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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주차. 반쪽짜리 지식

최더함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5. 5. 6. 08:44

본문

18주차. 반쪽짜리 지식

 

 

18:24-28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히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1. 에베소(Ephesus)


 

 

오늘 이야기의 장소는 에베소입니다. 에베소는 에게 해 사모스섬 맞은 편의 아시아의 항구도시로 상업의 중심지였고 아르테미스(아데미) 여신의 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아데미 여신은 고대 근동지방의 풍요의 신이며, 에베소에 있는 아데미 신전은 고대 7대 불가사의로 알려져 있습니다. 역사가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주전 555년에 에베소를 정복한 리디아 왕 크로에수스가 에베소를 아데미 여신에게 헌납했다고 합니다. 아데미 신전에는 약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신전 뜰이 있었고 사도 바울 당시 신전 앞에는 은으로 아데미 여신의 우상을 만들어 장사하는 상인들이 즐비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실제 역사에 있어서 에베소는 아데미 여신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주변 강대국에 의해 계속 정복당하여 식민지 신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주전 546년에 페르시아에 점령되었다가 주전 334년에는 알렉산더 대왕의 부하장군인 리시마쿠스 장군이 정복했고, 새로운 항구도시로 건설했습니다. 주전 281년에는 수리아의 셀류쿠스 1세가 정복했고 주전 133년부터 로마의 통치하에 들어갔습니다. 주전 88년에 반란을 일으켰지만 로마군에 의해 무참히 진압 당했습니다.

 

 

바울은 선교여행 시 에베소를 두 차례 방문합니다. 사도행전 18장에 나오듯이 2차 선교여행 시 방문한 것과 3차 여행 시 이곳을 다시 방문하여 회당에서 3개월(19:8), 두란노 서원에서 약 2(19:9-10)을 보냅니다. 이때 바울의 사역이 대성공을 거둡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을 했고, 또 훌륭한 믿음으로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3차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가던 중 에베소 근처의 밀레도 섬에 잠시 머물며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을 그곳으로 초청하고 작별인사를 합니다(20:26-37).

 

 

에베소를 향한 바울의 관심과 사랑은 고스란히 에베소서에 담겨 있습니다. 내용으로 미루어 당시 에베소 교회 안에는 서로 순수한 사랑을 나누지 못하여 서로 높다 낮다, 부하다 가난하다 등으로 대립하고 심각한 갈등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5:1)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6:9)

 

 

전승에 의하면 사도 요한이 말년을 에베소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계시록에는 에베소교회가 여러 시련 중에 바른 교리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고 인내하였으나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질책합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덜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2:2-5)


 

 

2.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아볼로


 

 

에베소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아볼로라는 한 사람이 찾아옵니다. 우리는 한 사람의 일생을 이야기할 때 출신지역이 어디냐를 궁금해 합니다. 출신지에 따라 그 사람의 성향이 간접적으로 파악되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주전 331년에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로부터 이집트(애굽)을 탈취한 이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따 건설한 신도시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자 이집트는 부하 장군이었던 프톨레미가 차지합니다. 11:3-4는 이 역사를 미리 예언했습니다.

 

 

장차 한 능력 있는 왕이 일어나서 큰 권세로 다스리며 자기 마음대로 행하리라. 그러나 그가 강성할 때에 그의 나라가 갈라져 천하 사방에 나누일 것이나 그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또 자기가 주장하던 권세대로도 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 나라가 뽑혀서 그 외의 다른 사람에게로 돌아갈 것임이라

 

 

역사가 증명하듯이 신도시에는 항상 새로운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새로운 것은 인간의 본능을 자극합니다. 모든 인간은 자신이 새로워지길 기대합니다. 어제는 기분이 나빴지만 오늘은 기분이 좋아지길 바랍니다. 친구와 싸우고 난 다음날 후회를 하며 자신이 좀 더 넓은 마음으로 친구를 대하지 못한 것을 후회합니다. 새로워지고 싶어서 인간은 물건도 새것을 좋아합니다. 새 옷, 새집, 새 자동차를 원합니다.

 

 

그러나 새것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마누라도 조강지처가 좋고 친구도 죽마고우가 좋고, 도자기도 오래된 것일수록 값이 나갑니다. 그러니 새 아내를 찾겠다고 하지 마십시오. 자식이 말 안 듣는다고 버리고 새로운 자식을 직원 채용하듯이 들일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도 오랜 전통을 가진 신앙공동체가 되면 좋겠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금세 로마제국 내에서 제 2의 도시로 성장합니다. 특히 이 도시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이주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에 의해 학문의 중심지로 발전합니다. 이곳에 세계적인 도서관과 박물관이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알렉산드리아학파가 형성되었습니다. 대학자이자 역사가인 필로가 이곳 출신입니다. 주전 3세기에는 ‘70인 역성경이 만들어졌는데 이는 아람어와 히브리어를 잊어버리고 헬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에게 구약을 가르치기 위해 헬라어로 번역한 성경입니다. 번역하는 데에만 거의 1백년 이상 소요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도시대에도 79인 역 석경은 그 권위를 인정받았습니다. 유세비우스의 교회사에 의하면 알렉산드리아와 이집트에 복음을 맨 처음 전한 사람은 사도 마가라고 합니다.

 

 

아볼로는 바로 이곳 출신의 유대인입니다. 일찍이 배움의 고장에서 자란 덕분인지 그는 학문에 있어 출중한 실력의 소유자로 소개됩니다. 24절에 보니, 언변이 좋다고 했는데 영어성경은 이것을 배운 사람’(a learned man)이라 번역했습니다. 헬라어로 로고이아인데 이는 논리적이며 달변가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말 잘하는 사람을 좋게 보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말 잘하면 사기꾼 기질이 농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다소 과장되거나 배운 사람에 대한 시기 질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언변이 좋다는 것은 학식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학식이 없는 사람은 말을 조리 있게 표현하지 못합니다. 아나운서처럼 말을 잘 하려면 책을 많이 읽고 말하는 법을 연습해야 합니다. 면접을 볼 때 시험관은 제일 먼저 응시자가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진술하는지 못하는지를 체크합니다. 대개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정확하게 기승전결로 자신의 생각을 답변합니다.

 

 

무엇보다 아볼로는 성경에 능통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경은 물론 구약입니다. 아볼로는 구약성경에 대한 지식이 출중했습니다. 왜냐하면 25절에 보니, 일찍부터 주의 도를 배웠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어릴 때부터 성경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 매우 강조합니다. 딤후 3:15를 봅니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그렇습니다. 어릴 때부터 성경을 배운 사람의 지혜는 보통 사람이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 이유가 다음 구절에 있습니다. 16-17절을 함께 읽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이걸 풀이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엔 속이 후끈거리고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둘째, 인생에 필요한 모든 것이 성경에 다 있습니다. 즉 필요한 교훈이 있고, 하나님의 꾸짖음이 있고, 그로 인해 회심하여 바른 인생의 길로 안내하며 의로움이 있습니다. 타락한 죄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그런데 이 성경은 오직 하나님의 사람에게만 적용되고 효력을 발휘하여 선한 존재로 탈바꿈시킨다는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성경을 읽고 감동도 없고 교훈도 느끼지 못한다면 그는 아직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한 자이거나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자입니다. 제아무리 세상적으로 학문이 출중하고 고매한 인격을 가졌다고 해도 진리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은 여전히 영적으로는 어린아이에 불과합니다.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모든 세상적인 지식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이어령 박사도 성경에 눈 뜨자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지식인이 되었습니다. 함께 빌3:7-8을 읽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도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스퀴발론)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자기는 똑똑하고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는지는 몰라도 그냥 성인아이에 불과합니다. 애들이 뭘 압니까? 애들은 자기를 기준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자기 기분에 맞으면 좋아하고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면 뱉어버리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응애하고 울고불고 떼쓰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문제로 속을 썩이는 가족들을 참고 기다려줘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그들은 아직 영적으로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어린애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15:1-2를 읽습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3. 반쪽자리 지식


 

 

그런데 25절에 보니, 아볼로도 자기 딴에는 열심히 주의 도(메시아의 길)를 배운 사람입니다. 그가 언제 예수님의 도를 배웠는지에 대해선 알 길이 없습니다. 추측컨대 세례 요한의 세례만 아는 것으로 보아서 아마 요한의 제자들과 접촉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알다시피 요한의 세례는 물세례이고 예수의 세례는 성령 세례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 앞에서의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3;16)

 

 

그럼에도 아볼로는 예수님을 말하고 가르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여기서 가르치다디다케인데 이 단어는 복음을 전문적으로 전하는 사역자들이 쓰는 전문용어입니다. 이로 미루어 아볼로는 일찍부터 성경을 연구한 학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학문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성장하면서 선조들이 준비한 ‘70인 역헬라어 구약성경을 배우고 익혀 성경에 능통할 수 있었던 것이입니다. 거기에 언변까지 갖추고 열정까지 갖추었으니 이만한 인물을 만나보기 힘듭니다.

 

 

저는 아볼로를 보면 우리나라의 이어령 박사가 떠오릅니다. 어릴 때 저는 개인적으로 이어령 씨의 장군의 수염이라는 작품을 읽고 한 잠을 자지 못한 기억이 새롭습니다. 이후 흙속에 저 바람 속에, 상상력의 거미줄, 생각의 날개를 달자, 축소지향의 일본인, 그래도 바람개비는 돈다, 떠도는 자의 우편번호등등 그의 작품이라면 즐겨 찾아 읽고 감탄했습니다. 그는 정말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인 중의 최고 지성인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라는 작품을 통해 주님을 영접했다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신의 나라는 가라고 소리쳤던 인물입니다. 그런 사람이 주님을 영접하고 회심을 한 것입니다. 기적 중의 기적인 것입니다. 곧 이어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불후의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지금까지 쌓아왔던 자신의 지성이 반쪽자리 지식임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어쩌면 이어령 박사는 현대판 아볼로였는지도 모릅니다.

 

 

, 오늘의 본문 속에 만나는 아볼로가 그런 상태입니다. 아볼로는 자기 딴에는 열심히 주의 사역을 합니다. 그런데 26절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들어보니 뭔가 아쉬웠던 것입니다. 예수를 말하기는 한데 사도들이 증언하는 예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뭔가 2% 부족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지만 예수님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차가 고장 났습니다. 그런데 수리공이 차 수리에 대해 일부만 기술을 가진 사람입니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고장이 나도 자기가 아는 부분이었는데 어느 날 듣도 보지도 못한 엔진 부분이 고장난 차가 수리를 맡긴 것입니다. 아는 지식과 기술을 총동원하여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고쳐보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때 누구의 도움이 필요합니까? 바로 전문가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덜 된 기술자가 많습니다. 영어로 반쪽짜리라 하여 ‘half man'이라 하고 준비가 안 된 사람이라 하여 ’'unprepared man'이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사람은 좀 더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 딴에는 다 되었다고 현장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결과가 나타납니까? 우리 속담에 선 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했습니다. 어설픈 무당을 일컫습니다. 돈키호테 같은 사람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렇게 된 것은 어설픈 목회자들이 양산되었기 때문입니다. 대충 신학교 졸업하면 바로 목회현장에 서서 설교를 했습니다. 주석공부나 성경원어도 배울 틈도 없이 몇 개 성경 지식을 가지고 강단에 섰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그리 만만한 존재가 아닙니다. 파고 파도 끝이 보이지 않는 신비한 세게입니다.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가늠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세계입니다. 그곳을 탐구하는 일이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정말 목숨을 내놓고 덤벼들어도 부족합니다. 수많은 선조들의 박식한 성경해석을 참고하고 수많은 시간을 무릎 꿇고 기도해도 열릴까 말까 합니다. 솔직히 저는 지금도 설교하는 일이 두렵습니다. 메주 이 강단에 서서 어떻게 하나님의 비밀의 지식과 고훈과 영원하신 뜻을 대언할까 고민합니다. 하고나면 얼마나 후회스러운지 모릅니다. 부끄러운지 모릅니다. 전도를 위해 녹화된 것을 유투브에 올리는 작업을 제 딸이 하지만 들어보면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아볼로가 그랬습니다. 덜된 지식인이었고 하나님의 사역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이런 사람에게 은혜를 더하십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비록 지금은 조금 모자라지만 아볼로의 마음의 중심을 보신 것입니다. 주에 대한 그의 열정을 보신 것입니다. 진리에 대한 관심 없고 열심도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사람에 비하면 아볼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 사랑이 26절에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반쪽짜리 지식을 가지고 있는 아볼로에게 이미 바울로부터 주의 도를 정확하게 배운 두 부부를 보내어 아볼로에게 한 차원 높은 주의 도를 가르칩니다.

 

 

그런데 두 부부가 아볼로에게 행한 태도 또한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26절 끝에 보면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라고 했는데 여기서 문법적으로 비교급을 사용한 것을 봅니다. 이것은 아볼로 이야기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뭔가 부족했으므로 보충을 해 주었다는 뜻입니다. 이 구절은 세상적으로 보면 가당찮은 짓입니다. 두 부부는 일개 천막기술자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아볼로는 대 성경학자입니다. 그런데 두 부부가 건방지게 대 학자가 말한 것에 대해 토를 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기술하지 않습니다. 앞서 아볼로가 다른 사람을 가르칠 때엔 디다케했지만 두 부부는 아볼로에게 가르치지 않고 풀어 이르다, ‘설명하다(explain, εξηγω)’입니다. 다시 말해 두 부부는 아볼로에게 이렇게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 선생님, 오늘 말씀에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세례 즉, 성령의 세례에 대해선 좀 더 보충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충고나 조언을 해도 겸손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인격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런 조언에 대해 아볼로가 흔쾌히 수용하고 두 부부의 집으로 가서 진짜 주의 도에 대해 듣고 배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볼로는 두 부부의 집에 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세 사람 모두 대단한 인물들입니다. 큰 인물들입니다. 소인배가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이 이들의 이름을 기록한 것입니다. 소인배는 충고를 하면 지적당했다고 여깁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조금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존심이 상해 얼굴이 벌개 지고 반드시 어떤 방식으로든 되받아칩니다. 그러나 대인은 마음이 바다처럼 넓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을 수 있었던 것은 기적도 기적이지만 바다보다 더 크신 분이기에 그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상대가 아무리 내 단점과 잘못을 지적하고 추궁해도 내가 상대보다 더 큰 인물이면 하나도 문제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인격을 갖추도록 노력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4. 달라진 아볼로


 

 

이제 아볼로가 어떻게 변합니까? 27절에 보니, 소아시아의 작은 도시 에베소가 그에게 좁아보입니다. 더 큰 지역으로 가고자 합니다. 그릇이 커진 것입니다. 그래서 유럽으로 건너갑니다. 화려한 문명의 도시인 아테네와 고린도가 있는 아가야 지방으로 건너갑니다. 그런 그를 많은 주의 형제들이 격려하고 응원합니다. 아가야 지방에 있는 아는 형제들에게 편지를 써서 아볼로를 소개합니다. 이런 일이 아볼로를 얼마나 격려하는 일입니까? 그리스도인은 항상 형제들을 격려해야 합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은 365, 24시간 쉬지 않고 영적 전쟁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서로 격려하고 위로합시다. 서로 의지하고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더욱이 아볼로의 능력이 배가되었습니다. 기껏 회당 안에서 주의 도를 가르치던 그가 28절에 보니 이제는 많은 공중 앞에서복음을 증거하고 반대하는 유대인들을 이깁니다. 변증의 능력이 크게 향상된 것입니다. 우리가 신학을 공부하고 교리를 배우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교리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는 사람이 복음의 능력이 나타날 리가 없습니다. 교리는 성경의 진리를 잘 정리 정돈한 것입니다. 어지러운 지식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훗날 아볼로는 고린도교회를 맡아 목회하였습니다. 여기서 얼마나 출중한 실력을 나타냈는지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디도서 3:13에 의하면 바울은 디도에게 아볼로에 대해 말하는데 이때, 63년경에 아볼로는 에베소 남쪽 그레데섬(crete)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루터는 아볼로의 탁월한 실력과 겸손함을 근거로 그가 히브리서의 저자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5. 결어


 

 

우리는 자나 깨나 성경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입니다(1). 여기서 묵상하다는 히브리어로 호게라는 것인데 이는 걸어가면서 무엇을 중얼거린다는 뜻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두루마리 성경밖에 없었으므로 성경을 직접 눈으로 보고 읽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서기관들이 회당에서 읽어준 성경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말씀을 통째로 암송하고자 계속 걸어가면서 중얼중얼 거린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율법을 거의 암송했다고 합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에게 주는 교훈이 매우 큽니다. 복음을 바로 전하기 위해 성경에 대한 바른 지식을 베우고 익혀야 합니다. 그런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http://cafe.naver.com/ariel300/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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