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 임한 것이며(애 1:21c) 이는 자신의 ‘죄’(עשׁפ<파샤이, 애 1:5b>)와 ‘범죄’(אטח<혜태, 애 1:8a>)로 인해 야기된 것이라고 고백하게 되었다. 이로써 예루살렘이 당한 심판은 신실하신 언약의 하나님께서 행하신 공의였음을 모든 만민들에게 증거되었다(애 1:12).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성격이 규명되었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서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하게 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욜 2:12-27; 말 3:16-18).
이런 점에서 예루살렘의 멸망은 구속사적 관점에서 새로운 해석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곧 예루살렘의 멸망이 하나님의 공의에 따른 심판이 성취된 첫 번째 열매였다는 사실이다.
곧 하나님의 긍휼을 전달하는 기관으로써 예루살렘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결국 온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으로 소환되어 그들이 행한 죄악에 따라 보응을 받게 된다는 사실(애 1:22a)을 온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하지만 세상 민족들은 예루살렘에 임한 심판의 결과로 성읍이 불타고 주민들이 포로로 잡혀간 사실만을 인식할 뿐이다. 그들은 역사를 친히 주관하시고 모든 일을 인애(דסח<헤세드>)로써 행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저들도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욜 3:1-21; 암 1:3-2:3; 습 2:4-15). 이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이 당해야 했던 ‘주의 날’을 그들도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이유에서 애가서는 예루살렘이 당했던 ‘주의 날’에 대한 심각한 고통과 슬픔을 신학적으로 충분히 밝히고 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세상 민족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증거하기 위해 중보자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애가서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 주민들의 유배를 신명기에서 제시한 복과 저주의 신학(신 27-28장)을 시편의 시온의 신학(시 73-78편)을 통해 재해석함으로써 ‘새 하늘과 새 땅’(사 65-66장; 계 21:1-7)에 대한 소망의 신학을 추구하고 있다.
이 소망의 신학은 아래와 같이 이미 예레미야서를 통해 충분히 제시되었다.
① “주께서 유다를 온전히 버리시나이까 주의 심령이 시온을 싫어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우리를 치시고 치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평강을 바라도 좋은 것이 없고 치료 받기를 기다려도 놀람을 보나이다”(렘 14:19)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들이 쫓겨난 자라 하며 찾는 자가 없는 시온이라 한즉 내가 너를 치료하여 네 상처를 낫게 하리라”(렘 30:17)고 약속하셨다.
② “에브라임 산 위에서 파숫군이 외치는 날이 이를 것이라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나라 우리가 시온에 올라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나아가자 하리라”(렘 31:6)는 말과 같이 시온이 온전히 회복됨으로써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은사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에 모일 것이라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렘 31:12)는 약속에 따라 시온이 본래 존재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신앙이 회복되고 예배가 회복될 것이다.
따라서 애가서는 그 이름과 달리 의외로 소망의 신학을 추구하고 있다.
* 히브리어 단어 자음 순서가 바뀌었음을 양해 바랍니다.
예를들면 본래 인애(חסד<헤세드>)였던 것이 웹페이지에서는 인애(דסח<헤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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