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클레시아 3.0> 그 열아홉번째 이야기
성신께서 그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풍요로운 지식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해야만 성신께서 우리를 능력 있게 인도하시고 사용하신다. 우리에게 절박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관심과 그 말씀을 풍성하게 담는 일이다. 그것만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말씀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자꾸 실패한다. ‘내가 과연 말씀에 대하여 풍요로운가? 내 인생을 진행시킬 만큼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확인이 되어있지 않다면 함부로 어떤 일이든 하나님의 일인 것처럼 여긴다든지 나서는 일이 없어야 하며 사물을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거나 그것으로 자신의 길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1)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생득적 욕구 있어야
이제 우리는 성신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을 어떻게 경영해 나갈 것인가를 결정함에 있어서 가장 원칙적이고 초보적인 지식을 얻게 된다. 그것은 철저하게 수동적으로 사는 것이다. 갓난아이가 어머니의 태에서 나오면 그의 모든 삶을 철저하게 어머니에게 위탁하는 것과 같다. 오직 어머니의 손에 의지해 살아갈 뿐이다.
갓난아이가 자기가 알아서 자기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기 위해 자신의 생존권을 보존하며 보호하기 위해 방어력을 키우는 일은 없다. 갓난아이는 그런 능력을 가지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필연적으로 그 어머니에게서 버림을 받아 내던져짐을 당하면 죽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연약한 존재이다. 이것이 갓난아이의 처지요 형편이다.
곧 갓난아이는 그저 젖을 먹고 살아갈 뿐이다. 그것이 그 아이가 유일하게 할 일이다. 그것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어머니의 젖이 아프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거기에 생사를 걸고 젖을 빨아야 한다. 여유 자적해 가면서 쉬엄쉬엄 젖을 먹는 것이 아니다. 그 일에 자기의 생명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그 아이의 생명력이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서는 젖을 먹는 일에서 그 생명력이 발휘되는 것이고 그것만이 그에게는 유일한 생명의 능력이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생명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갓난아이가 자기의 전 삶을 다해 어머니의 젖을 먹는 것처럼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한다. 단지 기독교적인 지식을 채워나가고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참 생명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신님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라남으로써 그 능력이 발휘될 수 있다. 이것이 성신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원칙적인 모습이다. 성신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가장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욕구를 일으키게 하신다. 그리고 섭취된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을 양육시켜 나가게 하시는 것이 성신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편이다.
2) 우리가 서 있는 위치에 대하여
‘성령 충만’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충만한 삶을 가리킨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풍요롭고 충일했을 때 성신께서 우리를 가장 능력 있게 인도하신다. 그 상태가 바로 성신님의 충만한 상태가 되며 비로소 우리는 참으로 자유로운 삶을 갖게 된다.
그것이 바로 신자다운 삶을 살아가는 길이다. 가장 자연스러운 인격의 발휘가 그때부터 나타난다. 아무 것도 거리낌이 없는 자연스러움이 있다. 이런 상태가 바로 고린도전서 2장에 나오는 ‘신령한 사람’이다. “신령한 사람은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나 모든 것을 판단한다”는 말씀과 같이 우리가 그와 같은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신님의 인도를 받음에 있어서 가장 초보적인 모습이 바로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우리의 현실 위치는 바로 이 자리에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 단계에 지금 서 있다. 내 인생에 대하여 내 장래에 대하여 또는 미래에 대하여 염려할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는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강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의 생명을 더 이상 지탱할 아무런 힘도 얻을 수 없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이제 우리의 위치를 파악하고 유아적이며 피동적인 삶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따라서 무슨 일을 하겠다고 나서기보다 그리고 뭐라도 한번 들추어 내보겠다고 하거나 굉장한 일을 세워 보겠다고 할 것이 없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풍요로울 때 우리가 장성해 나가면 나갈수록 그만큼 더 큰 능력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모습이 하나님 나라의 실체이기도 하다. 또한 그것이 곧 우리 삶의 능력이다.
이보다 더 큰 구원의 역사는 없다.
<송영찬, CNB 706 교회와 신앙, 서울: 도서출판 깔뱅, 2007, pp.9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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