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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주차. 광대하고 유효한 문

최더함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5. 6. 4. 09:12

본문

22주차. 광대하고 유효한 문

 

 

19:21-41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리고 작정하여 이르되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동안 더 있으니라. 그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중략)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잡아 왔으니, 만일 더네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 것이라.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도 있고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자료가 없다 하고,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1.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바울은 에베소를 복음전파의 사령부로 삼은이후 두 해 하고도 반년이 흘러갔습니다. 기독교는 이제 에게 해의 양쪽 연안, 즉 아시아와 마케도니아, 아가야 지방에 안전한 복음의 보루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오늘의 본문을 끝으로 바울의 에베소 사역은 막을 내리고 다른 장소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천천히 다음 사역을 구상했습니다. 그의 선교정책은 롬 15:20에서 밝힌바 대로 다른 사람의 터 위에 세우지 않는다는 정책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돌아본 지역 이외의 새로운 지역을 구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21절에서 바울은 로마를 언급합니다. 로마는 누군가에 의해 이미 교회가 설립된 곳입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바울의 다음 선교지는 스페인이고 로마는 그곳으로 가는 도중에 방문할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스페인)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더니,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15:23-24)


 

 

바울은 서바나로 지나가는 길에 로마에 들르기를 원합니다. 비록 다른 사람에 의해 세워졌지만 로마교회에 가서 형제들을 만나보고 로마제국의 심장부인 수도 로마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의 형제들로부터 서바나 선교를 위한 경비를 조달받고 싶었습니다. 로마를 방문하고픈 바울의 이 소망은 훗날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바울은 로마로 가는 방식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습니다. 자기 발로 로마로 갈 것을 기대했지만 훗날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는 정말 한 치 앞을 보지 못합니다. 미래에 나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놀러가다 교통사고로 죽음을 당한 가족들이 아침에 현관문을 나설 때만 해도 자기들이 그런 끔찍한 사고를 당하리라 예상했을까요? 죽음을 알고 그 길에 들어설 사람은 없습니다. 미래는 위험한 길입니다. 나의 지혜와 힘과 능력으로 위험을 피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험한 길에 들어서지 않게 하시고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주만 의지하고 나아갈 뿐입니다. 시편 5:11을 일고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주께로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라


 

 

2. 연보


 

 

로마로 가기 전에 바울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지방을 들러 예루살렘에 가기로 계획했습니다. 누가는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의 주요 이유를 밝히고 있지 않지만 바울 자신의 글을 보면 가난한 예루살렘교회에게 여러 지방의 성도들이 모금한 헌금을 전달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예루살렘교회를 돕고자 하는 바울의 마음은 고전 161~4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 첫 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내가 이를 때에 너희가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며 그들이 나와 함께 가리라


 

 

이제 바울은 3차 선교여행을 마무리 짓고자 합니다. 다음 계획은 로마를 들러 서바나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 계획을 실행하기 전에 바울은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지도자들에게 자신의 선교보고를 해야 합니다. 바울은 여기서 예루살렘으로 가기 전에 성도들의 연보를 모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으로 보냅니다. 마게도냐에는 빌립보교회와 데살로니가교회, 베레아교회가 있고 아가야지방에는 고린도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때 바울은 두 사람의 편에 편지 하나를 써서 줍니다. 우리는 이 편지를 고린도전서라고 알고 있습니다.


 

 

3. 에베소에서의 사역


 

 

어쨌든, 에베소는 바울의 선교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곳입니다. 거의 3년이라는 시간을 이곳에다 쏟아 붓습니다. 이곳에서 많은 표적과 기사를 보였고, 곤욕도 많이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이곳에 두란노학교를 세워 주의 제자들을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그러면 왜 바울은 유독 에베소에서만 더욱 열심을 다한 것입니까? 혹시 에베소가 마음에 들었거나 다른 지역에 비해 사는 환경이 좋았기 때문일까요? 그런데 고전 16장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에베소에 대해 이렇게 언급합니다.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려 함은,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고전 16:8-9)


 

 

여러 가지 정황상 에베소는 복음전도의 환경에 적합한 곳이 아닙니다. 장기 체류할 환경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런데 바울이 에베소에 오래 머물기 원했던 이유는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오늘 본문만 해도 바울이 전한 복음 때문에 온 도시에 소동이 일어납니다. 하루도 편한 날이 없는 환경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불편하고 위험하다고 말하지 않고 이런 환경이 오히려 복음전도에 있어서 기회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의 문이 활짝 열린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바울의 역발상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주 환경을 탓합니다. 심지어 주일성수를 하지 못하는 것도 환경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믿음이 없거나 부족해서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다. 교회는 믿음으로 세워지고 믿음으로 교제하고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는 곳입니다. 믿음이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11:6).


 

 

환경이 열악할수록 복음전도의 기회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발상의 전환입니다. 좋은 예가 명절입니다. 한국 사람은 명절날에 모든 가족들이 한곳에 모입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지, 예수님을 믿든 믿지 않든지, 보고 싶든지 보고 싶지 않든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다 한 자리에 모입니다. 그래서 피하거나 만나도 인사하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이 때가 바로 하나님이 주신 광대하고 유효한 문을 여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추석이나 설 명절은 하나님이 육신의 형제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주신 귀한 기회입니다. 바울이 고백했던 것처럼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바라보고 이해해야 합니다. 바로 이 관점이 하나님중심이요,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인 것입니다.



 

 

4. 소동

 

 

이제 본문으로 돌아가서 오늘 일어난 소동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 소동을 학자들은 에베소의 대소동이라 부릅니다. 그만큼 엄청난 소동이라는 겁니다. 우선 시기적으로 5월입니다. 5월에 에베소에서는 아데미 여신을 위한 제사가 열리는 달입니다. 그리스 최고의 신은 제우스인데 그는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둡니다. 아들이 힘과 젊음의 상징인 아폴로이고 딸이 에베소에서 태생의 건강과 풍요의 상징인 아르테미스, 곧 아데미 여신입니다. 에베소 사람들과 이웃 사람들이 얼마나 이 여신을 숭상했느냐 하면 신전 크기만 해도 최고입니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거의 서너 배 더 큰 규모입니다. 이 여신만 잘 받들면 건강하고 부자가 된다기에 매년 5월이면 이 아르테미스 신전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연극장 하나만 해도 12천석 가량 되는 규모로 요즘의 종합운동장에 맞먹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니까 이 사람들이 에베소에다 쓰는 돈만 해도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에베소 사람들의 1년 양식이 이때 벌어들이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시민들이 매일 제사를 드렸고 장사꾼들은 이들을 대상으로 각종 기념품을 팔았습니다. 특히 세공기술이 뛰어나 은으로 만든 조각품들이 불티나게 팔렸는데 그중 아데미 여신상은 단연 인기품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기념품을 파는 일이 얼마나 돈벌이가 잘 되었겠습니까? 다른 기록에 의하면 당시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돈이 모여 아데미 신전의 제사장들이 거꾸로 이 돈을 가지고 고리대금업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훗날 은행의 시발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참 어리석게도 마치 복권을 사듯이 건강하고 부유하기를 원하여 조각품을 돈을 주고 구입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거듭되는 가난뿐입니다. 그들이 조각품 하나에 지불한 돈은 얼마 안 될지 모르지만 이런 돈들이 모여 큰 부를 이루고 이 부를 누가 누리느냐 하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우상숭배놀이를 주도하는 소수의 권세가들입니다. ‘석가탄신일에 많은 사람들이 절에 바칠 물건들을 머리에 이고 지고, 지게나 손수레에 싣고 북한산으로 오르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복을 받고 싶은 그 마음이 측은하기도 하지만 잘못된 믿음과 어리석은 행동에 대해 책임을 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가장 싫어하시고 진노하시고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그것은 자식이 부모를 거역하고 욕하고 팔아먹고 죽이는 것처럼 파렴치한 짓이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언젠가부터 상인들과 신전의 수입이 점점 줄어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정을 알아보니까 몇 해 전부터 머리를 깍은 이상한 사람 하나가 에베소에 들어와서 두란노 학교를 만들어 놓고 지금까지 듣도 보지도 못한 이상한 도를 가르치는데 그 도를 듣고 배운 사람들이 더 이상 아데미 여신 같은 우상을 섬기지도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하나님 외에 우상을 섬기는 행위가 잘못된 일이라며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말하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이때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걸 그냥 두면 큰일이 나겠다 싶은 겁니다. 이 사람은 요즘 식으로 말하면 아데미 신전 상인연합회장 쯤 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상조각품 판매 상인들과 직공들을 모아놓고 이러다 우리 모두 망하게 생겼다 하고 선동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생업에 지장이 초래하는 것을 가만두지 않습니다. 시장에 가보면 얼마나 치열한 경쟁사회인지 보게 됩니다. 옆집의 물건이 내 상가 쪽으로 조금만 침투해도 싸움을 합니다. 한 마디로 돈을 벌기 위해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시장 바닥에서 도덕 윤리 운운하고 체면 차리는 사람은 장사꾼으로서는 자질 미달입니다. 그러니 상인들이 자신들의 생업이 위기에 처한다는 사실을 듣고 가만히 있겠습니까?


 

 

28절에 보니 극장에 모인 무리가 데메드리오의 선동을 듣고 온통 소란에 휩싸입니다. 저도 대학 시절에 데모 현장에 가담하기도 했는데 그 때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어떤 한 사람이 선동을 하면 모든 군중이 일사분란하게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집단 심리라고 하는데 이 체면에 걸리면 선동가의 말이 옳고 그르든 상관없습니다. 그냥 동조하고 불길이 타오르듯이 엄청난 고성과 폭력과 파괴 등의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아무도 죄책감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인간이 가장 무서운 존재가 되는 순간입니다.


 

 

선동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나치 정권 하의 괴펠스라는 사람입니다. 그의 선전 선동 기술은 하도 기발하여 오늘날 광고학의 이론적 모델이 되기까지 합니다. 그는 누구보다 군중심리를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정치 집회를 항상 해거름 무렵에 개최했습니다. 그 시각에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가장 감성적인 상태가 된다는 것을 이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집회를 주도하는 사람들에겐 군중과 차별되는 유니폼을 입히고 반복되는 구호와 일사 분란한 행동지침으로 사람들을 지휘하게 하였습니다. 나치정권의 제복과 하이 히틀러라는 구호와 섬뜩할 만치 질서정연한 대열 등이 이때 만들어졌습니다. 특히 집회에 히틀러가 등장할 때에는 반드시 불길을 이용하여 군중의 심리를 자극하여 흥분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게 조작했습니다. 이런 기법에 의해 나치 정권의 사람들은 마치 마약 주사를 맞은 것처럼 모두 중독되어 히틀러를 추종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야외극장에 모인 수많은 무리가 한 사람의 선동적인 웅변에 그냥 흥분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숭배하는 아데미 여신의 이름을 부릅니다. 마치 북한의 군중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 부자를 연호하고 숭배하듯이 아데미 여신의 이름을 소리 높여 부릅니다. 어는 정도 인가 하면 34절을 보니 이렇게 2시간을 계속 소란을 피웠다는 것입니다. 만약 현장에서 이런 모습을 지켜보았다면 소름이 끼쳤을 것입니다. 선동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29절에 보니, 흥분 상태의 군중들은 바울과 함께 다니던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극장으로 데려갑니다. 자칫 군중들에 의해 맞아 죽을 수 있는 극히 위험한 상태입니다. 바울이 극장에 가서 그들을 구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런 현장에서는 이성적인 판단과 분별이 상실됩니다.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기에 제자들과 친한 관리들이 바울을 말립니다. 군중들은 진리나 진실 따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극장 안에는 유대인들도 포함되었나 봅니다. 잡혀온 두 사람의 유대인의 구조를 위해 유대인들이 알렉산더라는 사람의 등을 떠밀어 어떻게 좀 해 보라고 권합니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보자 더 큰 소리로 떠듭니다. 아마 바울과 그 일행들이 모두 유대인이라는 것을 군중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5. 해결책


 

 

사태가 진정이 되지 않자 결국 서기장이 나섭니다. 그는 로마의 행정관으로 총독을 대신해 시정을 살피는 사람입니다. 제아무리 에베소 시민들이 소란을 피워도 에베소는 로마의 식민지입니다. 로마의 식민지는 로마의 법으로 다스립니다. 그러므로 로마제국의 관리는 힘과 권세의 상징입니다. 피지배자는 지배자에게 복종합니다. 서기장이 나서자 일순 군중이 조용해지고 그의 말을 듣습니다. 그는 관리답게 사리분별력을 갖춘 합리적인 사람입니다. 37절에 보니, 바울 일행에 대해 무죄함을 변론합니다.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 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잡아 왔으니


 

 

여기서 우리는 바울과 그이 제자들이 어떻게 복음을 전했는지를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중 대부분은 우상 그러면 일단 원수로 생각하고 그것을 쳐부술 생각을 먼저 합니다. 저도 북한산에 있는 사찰과 암자들이 다 사라졌으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석가탄신일을 축하한답시고 거의 한달 이상 온 시내 거리와 사찰 주변에 걸리는 연등을 보면 속으로 모두 걷어 냈으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마치 요시야 왕이 전국의 산당을 다 혁파했듯이 우리나라에도 그런 종교개혁이 일어나길 원합니다.

 

 

그렇다고 우상을 깨트리기 위해 물리적인 방식을 사용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아데미 여신상들이 우상인줄 알았지만 물리적인 방식으로 그들을 깨트리거나 에베소 사람들에게 반감을 사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했습니다. 그것이 바울의 복음전도 방식이었습니다. 바울은 철저히 말씀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만 있으면 다 된다는 굳센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거부하고 비방하고 조롱할 때에도 바울은 묵묵히 두란노 서원에서 제자들에게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순종하는 바울의 변화된 모습입니다.


 

 

오늘 비록 엄청난 소동이 일어나고 온 에베소 사람들이 바울을 몰아내고자 하는 절대 절명의 위기가 도래했지만 하나님은 바울과 그 일행을 지키고 구하기 위해 또다시 도우미를 파송합니다. 고린도의 법정에서는 갈리오 총독으로 하여금 바울을 돕게 하더니 오늘은 서기장을 보내어 바울을 돕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순종하는 하나님의 사람을 언제나 도우십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성고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당신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십시오. 당신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도록 노력하시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나머지는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6. 결어


오늘 본문이 전하는 이야기에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첫째, 바울은 이미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 즉 섭리를 믿고 깨달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식대로 일하신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바울이 선교를 하는 것 같지만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이루신 일입니다. 바울은 그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뿐이었습니다. 철저히 성령님에게 의존했습니다. 언제나 고집 세고 완강하던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이런 사람으로 변화되고 발전한 것입니다. 늘 하나님보다 앞서 일하려 하던 바울은 에베소에서 드디어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는 법을 배운 것입니다. 그래서 묵묵히 하나님의 말씀만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일에 매진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달라진 모습입니다.


 

 

둘째, 언제 어디서든 복음을 전하는 일은 지혜를 요합니다. 특히 다종교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은 더욱 지혜로워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방해하는 세력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지 못합니다. 그러나 복음의 길에는 그런 방해꾼들이 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방해자들이 있기에 복음이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어둠이 있기에 빛이 소중하듯이 악인이 있기에 의인이 돋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에 대한 우리의 역발상이요 역설입니다. 페러다임의 전환입니다. 그러므로 방해꾼들을 없애겠다고 나서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복음만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옛날 학교에 세워진 단군 상을 넘어뜨리고 부서뜨린 목사님들이 구속된 사건이 있었는데 그분들이 에베소에서의 바울의 복음전도의 방식을 이해했더라면 그런 불법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불법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이 아닙니다.


 

 

끝으로, 우리는 위기에 잘 대처해야 합니다. 오늘 바울이 동료를 구하겠다고 연극장에 들어갔다면 아마 큰 봉변을 당했을 것입니다. 살면서 우리는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엔 즉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 하여금 해결을 하시도록 우리가 길을 비켜야 합니다. 위기를 잘 극복하면 새로운 기회가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기회의 천국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고 때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기회를 선물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광대하고 유효한 문입니다. 이 문이야말로 가장 최대, 최고, 최선의 기회의 문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이 주신 가장 위대한 기회의 문이 열리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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