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2장 서론 1>
하나님께서 행하신 ‘진노의 날에 대한 묘사(애 2:1-10)
1장 전반부에서 과거 예루살렘의 화려했던 모습과 현재의 비참한 모습을 극적으로 비교함으로써 결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예루살렘의 비참한 상황을 애도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묘사했던(애 1:1-11) 예레미야는 2장에 와서 그 참혹한 상황이 전적으로 진노하신 하나님께서 행하셨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진술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진노의 구름으로 시온을 덮으셨다(애 2:1a)는 표제어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이며 하나님께서는 시온에 임한 형벌을 행하신 유일한 주인이심을 담담하게 밝히고 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아름다운 것을 땅에 던지시고 언약궤조차 기억에서 지우셨으며(애 2:1), 야곱의 거처를 무자비하게 무너뜨...리셨고(애 2:2), 지도자들을 원수들 앞에서 꺾으신 분으로 등장한다(애 2:3). 이처럼 진노하신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적대적으로 대하셨으며(애 2:4-5) 예루살렘이 자랑할 만한 그 어떤 것이든 무시하신다(애 2:6-8).
그 결과 시온의 성문들이 파괴되고 왕과 방백들은 포로로 잡혀가고 선지자들조차 이상을 얻지 못하게 되었다(애 2:9). 그리고 마침내 시온으로 하여금 침묵을 지키고 땅으로 내려앉게 만드셨다(애 2:10). 이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의 긍휼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스스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창 12:1-3)을 파기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비록 언약 백성들이 언약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한다 할지라도 언제나 하나님은 자신의 신실하심을 나타내신다. 그리고 아무리 언약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도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끝까지 자신의 목적을 이루어 가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향해 진노하심으로써 불신앙으로 무감각에 빠진 자녀들을 극심한 재앙으로 훈련시키신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언약의 자녀들이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다시 찾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 51:19<51:17>)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예루살렘의 멸망을 지켜 본 예레미야로서는 여전히 마음이 강퍅한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 스스로 비탄의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애 2:1).
한 나라가 망하고 도성들이 황폐화 되는 사건들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얼마든지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혹 그 가운데에는 다시 나라를 세우거나 성읍을 복구하는 경우도 있다. 유다의 멸망과 예루살렘 성의 파괴 역시 일반적인 역사의 안목으로 볼 때에는 패망한 다른 나라들의 운명과 다를 바 없다.
반면에 예레미야는 신학적인 안목으로 유다의 멸망과 예루살렘의 파괴를 이해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곧 예루살렘의 최후는 역사의 흥망성쇠라는 카테고리 안에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 예레미야의 주장이다(애 2:9b).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유다의 멸망 속에서도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렘 29:10)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에 따른 공평과 정의가 구현될 새로운 질서의 세계가 바벨론의 남은 자들에 의해 성취될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애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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