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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름 받은 그 소명을 다 이루려고 하나님의 복음을 로마 교회에 힘써 전하려 하였습니다. 이 소명 의식은 서신의 인사말에서 복음의 위대한 해명으로 표출되었고(롬 1:2-6),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는 로마 교회의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심정으로 이어졌으며(롬 1:8), 로마 교회를 간절히 방문하여 그 교회를 견고히 세우려는 소원으로 표명되었습니다(롬 1:9 이하). 로마서를 작성할 시점에 사도는 두 가지 중요한 사명이 있습니다(롬 15:14 이하). 하나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로마 맞은편 일루리곤까지 복음을 전파해 왔던 사도가 로마를 지나 스페인으로 가려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방인 교회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돕는 일을 마치려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일은 사도가 전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과 교제의 악수를 나누면서 맡은 사명입니다(갈 2:9-10). 사도들의 교제와 협력은 결국 부활하신 주님의 위임명령을 온전히 받들어 행하려 하는 것입니다(마 28:18-20). 사도는 이 두 사명을 잘 이루려고 로마 교회를 방문하려 하는 것이고 이 방문의 목적을 잘 이루려고 먼저 로마서를 작성해서 복음의 위대한 교훈을 베풀고자 하는 것입니다. 로마 교회가 이미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만, 사도가 보낸 로마서를 통해 복음을 더욱 잘 배우게 된다면 이후 사도의 방문을 통하여 큰 유익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롬 1:9-15). 이런 목적들을 염두에 두고서 사도는 먼저 복음을 간략하게 그러나 심오하게 제시합니다.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는 표현은 소극적인 어법입니다만 실은 주님의 제자로 사는 삶, 소명을 이루는 삶을 잘 나타냅니다(막 8:34이하). 주님을 따라가는 길은 장미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 정원 사이로 난 아름다운 길이 아니라 가시덤불을 뒤엉킨 힘든 길입니다. 무릇 소명은 그리스도와 복음을 대적하는 세상 한가운데서 미움과 반대와 심지어 핍박을 이겨야 이룰 수 있는 그런 일입니다. 주님을 따라서 소명을 이루고 가려면 죽음보다 힘든 그런 부끄러움이라도 견뎌야 합니다.
사도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는 이유를 분명히 제시합니다. 복음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한낱 사람의 입에서 나와서 대기 중에 사라지는 한낱 사람의 말이 아닙니다. 복음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눅 1:37; 벧전 1:25). 99세나 되는 아브라함더러 이삭 주실 일을 통하여, 하나님을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분,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으로 믿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복음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데, 거기에는 하나의 조건이 붙습니다. 즉 복음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오직 복음(오직 말씀),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 ‘오직’들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입니다(오직 하나님께 영광).
복음은 오직 믿는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인데, 그와 동시에 ‘모든’ 믿는 자에게 그러합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나 상관없이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부르시는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차별이 사라지고 진정한 의미에서 인류의 통일이 이루어집니다.
(엡 2:14-15)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인생 가운데서, 이 세상 가운데서 참된 통일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미암아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경륜이 첫째는 유대인에게입니다만 또한 헬라인에게도입니다. 복음에서 하나님의 언약과 예정이 온전히 하나가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셔서 옛 언약을 다 이루십니다만, 놀랍게도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대적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처럼 그리스도의 사도가 먼저 유대인들에게 부활의 그리스도를 전파합니다만, 유대인들이 미워하여 사도를 핍박하자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파되어 거기서 하나님의 백성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예정이 언약을 위반한 유대인에 의하여 성취되고, 그 결과 새 언약의 거룩한 사회가 생깁니다. 사도는 복음에 나타난 이 심오한 경륜을 깨닫고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롬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사도는 복음에서 예정과 언약의 일치를 발견하였습니다. 영원과 시간이 복음에서, 그리스도와 교회에서 일치됩니다. 이 위대한 사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새 사람이 성신 안에서 하늘의 아버지께 가까이 나아가는 예배로써 실현되고 있습니다.
(엡 2:16-18)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진토 위의 죄인들이 하늘들의 하늘보다 높으신 하나님과 거룩한 사귐을 나누는 자리에 이르는 이것이 신약의 예배입니다. 이 예배에서 위대한 화목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인생이 차별 없이 하나 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새 사람이 성신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때에 동시에 과거와 미래도 통일을 이룹니다. 인류의 과거는 그리스도와 교회에서 그 목표에 도달했고 인류의 현재는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실질을 드러내는 과정이며, 그 미래는 우리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나라를 상속하는 것입니다.
과연 그리스도 안에 참된 통일이 있습니다(골 1:15-20).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참된 평안과 교제가 그리스도의 교회를 통하여 세상 가운데 이루어지고, 역사의 과거와 미래가 그리스도와 연합된 교회의 행진에서 그 의미를 얻고, 시간과 영원이 그리스도의 교회가 성신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데서 하나됩니다. 과연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전쟁도 쉬고 질병도 사라지고 슬픔도 사라지며,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가 하나되어 의가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에 거하며, 거기서 영원한 기쁨 중에서 주 하나님을 섬기며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미래요 약속입니다.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 교회의 가장 바른 자태를 드러내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열복하는 태도로 지금까지 흔들림 없이 서서 나왔습니다. 오늘날 어떤 교회가 무슨 사업을 펼치기보다 그저 복음을 전하고 받는 일에 힘쓴다고 한다면 조소를 당하기 십상일 것입니다만, 그러나 세세토록 있는 하나님의 말씀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 전하고 받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라 교회의 가장 적극적인 태도입니다. 복음에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곧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삽니다. 옛적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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