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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주차. 아버지와 어머니

최더함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5. 5. 13.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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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주차. 아버지와 어머니

 

 

 

(본문) 1:7-9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

 

 

 

1. 아버지 없는 사회, 신 없는 사회

 

 

 

옛날 가부장사회에서는 아버지가 말 그대로 법이었습니다. 성경의 무대가 되는 이스라엘사회는 철저히 가부장 중심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그의 권위는 절대적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식들의 모든 것을 결정하고 통치하는 권한을 가졌습니다. 21:7에 보면, 심지어 딸을 종으로 팔수도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공경과 복종의 대상이었고 그래서 아버지를 심각하게 모독하거나 저주, 불순종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도록 명령했습니다.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21:18-21)

 

 

 

가정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여겼습니다. 아예 이름에 아버지라고 새길 정도였습니다. 엘리압, 요압은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고 아비야, 아비엘은 나의 아버지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이스라엘을 자식으로 여기며 자신을 아버지라 자처하십니다. 사람의 아버지와 같이 하나님은 궁극적인 권위를 가지고 그의 자녀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반면에 자신을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는 세대들에겐 진노를 보이십니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1:6)

 

 

 

그런데 가부장사회는 이제 옛말입니다. 점점 모계사회로 변화합니다. 한 가정에서부터 전체 사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아버지 중심이 아니라 어머니 중심입니다. 아이들은 아버지 집안보다는 어머니 집안사람들과 더 가깝게 지냅니다. 고모보다는 이모를 더 자주 만나고 친할머니보다는 외할머니가 더 친숙합니다. 백화점 직원들도 이제는 어머니와 동행하는 사람을 보면 이모님, 이모님하고, 부부가 할머니를 모시고 오면 자동적으로 장모님한답니다. 대만의 어느 법정에 가보니 판사, 검사, 변호사 모두가 여자인데 오직 피고만 남자더랍니다. 아이들도 이제는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의 말을 더 무섭게 여깁니다. 경제권도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쥐고 있는 가정이 훨씬 더 많습니다. 아직까지 집안에서 경제권을 쥐고 있는 남자가 있다면 그는 시대역행적인 사람입니다(ㅎㅎ). 아버지는 한 가정의 지렛대요 버팀목이요 울타리였는데 이제 그 자리가 어머니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사회는 이미 모계사회로 진입했다고 진단합니다. 아버지의 권위는 이제 가정에서부터 무너졌습니다.

 

 

 

2. 아버지와 어머니의 개념

 

 

 

언어적으로 아버지는 히브리어로 아브이고 헬라어로 파테르이며 어머니는 히브리어로 에므이고 헬라어로 메테르입니다. 물론 이 단어는 꼭 육신의 아버지, 어머니에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아브는 조상(왕상15:11, 24)이나 조부(28:13)에게도 사용되고 에므는 할머니(왕상15:10)나 여자 사사(5:7)에게도 사용됩니다.

 

 

 

아버지는 위엄과 공의의 상징으로, 어머니는 자비와 사랑의 상징으로 사용됩니다. 각 민족의 언어를 살펴보아도 아버지는 강한 느낌이 나고 어머니의 이름은 부드러운 느낌이 듭니다. 전 세계 어느 나라 말이나 아버지는 거의 P, T, K 계열의 음입니다. 헬라어로 파테르, 영어로는 파더, 파파, 프랑스어는 페르인데 어머니는 거의 부드러운 M 계열의 유성음입니다. 헬라어로 메테르, 영어로 마더, 마마, 맘입니다. 어머니는 말랑말랑하고 포근한 반면에 아버지의 느낌은 회초리를 들고 있습니다. 자식이 미워서가 아니라 질서와 정의를 가르치는 임무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둘 다 보완관계입니다. 아버지만 있는 사회는 무서운 사회이고 어머니만 있는 사회는 아이고, 내 새끼하며 무조건 안아주는 사회입니다. 아이들이 탈선하면 애비 없는 후레자식이라 하고 어미가 없으면 불쌍한 눈으로 바라봅니다. 범죄자들을 잡아놓고 보면 모두 후회할 때 아버지를 찾는다고 합니다. 아버지만 있었어도 자기가 이런 범죄자가 안 되었을 것이라 말한답니다. 이런 때에 아버지는 참된 권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부권이란 이런 것입니다. 부권은 질서를 지키고 위험으로부터 목숨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여자와 자식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입니다.

 

 

 

반면에 어머니는 입니다. 어머니는 자식을 품에 품고 키웁니다. 아이는 자라면서 어머니의 따뜻한 품에 안겨 잠들고 어머니의 심장소리를 듣습니다. 어머니에게 자식은 신체의 일부입니다. 그래서 자식이 아프면 아버지는 멀뚱멀뚱하지만 어머니는 자기가 아픕니다. 짐승도 자식을 잃으면 어미는 포효하지만 수컷은 주위를 맴돌며 땅이 꺼져라 한숨만 짓습니다. 아버지는 육체로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어머니는 늘 자식과 육체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배 고프면 어머니를 찾고 돈이 필요하면 아버지를 찾습니다. 물론 요즘은 돈마저 어머니에게 손을 벌리는 시대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정리하면 어머니와 자식은 육체적 관계이지만 아버지와 자식은 영적인 관계입니다. 그래서 자식에 대한 애정은 어머니가 더 강합니다. 열 달 동안 자기 몸속에 품은 아이이고, 자기 품에서 키운 아식이기에 그 느낌과 애정을 평생 잊지 못하고 버리지 못합니다. 대신에 아버지는 자식을 몸에 품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자식의 변을 아무렇지도 않게 치우지만 아버지는 일단 상을 찌푸립니다. 더럽다는 이미지도 있지만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자식은 정신적인 관계입니다. 어머니의 역할은 울타리 안에서 자식을 품고 자지만 아버지는 울타리 밖에서 보초를 서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어머니를 찾지만 위급할 때엔 아버지를 찾는 것입니다.

 

 

 

3. 하나님 아버지

 

 

 

그러면 왜 성경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어머니라 부르지 않습니까? 어떤 역사학자들은 다산이나 풍요를 상징하던 고대사회의 여신들과 혼돈을 피하기 위해 아버지로 구별했을 것이라고 추론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에게도 어머니의 속성이 계시다고 언급하고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어머니로 묘사합니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아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131:2)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을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49:15)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때 아버지의 개념은 남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원래 성이 없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남성도 여성도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왜 아버지로만 부릅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아버지상징적 가부장입니다. 한 가정을 대표하는 존재는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입니다. 이 때의 아버지는 남성이 아니라 대표자입니다. 최고를 대변하는 것이고 최상을 표현하는 이름입니다. 아버지는 이 이름의 상징입니다. 어머니는 육체를 주셨지만 아버지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은 아버지를 따릅니다. 우리나라 여자들은 한 번 받은 성을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지만 일본은 좀 다릅니다. 남자는 성이 바뀌지 않지만 여자는 결혼하면 남편 성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자는 태어나면서 아예 비싼 상아도장을 파고 여자는 결혼 전에는 값이 싼 나무 도장을 팠다가 결혼을 하면 상아도장을 판다고 합니다.

 

 

 

여성 인권운동가들은 남성 중심의 사회 즉, 가부장중심의 사회가 여성을 억압한 증거로 보지만 이어령 박사는 이런 주장을 단호히 거부합니다. 이것은 생태적인 전략의 하나일 뿐으로 봅니다. 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어미로부터 독립하지만 사람은 태어나서 적어도 3년은 어머니의 손에서 길러져야 합니다. 이렇게 아기 옆에 붙어 있어야 하므로 어머니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모든 생계는 남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아버지는 가족을 지키고 먹여 살려야 합니다. 이렇게 가족을 지키는 자로서 아버지라는 이름이 있는 것입니다. 결국 가부장 제도라는 것은 권력을 쥐고 횡포를 부리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제도가 아니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생겨난 자연적인 현상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라는 이름에는 온 인류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의 속성이 담겨 있는 호칭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지상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어느 한 부분만을 강조하는 개념이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를 합친 부모의 개념입니다. 그 이름이 아버지일 뿐입니다. 결코 남성중심을 지향하는 언어가 아닙니다. 여성을 비하하고 여성에게 불리한 구도로서의 이름이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상의 아버지의 지위가 흔들리니까 하늘의 아버지의 위상도 흔들거린다는 것입니다. 이어령 박사의 말처럼 아버지 없는 사회 즉 '파더리스 소사이어티(fatherless society)'가드리스 소사이어티(Godless society)’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개념이나 권위나 위치가 달라지고 퇴색되고 있는 것입니다. 집안에서부터 아버지가 흔들리니 사람들은 점점 하나님을 아버지로 여기는 것을 거부합니다. 여성인권운동을 하거나 여성신학 운운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꼭 아버지일 필요가 없다며 어머니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만 부르는 것은 남녀평등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어불성설도 이런 어불성설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성경에 나타나 있는 아버지라는 개념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개념인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과 육신의 부모 중 남자를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같은 차원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4. 예수님이 오신 이유

 

 

 

성장하면서 모든 자식은 아버지보다 어머니와 더 친합니다. 아버지와는 세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어머니와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회초리를 들고 나무라고 징계하는 아버지는 당장 싫으니까 멀리하고 다정하게 자기편을 들어주는 어머니와는 친하게 지냅니다. 목회자에게도 이것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꾸짖고 나무라고 훈계하는 목사는 인기가 없고 너그럽고 다정한 목사는 사랑받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상에서 인류도 점점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인정하는 것을 계속 거부하였습니다. 인류가 어머니만 알고 진정한 아버지를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이 육체를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가르치시기 위해 하나님이신 분이 인간으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육체가 아니시지만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 가시적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개념을 몸소 가르치기 위해 어머니 역할을 자처하신 것입니다. 구약시대까지는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 훈계하시는 아버지의 역할을 하셨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머니적 요소 즉 사랑과 관용의 여성적인 역할을 주도하셨습니다. 비록 몸은 남성이셨지만 역할은 여성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버질 부르며 스스로 자신이 하나님의 독생자라 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분이라고 증거 하였습니다. 어머니만 수용하고 아버지를 거부하는 인류를 향해 하늘의 아버지를 기억하고 그분에게로 돌아가라고 주문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어머니의 육체성과 아버지의 영성을 모두 갖추어야 바른 인격의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원죄가 있어서 영혼만으로 살 수 없고 육체만으로도 살 수 없습니다. 아버지의 영혼의 말과 어머니의 육체의 말을 골고루 먹고 살아야 합니다. 둘 중 하나가 결핍되면 반쪽짜리가 됩니다. 무엇이 죄인입니까? 육체만 남고 영성을 잃어버린 인간이 바로 죄인입니다. 아버지를 잃어버리고 어머니만 찾는 인간이 바로 죄인입니다. 죄인은 불완전함의 상징입니다. 불완전함이 타락이요 부패입니다. 두 수레바퀴 중 한 쪽이 없으면 수레는 계속 그 자리에서 맴돌게 됩니다. 죄인이 그렇습니다. 죄인은 자신은 열심히 앞으로 가고자 하나 그 자리에서 돌 뿐입니다. 죄인은 아는 것 같으나 부분만 알고 온전히 행한다고 하나 결코 온전하지 못하고 선행을 한다 하나 참된 의미에서의 선행을 이룰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고장 난 인류를 고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두 인격체의 결합과 이 원리를 죄 많은 인류에게 가르치시기 위해 대가를 몸소 치루셨습니다. 그 방법은 가장 비싼 대가인 십자가 죽음의 고통을 감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지상 최대의 대가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값을 능가하는 것은 없습니다. 공자가 일생동안 수레를 타고 전국을 순례했지만 십자가 죽음의 값보다 비싸지 않습니다. 석가모니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득도를 하고 많은 제자들에게 좋은 가르침을 주었다고 해도 예수님의 공로와 가르침에 비하면 조족지혈입니다. 마호메트가 한 일의 수만 배, 수억 배를 더하고 곱하여도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런 가치가 없습니다. 그 누구도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 놓은 인생은 하나도 없습니다.

 

 

 

인류의 제일 큰 죄는 하나님 아버지를 부인하고 거부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잊어버린 인류의 죄 값을 예수님은 자신이 직접 치루시고 하나님 아버지를 찾는 자들에게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육체로만 존재하는 반쪽짜리 인생들에게 영성의 부분을 채워 모든 인생들이 온전한 인격체가 되어 영생을 누리는 길을 우리에게 제시하신 것입니다.

 

 

 

5. 결어

 

 

 

인간은 어머니의 육체성과 아버지의 영성으로 온전해집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로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공의로움이 합해져야 온전한 사회가 됩니다. 무조건 벌하는 정의만 강조되는 사회도 건강하지 못하고 무조건 감싸고 봐 주는 사랑만 강조되는 사회도 건강하지 못합니다. 성경에서도 불구덩이에 들어가 수많은 사람을 구하는 의로운 일을 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헛된 것이고, 또 사랑만 알고 아버지의 징계를 거부하는 사람 또한 하나님에 의해 거부됩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12:6-8)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아 우리는 육신의 부모와 함께 영원하시고 참된 우리의 부모 되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지금 아버지 없는 사회가 추세입니다. 이것은 인류의 위기입니다. 한 가정에서도 아버지의 자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가정의 위기입니다. 갈수록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집니다. 마치 남성과 똑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 평등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만 들립니다. 학교에서도 이제 회초리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것은 교육의 위기입니다. 오직 사랑만 외치는 반쪽자리 목소리로 인해 진짜 바르고 온전한 목소리는 묻혀 버립니다.

 

 

 

이런 위기의 세상을 바라보시며 주님은 우리가 회개하기를 바라십니다. 이 회개마저 증오하고 거부하는 풍조 속에서 과연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마음과 자세로 살아야 합니까? 그것은 우리가 먼저 모범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바르게 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바르게 자식을 교육하고 키워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역시 그리스도인들은 달라도 뭔가 다르다고 인정을 해야 합니다. 세상 자식이나 믿는 가정의 자식이 다른 점이 하나도 없다면 하나님의 회초리가 당연할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효도합시다. 우리가 먼저 자식교육을 온전하게 행합시다. 우리가 세상 앞에서 모범된 삶을 삽시다. 이것이 주님이 치루신 대속의 공로에 보답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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