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깨달음은 그 어떤 깨달음과 비교할 수 없다. 진리의 깨달음은 단회적인 것이고 영원한 것이지만 다른 깨달음은 일시적이고 주관적이다. 나이가 들면 깨달아지는 것 역시 주관적이다. 꽃을 보며 아름다움과 함께 인간의 무력을 느낀다. 일상적 경험을 통해 자신의 부족을 느끼고 반성해 본다. 이런 깨달음들은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서도 갖게 된다. 책을 읽거나 영상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 조금의 유익을 줄 뿐 주관적이기에 보편화시키기 참 어렵다. 예를 들어 콩이 좋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콩만 먹을 수 없다. 나는 콩을 먹고 싶은데 가족이 원치 않는 경우가 있고 오늘 먹고 싶은데 다음에 먹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콩에 대한 좋은 것을 깨달았지만 적용하는 그렇게 쉽지 않을 것이다.
진리의 깨달음은 어떨까? 진리의 깨달음은 영원한 것이라 했는데 그렇다! 후회함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편할 것이다. 진정한 것에 대한 발견이다. 진리는 누구에 의해서도 아니고 자신에 의해서도 깨달을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 누구라함은 사람들을 말하는데 어느 사람을 통해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진리는 나의 것이나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위에서부터 또는 그분만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분이 곧 진리이시기 때문이다. 그 진리이신 그분이 자신을 깨닫도록 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그분이나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 진리를 깨닫는 것은 그분을 깨닫는 것이다. 그분을 깨닫는 것과 진리를 깨닫는 것과의 관계는 어떨까?
그분의 교훈을 따르는 것이 그분을 깨닫는 것이라 속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일리가 있지만 여기서 머물지 말아야 한다. 그분을 깨닫는 것은 그분에 대한 지식을 쌓아가는 것이다. 그분이 행하신 것, 그분이 의도하신 것, 그분이 말씀하신 것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 그분을 깨닫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분을 깨닫는 것은 어디서부터 얻을 수 있는지는 그분께서 자신의 부분적인 것을 성경에 기록토록 하셨기에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분에 대한 것을 깨닫기 위해 성경공부를 한다. 성경공부를 통해 그분의 의도를 깨달아야 하고 깨달았다면 삶의 실천이 나와야 한다. 실천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아직도 비우지 못한 또는 욕심에 가득 찬 나의 정체를 발견한다. 자신의 부족을 채우고 성장을 위해 하나님은 갖가지 시험, 즉 시련을 겪도록 한다. 그런 시험을 통해 그분에 대한 지식을 더해간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부족을 깨달으면서 그분을 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다.
성경말씀을 통해 그분을 깨닫는다고 하면 결국 그 말씀을 자해석하여 얻는 것이기에 깨달음이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라 착각할 수 있다. 아니다. 그분이 내가 읽거나 듣는 것을 깨닫도록 하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어떤 것도 깨달을 수 없다. 자칫하면 성경공부 역시 지식의 호기심에 빠지는 경우가 있는데 매우 유의해야 한다. 성경공부는 순종을 위함이지 지식의 욕구를 채우기 위함이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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