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시기가 되면 누구나 민감해지는 것 같습니다. 불평에 가득 차 있고 이유 없이 모든 것에 불만을 나타냅니다. 자신의 몸과 생각이 전환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모든 것을 감추고 싶은 본능 때문이겠죠. 본래의 자신이 아닌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가는 자신을 보고 주체할 수 없어 당황하는 나머지 매우 감성적 반응을 나타내는 듯싶습니다. 신체의 변화는 자신을 타인으로부터 이원 시키고 싶고 마냥 혼자 있어 변화되는 자신을 관찰하고 싶을 것입니다. 변화에 인정해야하는지 그렇지 않으면 인정할 수밖에 없는지 간에 무슨 가부(可否)간에 결정을 내려야함에도 불구하고 내릴 수 없는 자신을 보고 못내 아쉬워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고자 합니다. 모방도 하고 흉내도 내어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합니다. 매우 감성적이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하여 사랑하고 존경하는 부모님들에게조차도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행동합니다. 이런 모습을 이미 경험한 부모들은 자식의 성장과 변화를 인정하고 인내하면서 그들의 불평과 불만을 수용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녀들은 다른 곳에서 자신을 인정하고 보호해줄 수 있는 대상을 찾기 마련이죠. 밤새도록 통화하기도하고 시간가는 줄 모르게 밤새 대화하고 합니다. 내일이 오기 전에 기나 긴 밤을 과거로 보내기 싫어서 현재로 붙잡고 싶은 마음입니다. 잡히지도 않는 것을 붙잡는 식으로 끝없는 대화를 합니다. 새로 접하는 지식들이 자신을 놀라게 하기도 하지만 호기심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죠.
십대, 즉 이유 없는 반항의 시기에는 자신의 모습을 인정해주는 대상이 요구됩니다. 그래서 보금자리인 집에 돌아왔는데 부모가 없다거나 가정의 불화는 그들에게 큰 악영향을 끼칩니다. 그래서 자녀가 언제나 돌아보아도 부모는 그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안정감을 찾을 테니까요. 핵가족 시대는 청소년들에게 결정적으로 악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가정에 없는 부모에 관해 자녀는 불만을 하게 됩니다. 점점 의식의 안정을 찾지 못합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체적으로 그러합니다. 다른 곳에서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을 찾게 됩니다. 잘못하면 곁길로 나가기 쉬운 시기입니다.
목회자는 마치 청소년을 키우는 부모라면, 신자들은 청소년과 같다고 여깁니다. 언제든 목회자는 부모처럼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전화를 걸 때면 항상 받아주고,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있고, 요구하면 들어줘야 하고, 그리고 불평과 불만을 언제나 들어주면서 함께 살아가는 부모와 같은 목회자가 필요한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이단들이 한국교회에 극성이라들 말하는데 사실상 따지고 보면 우리가 잡새와 같은 이단들이 일어나는데 일조 했다고 여깁니다. 아니 그 일에 대해 죄책감마저 듭니다. 신자들이 목회자들로부터 만족하지 못할 때 어떻게 할 것으로 여깁니까? 청소년처럼 다른 곳에서 자신의 만족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든 부모는 당신의 자리에 있기를 바라는 청소년처럼 목회자는 그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청소년 시기를 지나 장년이 될 때까지 목회자는 참고 인내하며 지켜보면서 미소를 지어야 합니다. 함께 해야 합니다. 묵묵히 말없이 모든 불평을 들어주며 요구에 응해주면서 말입니다. 이런 일을 위해 하나님은 우리들을 목회자로 부르셨다고 확신합니다.
새벽기도에 나가면 목회자는 항상 그 자리에 있기를 바라는 신자들입니다. 자신은 매주 못나가도 목회자는 매주 동일한 미소를 지으며 말씀을 전해주기를 바라는 신자들입니다. 비방하고 조소하기도 하면서도 마음속에 존경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는 신자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남의 자녀를 양자로 입양하여 기르는 사람들이라 여겨도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국화 한 송이를 키우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것처럼 우리도 양떼를 위해 죽을 것이라는 지극정성의 마음으로 목회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죽을 각오를 하면 못할 것이 있겠느냐고 말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녀를 위해 부모는 무엇이든지 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한다는 것이죠. 사랑에 무슨 방법이나 기술이 있습니까? 사랑의 표현을 규칙이나 방법으로 표현할 수 없죠. 사랑은 통하는 법입니다. 허다한 죄를 덮기도 하고 모든 죄를 사하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참고 바라고 믿습니다. 사랑에는 무례하지 않는다고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잘 말하고 있습니다.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마음 가는대로, 양심이 이끄는 대로 행하면 됩니다. 진실은 통하는 법이고 진실은 이해하게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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