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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회와 개혁교회의 정치 원리

이차식목사(김천)

by 김경호 진실 2015. 6. 3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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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신교단 설립 30주년 기념논단1>

장로교회와 개혁교회의 정치 원리

이차식 목사, 김천 덕일교회

 

 

들어가는 말

 

교단30주년기념대회를 앞두고 헌법과 관련하여 '장로교회와 개혁교회의 교회정치원리'라는 주제는 좀 부담스러운 주제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우리 교단이 이러한 주제를 놓고 한번쯤 숙고해 볼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교단이 개혁신학을 표방하고 설립된 지 30주년이 지났지만 교회정치면에서 개혁교회의 원리에 맞는 동질의 교회와는 거리가 멀고, 또 어떤 면에서는 장로교회라고 하기에도 애매모호한 입장에 놓여있다고 판단된다.

이에 장로교회와 개혁교회의 성경적 원리를 조사해 보고, 성경의 원리를 적용하는 차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교회 헌법은 교회 정치에 대한 바른 인식은 물론 바른 생활의 기본원리가 되기 때문이다.

 

 

1. 개혁교회들의 초기역사

 

 

개혁교회들은 초기역사부터 강한 반계급적 정서를 가지고 있었다. 개혁 당시 로마 카톨릭은 교황계급제도였으며, 영국의 국교회인 성공회는 감독주의 제도였다. 독일의 루터란들은 영지 체제를 택하였으며 그 결과 영지 정부가 교회정치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교회는 주정부 교회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영지나 왕이 교회의 수장이 되기도 하여 많은 영향을 미쳤다.

반면에 회중교회는 회중이 전 교회를 다스린다. 고백이 있을지라도 각 교회가 서로 메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회중교회는 상호연대 관계가 약하다. 이는 민주주의와 같아서 직분자가 다스리지 않으며, 장로가 목사며 교사이다. 한마디로 교회를 다스리는 감독기관이 없는 체제이다.

개혁교회는 한쪽의 계급체제와 다른 쪽의 독립체제, 그리고 연대 관계에 대한 문제 사이에서 발생하는데 칼빈은 당시 개혁 지도자들 중에서 제2세대에 속하여 개혁교회 정치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칼빈은 교회정치에 있어서 당시의 실제적인 역사나 상황을 극단적으로 취하지 않았고, 성경의 정치원리와 조화를 추구했다.

 

 

2. 개혁교회는 계급적이거나 독립적이지 않았다.

 

 

지역교회는 하나님 말씀을 맡은 목사와 장로들로 구성된 당회에 의해 통치된다. 지역교회들은 노회, 대회, 총회와 함께 일반 관심사들에 관하여 논의한다. 노회나 총회는 지역교회들의 확장된 광의의 모임이다.

이런 모임들의 운영은 당시 각 나라의 환경적인 차이나 요인 때문에 조금씩 달랐다. 프랑스나 스코틀랜드에서는 교회나 총회는 중앙집권적인 상회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장로교회는 개교회 독립성과 당회의 독립성을 주장하나, 실제적으로 독립성이 약하며 노회가 항존 치리회 역할을 한다.

그러나 벨지움이나 화란 등에서는 조직에 대한 분권화 형태가 발전되어 지역교회의 독립성을 훨씬 더 강조한다. 이것은 재세례파의 논쟁과 깊은 관련이 있기도 하지만, 실제적인 측면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교회 정치원리를 채용했다고 말할 수 있다.

화란교회들은 국가적인 중앙집권적 정치가 아니었다. 교회는 주정부나 상회들에 의해 통치되어서는 안 되며, 주님의 교회로서 오직 그리스도께서만이 통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개혁교회의 정치원리이며 이런 원리가 돌트레히트 교회 질서에 잘 나타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주요한 원리들도 다음과 같은 것을 추구하여야 할 것이다.

3. 우리가 추구해야 할 주요한 원리

 

 

1) 그리스도의 주권

그리스도만이 그의 교회에 대한 완전한 권리를 가진다. 그리스도가 왕 됨을 참되게 인식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바탕으로 교회의 하나 됨을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고백서들이 각 교회들의 역동적인 삶과 연합의 근거가 된다.

 

 

2) 개혁주의 고백의 일치

각 교회들은 나라가 다를지라도 통일된 고백을 기반으로 연합된 교회를 이룬다. 왜냐하면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 고백하는 교리를 주셨고 다스리시는 방법을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우리 교단이 참된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바른 교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개혁교회들의 신조인 돌트신조,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 벨직 신앙고백들과 돌트교회 질서를 채용해야 한다고 본다. 또한 이러한 것을 신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다면 개혁주의 신학을 가르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혹자는 가장 후에 결정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요리 문답 속에 이러한 성경적 원리와 내용이 다 내포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혁주의 교회들은 이를 부차적인 문서로 간주한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좀 더 심사숙고하게 만든다.

칼빈의 5대 교리가 담겨 있고 교회의 질서를 담은 돌트 신조와 화란의 개혁교회의 신조인 벨직 신앙고백서는 수많은 유산 가운데서도 개혁주의의 중요한 유산이라 할 수 있다. 개혁신학을 추구한다고 할 때 다른 것은 고사하더라도 적어도 개혁주의 고백서 정도는 정리가 되었어야 한다.

개혁주의의 중요한 고백들에 대한 통일 없이 개혁을 외치고 행사를 크게 한들 그것이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으며 효과가 있겠는가? 또 하나의 이벤트에 머무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돌트 질서 26항에 의하면, "고백서들에 서명"이라는 항목이 있다. "모든 말씀을 맡은 목사들과 장로들과 집사들과 신학교수들은 이 목적으로 채택된 양식서에 서명을 함으로써 개혁교회의 고백서들에 서명을 하여야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서명하기를 거절하는 자는 누구든지 직분에 임직되거나 취임되어서는 안 된다. 직분에 있는 자 중에 누구든지 그렇게 하기를 거절하는 자는 바로 그 사실만으로 즉시 집사들이 함께 하는 당회에 의해 직분으로부터 정직되어야 하며, 노회는 그를 받아선 안 된다. 만일 그가 완고하게 계속 거부하면 직분이 면직되어야 한다."

이처럼 개혁교회는 고백을 근거로 참 교리를 수호하고 믿음의 일치를 중요시한다. 그들은 이 고백들을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한 선상에 놓지는 않지만 성경의 신실한 요약으로 받아들인다. 신학교 교수나 목사가 노회에 의해서 정직될 수 있는 유일한 실례가 바로 교리와 관계된 이 경우이다.

개혁교회의 특징은 교리 교육에 있다. 개혁교회들은 일주일에 7, 8시간 정도는 직접 목사가 교육을 하고 있다. 교리는 대체로 성경과 하이델베르크, 벨직, 돌트 그리고 교회역사와 정치에 관한 것들이다.

 

 

3) 교회관에 대한 성경적인 바른 정리

 

개혁교회는 각 교회들이 중앙집권적인 국가나 주정부에서 시작되지 않으며 지역 교회로부터 시작된다. 혹 국가가 방대함으로 파생되는 혼란이나, 지역교회들이 연약하다면 실제적인 면에서 때로는 중앙집권적인 교회정치와 교육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성경에서 가르친 각 지역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주신 완전한 교회이며 유일한 기관이다. 이를테면 노회, 총회를 가리켜 지역교회로 간주하지 않는다. , 세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모이면 교회다. 바울 서신에 보면 집에서의 교회가 있다. 교회가 직분을 가진 교회를 조직하려면 어느 정도 회원이 갖추어져야 하겠지만 개혁교회 질서는 회원의 숫자를 언급하지 않는다. 이 원리는 개혁교회의 기원과 유지에 있어서 근원이 되며, 많은 개혁교회들이 이러한 원리를 주장하기 위하여 힘써 싸웠고 고통을 당하였다.

4) 치리회에 대한 성경적 정리

광회(노회나 총회)는 상회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로부터 어떤 권세나 공적인 사명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회의 사역과 성격은 지역교회들이 자발적으로 합의한 것에 제한되며 이런 면에서 당회와는 다른 성격이 있다.

치리회에 대한 이러한 견해의 차이는 그릇된 교회관에서 오는 것이다. , 사도행전 15장의 이해의 차이에서 생겨난다. 지역교회는 광회의 결정을 존중하면서도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지 않는 한 구속력을 갖는 것으로 여긴다. 설립 30주년을 맞는 우리 교단은 지역교회들의 완전성과 독립성의 원리에서 그리스도의 교회관이 바르게 정리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당회가 할 일 중에서 권징, 가정심방, 세례와 성찬 참여 문제, 교인 생활과 관련된 일들과 관련된 여러 일들이 있으나 가장 중요한 일은 설교와 교리교육에 역점을 두며 교육에 대한 감독에 있다. 목사가 교리교육을 전담할지라도 목사에게만 맡기고 아무 태도를 취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당회는 교리 교육과 밀접하게 관련되어서 이 일을 통하여 자녀들과 성도들을 언약 백성으로서 온전하게 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과연 오늘날의 교회들이 이 고백들과 당회가 해야 할 일에 관심이라도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웨스트민스터 총회(1643. 7. 1 - 1649. 2. 22, 런던)는 장로교 정치 방식을 제시하였다. 알다시피 그 총회의 사명은 영국교회의 조직과 교회정치에 있어서 영국의원들을 조언하는 것이었다.

당시 웨스트민스터 회원들은 에라스티안, 회중교도들, 장로교적인 지성을 가진 3그룹으로 구성되었다. 교회정치에 관한 많은 토론 후에 장로교적 교회정치 형태와 같은 주요 문서들과 웨스트민스터 고백서가 발표되었다. 그것을 받아 처음 채택한 것은 영국교회가 아니라 16452월 스코틀랜드 총회에서 장로교 교회정치 형태를 받은 것이다.

그들이 목적했던 바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성경에 근거한 통일성이었다. 믿음에 대한 신앙고백, 교회정치형태, 예배예전, 교리문답의 균일성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감독주의가 거절되었으며 회중교회주의도 해결책이 아니었다. 오직 장로교회 정치가 좋은 대안이었다.

우리 교단 내의 각 교회들이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통일되지 않고, 선교단체들의 수만큼이나 각기 다른 관점과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앞으로 우리 교단이 직면한 주요한 과제라고 사료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의 권세보다 높은 다른 권세는 없다.

웨스트민스터 회의에서 다룬 가장 첫 번째 원리는, 교회정치의 원리로 세상 법정이나 세상법조인에게 기웃거려서 뭔가를 받아선 안 되며, 오직 성경 말씀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국가의 부서가 아니며, 인기 있는 민주주의도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시며 그분만이 교회 안팎에서 완전하게 통솔하신다는 고백이다.

두 번째 원리는 예수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통치하시며 성경이 교회에서 삶과 모든 행동의 규범이라고 고백한다. 웨스트민스터 회의에서 장로교인들이 정치적 동기나 편리성 때문에 장로교 교회 정치를 택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두 원리만을 바라볼 때 장로교회와 개혁교회는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적용면에서 이것들을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의 차이점들에 직면하게 된다. 물론 신약에서는 교회 조직이 상세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으며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전 14:40)고 교훈할 뿐이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며 그 교회는 그분의 말씀에서 말씀에 따라 통치되어져야 한다는 원리적 일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분관에 대한 것, 교회 회의들과의 관계, 교리교훈과 감독, 공적예배(예전), 권징 등에 있어서 과연 성경적인 것이지를 살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4.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의 전통적 동일한 원리.

 

1) 그리스도가 유일한 머리이시며 그분의 말씀과 일치하게 다스려져야 한다.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교회에 고백하는 교리에서 뿐 아니라 다스리는 방법도 가르치셨다.

2) 하나님의 양떼를 목양하고 다스리는 일을 위해 회중에 의해 선출된 복수의 장로들이 있어야 한다.

3) 교회정치의 목적은 교회를 완전케 하고 교양함이며, 단순히 직원들을 많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4) 하나님의 백성을 말씀으로 가르칠 목사들과 교회를 감독하는 장로들과 자비사역을 시행하는 집사들이 있어야 한다.

5) 위의 3직은 회중으로부터 선출되어야 한다.

6) 교회질서에 진술되어 있는 바와 같이 교회는 보다 넓은 광회들과의 협력과 의견일치가 있어야 한다.

7) 교회정치는 영적이며 영적 수단인 설교, 가르침, 교회견책들을 통해 시행되어져야 한다.

8) 교회정치는 하나님의 말씀에 제한되어야 하고 순종하는 자에게 행하며 그 권위를 인정하기를 거절하는 자들에게 확대하지 않는다.

 

마치는 말

 

우리 교단은 설립된 지 이제 30년이 넘었으며 그렇게 약하지도 않다. 또 교회가 성경의 원리를 떠나서 그렇게 실제적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헌법이 타 교단과 달라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를 논하면서도 얼마나 자주 다른 교단의 것을 본 따기 위하여 기웃거렸는가.

교회의 정치를 옳게 해 나가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가 가르쳐 주신대로 성경의 원리와 역사를 통하여 진리로 인도하신 성령께서 교회를 통하여 검증되고 법으로 통과된 개혁유산들을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개혁신학을 추구하기 위하여 창립된 우리 교단이 다른 한국 교단들의 헌법이나 자유주의 신학을 좇는 교단들의 신앙고백서나 교회 헌법을 뒤따를 이유가 없다.

다른 교단들의 총회를 보면 총회장이 집행위원장이 된다. 여러 진행에 있어서 막대한 영향을 가진다. 한국적 상황에서 총회장의 리더십은 매우 중요하다. 한국의 장로교회는 이미 성경의 원리가 아닌 계급적 구조와 교권이 틈을 탔기 때문이다. 그래서 총회장으로 선출되기 위하여 많은 정치 공작이 수반되고, 실제로 엄청난 돈을 쓰지 않는가? 이것은 교회가 교회되기를 이미 포기했다고 할 수 있다. 총회장이 개혁주의자가 되면 그 교단도 개혁주의가 되며, 그가 자유주의자이면 교단도 자유주의가 될 것이다.

우리 교단은 개혁주의 신학을 미약하나마 나름대로 유지해 오면서 아직까지는 금권선거와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참으로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개혁교회가 가져야 할 고백이 정리되지 않은 것은 언제라도 다른 교단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상태로 전락할 위험성이 있음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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