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주차. 돌아가는 길
본문: 행20:1-6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1. 에베소와 작별하다
서기장의 도움으로 큰 위기에서 벗어난 바울은 드디어 약 3년 만에 에베소를 떠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아마 바울은 이런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에게 말씀하신 것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바울을 통해 로마제국 전체에 복음을 전파하고 제자들을 양육하는 것인데, 너무 한 곳에 눌러 앉아 있는 바울에게 이제 떠날 시점을 계시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이런 표적이나 사건을 직면하고서도 깨닫지 못하고 엉뚱한 선택과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윗사람이 어떤 일을 시켰는데 아랫사람이 계속 윗사람의 의중을 모르고 엉뚱한 일을 하면 결국 윗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그 일을 맡길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내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잘 분별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어쨌든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기로 했습니다. 먼저 제자들을 불러 권면합니다. 아마 두란노서원에서 수학하던 제자들일 것입니다. 겨우 3년도 되지 않았는데 스승이 떠난다고 하니 제자들이 많이 섭섭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헤어지게 됩니다. ‘회자정리’라고 하지요. 인생들은 영원히 함께 하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과도 언젠가는 헤어져야 합니다. 이별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총회의 하계수양회를 폐회하면서 222장 찬송가를 서로 손을 잡고 불렀는데 나이 드신 목사님들이 울컥하는 모습이 역력하더라구요. 저도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예수 앞에 만날 때’하고 부르니 코끝이 찡했습니다. 옛날에는 무덤덤했는데 요새는 슬픈 영화를 보면 살짝 눈물을 흘립니다. 나이가 들었다는 반증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슬픔 가운데서도 천국에서 다시 만난다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2. 마게도냐로 가다
19;21에서 이미 밝힌 바대로 바울은 다시 배를 타고 마게도냐로 건너갑니다. 마게도냐 여행에는 두 가지 계획이 있었습니다.
① 하나는 고린도교회로 편지를 전하기 위해 보낸 디도 일행들을 만나 고린도교회의 형편을 전해 듣는 것이었는데 마침내 마게도냐에서 디도를 만나고 그를 통해 고린도교회가 화목하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듣게 됩니다. 관련 성경을 보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고후2:12-13)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고후7:5-7)
② 다른 하나는 이때 쯤 바울의 머릿속에는 2차 선교여행 때 가지 못했던 일루리곤을 염두해 두고 있었든 듯합니다. 일루리곤은 마게도냐 윗 지방으로 북쪽의 알프스 산맥 끝자락에 시작하여 그리스와 접경을 이루었고 이탈리아와는 아드리아 해를 사이에 두고 위치한 상당히 광범위한 유럽의 남부지역을 가리킵니다. 오늘날로 치면 이 일대는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몬테네그로, 알바니아 등이 해당합니다. 이곳에는 주로 산지인들과 해적들이 거주했는데 주전 3세기에 로마에 정복되었습니다. 바울은 2차 때 가보지 못했던 일루리곤을 이때쯤에 방문했는데 이 때를 성경학자들은 대략 주후 55년 여름에서 56년 후반기에 이르는 기간으로 봅니다. 실제로 롬 15:19에서 바울은 일루리곤 선교를 증언합니다.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3. 헬라로 가다
마게도냐를 거쳐 일루리곤까지 갔다가 바울과 누가와 디도 일행은 다시 헬라 즉, 그리스 지역을 재방문합니다. 이때가 주후 56-57년 겨울 사이이고 체류기간은 약 3개월이었는데 대부분을 고린도에서 보냅니다. 그만큼 고린도교회에 대한 바울의 관심과 애정이 남달랐다는 것입니다. 또 고린도에는 절친한 친구인 가이오(Caius)가 살고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여러 가이오가 등장합니다. 먼저 ‘에베소 대소동’ 당시 바울을 변호했던 관료가 가이오이고(행19:29), 마게도냐에서 소아시아까지 동행한 더베 출신의 가이오도 있고(행20:4), 고린도에서 바울에게 세례를 받았던 오늘의 주인공인 가이오가 있고(고전1:14, 행18:7), 또 요한삼서의 수신인으로 가이오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요삼1:1).
아무튼 바울은 친구 가이오의 집에 머물면서 로마서를 작성하였습니다. 로마서를 통해 바울은 자신이 스페인을 가는 도중에 로마를 들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가이오는 이때 고린도에서 바울과 그 일행을 극진히 대접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가이오에 대해 롬 16:23에서 “나와 온 교회를 돌보아 주는 가이오”라고 기록합니다.
이렇게 친구란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존재입니다. 플라톤은 ‘Friends have all things in common(친구는 모든 것을 나눈다)’이라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A friend is a second self(친구는 제 2의 자신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친구란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친구를 고를 때엔 천천히, 친구를 바꿀 때엔 더 천천히 하라’는 속언이 들려집니다. 하도 요즘 아이들이 친구를 자주 바꾸고 하니까 이런 소리도 들리나 봅니다. 그러나 친구란 이런 의미가 아닙니다. 같이 즐기기 위해 필요한 존재가 아닙니다. 친구란 특별히 어려움에 처했을 때를 위해 하나님이 주신 선물 같은 존재입니다. 가장 좋은 친구는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친구를 가졌다면 그는 최고로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다행히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지상 최고의 친구를 가졌습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내가 그 어떤 누구에게 지상 최고의 친구가 되는 일입니다. ‘나는 과연 나의 친구에게 가장 좋은 친구가 되었는가?’에 대해 답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4.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
바울은 헬라 지역을 끝으로 3차 선교여행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바울과 그 일행이 마게도냐와 헬라 지역에서 맡은 잔무들 중 하나는 각 지방의 교회들에게서 수집한 연보를 예루살렘에 가지고 가는 일이었습니다. 처음 바울의 생각은 임박한 명절, 즉 유월절을 예루살렘에서 보내기를 원하는 순례자들이 타고 가는 순례선을 겐그레아에서 타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2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에베소로 넘어 올 때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고 배를 탄 적이 있었습니다(행18:18). 배를 타고 얼른 예루살렘으로 가고 싶은 바울의 심정이 묻어 있습니다. 바울의 입장에선 명절보다 더 좋은 선교의 기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명절에는 보고 싶은 예수님의 사도들을 다 볼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3절에 보니, 바울에게 좋지 못한 정보가 입수되었습니다. 바울을 미워하는 유대인들이 바울 일행이 승선하기만 하면 죽여 버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음모가 귀에 들린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할 수 없이 다시 발길을 돌려 육로를 통해 처음에 온 길을 통해 돌아갑니다. 배 타고 건너가면 5일이면 될 거리를 바울은 다시 헬라와 마게도냐를 거쳐 한 달 이상 돌아가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솔직히 이때 인간적으로는 정말 돌아가기 싫었을 것입니다. 사람의 속성이라는게 그렇습니다. 무슨 일이든 시작할 때엔 기분 좋게 하다가 그 일이 잘못되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라치면 마구 짜증을 내는 법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세운 계획은 수시로 바뀌는 법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쉽지만 유월절 대신에 50일 뒤에 있을 오순절을 예루살렘에서 보내기로 계획을 수정합니다. 그것이 16절에 있습니다.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배 타고 가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 여행에는 상당수의 동역자들이 동행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사람들이 각 교회를 대표하여 가난한 예루살렘교회를 구제하기 위해 파견된 인물들이기 때문입니다. 마게도냐 베뢰아교회의 대표는 소바더(Sopater)이고, 데살로니가교회 대표는 아리스다고(Aristarcus), 세군도(Secundus)가 있고, 갈라디아지역의 더베교회 대표로는 가이오(Gaius), 루스드라교회 대표는 디모데(Timothy), 아시아지역의 대표들로는 두기고(Tychicus)와 드로비모(Trophimus)가 선발되었습니다. 이 구제행렬에 고린도교회가 누락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고후 8:6 이하에 보면 고린도교회의 연보는 바울이 그 교회에 편지를 전하기 위해 보낸 디도와 그 일행들의 손에 맡겨져 보내진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 곳에서 디도 이름을 누가는 기록하지 않고 있을까요? 여기에 대한 가장 합당한 답은 누가와 디도가 한 형제였다는 람세이(Ramsay)의 주장이 가장 신빙성이 있다고 봅니다. 이런 점에서 누가와 디도 형제의 겸손함이 묻어나는 장면입니다.
바울은 마게도냐의 빌립보에서 무교절을 보낸 듯합니다. 이 때가 주후 57년 4월 7일에서 14일 사이입니다. 무교절이 끝나자 바울은 누가와 함께 빌립보를 떠납니다. 오늘 본문 6절에는 빌립보에서 배를 탔다고 했으나 실은 항구도시인 네압볼리(네아 폴리스=new city)에서 배를 타고 5일 만에 소아시아의 드로아(트로아스- ‘트로이 목마’에서 유래)에 도착합니다. 건너갈 때엔 3일 거리인 이 항해가 5일이나 걸리는 것은 바람이 역풍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누기는 빌립보에서 다시 ‘우리’라는 주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빌립보에서 누가가 다시 합류했거나 아니면 예루살렘으로 가는 바울과 그 모든 일행에 대한 합창인 듯 보입니다. 누가는 이렇게 철저히 자기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곳곳에서 애를 씁니다. 소인배는 자꾸 자기를 드러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일을 할 때 철저히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지침을 내려주셨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자주 이런 당부를 합니다.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은 하나님과 나만이 알고 있는 비밀스러운 선행을 숨겨두라고 조언합니다. 이런 훈련을 통해 ‘자기의’를 죽이는 계기로 삼으시길 원합니다.
5. 교훈
첫째, 오늘 우리는 바울의 여정을 통해 마지막을 어떻게 정리하는 가를 배웁니다.
- 마치 죽음을 목전에 둔 거룩한 사람이 자신의 일생을 하나하나씩 정리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죽기 전에 각자의 인생을 잘 정리해야 합니다. 특히 원수진 일이 없나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다른 이를 괴롭히고 힘들게 한 일은 없는지, 피해를 끼친 일은 없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한 호리도 빚을 남기지 말라고 충고하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람에겐 늘 하나님의 사람들이 함께 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 이 말을 거꾸로 하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면 그는 늘 혼자 외톨이로 살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도 싫고 사람도 싫고 해서 산속으로 은둔하기도 합니다. 옛날 수도사들이 그러저런 이유로 수도원으로 피신하듯 숨어 버렸습니다. 그 산에서 도를 닦다가 도를 잘못 닦아서 원하지 않는 길로 들어서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자라면서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듬뿍 사랑을 받는 존재였습니다.
“예수는 지혜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2:52)
셋째, 언제든지 우리는 다른 그리스도인을 도울 준비를 해야 합니다.
- 내게 물질이 주어진 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라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연보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기쁘고 자발적으로 드리는 것이 훈련되지 않으면 쉽게 손이 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심음의 법칙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오늘 각 교회들은 자신들도 넉넉하지 않을 터인데 예루살렘교회를 돕고자 연보를 모아 드렸습니다. 이런 믿음들이 하나님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아멘.
[출처] 23주차. 돌아가는 길 (아리엘 개혁교회) |작성자 아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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