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9년 최초 공개된 루터교-로마가톨릭 '칭의교리 공동선언'에 대해 기독신문은 최홍석 교수(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 조직신학)의 비판적 해설을
게재한 바 있다. 지난 7월 세계감리교협의회가 이 선언에 동참하면서 개혁/장로교회가 향후 이 선언에 동참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일각에서 일고
있다. 이 공동선언을 개혁파 신학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 이승구 교수(국제신대원 조직신학)에게서 듣는다. 개혁교회의
관점에서도 몇 가지 중요한 부분에 동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공동 선언은 그 이상의 말을 하고 있기에 전통적 개혁자들의 가르침을 존중하며
그들이 강조한 성경적 가르침을 존중하는 사람으로서는 이 문서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는 부분들이 있다.
특히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에서 심각한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 선언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칭의"(justification by God's grace through faith in Christ)라는 말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이 말로
서로가 설명하는 것이 다르다고 하는 것을 드러내면서 그렇지만 같은 말을 사용하는 이상 근본적 진리를 같이 공유하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그러니
서로 교리적 정죄하지는 말자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을 사용하면서도 사실 그것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칭의"라는 말의 의미를 손상시키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나 역사적으로 변화된 상황 속에서 그런 식의 질문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 대화 상대자들의 생각이었다. 이 선언문은 "그 동안 교회들로 하여금 분리케 하는 문제들과 정죄들을 다시 점검해 보도록 하고,
또 그것을 요구하는 변화가 일어나 그 문제들과 정죄들을 새로운 빛에서 보게 한다"(제7항)고 말한다. 따라서 이 공동 선언은 로마가톨릭과
루터파가 그 정통적 입장에 충실하지 않고 자신을 변화시켜 가는 변화의 빛에서 읽혀져야 한다. 둘 다 성경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변화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이라면 그것은 매우 환영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소위 근대와 현대에 나타나고 있는 신학의 변화의 빛에서 과거를 돌아보며 우리는
새로운 상황 속에서 서로를 인정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제13항의 표현은 바로 이런 일이 여기서
나타나고 있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세미-펠라기우스주의? 이런 변화된 분위기 가운데서 이
선언은 로마가톨릭교회가 "사람들이 하나님의 칭의하시는 행위에 동의함으로써 칭의를 준비하고 받아들이는 일에서 '협동'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용인할 수 있었다(제20항). 그 근거는 그런 개인적 동의 자체가 은혜의 결과요 사람의 본유적 능력에서 나오는 행동이 아니라고 이해함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과거 개혁자들은 로마가톨릭교회의 그런 주장을 정확히 이해하면서 그러나 그런 식으로라도 '협동'이 언급될 수 있는 것이
반(半)-펠라기우스주의(Semi-Pelagianism)임을 분명히 했던 것이다. 이에 동의하는 새로운 루터파 교회는 로마가톨릭의
반-펠라기우스주의를 받아들이기로 한 교회라고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를 받아들이는 감리교회는 아르미니우스주의를 넘어서 반-펠라기우스주의에로
나아가기로 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칭의에 인간이 기여한 것이 없음을 강하게 인정하면서도 선행의 '공로적' 성격을 확언하는
것에서도(제38항) 이런 점이 나타나고 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이렇게 말할 때 그들은 성경적 증언에 따르면 이런 선행들에 대해서는
하늘의 보상이 약속되어 있음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할 때에도, 오히려 인간 행위의 공로적 성격을 다 버리고서 그러나 주께서 부족한 선행에
대해서 상을 주신다면 그것을 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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