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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주차. 말씀에 붙들린 사람

최더함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5. 4. 14. 21:03

본문

15주차. 말씀에 붙들린 사람

 

 

 

본문: 18:1-1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 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가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사도행전을 강해하는 목적은 복음전파의 역사를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전파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되새기고 믿음의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일 것입니다. 나아가 특별히 사도행전의 은혜를 접하는 아리엘교회의 성도들이 복음전파의 사명감에 고취되어 자신과 교회의 부흥을 위해 헌신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오늘도 주 안에서 크신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1. 고린도

 

 

 

우상숭배의 땅, 아덴에서 바울은 기대한 만큼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실라와 디모데가 데살로니가로부터 와서 좋은 소식을 전합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이 환난 가운데서도 믿음의 본이 될 만큼 잘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이때의 일이 데살로니가서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 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살전1:6-7)

 

 

 

그리고 자신은 아덴에서 쫓기다시피 하여 혈혈단신으로 아가야 지방의 수도인 고린도에 도착합니다. 고린도(코린토스)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와 그리스본토를 연결하는 좁은 해협에 위치한 작은 항구도시로 해상무역의 입지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많은 상거래가 있었습니다. 주전 146년에 로마에 복속되었고 주전 44년에는 율리우스 시저가 이 곳에 로마의 퇴역군인들을 이주시키고 로마식의 도시로 재건하여 아가야 지방의 중심도시가 되었지만 성적으로 퇴폐문란한 천박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이 도시의 제일 높은 곳에는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고 이곳에는 약 1천여 명의 여 사제들이 상주하며 찾아오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공공연하게 매춘행위를 벌였다고 합니다. 헬라인들은 이 도시를 코린디아조마이라고 불렀는데 고린도의 부도덕을 훈련한다는 뜻으로 난잡한 고린도인들을 놀리는 말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부도덕하고 허영에 사로잡힌 도시였기 때문에 인간적으로는 하루도 머물고 싶지 않은 곳입니다. 오늘의 우리 서울이 과연 고린도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요? 서울이 이렇게 퇴폐화된 것에 어찌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이 없다 하겠습니까? 우리가 먼저 회개하고 솔선수범해야 할 것입니다. 어쨌든 이 타락한 도시는 1858년에 대지진이 일어나 완전히 폐허가 되었습니다. 지금 있는 도시는 옛 지역으로부터 약 5km떨어진 곳에 다시 세운 도시입니다.

 

 

 

2.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실라와 디모데를 다시 데살로니가로 보내고 바울은 이 천박한 도시에 동행하는 사람도 없이 홀로 찾아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바울은 이곳에서 두 사람의 부부를 만납니다. 그들이 바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라고 하는 본도 출신의 유대인 부부입니다. 이들이 어떻게 해서 고린도로 오게 되었습니까? 2절에 해답이 있습니다. 때는 로마제국의 4대 황제인 글라우디오(클라우디우스/41~54)황제의 추방령에 따라 이곳까지 온 것입니다.

 

 

 

이 황제는 로마 2대 황제인 디베료(티베리우스)의 조카입니다. 재위 시 영국을 정복하고 독일의 라인 강까지 영토를 확장하는 등 국토 확장에 주력하였습니다. 또 헤롯 대왕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 1세와 교분을 쌓고 그를 유다의 왕으로 책봉하였다. 이런 배경 때문에 글라우디오 황제는 로마에 거주하는 유대인에게 예배를 허용하는 등 관용 정책을 펼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으로 그는 황제숭배를 강요했는데 숭배를 거역하면 몇 십 배의 세금폭탄을 내려 로마에서 살 수 없도록 조치했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이 강력하게 황제숭배를 반대하며 크레스토스(그리스도) 소동을 벌이자 로마에서 유대인 추방령을 내렸습니다(18:2, Suetonius글라우디오의 일대기’). 그는 메살리나(Messalina)와 결혼했으나 아내의 영향력이 너무 크자 불륜과 음모 죄로 처벌하고 조카 아그립피나(Agrippina)와 재혼했는데 오히려 그녀의 손에 독살당했습니다. 아그리피나가 황제를 독살한 목적은 자신의 아들을 황제에 올리기 위함이었는데 그가 바로 5대 황제인 네로(Nero)입니다. 어이없게도 네로는 나중에 자신의 모친을 살해합니다. 신약 시대의 선지자 아가보는 천하에 큰 흉년이 들 것이라 예언했는데, 그의 예언은 글라우디오 황제 때 성취되었습니다(11:28).

 

 

 

아무튼 이때 추방당한 유대인들이 각지로 흩어졌는데 그중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고린도로 이주한 것입니다. 낯선 곳에 온 바울의 입장에서 이 부부를 만난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겠습니까? 얼마나 반가웠으면 바울이 그들을 찾아 갔다고 하였습니다(2). 아마 이때 바울은 이들 부부에게서 로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로 인해 바울은 로마에 가야겠다고 결심했을지 모릅니다. 19:21을 보겠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리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뒤의 일이지만 바울이 로마서를 쓸 무렵에 이들 부부는 다시 로마로 돌아가 있었고, 바울은 이들을 동역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16:3). 고린도에서 만난 이들은 더구나 천막을 만드는 직업이 같았기 때문에 의기투합하여 동업자처럼 노동을 하며 공동생활을 합니다. 왜 천막을 만들었을까요? 이들 부부 또한 로마에서 추방당할 때 완전히 빈털터리로 나온 사람들입니다. 거지가 된 것입니다. 거지들은 대개 도시로 갑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에 가야 먹을 게 있기 때문입니다. 거지들이 제일 많이 몰리던 도시가 바로 가장 무역이 성행하고 돈이 많고 사람들이 붐비고 타락한 고린도였습니다. 이렇게 영입된 사람들이 당장 집을 구하지 못하므로 거주할 텐트가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이들 부부가 함께 천막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한 것입니다. 알다시피 바울의 집안도 천막제조업을 하던 가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도 쓸데없는 일을 하시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은 이걸 내가 왜 해야지?’하는 일도 나중에 가면 다 쓸데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계획이요 섭리인 것입니다.

 

 

 

한편으로 바울과 이들 부부의 심정이 그리 편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장막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집중된 노동이 필요한 작업이었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고린도에서 16개월을 있으면서 일을 한 것입니다. 사도와 두 부부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이들 모두 어쩔 수 없이 고린도로 등 떠밀려 온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먹고 살기 위해 가진 재주를 부려 천막을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때의 심정이 고전 4;12-13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또 수고하여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장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빵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가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같이 되었도다

 

 

 

이렇게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 그때부터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이 와중에도 고린도교회를 탄생시키시고 동역자가 된 이들을 통해 안식일마다 회당에 가 유대인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하도록 이끄시었습니다. 우리는 세속 직업의 고단함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역과 봉사의 부담이 어떤 것인지를 안다면 이 장면에서 숙연해져야 합니다. 아무튼 이들은 고린도에서 만나 서로 의지하며 고군분투했습니다.

 

 

 

3. 실라와 디모데의 합류

 

 

 

5절입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실라와 디모데가 고린도에 도착했습니다. 지친 바울에게 두 사람은 참으로 오랜만에 단비 같은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참으로 단단하게 자리잡혔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래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르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살전3:7-8)

 

 

 

얼마나 그동안 죽을 맛이었으면 이제는 살 것 같다고 고백합니까? 비록 몸은 힘들고 고단하지만 동역자들이 돌아왔고 또한 좋은 소식을 전해주니 이제는 살맛이 난다는 것입니다. 참다운 목회자들이 힘을 얻는 때가 언제인 줄 아십니까? 사례금 받고 좋은 칭찬 듣고 선물 받을 때가 아닙니다. 뿌린 말씀이 성도들의 영혼 속에 파고 들어가서 열매로 나타나는 것을 볼 때입니다. 이것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기쁨입니다. 목회자는 이 기쁨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최고의 가치로 아는 사람이 소명자요 하나님의 청지기요 일꾼입니다.

 

 

 

마게도냐에서 내려온 이들이 좋은 소식만 가지고 온 것이 아닙니다. 4;15과 고후11:8에서 언급되었듯이 마게도냐 지방의 성도들이 모은 상당액의 헌금까지 들고 온 것입니다. 그런데 고후 11:8에서 바울은 이 비용을 탈취했다고 표현합니다.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비용을 받은 것은 탈취한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상당히 전투적인 용어입니다. 이 말은 자발적으로 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강제로 내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투의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교회와 성도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전투에 필요한 경비를 당연히 교회가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비용은 개인적인 용도가 아니라 복음전파와 성도를 섬기기 위한 비용입니다. 바울은 자비량선교의 원칙을 가지고 있었지만 복음사역을 위한 선교비를 거절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비용은 한 번도 욕심낸 적이 없지만 오직 복음사역에 필요한 경비는 탈취했다는 표현을 쓸 만큼 적극적이었습니다. 이런 재정적인 뒷받침에 의존하여 바울은 전적으로 복음전파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결코 바울은 삯꾼 목자가 아닙니다. 그는 외부의 지원을 말씀에 사로잡히는데 활용했습니다. 이제 바울은 전력을 대해 다시 복음전파에 매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5절을 보세요. 여건이 구비되자 바울이 힘을 냅니다. 이것을 누가는 말씀에 붙잡혔다고 표현합니다. 말씀이 바울을 아예 사로잡아서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상태를 말합니다.

 

 

 

4. 거센 저항

 

 

 

우리는 사도행전의 역사를 통해 말씀이 흥왕할수록 거센 저항이 항상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고린도에서도 바울이 말씀의 능력을 회복하고 강력하게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자 유대인들의 저항이 일어납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이것이 하나의 패턴입니다. 먼저 회당에 가서 유대인들에게 복음 전합니다. 유대인들의 저항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이젠 이방인에게로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이 과정에서 극히 소수의 유대인들이 회심하고 오히려 이방인 사회에서 복음의 효과가 극대됩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자 유대인들을 떠납니다. 누가는 6절에서 재미있는 표현을 합니다. 바울이 떠나면서 옷을 털었다고 기록합니다. 이 행동은 유대인들이 자신의 무죄함을 증명하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끝내 거부하는 집을 만나면 신발의 먼지를 털어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책임은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7절을 보니 바울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집에서 나와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아마 이 사람이 천막공장에 지내던 바울을 위해 좀 더 나은 거처를 제공한 것 같습니다. 집이 참 좋은 곳에 위치했습니다. 회당 바로 옆입니다. 그래서 회당장과 자주 만나게 된 모양입니다. 그 결과 가장 은혜를 입은 유대인이 누구냐 하면 8절에 나오는 회당장 그리스보입니다. 회당 사람들은 저항했으나 회당장과 그 가족은 회심을 했습니다. 빌립보 감옥의간수와 그 가족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입니다. 바울은 고전1;14에서 그리스보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기록했습니다.

 

 

 

5. 놀라운 부흥

 

 

 

그런데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이후 수다한 고린도인들이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도 바울을 적극 도우십니다. 드로아에서 환상 가운데 나타났던 하나님이 다시 고린도에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격려하십니다. 9-10절을 보세요.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이 구절은 가나안 진입을 목전에 둔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을 상기시킵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1:9)

 

 

 

하나님은 바울에게 옛날 가나안이 정복된 것처럼 고린도도 정복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성에 허다한 주의 백성이 있다고 알려주십니다. 마치 처음 낚시를 하는 초보자에게 바다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찾아와서 고기가 잘 잡히는 지점을 가르쳐 주는듯한 말씀입니다. 고린도라는 도시가 물 반 고기 반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기분 좋은 정보입니까? 우리 정릉지역도 이런 지역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기서 바울을 대적할 자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제아무리 유대인들이 너를 비방하고 저항하고 고소해도 걱정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곳에서 무려 16개월 동안 상주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가르쳤습니다. 그리하여 고린도교회가 탄생하고 퇴폐 문란했던 이 도시에서 주의 제자들이 만들어졌습니다. 바로 이 교회를 위해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불후의 교리와 윤리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저 위대한 고린도 전, 후서가 기록되어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자신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그가 비록 회심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죄 가운데 있고 게으르다면 하나님은 그에게서 멀리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생명 구원에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생명이 아름다운 열매로 자라나기를 원하십니다. 이 일을 위해 애쓰는 아리엘 성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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