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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변증

최더함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4. 2. 23.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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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변증학 Christian Apology 담당 : 최더함 교수

 

1장. 기독교와 변증

 

1. 변증은?

 

- 辨證(Apologitics) : 辨 변호하다

 

                                             → 하나하나 떼어서 종합적으로 증명하는 것.

                              證 증거를 대다

- 기독교 변증 : 기독교에 대항하는 모든 이설에 대하여 기독교의 교리를 수호하고 옹호하 기 위한 것

- 변증학 (Apology)은 계속 발전한다.

 

2. 변증의 필요성

- 한국 교회가 진정한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교회의 기둥이 되려면 사도행전적인 교회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의문점에 대하여 이성적으로 변증하고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갖 추도록 준비시켜야 한다. (J.P 모어랜드)

- (마 22:37)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여기서 마음이란 지성을 말하는 것- 뜨거운 가슴, 차가운 이성, 강건한 의지의 균형과 조화.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으로 하나님을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성을 주셨다.

 

<참고> 기독교에 대한 현대인들의 태도와 관점.

①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기독교 신앙을 이성적 으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은 과연 진리인가?’에 대한 강한 의문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한 대답을 적절히 제시해 주지 못하면 복음 전도에 실패한다.

② 요즘 젊은이들이 한국교회를 떠나는 원인 중의 하나는, 교회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믿어 라’ ‘따지지 말고 믿어라’ ‘그냥 믿어라’ 라고 밀어붙이기만 했지 지식에 근거한 지성적 신앙을 가르쳐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과, 지성적 욕구가 있는 사람들은 교회 를 떠나게 되었고, 진화론적 사상이나 세속적인 세계관의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복 음을 영접할 수 있는 적절한 설명과 기회를 제공받지 못했으며, 학문적 세계나 지성적 영역에 있어서 기독교의 영향력이 극도로 축소된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③ 우리는 기독교의 신앙을 합리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믿을만한 복음’을 ‘가장 믿지 못할 것을 억지로 믿는 것이 믿음’인 양 잘못 가르쳐 왔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반지성적 신앙양태를 지성화 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한 개인이 기독교 신앙에 따라 견고한 지성적 확신을 갖게 된다면 이 사람은 기독교 신 앙으로 살아가는 삶에 온전히 헌신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에 대한 확신은 헌신으 로 이끌기 때문이다.

④ ‘기독교가 지금 맞이하고 있는 위기는 반지성주의 때문이다. 가장 위대한 영역에서 가장 깊숙한 곳까지 계발되고 향상되어야 할 지성이 기독교에서는 거의 무시를 당하고 있다.’ (찰스 말리크)

⑤ 미국에서는 벌써 1980년대부터 기독교 변증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기독교 신앙의 단위성을 명쾌하게 설명하고 이해하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의 기 독교계도 이제는 지서적인 이해를 토대로 신앙을 다져나가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영길/한동대 총장)

⑥ 이제 우리는 모든 진지한 질문들 (어린아이들의 질문마저도)에 대해 답을 준비해야 한 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 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 라.’ (벧전 3:15~16)

 

3. 변증의 역사

 

(1) 초대교회시대의 변증가들

- 주후 120~220년 사이, 약 1백년간 초기 기독교회의 작가들에게 붙여진 명칭.

- 대표적 인물로 저스틴과 오리겐을 들 수 있다.

 

(2) 기타

 

클레안테스 (Kleamthos, BC. 331~232)

- 고대 그리스의 스토아파 철학자로, 철학을 변증학, 수사학, 윤리학, 정치학, 자연학, 신학 등 6개 부문으로 나누었는데 이 때 변증학이 최초로 등장.

미누키우스 펠릭스

- 초기 기독교 변증가.

디오그네투스에게 준 편지

- 초대 교회의 변증서한, 작자미상. 놀랍고도 명쾌한 기독교 설명서

타티아노스 (Tatianos, 120~ )

- 2세기경, 순교자인 유스티노스로부터 그리스도교를 배우고 그 당시 교양 있는 사람들에 대해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변증하는 <그리스인에게 주는 말. 165>을 저술

고드라투스 (Quaratus)의 변증

- 하드리안 황제 때 기독교도들이 핍박받고 있을 때, 황제에게 기독교를 옹호한 글.

스데반의 묵시

- 니케아 이후에 일부 변증론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외경 묵시 중 하나인데 마니교 이단자들이 더 많이 사용.

로고스 기독론

- 순교자 저스틴을 대표적으로 하는 변증론자들에 의해 도입된 기독사상의 하나

위기 신학

- 칼 바르트의 지도하에 몇몇 신학자들이 제 1차 세계대전이후 창시한 신학으로 변증법적 신학(dialectical theology)이라 부름

변증법

- Hegel의 유물론. 마르크스 주의의 근간이 되는 철학적 입장.

샹데진리

- 언더우드가 번역. 1891년 발행한 전도문서 신(上帝)에 대한 해설집, 유일신 하나님 사상을 변증함

성산명령

- 최변헌 저. 1911년 동양서원에서 발행한 기독교 변증문학서로 돈독한 구원관을 변증.

⑫ 현대 변증가들

- 리 스트로 벨 (창조설계의 비밀, 다빈치 코드 해체 등), J.P 모어랜드 (Moreland), 윌리암 레인 크레그 (William L. Craig), 스캇 레 (Scott Rae)

 

 

2장. 초대교회사 개관

 

1. 기독교의 시작과 역사적 배경

 

(1) 기독교의 시작

 

1) AD 30년 경 예수님께서는 본디오 빌라도 총독 (재임기간 AD 26~36)에 의해 예루살렘 성 밖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처형을 당하셨다.

2)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선 승천하기 전,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다.(눅 24:49,요 16:7,13)

3) 그리고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 러 예수님의 증인이 되라고 하셨다.(행 1:8)

4) 예수님의 예언이요 약속이기도 한 이 말씀은 오순절에 성령께서 임하셔서 제자들이 성령 의 충만함을 받아 복음을 전함으로 말미암아 성취되었으며 지금도 계속 성취되고 있다.

 

(2) 초기의 그리스도의 교회

 

1) 초기의 교회는 유대교 신봉자들과 로마의 제왕들과 위정자들의 핍박을 받는 한 편, 그리 스의 철학과 동방의 신비주의 종교와 여러 잡다한 종교들의 반대와 방해를 받으면서 로 마제국의 온 지역으로 특히 지중해 연안의 여러 나라로 신속히 전파되어 곳곳에 교회가 서게 되었다.

2) AD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기독교는 공인된 종교가 되었으며, 380년 데오도 시우스 황제 때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포되었다.

 

(3) 기독교가 로마제국 전역으로 확산된 원인

 

1) 복음의 능력 때문이다.

①기독교가 모든 핍박과 장애를 극복하고 여러 사상과 잡다한 종교를 물리치고 로마의 국 교가 된 것은 기독교가 가장 저력, 즉 복음의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②복음을 위하여 순교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과 전도자들의 경건하고 윤리적이고 헌신적인 생활태도로 인해 사람들은 감동했고 기독교에 점점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의 결과이다.

 

2) 역사적인 상황과 여건 때문이다.

①최초의 교회가 선 곳, 즉 예루살렘이 위치한 팔레스타인은 메소포타미아의 강대국들과 이집트와 지중해 연안의 서방나라들이 교역을 위하여 왕래하거나 군사적인 침공을 위하 여 거쳐 가야 하는 통로였다.

②BC 6세기에 바벨론제국이 점령했고 뒤이어 페르시아와 헬라제국이 또 로마가 팔레스타 인 지역을 지배했다. 이러한 대제국들이 연이어 형성됨으로 인하여 민족들 간의 교류가 한층 더 증진되었다. 그리고 하나의 제국 내에 여러 민족들이 살았으므로 통일적인 문화 권이 형성되었으며, 이른바 세계동포주의 사상이 움트게 되었다.

③알렉산더 대왕(BC356~323)이 건설한 헬라제국은 그리스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헬레니즘 (Hellenism)문화권을 형성했고, 그래서 헬라어(그리스어)가 공용어로 사용되었다. (코이 네헬라어), 성경 또한 헬라어로 기록되어 당시 제국 내의 식자층들이 별 어려움 없이 신약 성경과 교부들의 글을 접하고 읽을 수 있었다.

④알렉산더 이후, 유대 지역은 이집트의 영향 아래 들어갔는데, 프톨레미 왕의 치하에서 많 은 유대인들이 이집트로 강제 이민을 당했다. 특히 나일강의 델타지역에 건설된 알렉산드 리아 도시가 중심지역으로 발전했고 학문과 문화의 도시로 자리잡았다. AD 1세기경에는 1백만에 가까운 유대인 디아스포라(Diaspora)가 살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⑤BC 270년경에 이들은 히브리어로 된 구약을 헬라어로 다시 번역한 70인역 (Septuagint)을 완 성했다. 그래서 신양기자들을 포함하여 많은 유대인들은 헬라어 구약성경을 읽을 수 있었 다.

⑥BC 67년, 팔레스타인은 폼페이가 이끄는 로마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로마는 헬레니즘 문 화권을 그대로 수용, 유지, 발전시켜 나갔다. AD 1세기경 이집트내의 디아스포라는 전체 인구의 10~12%를 차지했고, 로마제국 내에서는 2% 즉 4백 5십만 명에 달했는데 당시 로마제국의 전체 인구를 6천만으로 추상한다면 디아스포라는 전체 인구의 7%에 해당한 다.

 

3) 하나님의 섭리였다.

①기독교 교회사를 서술할 때, 발칸 반도를 중심으로 동방과 서방으로 나누어진다. 서방에 는 로마의 언어인 라틴어가 사용 되었는데 라틴어는 중세와 종교개혁시대까지 학문적인 공용어로 사용되었고, 이로 인해 기독교의 복음 전파와 서방 교회의 통일이 크게 도움 받 았다.

②이와 같이 역사적인 상황과 여건들이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와 교회확장을 순조롭게 만들 었는데 이 모든 여건을 조성하고 준비하신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다.

 

2. 기독교의 핍박

 

(1) 핍박의 요인

- 여러 종교에 대한 로마제국은 관용정책을 통해 기독교는 서방 세계로 급속히 확산되어갔 다. 로마 왕국은 기독교를 유대교의 한 종파로 여기고 그렇게 다루었다. 유대교는 독선적 이며 폐쇄적인 민족종교라고 생각하고 그 중 기독교의 활동에 대해 별반 관심을 두지 않 았다.

 

(2) 주요 박해 사건 - 시련기(300년간 영웅시대)

 

1) 사도적 교회시대 - 스데반의 순교

2) 네로 황제 - 로마화재사건 (64), 베드로, 바울 순교

3) 교부시대 - 이그나티우스 (67~110), 폴리캅 (70~156) 저스틴 (100~166)의 순교

4) 말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160~180)의 박해

5) 70년간의 소강상태

6) 데키우스 황제 (249~251)의 박해 - 2년간

7) 발레리안 황제의 박해 - 7년 뒤

8) 40년간 평온시대

9) 디오클레시안 황제의 박해 (303년) - 카타콤으로 피신

-오리겐, 이레니우스의 순교

10) 갈레리우스 황제의 칙령(311) - 신자들의 회합허용

 

(3) 박해 속의 확산

 

1) AD 200년경에 이미 기독교는 지중해 연안의 아프리카 전역에 확산되었다. 그리고 프랑 스, 브리튼, 스페인 방면으로 서서히 진행되었고 이탈리아에는 반도 전역에 교회가 세워 져 AD 250년에는 약 100개의 주교구가 설립되었다. 또 ‘도마의 행적’에 따르면 기독교는 이미 3세기에 인도에까지 전해졌다.

<터툴리안의 변증서 (Tertullian 160~220)의 일부>

‘우리의 기독교 역사는 비록 짧으나, 우리는 이제 당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다 채웠습니 다. 도시들과 섬들과 요새들과 도심의 거리들과 집회장소를, 심지어는 군대의 병사(兵舍) 며, 부족들과 왕궁이며 법정까지 채웠습니다. 우리가 당신들을 위해 남긴 것이라곤 사원 들 뿐입니다.’

2) 기독교 복음은 먼저 도시를 중심으로 하여 전파되어 그리스도인의 공동체가 형성되고 이 것이 점차 시골로 확산되어갔다. 이방지역의 왕이나 추장이 먼저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고 백성들이 맹목적으로 이를 따르는 경우가 허다했다는 선교 기록이 전해진다.

 

3) 로마에서는 상류층 사람들이 일찍부터 교회의 지체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네로치하에서 처형된 사람들 가운데 귀족 가문에 속한 여자가 있었는가 하면,

도미티안(Domitian, 81~96) 치하에서는 플라비우스 클레멘스 집정관이 처형당하고 그의 부인이자 황족인 도미틸라는 추방당했다.

 

4) 초기 기독교에서의 여자들의 역할은 매우 지대했다. 다른 어느 종교에서도 여자들이 평 등한 대접을 받은 예가 없지만 기독교에서 비로소 여자들은 평등권을 누릴 수 있었다. 로마서 16:1의 뵈뵈는 겐 그레아 교회의 중직으로 활동했다. 또 브리스길라는 남편 아굴 라 보다 더 교회에 헌신하고 인정받았다. (롬 16:3, 딤후 4:19), 그러나 점점 여자들은 복음 전도자 보다는 교회에서 사랑의 봉사자로 섬기게 되었다.

 

3. 교리의 발전

 

(1) 사상적 배경

1) 당시의 두드러진 종교와 사상으로는 유대교, 그리스와 로마의 제의종교(提議宗敎 cult) 들, 키벨레(cybele), 아티스(Attis), 오시리스(Osiris), 아시스(Isis) 등 미드라스 (Mithras)종교, 헬라 적 유교적 사상, 스토아 철학 등이 있었다.

2) 기독교가 예배와 목회 등 여러 면에서 유대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초기에는 회당을 중 심으로 복음 전도가 이루어졌으나 점점 기독교가 다르다는 것이 인식되자 먼저 유대교에 의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특히 메시아에 대하여 유대교는 민족을 해방시킬 정치적인 메 시아를 대망한 반면에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선지자들이 예언한 고난의 종으로 믿 는다. 또 유대교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율법적으로 성립된다고 보았고 (토빗경), 그 리하여 장로의 유전과 종교적인 규례나 세칙을 존중하였으며(막 7:3), 많은 계명을 지켜 야 되는 상급 사상과 선한 업적에 가치를 두고 있다. (토빗, 사락 3:28, 솔로몬의 지혜 3:9)

 

(2) 기독교리의 특이성

1) 삼위일체 (Trinity), 창조주 하나님, 역사를 주관하시며 섭리하시는 하나님, 그리스도의 성육신,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 종말과 심판, 부활에 대한 소망 등은 다른 종교 와 철학, 사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교리이다.

2) 그러나 은혜와 칭의의 교리는 놀랍게도 중세를 거쳐 종교 개혁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재 발견하게 된 것이다.

 

(3) 속사도 교부들과 그들의 신학

1) 클레멘트(로마)의 첫 편지

~AD 96~100년경 로마의 장로인 그는 고린도 교회의 장로와 평신도 간의 분쟁을 경고하 는 편지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말하며 성부는 농장주, 성자는 종, 성령은 사람으로 비유 묘사하고 있다.

 

2) 이그나티우스의 7개의 편지

~110~115년 사이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 에베소, 마그네시아, 로마, 필라델피아, 서머나 교회와 서머나의 감독 폴리캅에게 보내는 편지로서 여기서 기독교 (Christianismos)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했다.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정당화했고 가현설(Decetism)을 반 박했다. 특히 교회의 분열을 경계하고 감독을 따르기를 그리스도가 아버지를 따르듯 해 야 하며 장로에게 복종하고 집사를 존경해야 한다고 말한다.

 

3) 폴리캅의 편지

~서머나의 감독, 155년경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 이후 86세에 안토니우스 치하에서 기 둥에 매달려 화형에 처하여 순교함

 

4) 바나바의 편지

~70년 경, 그리스도는 선재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으로 나타나신 주님이시며 장래의 심판자라고 묘사

 

5) 클레멘트의 둘째 편지

~135~140년경, 고린도의 어떤 장로의 설교를 수록한 것으로 가장 오래된 설교집. 강한 율법주의를 담고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같이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6) 디다케(Didache, 12사도의 교훈집)

~100년경 교리문답자와 교회를 위한 안내서. 초대교회의 예전에 수록 제 1부에는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에 광하여 제 2부에는 예배 및 교회 생활의 규칙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 다. 1873년에 발견됨. ‘예수님은 오로지 하나님의 택하신 자.

 

7) 헤르마스의 목자

~140년경 저자는 로마에 있는 교회의 신자이며 비오(Pius) 감독의 형제로 알려짐. 교회의 치리와 회개에 관하여 쓰고 있고 교회를 숙녀로 비유했다. 그리고 역사 이전에 선재하신 그리스도와 성령을 동일시했다.

 

8) 주의 예언의 해설

~125년 경, 천년왕국 신앙을 기록한 5권의 책. 천년왕국에 대한 신앙은 소아시아 중서부 산악 지방에서 강하게 나타남

 

4. 신약성경의 정경화

 

(1) 구약에 대한 입장

- 그리스도의 교회는 시작부터 구약을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정경으로 받아들였 다. (딤후 3:16)

 

(2) 신약의 정경화 과정

 

1) 마르키온(Marcion)

- 영지주의자로서 신약의 정경에 관해 최초로 언급. AD 144년에 누가복음, 10개의 바울서 신을 가리켜 정경이라고 함.

2) 파피아스

- 마르키온과 동시대인으로 사도들의 구전과 복음서에 관해 증언

3) 타티안(Tatian)

- 파피아스의 제자. 170년에 요한복음을 인용. 180년경에 4복음서에서 편집한 (디아테사 론)을 내놓음

4) 이레니우스(Irenaeus ~ 202)

- 4복음서, 13개의 바울서신, 베드로전서, 요한1, 2서, 계시록, 허마스, 사도행전을 정경이 라 함

5) 무라토리언 캐논

- 2세기 후반. 저자미상. 라틴어 번역성경으로 정경연구에 귀중한 문헌. 첫 부분이 유실. 누 가, 요한복음을 제 3, 4복음으로 지칭. 바울서신 13개, 요한 1, 2서, 유다서 요한 계시 록, 베드로 묵시를 정경화

6) 클레멘트(알렉산드리아)

- 4 복음서, 히브리인 복음서, 이집트인 복음서, 히브리서(바울), 바울서신13, 베드로전서, 요한 1,2서, 유다서, 바나바서, 사도행전, 요한계시록, 베드로의 묵시, 클레멘트 1세, 디다 케, 허마스, 야고보서, 요한 3서, 베드로 후서.

7) 오리겐

- 성경학자답게 ‘인정된 책들’과 ‘논란이 되고 있는 책들’로 분류. 인정된 책들로는 4 복음 서, 바울서신13, 사도행전, 야고보서 유다서를 뽑았다. 부활절 메시지에서 오늘날의 27 권의 성경을 36경으로 발표. 이후 동방과 서방교회는 아무 의심 없이 그의 정경 선언을 수용함

 

5. 초대교회시대의 이단사상과 분파주의

 

(1) 에비온주의(Ebionism)

- 사이비 베드로 노선을 따르는 기독교화 된 유대주의로, 그리스도는 사람이면서 하나님의 양자라고 함.

- 바리새적 에비온파와 에센(Essene)적 에비온파로 나뉘어 지는데 이들은 바울을 배교자 로 보고 할례를 주장하고,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단지 메시아로 지명된 사람으로 본다.

 

(2) 영지주의(Gnoticism)

- 사이비 바울적 경향을 띤 이교적 사상으로 AD 70~250년까지 널리 퍼졌던 사변적인 신 령주의

- 신약의 디모데전서, 골로새서 등에서 영지주의를 경계하라고 함.

- 우주의 신화, 그리스와 동방의 이교적 철학 사상에 기독교 교리를 혼합한 사상으로 금욕 적인 생활을 강조, 또 물질과 정신의 2원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물질의 세계를 거부했다.

 

(3) 몬타누스파

- 2세기 중엽, 소아시아 프리기아 계곡의 알다반 마을의 몬타누스가 갑자기 황홀경에 빠져 방언을 하며 자신이 성령의 선지자임을 자처했다. 그의 두 아내 또한 같은 현상을 나타냈 다.

- 몬타누스는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보혜사가 자신에게 임했다고 주장하고 자기가 말을 하 면서 하나님의 영이 말한다고 하고 자신이 아버지와 아들과 보혜사라고 하여 그의 추종자 들은 그를 3위의 한 분이신 성령으로 믿었다.

- 몬타누스파는 교회가 세속화되고 타락했음을 지적하고 엄격한 금욕생활, 금식, 참회를 강 조하여 추종자들을 들였으며, 가정과 남편을 버리고 페푸자. 티마움으로 와서 살아야 한 다고 주장.

 

(4) 마니교

- 2세기 절정에 달했던 영지주의 운동이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얼마 후에 새로운 종교 운동 이 일어났는데 모든 민족에게 진정한 구속을 약속하는 마니교였다.

- 마니는 AD 216년, 페르시아의 귀족 가문 출신으로 일찍이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 고 인도, 페르시아, 등지에서 자신의 깨우침을 설교하다가 277년에 억류되어 죽음.

- 마니교는 페르시아의 이원론에 근거하여 빛과 어두움을 다스리는 두 신을 전제로 하며, 붓다, 조로아스터, 예수님이 빛의 아버지로부터 인간을 구속하는 참 종교를 위해 세움을 받은 사자인데 마니는 마지막 사자라고 함.

- 마니교도들은 물욕을 버리고 금욕할 것을 독려함. 심지어 성욕도 자제하며 결혼도 포기 함. 신자들을 택자들과 청중들로 구분함.

-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마니교의 교리와 기독교의 교리를 분간할 수 없어서 특별히 보고하 도록 했고 교회에서는 마니교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5) 노바티안파

- 250년경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가 끝나자 교회는 배교자의 처리문제를 놓고 골머리를 앓았다. 이 때 로마감독 코르넬리우스는 관용을 베풀어 배교자들을 용서하고 교회로 수 용했다.

- 그러나 노바티안(~258년경)은 이러한 처사에 반대했다. 251년, 그의 추종자들은 그를 로마의 다른 감독으로 선출했다. 이것이 시초가 되어 교회는 분파운동에 휩싸였다.

- 코르넬리우스 로마 감독은 노바티안과 추종자들을 출교시켰다. 노바티안은 발레리안의 치하에서 순교했다.

 

3장. 성경의 변증

 

1. 성경의 유일성

 

(1) 연속성에서의 유일성

 

1) 1,500년에 걸쳐 기록

2) 45명 이상의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기록

3) 각각 다른 장소에서 기록

4) 다른 시대에 기록

5) 다른 환경, 분위기에서 기록

6) 3개 대륙에서 기록

7) 3가지 언어로 기록

8) 다양한 문학양식을 포함

9) 서로 상충되는 수백 가지의 주제를 다루면서 완벽한 조화를 이룸

0) 모든 이야기의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

 

(2) 보급상의 유일성

 

1) 그 어떤 책도 성경의 보급 및 판매부수를 능가하지 못한다.

(예) 1998년 미국 연합성서공회(Unityed Bible Society) 단일기관 성경배포수-성경전서 2,080만부, 낱권 2,010만 부, 부분성경까지 포함 총 5,850만부 배포

2) 성경은 수퍼 스테디셀러

 

(3) 번역상의 유일성

 

1) 세계 6,500개 언어 중 현재 2,200개 언어로 번역

2) 현재 속도로 번역되어진다면 2,022년 까지는 거의 모든 언어그룹에게 성경이 전달될 것 으로 예상-현재 위클리프 성경번역선교회에는 50개국, 6천 명의 사람들이 850개 이상의 언어로 일하면서 성경을 번역하고 있다.

 

(4) 생존상의 유일성

 

1) 인쇄술이 발견되기 전까지 필사적으로 필사하고 또 필사하여 원본을 훼손치 않고 보존

"성경의 본문을 의심하는 사람은 모든 고전적인 문헌들을 다 불확실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 왜냐면 그 어떤 문서도 문헌학상 성경만큼 철저히 검증을 받은 문서가 없기 때문이다"(몽고메리)

"누가 한 번이라도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세네카나 키케로가 쓴 글들의 철자나 음운 단어를 세었는가? ...성경만큼 그렇게 철저하게 모든 장마다 줄마다 교의마다 공격을 받은 책이 어디 있는가? 그럼에도 지금 성경은 수백만 명으로부터 사랑받고 읽히고 있고 강의되고 있다."(버나드 램)

 

2) 성경은 모든 사악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한 점도 훼손됨 없이 살아남았다.

- 기원후 303년 로마환제 디오클레시안은 기독교인들의 예배를 금지하고 성경을 파괴하라는 칙령을 발표했다. 그러나 25년 후, 콘스탄틴 황제는 칙령을 발표해 정부의 돈으로 성경 50권을 구입하라고 했다.

- 1778년에 죽은 프랑스의 저명한 이교도인 볼테르는 향후 100년 이내에 기독교가 역사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50년도 채 안 돼서 제네바성서공회는 볼테르의 집과 인쇄소를 수많은 성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 사용하게 되었다.

"천지는 없어질지라도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13;31)

- '고등비평이 내놓은 확실한 결과'도 한 때 위력을 떨쳤다. 일명 문서가설이라는 것으로 많은 지식인과 비평가들이 이에 동조하여 성경의 권위에 도전했다. 예를 들어 모세오경은 모세시대에 존재하지 않았거나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세에 의해 기록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다가 몇몇 사람이 Black stele(검은 돌 비문)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모세보다 약 3세기 이전시대에 기록된 함무라비법전의 내용이었다. 또 헷(Hittites)족속의 기록은 구약이외의 다른 기록은 없기 때문에 그 부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은 신화라는 것이다. 그러나 고고학 조사결과 1,200년도 더 된 헷족속의 문명의 흔적들이 발견되어 거짓 주장임이 드러났다.

 

(5) 예언의 유일성

 

1) 성경은 한 개인이나 또는 어떤 그룹에 의해 만들어진 책 가운데 개별 국가들과 이스라엘, 이 땅의 모든 족속, 어떤 도시들, 그리고 메시아의 오심 등과 관련된 상당 분량의 예언이 포함된 유일한 책이다.

"모하메드주의자들은 그가 탄생하기 전에 모하메드가 태어날 것이라는 어떤 예언도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 어떤 이단 종파의 창설자도 고대 본문이 구체적으로 자신들의 출현을 얘기하고 잇다는 걸 밝혀낼 수 있는 인물은 하나도 없다."(스미스)

"코란이나 몰몬경, 힌두교의 베다경전, 불교의 불경 등 다른 책들도 거룩하게 영감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그 어떤 책도 앞날에 대한 예언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노만 가이슬러, 윌리암 닉스)

 

2) 성경의 예언은 성취되었고 성취될 것이다.

-성취된 예언: 에돔의 멸망(옵1), 바빌론에 대한 저주(사13장), 두로(겔26장)와 니느웨의 멸망(욘1-3장), 이스라엘의 귀환(사11:11), 그리스도의 출생시간(단9장), 장소(미5:2), 탄생의 본질(사7:14), 생애, 죽음, 부활(사53장), 성령강림(욜2;28-32, 행2장) 등

 

(6) 정확무오한 유일성

 

1) 약 5세기 간의 이스라엘 역사가 사무엘상에서부터 역대하까지 기록되어 있는데 히브리민족의 전통과 부족, 가문의 기원에 대한 선명한 묘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애굽, 바빌론, 앗시리아, 헬라, 로마에서 게르만, 심지어 인도와 중국에서도 이에 필적할 만한 것을 찾아볼 수 없다. 모든 민족과 나라의 것은 지배자에 의해 왜곡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원에 대해서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알브라이트의 'Biblical period' 중)

 

2) 인물들에 대한 솔직한 기록

- 족장들에 대한 죄의 언급(창12:11-13, 49:5-7 등)

- 백성들의 죄가 고발되다(신9:24)

- 다윗의 간음과 범죄(삼하11-12장)

- 사도들의 결점 기록(마8:10-26, 26:31-56, 막6:52, 8:18, 눅8;24-25, 9:40-45, 요10:6)

- 교회내의 무질서를 폭로함(고전1;11, 15:12, 고후2:4)

 

(7) 영향력의 유일성

 

1) 문학에 끼친 영향력

-'만일 어떤 도시에서 모든 성경을 파괴한다고 해도 도서관 서가에 꽂혀 있는 다른 책들이 인용한 부분들만 발췌해도 성경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복구될 수 있다'(맥아피)

'일출과 일몰, 약속과 성취, 탄생과 죽음, 인간의 전 드라마가 그 책 속에 담겨 있다'(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

'성경을 모르는 영문학도는 자신이 읽고 있는 내용을 상당 부분 이해하지 봇하거나 심지어 그 의미조차 잘못 해석하게 된다'(프라이)

 

2) 문명에 끼친 영향력

-'이 세상의 그 어떤 도덕적, 종교적 작품도 기독교의 사랑의 원리의 깊이를 뒤어넘지 못하며, 하나님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보다 더 고상한 영적 개념은 없다'(가이슬러)

'그렇게 단순하면서도 그렇게 정교한 책이 인간의 손으로 단번에 만들어진다는 게 가능한 일이겠는가?'(장자크 루소)

'15세기 인쇄술의 발명 이후 성경은 고대의 그 어떤 동양문학 작품보다 더 많은 번역이 이루어졌다. 그것은 이제 낯선 책이 아니라 가장 손에 넣기 쉽고 가장 친숙하고 믿을 수 있는 원천이요, 서구의 지적, 도덕적, 영적 이상에 대한 결정권자가 되었다'(그레디 데이비스)

-성경은 여자와 노예와 약자를 해방시켰고, 문맹을 추방했으며, 전쟁 속에서도 사랑을 지키게 하였다.

 

 

제4장. 성경의 역사성

 

1. 신약사본

 

(1) 현존하는 헬라어 사본들

- 언셜체(307), 작은 초서체(2,860), 성구집(2,410), 파피루스(109). 계:5,686

 

(2) 기타 사본들

 

1) 라틴어 벌게이트(10,000), 에디오피아어(2,000), 슬라브어(4,101), 아르메니아어(2,587), 파세타어(350), 발해만어(100), 아랍어(75) 등 . 계:24,970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신약성경의 책들의 본문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모든 고대 작품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모호한 것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고대시대의 그 어떤 문헌도 신약성경만큼 서지학적으로 검증을 받은 문헌이 없기 때문이다."(몽고매리)

 

2) 서지학적 검증: 그 문헌이 오늘날 우리 손에 들어오기까지 본문이 어떻게 전수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검증법. 이외에 내적증거의 검증법, 외적증거의 검증법이 있다.

"원본과 최초의 사본 사이의 시간 간격은 너무도 적어서 실제로는 무시해도 될 정도이다"(케년)

 

3) 신약성경은 1세기 후반에 기록. 가장 빠른 필사본은 4세기경으로 원본보다 250~300년 후에 기록된 셈. (예) 기록:50~100년, 최초 사본:(단편)114년, (완성된 신약사본)325년경

<다른 책들의 사본들>

저자

기록연대

최초 사본

간격

사본 수

호머

일리아드

-800

-400

4000

643

헤로도투스

역사

-480~425

+900

1,350

8

투키티테스

역사

-460~400

+900

1,300

9

플라톤

철학

-400

10세기경

1,300

7

타키투스

연대기

+100

+1,100

1,000

20

 

2. 신약역본들

-신약 최초의 번역본들은 시리아어와 라틴어, 또는 콥틱어를 모국어로 하던 사람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전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했던 선교사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메츠거)

 

(1) 시리아어 역본들

(2) 라틴어 역본들

(3) 콥틱(이집트어) 역본들

(4) 기타-고딕어, 조지안어, 에디오피아어, 누비안어 등

 

3. 초대교회의 신약성경 인용(325년 니케아 종교회의 이전)

 

(1) 폴리캅(70-156)

(2) 이그나티우스(70-110)

(3) 로마의 클레멘트(95)

(4) 저스틴(133년에 순교)

(5)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150-212)

(6) 터툴리안(160-220)

(7) 오리겐(185-235, 또는 254)

(8) 키프리안(258년 사망)

 

"니케아 이전만 해도 약 32,000회 신약성경이 인용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회수는 절대로 모든 인용횟수를 포함시킨 것이 아니며 더욱이 4세기 작가들은 포함시키지도 않았다"(가이슬러& 닉스)

 

3. 성경의 오류에 대한 변증

 

<고대문헌들을 해석하는 기본 원리들>

 

제1원리: 아직까지 설명되지 않았다고 해서 앞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는 걸 뜻하는 것이 아니다. 제아무리 충분한 정보를 가진 사람도 모든 성경의 난제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제2원리: 해석상의 오류가 계시상의 오류는 아니다. 인간은 유한하다. 유한한 존재는 실수를 하게 되어 있다.

제3원리: 단락을 문맥 내에서 이해하라.

제4원리: 난해한 구절은 분명한 구절에 비추어 해석하라

제5원리: 모호한 구절에 근거해 가르치지 말라

제6원리: 성경은 인간이 등장하는 책이다.

제7원리: 어떤 한 기사가 불완전하다고 해서 그것이 곧 잘못된 기사라는 것은 아니다.

제8원리: 구약의 내용을 신약에서 정확하게 인용한 것은 아니다

제9원리: 성경은 서로 다른 문학 기교를 사용하고 있다

제10원리: 사본 상의 오류를 원본상의 오류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제11원리: 일반적 진술이 반드시 보편적 약속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제12원리: 나중 계시가 이전 계시보다 우선한다.

제13원리: 성경은 비 기술적인 일상용어로 기록되었다.

제14원리: 성경은 어림짐작 숫자도 사용하고 있다.

제15원리: 성경이 모든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다 인정하는 건 아니다.

 

 

 

제 5장. 구약성경의 역사적 신뢰성

- 구약성경의 역사적 신뢰성을 살펴보는 것은 본문의 전승 즉, 성경 원문에서 오늘날의 인쇄본에 이르기까지의 경로)과 관련이 있다. 다른 고대 문헌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겐 원본이 없다. 그러므로 다음의 요소들을 점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1. 필사과정은 얼마나 정확했나?

 

(1) 글리슨 아처

"구약은 고대의 그 어떤 다른 문학작품들과 완전히 다르다. ... 애굽인들의 '死者의 書'는 사본간의 차이가 아주 심하며 심각할 정도로 차이가 난다. 전체 절이 삽입되거나 빠져 있고 본문에 상응하는 한줄 한줄의 의미가 어떤 경우엔 완전히 다르다. 본문 전승에 있어서 몇 세기 동안이나 간격이 있는 본문 사이에 왜 히브리 본문에서는 그와 똑같은 변개나 변화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가 하는 것은 히브리 성경의 본문 전승이 초자연적인 신의 간섭에 의한 것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2) 로버트 딕 윌슨

"히브리 성경엔 26개 이상의 외국 왕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그 왕들이 다스리던 시대에 기록된 문헌들에서 그 이름들이 발견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의 이름들은 그들 스스로 세운 기념비나 그들이 다스리던 기간에 쓰여진 문헌들 속에서 구약성경에 기록된 철자 그대로의 이름으로 발견되고 있다.... 2,300~3,900년 동안 히브리 본문에 나오는 고유명사는 거의 바꾸지 않고 그대로 전승되었다. 원본 필사가들이 얼마나 철저한 주의를 기울인 학자들이었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3) F.F. 브루스

"자음으로 된 히브리 성경 본문은 거의 수천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그 진정성이 훼손되지 않고 마소라학파들에게 전수되어 내려왔으며 그들은 그것을 새로 편집했다고 말하고 있다."

 

<참고> 필사의 시대적 구분

제1기 필사시대: 쇼페림시대(주전 400~주후 200년)

제2기 필사시대: 탈무드시대(주후 100~주후 500년)

제3기 필사시대: 마소라학파시대(주후 500년 이후)

 

2. 사본의 질은 어떠한가?

 

1) 2,3천년이란 세월은 길고도 긴 세월로서 고대 문서들이 남아 있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사본들은 질이 상당히 괜찮은 수준의 것이다.

 

2) 히브리사본의 첫 번째 선집은 벤자민 케니콧이 1776-1780년 사이에 만들어 옥스퍼드에서 출판된 것으로 615개의 구약 사본 목록이 들어 있다. 이후 지오반니 데 로시가 1788년에 731개의 사본집을 출판했고, 근대에 들어 1890년에 카이로에서 게니자(창고)에 보관된 사본이 20만 개나 발견되었는데 이중 절반가량은 현재 캠브리지 대학에 소장되어 있고 나머지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다.

 

3) 가장 중요한 히브리 구약사본은 1947년에 발견된 사해사본으로 그 연대가 주전 3세기부터 주후 1세기 사이로 추정되며 이사야서 한 권과 에스더를 제외한 수천 개의 성경의 단편들이 포함되었다.

 

3. 70인역(LXX)-'셉튜아진트'(70)은 믿을만한가?

- 유대인들은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전쟁 때 자국을 떠나 흩어져 살게 되었고 그 당시의 언어로 된 성경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집트의 프톨레미 왕은 문학의 후원자로 명성이 자자했다. 이 때 도서관장이었던 디메트리우스가 유대인의 율법을 왕에게 소개했고 왕은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사신을 파견, 도움을 요청하였고 이에 대제사장은 이스라엘의 12지파에서 각 6명의 장로를 번역가로 선출, 이집트로 보냈다. 장로들은 왕의 식탁에서 먹고 마시며 토론을 통해 왕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가르쳤으며 이후 파로스 섬의 아름다운 주택에서 72일간 머물며 모세오경을 헬라어로 번역하는 일을 완수했다.

 

4. 고고학의 뒷받침은 있는가?

- 수많은 고고학적 발견들이 성경문사들의 역사적 정확성을 확증해 주었으며 심지어는 성경에는 나오지만 사라져 버려 알 수 없었던 외국 왕들의 이름까지 알려 주었다.

- 고고학자 넬슨 글렉은 "분류상 지금까지 발견된 그 어떤 고고학적 증거도 성경의 진술과 모순된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개략적인 진술이나 아니면 자세한 역사적 진술을 확증해 주는 고고학적 발견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했다.

- 19세기 자유주의학자들은 성경상의 오류를 지적해 내는데 혈안이 되었다. 그들은 사르곤대제는 결코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헷 족속도 존재하지 않았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았고, 족장들에 대한 기사와 장막의 일곱 촛대는 그 배경이 아주 후대의 것이며, 다윗제국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같이 넓지 않고 벨사살 왕은 절대 존재하지 않았으며 성경엔 그 외에도 많은 오류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후 고고학적인 발견들은 이 모든 억지들을 단번에 뒤집었다. 사르곤대제가 니느웨 북쪽 약 19km에 있던 웅장한 궁궐 같은 곳에 실제로 살았으며, 헷 족속이 실존했고, 족장시대의 배경들이 실제로 딱 들어맞으며, 일곱 촛대의 개념은 초기 철기시대를 상징하고, 다윗제국의 도시가 북쪽에 있었고, 벨사살 왕은 실제로 바빌론을 통치했음이 발굴 결과 낱낱이 밝혀졌다.

 

5. 결론

- 사마리아 오경과 70인 역, 그리고 수많은 내외부의 본문 교차 점검에 의한 확증을 받은 수천 개에 이르는 히브리어 사본들은 구약 성경 본문의 충실성에 놀라울 정도의 뒷받침을 하고 있다.

- 구약 본문이 신약과 아주 중요한 방식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의 신뢰성은 기독교 신앙을 뒷받침해 준다.

- 사해 사본의 발견으로 학자들은 마소라사본보다 천 년이냐 앞선 히브리어 본문을 갖게 되었고 그것으로 인해 히브리어 성경 본문의 충실성을 검토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경우를 검토해 본 결과, 95% 이상이 단어와 단어까지 똑같으며 5%의 차이는 필사할 때 펜이 미끄러졌거나 철자상의 차이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 쿰란에서 출토된 이사야 두루마리는 영어성경 RSV번역자들로 하여금 마소라 사본에서 13개만 새로 고치게 했는데 그중 8개는 고대 역본에서 알려져 있던 것이며 나머지는 중요한 차이가 아니었다.

 

 

제 6장. 예수의 역사성

- 일반 세속 역사에서 찾을 수 있는 예수님에 대한 기록들은 총 45개의 고대 자료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예수님의 생애, 가르침,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사건, 부활에 관한 기록들은 모두 합쳐서 129가지 이상 된다.

 

1. Josephus

 

(1) The Antiquities(고대사)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산헤드린고회를 소집한 후에 당시 그리스도라고 불린 예수의 형제인 야고보와 어떤 사람들을 그들 앞에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율ㄹ법을 어겼다고 고소를 하고 돌로 쳐죽이도록 그들을 넘겨주었습니다."(XX9:1)

 

(2) Testmonium Flavianum(플라비우스의 증언)

" 이 당시에 예수라 일컬어지는 지혜로운 사람이 있었다. 만약 그를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 합법적이라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놀랄만한 기적을 행하는 자였고, 진리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스승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많은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그는 그리스도였다. 빌라도가 우리 중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제안으로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선고했을 때 처음부터 그를 사랑하던 사람들은 끝까지 그를 버리지 않았다. 그는 죽은 지 사흘 만에 살아났다. 이는 하나님의 예언자들이 이미 이 사실과 그 밖의 수많은 기적들을 그에 대해서 예언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을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우는 무리들이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다."

 

2. Tacitus의 연대기

" 네로는 죄인들을 묶어두고 혐오스러운 행위 때문에 미움을 맏는 무리들, 즉 대중들이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는 사람들에게 격렬한 고문을 가했다. 그리스도는(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이 이 사람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인데) 티베리우스의 통치기간에 로마의 행정관이었던 빌라도의 손에 극단적인 형벌을 받았다. 그리고 매우 해로운 미신으로 간주되던 신앙이 당장에는 박해를 받았지만 그 악이 발생한 최초의 장소인 유대지방에서 다시 일어났고 심지어 로마에서도 생겨났다.... 그래서 유죄를 인정한 모든 사람들에 대해 최초로 체포가 행해졌다. 그때 그들의 정보를 바탕으로 엄청난 사람들이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도시 방화죄 때문이 아니라 인류에 대한 증오 때문이었다."(Annals XV 44)

 

<타키투스가 밝힌 중요한 포인트>

1)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에 근거한다는 점(행11:26)

2) 그리스도는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극단적인 처형을 받았다는 점(막15:15)

3) 그 십자가 처형이 티베리우스의 통치기간(주후14-37)

4) 예수의 죽음을 믿는 신앙이 해로운 미신으로 간주되었다는 점(행 17:6, 24:5)

5) 그 신앙이 최초의 발생지인 유대지방에서 다시 일어났다는 점

6)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로마에까지 그 신앙을 가져갔다는 점

7)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체포가 이루어졌다는 점

 

3. Pliny의 편지

- 터키 북서부에 위치한 비두니아 지방의 총독. 친구인 로마황제 트라얀에게 보낸 편지

" 나는 그들이 그리스도인지를 물어보았다. 그런데 귿르이 인정하면 두 번 세 번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면서 그들을 기다리는 거은 처벌 뿐이라고 경고했다. 그들이 끝가지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면 끝네 처형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죄나 잘못은 이런 것 빡에 안된다고 말했다. 즉 , 동이 트기 전에 정기적으로 모여서 하나님게 대하듯이 그리스도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찬송했을 뿐이며, 도둑질, 강도, 그리고 간음을 하지 않기 위해 맹세함으로써 자신들을 구속한 일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Epistles X96)

 

4. 예수의 생애에 관한 고대자료들의 종합적 결론(야마우치 박사의 의견)

 

(1) 예수는 유대인 선생이었다.

(2) 많은 사람들은 예수가 치유를 행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했다고 믿고 있다.

(3) 어떤 사람들은 그가 메시야라고 믿었다.

(4) 그는 유대 지도자들에 의해 배척을 받았다.

(5) 디베랴지방의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

(6) 십자가라는 수치스러운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전히 살아있다고 믿은 추종자들은 빠른 속도로 확산되어 주후 64년경에는 로마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

(7) 도시와 시골 할 것 없이 모든 부류의 사람들, 남자와 여자와 노예, 자유니들 모두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경배했다.

 

5. 예수가 역사적 인물이라는 증거들

 

(1) 성경은 가장 정확한 증거...일반종교와 문서는 실제 인물과 문서로 기록되는 시간의 차이가 엄청나다. 단군신화는 3,600년 차이, 조로아스트교는 1,000년, 불교는 200년에서 600년, 회교는 최소 135년, 알렉산더 대왕의 전기는 약 400년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예수는 죽은 후 불과 30년에서 60년 사이에 거의 완전한 형태의 문서로 기록되었다. 특히 사도 바울의 편지들은 불과 예수 사후 18년에서 30년 사이에 거의 다 완성되었다. 또 바울이 소개한 신앙고백들은 예수 사후 2-3년 후에 존재했던 신앙고백들이었다.

 

(2) 신약성경은 원본과 사본의 시간 간격이 고대 어떤 문서보다 짧고 그 내용들이 모두 서로 일치한다.

 

(3) 성경 외에 나타난 자료들은 예수의 역사성을 충분히 입증한다.

 

<결론> 만약 예수님이 역사상 실제 인물이 아니었다면 유대 지역과 필레스타인, 소아시아, 그리고 로마지역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나간 기독교운동의 확산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과연 거짓을 위해 처음부터 자신의 목숨을 버릴 수 있을까? 분명히 그들은 인간 예수의 모습에서 뭔가 엄청난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예수 운동이 수많은 박해에도 불구하고 급속도로 확산되었다고 보아야 합리적이다. -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요일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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