지판은 책임 있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으로서 주로 정치적이며 사회적인 사안에 관한 것이었다. 본 총회는 특히 WCC의 주요한 임무 중 하나가 인간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교회의 저항과 투쟁을 조직적으로 이끄는 데 있음을 널리 알렸다.

 

2차 미국 에반스톤 총회(1954)그리스도 세상의 소망’(Christ the Hope of the World)이라는 주제로 거행되었다. 주제에 걸맞게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의 하나 됨이라는 모토가 세워졌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되심에 대한 인식은 없었으며 인종, 종교, 경제 문제 등이 앞을 다투어 거론되었다. 자본주의가 세계악의 근원으로 비판되었으며, 3세계 국가들과 이스라엘의 핍박을 받고 있는 아랍 국가들을 돕는 일이 논의되었다. 이러한 일들이 교회가 완전한 가시적 일치’(a full visible unity)를 이루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3차 인도 뉴델리 총회(1961)예수 그리스도-세상의 빛’(Jesus Christ-the Light of the World)이라는 주제로 세상의 계몽과 교회일치에 대한 가시적 노력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빛이 대속의 은총과는 무관하게 다루어졌다. 그 빛은 종교와 문화를 넘어 서로 공존하고 함께 번영하는 삶을 살아가는 지상의 길을 비출 뿐이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본 총회는 WCC가 추구하는 에큐메니즘의 지향점이 조직적인 체제를 통한 겉모습의 일치’(uniformity)에 있음을 더욱 뚜렷이 표명하였다.

4차 스웨덴 웁살라 총회(1968)에서는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Behold, I Make All Things New)라는 주제로 거행되었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더욱 담대해지고 또 더 대표성을 띠어야 한다는 기조연설이 있었으며, “전교회의 하나 됨을 넘어서서 인류의 하나 됨을 추구할 것을 목표로 정하였다. 본 총회에서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새로운 인간성’(new humanity)이라는 개념이 특히 부각되었다. 또한 여기에서 작은 악을 사용해서 큰 악을 저지하는 것을 정당하다고 보는 혁명신학이 도입되었다.

5차 케냐 나이로비 총회(1975)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유롭게 하시며 하나가 되게 하신다’(Jesus Christ Frees and Unites)는 주제로 해방신학에 대한 논의를 많이 하였다. 무엇보다 서로 간에 문화적 정체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타 종교와도 교통할 것을 권하였다.

본 총회에서는 협의회적 교제’(conciliar fellowship)라는 개념을 부각시킴으로 WCC 에큐메니칼 운동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본 총회의 참여자 중 약 80%가 새로 가입한 사람들이었으며 대부분 아프리카의 신생 교회들로부터 왔다. 이러한 분위기 가운데서 당시 중앙위원회의 의장 토마스(M. M. Thomas)그리스도 중심의 혼합주의’(Christ-centered syncretism)를 제안하기도 하였다.

6차 캐나다 밴쿠버 총회(1983)예수 그리스도-세상의 생명’(Jesus Christ-the Life of the World)이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다. 본 총회의 기조연설과 분과별 주제들 그리고 몇몇 행사들은 WCC가 종교다원주의의 길을 가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성경적 영생 개념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지상의 생명 현상만이 다루어졌다.

BEM 문서로 알려진 리마 예식서에 따라서 처음으로 거행된 본 총회의 성찬식은 숱한 종교들의 제전에 다름없었다. 토템 제막식과 무당 강신굿 등이 버젓이 행해졌다. WCC가 이제는 아예 빠져 나올 수 없는 다원주의의 늪으로 들어간 것이다. 1990년 스위스 바르(Barr)에서 선포된 선언문은 그 늪이 얼마나 깊은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7차 호주 캔버라 총회(1991)오소서, 성령이여-만물을 새롭게 하소서’(Come, Holy Spirit-Renew the Whole Creation)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다. 본 총회에서는 성령이 진리의 영이며 일치의 영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였으나 정치, 문화, 사회에 미치는 성령의 일반은총적 역사에만 편중하였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서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와 상속자가 되는(8:9, 17) 성령의 특별은총적 역사는 철저히 외면하였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역사적 사건으로 여기지 않고 대신 하나님의 뜻이 교회를 통하여 일반문화 속에서 펼쳐지는 과정으로 보았으며,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다른 종교인들 가운데서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현존하신다고 하였다.

특히, 본 총회 마당에서 벌어진 정현경의 특강은 WCC의 오랜 억지를 몸으로 풀어 낸 한 판 굿이었다. 정현경은 성령이여, 오소서-만물을 새롭게 하소서라는 기원으로 자신의 주제 강연을 시작했는데, 그것은 이방종교의 제사의식에서나 볼 수 있는 일종의 초혼’(招魂)이었다. 그리스도의 이미지가 단군신화의 환인으로 대체되고, 성령은 죽은 조상들 가운데 작용하는 영으로 노래되었다. 주목할 것은 WCC가 정현경의 강의를 종교혼합주의의 산물이라고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토착신학으로서 생명의 역동성을 드러내었다고 격려하였다는 사실이다.

8차 총회는 함께 도상(途上)에서’(Together on the Way)라는 제목으로 짐바브웨의 수도 하레레에서 모였다(1998). WCC의 희년을 맞이하여 본 총회는 교회의 가시적 일치를 더욱 분명하게 표방하였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가시적으로 하나 됨을 갈망한다는 노래가 울려퍼졌다. 전 세기를 마감하는 총회답게 WCC의 정체성을 재확립하고 그 활동을 돌아보며 21세기를 내다보는 논의들이 주로 행해졌다. 특히 오염된 환경과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 아래에서 비인간적인 소외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생명의 신학이라는 개념이 제안되었다.

브라질의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모인 제9차 총회(2006)하나님 당신의 은혜로 세상을 변화시키소서’(God, in Your Grace, Transform the World)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다. 여기에서는 제2차 총회 이후 강조된 완전한 가시적 일치를 실제로 이루어 가는 데 강조점이 놓였다. 본 총회에서는 회장선출과 중앙위원회 조직에 관한 법을 제정하여 WCC가 하나의 교회로 나아가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다. 그리하여 협의회 중심의 기구적 연합을 목적으로 삼는 WCC의 지향점을 확실히 드러내었다.

 

3. 마치는 말

 

지금까지의 고찰을 통하여 우리는 WCC 에큐메니칼 운동의 가장 현저한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WCC는 교리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교회의 가시적이며 기구적인 연합과 일치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한다.

둘째, WCC는 구원의 특별한 은총보다 창조의 일반적 은총에 주안점을 두고 성도의 교제를 추구한다. 그 결과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되심은 무색해진다.

셋째, WCC는 선교와 성찬 등 여러 방면에서 종교다원주의적인 입장을 점점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현재 추이를 감안할 때, 10차 부산 총회도 그동안 총회들의 연장선상을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여겨진다.

 

 

 

http://cafe.daum.net/rpress/Q7RA/3?q=%BE%C6%C8%A9%20%C2%F7%B7%CA%20%C3%D1%C8%B8%B8%A6%20%C1%DF%BD%C9%C0%B8%B7%CE&re=1

728x90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