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기어
자동차 수동기어에는 후진(R, reverse)과 전진(D, drive) 기어가 있다. 과거에는 1~4단이었지만 요즘은 기술이 발달하여 5단이나 6단까지 이른다. 자동기어에는 전진(D, drive), 후진(R, reverse) 및 중립(N, neutral) 등이 있다. 이제는 기술이 더욱 발전하여 무단변속기까지 등장한 상황이다. 이 말은 운전하기가 그만큼 편해졌다는 의미다. 초보운전이라 할지라도 가속페달만 밟고 핸들만 잘 조종하면 자동차를 누구든 운전할 수 있고 누구든 쉽게 운전하게 되었다. 과거 80년대 중반까지 대부분의 자동차들이 수동기어로 구성되어 있어 왼발로 클러치를 밟고 오른손으로 기어를 바꾸는 번거로움이 없다. 오르막길에서 출발 시 뒤로 밀리는 두려움도 없다. 그냥 기어를 일단 전진(D)에만 두고 가속페달만 밟으면 되니 매우 편리하다. 우리 삶의 편리함은 이뿐만 아니다. 가정의 모든 가전제품을 비롯한 전기장치 역시 자동으로 변환시킬 수 있다. 모든 것이 자동이기에 우리의 삶은 매우 필요해졌다. 아마 전기량이 부족해지거나 전기 공급이 끊어질 때의 우리의 생활은 상상할 수 없다. 삶이 자동으로 되다보니 모든 삶의 영역도 자동으로 되어야 된다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임하는 실수를 범한다.
기어를 ‘옮긴다’는 말은 영어로 쉬프트(shift)라 표기한다. 빨리 가고 늦게 가는 속도에 따라 자동기어는 운전자를 대신하여 자동으로 옮겨진다. 자동차의 자동기어처럼 우리 삶의 ‘옮김’은 자동적인 경우가 그렇게 흔하지 않다. 오히려 노력이나 의지가 요구될 때가 많이 있다. 나의 노력이나 의지만으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노력이나 의지를 늘 행해야 어떤 일이든 이룰 수 있다. 우리의 삶에 어느 하나라도 노력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기계 조작하는 것 외에 인생의 삶은 항상 긴장과 노력으로 이뤄진다. 예를 들어 학교 초등의 단계에서 중등의 단계로 올라갈 때라도 자녀들은 인생의 갈등을 빚는다. 고등에서 대학으로 올라갈 때에 큰 고통을 겪는다. 이렇게 인생의 어느 옮김이 이뤄질 때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것보다 갈등과 시험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독교인의 삶은 기독교 문화를 이뤄가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기독교인이지만 우리 삶의 영향과 문화는 비기독교적이기 때문에 기독교적 삶과 비기독교적 삶에 갈등을 초래한다. 어떤 때는 기독교적 삶이나 문화가 힘들어 하여 귀찮게 여길 때가 있고 불편할 때가 있다. 우리의 삶 전체는 비기독교적 문화의 영향을 늘 받는다. 대화, 옷차림, 꿈, 방식 등도 늘 비독교적 문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 주일이나 수요일 예배 후 예배당만 벗어나자마자 비기독교적 문화의 영향 아래로 접어든다. 교회당 안에서와 기독교인들 간에는 기독교적 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에 기독교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일단 벗어나거나 다른 사람을 만나면 비기독교적 문화를 접한다. 우리에게는 오랜 세월 동안 비기독교적 문화에 익숙해 있다. 친구들도 비기독교적 문화를 접해 있고 직장의 동료들도 그러하고, 거리에나 시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나 습관들도 대부분 비기독교적이다. 그러하다보니 비기독교적 문화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 있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 주위에 기독교적 문화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기독교 가정이 아닌 사람들은 기독교적 삶을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힘들고 외로운 마음을 들 때가 많이 있다.
기독교적 문화인 교인들 간의 교제, 교회당 안에서의 우리의 행동이나 삶은 일단 벗어나고 나면 사회로 들어가 자동적으로 비기독교적 문화로 전환된다. 자동적이다. 그렇지 않다면 드러나고 비사회적 모습을 갖추기 때문에 매우 어색하기도 하고 쑥스럽다. 차라리 외롭게 살아가느니 비기독교적 문화 속에서 살다가 기독교적 문화, 즉 예배당에 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비는 것이 속편할지도 모르겠다. 듣기 좋은 소리에 귀가 익숙하여 있어 생각해야하는 말씀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경우도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매사가 자동적이다 보니 우리의 삶까지도 자동적으로 전환되어가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수동적으로 전환되는 마음을 가지지 않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변해가는 자신을 보면서 수동적 삶, 즉 자신이 직접 전환하는 삶을 동경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자동차 얘기를 다시 해보자. 자동차의 자동기어도 전진하는 경우에만 그렇지 후진이나 중립에는 수동기어처럼 수동으로 움직여야 한다. 인생은 항상 전진만 있는 것이 아니다 후진할 때도 있고 쉬는 중립의 시기도 있다. 인생은 항상 앞만 보고 나갈 수 없다. 뒤로도 봐야하고 쉬면서 생각도 해야 한다. 모든 것이 자동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사람의 손길이 직접 행해야 하는 일이 있다. 이처럼 인생의 적은 일들에 자동적일 뿐 전체 일에는 항상 사람의 손길이 직접 행해져야 한다.
기독교인의 삶에서 비기독교적 삶으로의 전환은 자동적이지만 의식을 가지면 옮겨져야 할 것이다. 기독교인임을 늘 의식하면 비기독교적 삶 속에 살아야 할 것이다. 기독교적 삶을 저해하는 경우가 있다면 언제든 수동적으로, 즉 의지적 노력으로 인해 물러서서 잠시 쉰 후 다시 출발하는 경우가 있어야 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기독교적 문화와 비기독교적 문화 사이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어느 한 문화에서만 거할 수 없다. 하지만 자동기어식이 되지 말고 수동기어식의 기독교적 삶을 살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기독교인은 천국 시민권과 세상 시민권을 함께 가지는 이중국적을 소유한 자이다. 박쥐처럼 요령 있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도, 즉 비기독교인 가운데서도 기독교인답게 성실하게, 진실하게, 근실하게, 신중하게, 정직하게, 신임성 있게, 진리를 중시 여기면서 살아야 한다. 이런 삶이 힘들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위로를 받아야 한다. 이 위로를 위해 말씀을 해석하는 자세를 배워야하고 이 자세를 근거로 하여 자신의 일반적 삶을 분석하여 말씀을 삶에 잘 적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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