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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38:1-3. 너는 누구냐?

섭리

by 김경호 진실 2015. 7. 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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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는 이야기]욥 38:1-3. 너는 누구냐?
오성환 목사(이야기가 있는 교회, 세움성경신학연구원 원장)

 

 

1. 사람들은왜 태어났는가?’를 생각할 때가 있다. 일이 마음대로 안 될 때, 혹은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혹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삶의 허무를 느낄 때등 여러 가지 경우에 인생의 존재에 대하여 고민하고 삶의 가치를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뜻하지 않은 고통을 경험했던 욥은 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 사내 아이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더라면, / 그 날이 캄캄하였더라면,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보지 않으셨더라면, 빛도 그 날을 비추지 않았더라면, / 어둠과 죽음의 그늘이 그 날을 자기의 것이라 주장하였더라면, 구름이 그 위에 덮였더라면, 흑암이 그 날을 덮었더라면, / 그 밤이 캄캄한 어둠에 잡혔더라면, 해의 날 수와 달의 수에 들지 않았더라면, / 그 밤에 자식을 배지 못하였더라면, 그 밤에 즐거운 소리가 나지 않았더라면, / 날을 저주하는 자들 곧 리워야단을 격동시키기에 익숙한 자들이 그 밤을 저주하였더라면, / 그 밤에 새벽 별들이 어두웠더라면, 그 밤이 광명을 바랄지라도 얻지 못하며 동틈을 보지 못하였더라면(욥기3:3-9)좋을 것이라고 탄식한다. 너무 급작스럽게 찾아온 절망 앞에서 누구나 욥과 같이 처절한 탄식을 쏟아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욥과는 다르지만,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면서 힘들어 하는 경우도 있다. 바울은 스스로를 죄인중의 괴수라고 말한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의 빚을 진자로서 하나님께 충성하고 있는 바울이지만, 스스롤르 평가할 때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고린도전서15:9)라고 말한다. 이런 부정적인 자기 인식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리고 이런 부정적인 자기 인식은 스스로를 위축시키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과장되이 드러냄으로 관계를 깨뜨리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부정적인 자기 인식을 어떻게 긍정적인 자기 인식으로 바꿀 수 있겠는가 이다.

2. 스스로를 저주할 수밖에 없던 욥은 친구들과의 논쟁을사람을 감찰하시는 이여 내가 범죄하였던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셔서 내게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 / 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을 사하여 주지 아니하시며 내 죄악을 제거하여 버리지 아니하시나이까(욥기7:20-21)라고 물음으로 하나님을 고소한다. 왜 나를 이렇게 고통스럽게하시는가?라는 질문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침을 삼키는 그 순간 까지도 놓치지 않고 보고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사람이 감추고 싶은 모든 허물을 아신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께 무엇이기에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하십니까?라는 질문을 욥은 하나님께 던지고 있다. 물론 욥의 친구들은 그 당시의 시대적인 정신인 인과 응보의 사상을 바탕으로 욥의 고통의 이유가 하나님께 대한 범죄 함에 있음을 주장하고 있지만 말이다. 길을 가다 소경을 만난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요한복음9:2)라고 물을 때에 예수님은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한복음9:3)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인과 응보의 사상이 모든 것에 딱맞추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3. 긴 논쟁을 바탕으로 하나님은 욥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신다. 그리고 너는 누구냐?’고 물으신다. 고통의 이유를 모르고 삶의 철저한 절망 가운데서 하나님께 왜 이런 삶을 주셨냐고 묻고 있는 욥에게 도리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질문에 답하라고 말씀하신다. 우주 만물의 비밀을 아느냐고 혹은 자연 세계의 아주 작은 면들, 예를 들면 염소가 새끼를 낳는 때나 암사슴이 새끼를 낳는 때를 답하라고 말씀하신다. 더 나아가 이 땅의 엄청난 짐승인 베헤마나 리워야단을 아느냐고 물으신다. 40-41장에서 길게 베헤마와 리워야단의 모습을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런 엄청난 동물들을 만드신 이가 바로 하나님이심을 역설하신다. 그리고 계속 욥에게 물으신다. 이런 것들을 본적이 있느냐고 혹은 이런 것들을 아느냐고 혹은 이런 것들을 만들 때를 아느냐고 말이다. 이런 계속된 하나님의 질문의 바탕에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의 이런 엄청난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불러내어 고소하려는 너는 누구야?’라는 질문이 갈려있다. 그리고 그 질문 안에는 다시 이렇게 엄청난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불러내는 욥에 대한 사랑이 깔려있다. 하나님은 욥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은 욥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욥의 부름에 응답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욥에게 너는 누구냐?’라고 물으시는 것이다.

4. 우리는 욥기를 읽으면서 욥이 완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욥은 그냥 하나님을 믿고, 자신에게 일어나는 아픔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을 알고 싶을 뿐이었음을 욥기를 통해 본다. 하나님 역시 욥이 완전하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은 아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신명기7:7)음에도 불구하고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신명기 7:8)신 것과 같다. 완전하지 않은 욥이지만 욥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는 말이다.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여는 우리 역시 특별한 자들이나 완전한 자들도 혹은 하나님의 뜻을 환하게 밝히 아는 사람들은 아니다. 때로는 해도 해도 안 되는 일들 앞에서 절망하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님을 핑계로 불편한 일들을 외면하기도 하는 그런 약한 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불편함을 말하고 부족함을 탄식하는 우리에게 스스로를 드러내시며너는 누구냐?’라고 물으신다. ‘너는 누구냐?’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시기 때문에 가능한 질문이다. ‘너는 누구냐?’

기사제공 : 크리스찬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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