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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

라은성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4. 10. 1.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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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면 다리를 110°정도 뻗고 팔을 포개고 자는 사람들을 가끔 보곤 합니다. 그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강제로 다리를 바로 하라는 식으로 밀어붙여 보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저씨!”하며 친절하게 부르면서 껌을 하나 드리거나 부탁을 드리든지 하면 쉽게 다리를 펴서 자리를 움츠리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부딪치면 깨어지지만 수용하면 해결되는 것 같아요. 연약한 달걀이래도 스펀지 위에 떨어지면 깨어지지 않고 보존되는 것처럼.
서로 처음 만나면 동물들이 서로를 경계하듯이 우리는 서로를 경계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직업이? 왜 이곳에 왔을까? 하며 생각합니다. 특별히 결혼식장에 가면 모두들 최상의 옷차림을 하고 있기에 경계하는 모습을 우리는 가질 수 있습니다. 깊은 생각을 하지 아니더라도 가볍게 상대방을 경계하는 버릇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 낯선 곳에 적응한다는 것이 마음처럼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형제 된 우리들이라도 쉽게 다가가서 손을 내밀고 친절을 나타내지만 그렇게 쉽지마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왜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하지? 하기 싫어! 하며 뻗나가는 청소년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루 밤만 잘 지내면 금세 친해져서 오순도순하게 재미있는 관계로 발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국제공항에 가면 언어와 문화가 다르지만 어린이들은 친구들이 되어 발랄하게 지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인간애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될 수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악한 자라도 죽을 때가 되면 솔직해진다고 합니다. 아니 아무리 사악한 자라도 진실 하고픈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죠. 이제 더 이상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만나거나 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자신을 꼭 밝히고 싶은 심리적 마음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예인지는 몰라도 살인자도 자신이 범행을 저지른 현장에 꼭 한 번 와본다고 합니다. 진실해지는 모습을 보면, 아내가 우는 모습을 보면, 건장한 남편이 병에 걸려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도 밉다가도 새근새근 잠자는 모습을 보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긴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지나가는 행인들을 바라보는 어르신네들을 보노라면 측은히 여겨지거나 아니면 동정심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기도한다면 진실한 기도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사회에 비쳐진 한국교회는 권력과 부를 장악한 하나의 사회단체라는 인상일 것입니다. 강하게 비쳐지기 때문에 시기와 경멸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교회는 본래 약한 자들이고 핍박받는 것인데 군림하는 자이고 무리를 동원하는 자이기 때문에 사회의 불만에 가득 찬 사람들의 미움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교회들에게 사회봉사를 하라고 궐기하는 것이 마치 대기업 사장들에게 기부금을 내라고 요구하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교회는 작은 자입니다. 공격보다 수용적이고, 때리는 것보다 맞는 것이고, 군림하는 것보다 지배를 받는 것이고, 빼앗는 것보다 양보하는 것이고, 그리고 화를 내는 것보다 미소와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약한데서 강한 것이 나온다고 하셨습니다. 약한 것이 곧 강한 것이라 하셨습니다. 과거 2,000년 역사 속에서 교회는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뤄왔습니다. 정통신앙인들은 늘 힘이 없었고 적은 무리였습니다. 패배자들처럼 보였습니다. 죽음과 핍박이 그들의 상징이었습니다. 억울하게 죽는 것과 손해 보는 것이 많았습니다. 이 모든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담대하게 주님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 길이 곧 진리의 길이고 신자의 길임을 확신했기 때문이죠. 양보, 손해, 어려움, 고독은 세상이 볼 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주님이 보실 때에는 진실이었습니다. 신자들이 세상의 빛이 되는 길은 착한 행실, 의로움 및 진실함에 있는 것이지 세력을 형성하고 군림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권력과 힘을 장악하려고 하면 현재 로마 카톨릭과 같이 되고 말 것입니다. 정치 단체이고 권력의 상징이 되어버린 로마 카톨릭을 닮아가려는 현상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는 것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신자들 각자도 서로를 배려하는 경우가 있어야 합니다. 안면을 알고 있거나 관계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친절과 배려를 행하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에는 머리를 내밀고지지 않으려고 하는 우리의 모습은 정말 꼴불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목회자들이 교회를 장악하려고 교인들을 상대로 퇴직금의 액수를 놓고 싸우는 모습, 자신의 지도자를 자리에 앉히려고 온갖 수단을 가지고 열 내는 모습, 재정 문제로 법정에까지 가서라도 다투는 모습, 교회당에 경찰들이 동원되어 있는 가운데 예배를 드리는 모습, 또는 아래위로 쳐다보는 증오심을 나타내 보이며 예배당으로 유유의 들어가는 파렴치한 모습. 여기에 무슨 사랑이 있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좀 더 태연한 모습으로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갖추었으면 . . . 세상의 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으로 살아갔으면 . . . 손해를 보면서도 양보하면서 달관하는 모습으로 신자들이 살았으면 . . . 성도들이 원치 않으면 언제든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떠날 수 있는 목회자였으면 . . . 이권을 갖고 뇌물을 사용하는 총장직을 차지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 . . 이런 모습을 갖춘 교회를 찾고 싶다. 다니고 싶다. 성경적으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교회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참된 신앙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교회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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