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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오웬의 죄 죽이기 (제 1장)

존 오웬

by 김경호 진실 2013. 11. 23.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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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들이 자기들 속에 있는 죄를 죽이는 일을 수행함에 도움을 주려는 본인의 생각을 질서 있고 명료하게 정돈하기 위해서 로마서 8:13 속에서 그 기초를 찾고자 합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또 신자들 속에 있는 죄 죽이는 일 전체를, 위대한 복음 진리의 진보와 그 말씀이 함축하고 있는 비밀의 진작에 기여하는 쪽으로 나아가게 하려 합니다.

사도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교리의 요점과, 은혜로 말미암아 그 은택에 참예한 자들의 복된 지위와 조건을 개요적으로 다시 되풀이 강조하고 나서(롬 8:1-3), 그 교리를 활용하여 신자들의 거룩과 위로의 문제로 나아갑니다.

사도가 거룩에 대해 논증하고, 거룩으로 나아갈 동기를 제시하는 중 위에서 언급한 로마서 8:13절의 말씀은 거룩과 죄의 상반되는 결과와 효과들 중 한 가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여기서 “육신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이고,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지금 당장 설명하려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지금으로서는 앞에서 제시한 대로 그 말씀들이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는 말과 어떤 의미에서 서로 대칭이 되는지를 설명하려 할 뿐입니다.

이 계속되는 강론의 기초 본문으로 특별하게 잡은 이 말씀 속에는 첫째로 하나의 의무를 지시하고 있습니다. “몸의 행실을 죽리라”는 의무입니다. 둘째로 그 의무가 누구에게 지워진 것인지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만일 너희가 ... 죽이면.” 셋째로 그 의무에 부여된 약속이 있습니다. “너희기 살리라.” 넷째로 이 의무를 수행하기 위한 방편인 성령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만일 너희가... 영으로써.....” 다섯째로 전체 제안의 조건성 곧 의무와 방편과 약속이 분문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만일 너희가...” 그러나 말씀은 전적인 제안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1) 조건적 조항, 곧 “그러나 만일”이라는 표현 속에 첫째 요건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한 제안들 속에 있는 조건들은 두 가지의 것을 지시할 수 있습니다.

(i) 의무가 부과된 사람들을 감안할 때 약속된 일이나 사건이 불확실하다는 점입니다 그 약속된 일은 조건이 절대적으로 갖추어진 곳에서 일어나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 일은 그 의무가 부과된 이에게 알려진 어떤 결정적인 동인 자체에 달려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살면 그러한 일을 할 것이다.” 이곳에 있는 조건적 표현의 의도가 그런 것일 수는 없습니다. 이 말씀이 주어진 이들에 대해서 로마서 8장 1절은 “(저들에게)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ii) 여기서 언급된 것들 사이의 밀착성과 연관성의 확실성에 대해서 지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병든 이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일 너희가 약물을 취하거나 그러한 처방을 사용하게 되면 너희 병이 나을 것이다.” 이 말을 통해서 진정 표현하고자 하는 요지는, 처방과 건강 사이에 확실한 연관성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죄 죽이기의 문제에 있어서 바로 이 논리가 쓸모 있습니다.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과 ‘사는 것’ 사이에 존재하는 확실한 연관성이 바로 이 ‘만일’이라는 단어 속에 암시되어 있습니다.

원인과 결과 사이와 같이 목적과 방법과 방편들 사이에 존재하는 연관성과 친밀성이 다중적입니다. 죄 죽이기와 사는 것 사이에 존재하는 연관성은 고유하고 엄격한 의미에서 원인과 결과 사이에 존재하는 연관성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있는 영생이기”때문입니다(롬 6:23). 오직 여기서 논의되는 연관성은 목적과 방편 사이의 연관성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약속하셨던 그 목적에 이르는 방편으로 바로 이것을 지명하신 것입니다. 방편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값없이 은혜로 주신 약속의 목적에 아름답게 복속되어 있습니다. 하나의 은사와 , 그것을 받는 사람 속에 있는 동인은 서로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 조건적인 제안의 의도는 이러합니다. ‘참된 죄 죽이기와 영생 사이에는 확실하고 틀림없는 연관성과 긴밀성이 존재한다.’ 만일 너희가 이 방편을 사용하면 바로 그 목적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너희가 ‘죽이면 살리라.’ 여기에는 지시된 의무를 위한 주요한 동기를 제공하고, 그 의무를 강화시키는 요점이 숨어 있습니다.

(2) 우리가 이 말씀 속에서 만나게 되는 사항은, 이 의무가 부과된 사람들입니다. 곧 ‘너희’라는 사람들입니다. 만일 “너희가 ....죽이면.” 곧 너희 신자들, 곧 “결코 정죄함이 없는”자들입니다(롬 8:1). 5절에서는 그들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영으로 살리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합니다(10,11절). 이러한 의무가 바로 그들에게 지워진 것입니다. 이러한 의무를 다른 이들에게 억지로 강요하다 해도, 세상에 가득한 미신과 자기 의를 의지하는 이는 능히 그 의무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복음에 무식하나 열심만 가진 이들이 대단한 직업이나 계획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롬 10:3,4; 요 15:5). 의무를 준행하는 것과 관련있는 이들에 대한 묘사는 계속되는 강론의 주요한 기초가 됩니다. 곧 다음의 명제, 또는 공리로 표현될 수 있는 바와 같습니다. ‘죄를 정죄하는 세력으로부터 값없이 은혜로 확실하게 자유함을 받은 참된 신자들은 마땅히 모든 날들 동안 자기 속에 있는 죄의 세력을 죽이는 것을 자기들의 일로 삼아야 한다.’

(3) 이 의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주도적이고 효력을 내는 ‘동인’은 성령이십니다. “만일 너희가 영으로써.” 여기서 ‘영’은 11절에서 언급된 ‘영’, 곧 ‘그리스도의 영’이시오, 9절에서 언급된 바,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으로서 ‘우리를 살리시는 영’(11)이시며, ‘양자의 영’이십니다(15). 그리고 우리를 위해 간구하는 영이십니다(26). 죄를 죽이는 다른 모든 방식들은 다 허사입니다. 다른 모든 도움은 다 무용지물입니다. 도움은 반드시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져야 합니다. 사도가 지시한 바와 같이(롬 9:30-32)사람들은 다른 원리들을 통해서 이일을 시도할 수 있고, 다른 경로들에서 사용되는 여러 방편들과 이점들을 통해서 이일을 시도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그런 일를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가 말하기를 이 일은 성령의 일입니다. 그로 말미암아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입니다. 다른 그 어떤 능력으로도 이 일을 이루어낼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의 능력으로 죄를 죽리려는 일을 수행하려 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고안한 방식으로 시도할 수도 있고, 자기의(自己義)의 목적을 이루려는 차원에서 일을 시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세상에 있는 모든 거짓된 종교의 핵심이요 본질일 뿐입니다. 이 점이 앞으로 계속되는 이 강론의 두 번째 원리입니다.

(4) ‘의무 자체,’ 곧 ‘몸의 행실을 죽이라’는 것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세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i) '몸‘이란 말이 무엇인가? (ii) '몸의 행실’은 무엇인가? (iii) 몸의 행실을 ‘죽인다’는 것이 무엇인가?

(i) 이 구절 마지막의 ‘몸’은 이 구절의 앞부분에서 나오는 '육신‘이라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만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그러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여기서 “몸의 행실”은 ’육신의 행실‘입니다. 사도는 내내 ’육신‘이라는 명사로 자기 강론을 계속해 왔습니다. 영(성령)과 육신 사이의 대조를 앞뒤에서 계속해 오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점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몸은 여기서 우리 본성의 부패와 타락성을 표현하는 말로 보아야 합니다. 죄는 대부분 몸을 거하는 장소와 도구(道具)로 삼습니다. 그래서 몸의 지체들이 불의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롬 6:13). 그것이 바로 내주하는 죄요, 부패한 육체, 또는 정욕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몸을 그러한 식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상징적인 표현을 위해서 여러 많은 이유들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일을 하려 들지는 않겠습니다. 여기서 ’몸‘은 ’옛 사람‘과 ’죄의 몸‘(롬 6:6)과 동등하게 쓰여지고 있습니다. 그 말이 다른 상징어법으로 말해서 부패한 것으로 여겨지는 ‘전체 사람.’ 또한 정욕과 무절제한 병적 정서와 좌소를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ii) '몸의 행실‘에서 ’행실‘은 주로 외양적 행동들을 지시하고, ’육체의 일들‘로 칭해지는 것들(갈 5:19)을 가리킵니다. 사도는 갈라디아서에서 그 육체의 일은 ’현저하다‘하며 그 일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외양적인 행실들만을 표현하고 있지만 주요하게 내적이고 가장 가까운 동인들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여 있으니” 육체의 행실들은 그 행실이 나오는 원인부터 죽여야 합니다. 사도는 모든 정욕이 산출하는 것들을 ’행실들‘로 부르고 있습니다. 비록 정욕이 행실을 잉태하고는 제대로 산출하지 못하고 유산시킨다 할지라도 그 정욕이 완전한 죄를 출산할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7장과 8장 1절에서 모든 죄악적인 행동들의 샘 근원과 원리가 되는 내주하는 정욕과 죄를 다루고 난 뒤, 여기서는 그 파괴력을 그것이 산출하는 효과들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몸의 행실들”은 전자와 동일한 본성에 속한 상징어법으로 “육체의 지혜”(롬 8:6)와 거의 방불한 것입니다. 아니면 ‘육체의 정과 욕심’과 방불한 것입니다(갈 5:24). 거기서 육체의 행실과 열매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몸’이라는 말이 그러한 원리로 사용됩니다.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로되”(10절).

(iii) ‘죽이는 일’, 아니면 원어대로 “너희가 죽이면”은 은유적인 표현으로서 어떤 살아 있는 것을 죽게 한다는 의미에서 취하여온 표현입니다. 어떤 사람이나 다른 생물을 죽이는 것은, 그의 모든 힘이나 열기나 능력의 원리를 제거해 내어 활동이나 행사를 할 수 없게 하거나, 아니면 자기 자신이 원하는 바른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그런 의미로 말하고 있습니다. 내주하는 죄는 어떤 생존하는 한 사람, 곧 옛 사람이라 불리우는 사람에 비유됩니다. 그는 기능들과 여러 자질들과 지혜와 술수와 교활함과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는 말하기를) 그 사람을 죽여야 하고 사형에 처해야 하고 죽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그 힘과 생기와 자기를 표현하는 능력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제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그것이 공로적으로, 또한 하나의 표본으로 살해되고 전적으로 죽여지게 됩니다. 옛 사람은 그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롬 6:6). 그리고 “우리 자신도 그와 함께 죽었습니다”(롬 6:8) 실로 우선적으로 거듭날 때 그 옛 사람과 반대되고 그 사람을 ‘파괴하는’원리가 우리 심령 속에 심겨집니다(갈 5:17). 그러나 우리가 사는 평생 동안 그 일 전체가 완전을 향해서 점진적으로 수행되고 있습니다. 이 점진적 단계에 대해서는 이 강론이 진행됨에 따라 더 자세히 살펴볼 것입니다.

사도는 여기서 말한 ‘의무를 지시한 의도’는 이러합니다. 곧 내주하는 죄, 우리 죽을 몸에 남아 있는 죄를 죽이는 것, 곧 내주하는 죄가 육체의 행실과 일을 낼 생기와 능력을 갖지 못하게 죽이는 일은 신자들의 부단한 의무라는 것입니다.

(5) ‘이 의무에 대한 약속은 생명’ “너희가 살리라” 여기서 약속하고 있는 생명은 앞 소절에서 위협적으로 언급한 ‘죽음’과 대칭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사도가 같은 것을 다른 곳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갈 6:8), 아니면, 그러한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져 파멸을 당하게 될 것이란 말입니다. 아마 그 말은 영생을 의도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적인 생명, 곧 우리가 지상에서 누리는 영적인 생명을 의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이 이미 향유하고 있는 영생의 진수와 영생의 존재 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영생의 기쁨과 위로와 생기를 가리킨다고 보아야 합니다. 사도가 다른 경우에 “그러므로 너희가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는 너희가 지상에 있을 동안 활력있고 위안 있는 영적인 삶을 영위하게 될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란 말입니다.

앞에서 말한 것, 곧 죄를 죽이는 것과 영생 사이에 관계를 방편과 목적의 관계로 상정해 보았으니, 여기에 지시된 의무를 위한 두 번째 동기로서 하나만 첨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곧 ‘우리의 영적인 삶의 활기와 힘과 위안은 육체의 행실을 죽이는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http://thevine21.hompee.com/v2.0.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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