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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결심 (벧전 5:10-11) 신년 설교

김명도박사 설교

by 김경호 진실 2009. 7. 19. 21:58

본문

(2009-01-06 15:42:25)

 

 KS 39: 설교: 새해의 결심 (벧전 5:10-11) 신년 설교




일시: 2009년 1월 4일 오전  11시
잔소: 튤립 교육 선교회
본문: 벧전 5:10-11
제목: 새해의 결심
설교: 김명도 목사
길이: 45분
녹음: C-60 cassette

서론
오늘은 새해 2009 년 들어 첫 주일입니다.  신령과 전정으로 예배드리는 여러분에게 우리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시기 빕니다. 새해가 되면 모두 복을 받으라고 덕담을 나누지요.  동양인은 특히 복을 좋아해서 밥상에 얹는 수저에도 복자를 그려 넣고 베개에도 복자를 수놓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복이 오는 것도 아닌데도 사람들은 복을 받기에 목말라 합니다. 그런데 그 복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물질의 복만을 생각하지만 인간은 영과 육으로 되어 있는데 물질은 육신을 만족시킬수 있어도 영혼의 만족은 없습니다. 물질이 많아도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분들을 주위에서 많이 보지 않습니까? 물질의 복은 정함이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시편 1편도 복 있는 사람을 말하면서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 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시내 가에 심은 나무처럼 형통한다고 가르쳐 줍니다.

새해에 사람들은 성공을 꿈꿉니다. 새해에는 전에 없던 큰 성공을 꿈꿉니다. 성공이 무엇입니까?  어떤 분은 재물을 많이 모으는 것을 성공이라고 합니다. 어떤 분은 명예를 소중히 생각하여 무엇을 희생해서라도 명성을 얻고 그 명성을 성공이라고 부릅니다. 자식을 잘 길러서 출세시키면 그것을 성공이라고 부르며 만족합니다.  책을 쓰는 사람은 자기 책을 많은 사람이 사주면 그것으로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나름대로 판단의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도 성공인 것은 사실이지만 상대적인 성공일뿐 절대적인 성공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런 것을 성공이라고 부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공의 표준은 하나님이 결정짓는 것이며 인간이 결정짓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대체 무엇이 성공일까요?  영속성이 있는 것이 귀하고 그것이 가치가 있는 법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풍요해지는 것이 비할 바 없는 큰 성공입니다. 이것은 상대적 성공이 아니라 절대적 성공입니다. 오늘은 새해 첫 주일인데 본문 베드로 전서 5:10-11절 두 절을 본문으로 하여, “새해의 결심”이라는 제목으로 참다운 성공이 무엇인지  잠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저 합니다. 오늘도 세 가지로 대지를 나누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I.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II. 새해에 다짐하는 우리의  결심
III. 그 영광의 날을 위하여

I.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본문 말씀은 10절에,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라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구원의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그리고 구원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은혜의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주시며 우리의 앞길을 인도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사막 같은 인생을 걸어가며 낙심할 때 위로해주시며 때를 따라 돕는 은혜로 우리와 같이 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가정을 이루며 직업을 가지며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한 시간도 살수 없는 우리 인생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해 내는 것 같이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아무 것도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아직까지 이 땅에 남겨 두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며 우리에게 새로운 금년 한해를 허락하신 것도 크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제주권을 가지고 역사하시면서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지으시고 오늘까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모든 은혜의 하나님은 지난 한해도 우리를 사랑해 주시어 모든 은혜로 우리를 인도하셨고 하나님에게 불충하여 쓸모없어 마땅히 찍어냄을 받아야 할 우리에게 새해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크신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우리는 무익한 종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할 우리들이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며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며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할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모든 은혜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한해를 주셔서 오늘 첫 예배를 드립니다. 그 모든 은혜의 하나님에게 감사하며 오늘 다시 옷깃을 여미고 금년에는 그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 드리도록 하십시다.  금년에는 때를 따라 돕는 모든 은혜의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고 그에게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한해가 되어 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우리는 금년에 어떤 결심으로 모든 은혜의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려야 할까요? 본문에 따라서 몇 가지로 생각해 봅시다.

II   새해에 다짐하는 우리의 결심
본문에 보면, “너희를 온전케 하시며“ 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온전케 되시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같은 말씀이 마태복음 5:48절에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란 말씀을 하셨고 베드로전서 1:15에도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품성을 닮아 하나님의  거룩함과 의와 진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엡 4:24).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온전하기를 원하시는데 그것은 타락한 우리의 지.정.의 에 새로운 의식구조를 창조하는데서 이루어집니다.

인간의 의식구조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아담의 의식구조, 타락한 인간의 의식구조, 그리고 중생한 사람의 의식구조입니다.  인간은 모두 타락하여 하나님을 떠나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타락한 의식구조가 중생한 의식구조로 변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 우리의 신앙인격이 완전해 지도록 노력합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온전치 못한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성경에서는 “육의 사람” 이라고 합니다. 이를 원문에서는 “sarkikos" 라고 하고 영어로는
“carnal Christian" 이라고 합니다. 고린도교회 사람들이 그러했습니다.  거듭났다고 말하지만  거듭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치 밤중에 주님을 찾아왔던 유대인의 관원 니고데모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생활이 온전해 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모두 올해는 온전한 신앙을 가지도록 하십시다. 온전한 신앙은 성경적 신앙입니다. 성경만이 우리 생활과 신앙의 유일한 법칙입니다. 온전한 믿음을 가지면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6:33에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더하시리라” 라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따라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온전해 지는 한해가 되도록 우리 모두 기도하며 힘쓰십시다.

둘째로, 하나님은 또한 우리의 “믿음을 굳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여기 “굳게 하신다” 는 말은 “자리를 잡는다” 는 말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마치 공장에 취직되어 일하는 사람이 오래 일을 하다보면 공장 일에 익숙해지고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러면 회사에서 인정받게 되고 승진도 빨라지게 됩니다.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이 온전해지면 그 신앙은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누가 보아도 신앙인의 인격이 나타나야 합니다. 빛의 본분을 다하고 소금의 직분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인격이 남에게 인정받고 하나님에게 인정받는 경지에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말입니다. 남에게 인정받는 일은 어렵습니다. 누구나 모두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인정받는 그리스도인들보다 인정받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더 많은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놓고 생각해 보십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정신적지주 mentor 가 있습니다. 저의 mentor 는 17세기 Scotland 의 종교개혁가 Samuel Rutherford입니다. 여러분의 mentor는 누구입니까? 아니 말을 바꾸어 여러분을 mentor 로 알고 여러분을 따르며 존경하는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됩니까?  한 사람도 없다면 여러분의 신앙생활에는 문제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모두가 남에게 칭찬을 받으며 인정받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이 바로 오늘 분문에서 말하는 “굳어진다”는 말입니다.  신앙의 자리를 잡아가는 사라들, 즉 믿음의 도리를 아는 사람들이 됩시다.

Joseph Fletcher 라는 사람은 뉴잉글란드 지방에 있는 성공회 신학교 교수로 상황윤리를 주장하여 사회의 질서를 파괴하고 기독교의 운리관을 무너트린 사람입니다. New York 주 Rochester에서 침례교를 목회하던 Walter Rauschenbusch 는 미국에서 사회복음주의 의 창시자입니다. 이들의 주장은 “기독교의 근본 목적은 사회를 개조 정화하여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것” 이라고 가르칩니다. Harvey Cox 라는 하바드 대학 신학부장은 “Secular City” 라는 책을 펴내면서 옛날 어거스틴이 펴낸 City of God 에 정면으로 도전했습니다. 같은 목사라도 이런 여러 목사들이나 독일의  Friedrich Bonhoeffer 의 사상은 여러분이나 저의 신앙과는 정반대가 되는 신학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학자라고해서 모두 믿을 것도 아닙니다. 온전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신앙의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에게서 배울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사회를 정화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것은 “도시 산업선교” 라는 미명으로 공장에 들어가서 순진한 노동자나 직공을 충동하여 회사 측에 반기를 들게 하고 데모를 조종하는 행동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기독교를 몰이해한 처사입니다. 사회를 깨끗이 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방법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의 신앙이 온전해 지고 신앙이 자리를 잡을 때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칼빈 선생이 프랑스 Strasbourg에서 스위스 제네바로 갈 때 “제네바를 하나님의 도성으로 만들겠다” 고 한 말은 그가 제네바에 들어가서 직장마다 찾아다니면서 임금인상과 작업조건 개선을 위한 데모를 유도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제네바에 들어가서 Geneva Academy 를 세우고 그를 돕는 Theodore Beza 로 하여금  교장을 맡게 하고 자신은 하루 종일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습니다. 칼빈의 주장은 “제네바의 모든 시민이 성경으로 돌아오고 참 믿음으로 온전해 지셔 터가 굳어 질 때 제네바는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도성으로 변한다” 고 말했습니다. 그는 너무 가르치는 일과 글 쓰는 일에 열중하여 “나는 너무 바빠서 하늘의  태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잊어버릴 지경이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과연 그가 Theodore Beza 와 Guillaume Farel 과 같이 사역하던 Geneva 는 깨끗해졌고, 정의구현이 실현되었고 칼빈이 기도하던대로 하나님의 도성으로 변했습니다.  사회가 변하려면 우선 사회의 구성원인 사람이 변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그 믿음이 자리를 잡아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게 되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자리를 잡아가게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자리를 잡아가는 것은 온전한 믿음의 도를 알 때 가능해 집니다.

셋째로, 강하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도 베드로를 통해서 본문에서 신앙이 온전해지고, 자리를 잡는 것만 아니라 “강해 질”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앙이 온전하고 신앙의 도리를 알아 인격이 훌륭하게 자리를 잡았다고 해도 힘이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하게 됩니다.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강하게 하시며” 라고 말씀하십시다.  농사를 짓는 농부가 모든 씨뿌릴 준비를 하고 모든 필요한 연장이 준비되어 있어도 일할 힘이 없다면 이 무슨 낭패 입니까? 그 모든 준비해 둔 것들이 무슨 소용입니까?  군인을 생각해 봅시다. 좋은 최신 무기로 완전 무장했습니다. 그러나 싸울 용기도 힘도 없습니다. 그런 군인이 있다면 전투에서 패배하고 말 것이 자명한 일이 아닙니까? 높은 경쟁을 통해서 좋은 대학에 입학은 했지만 공부할 의욕도
능력도 없다면 아무 소용 없을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알고 여러 가지 신학서적을 많이 읽고, 역사적 신앙고백서들을 많이 안다고 해도 신앙생활하는데 의욕이 없으면 문제가 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마치 싸움터와 같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마귀를 대적하라” 고 합니다. 또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고도 엡 6:10 이하에 말합니다. 이 세상의 교회는 “전투적 교회 Church Militant ”입니다. 하늘의 교회를 “승리의 교회 Church Triumph” 라고 합니다. 이 땅에 사는 여러분과 나는 전투적 교회에 속한 십자가 군병들입니다. 십자가의 군병이 용기가 없다거나 힘이 없으면 주님의 군사로 우리의 사역을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싸워야할 대상이 있습니다. 공중에 권세를 잡고 있는 마귀와 싸워야 합니다. 내 육신의 정욕과 싸워야 합니다.  사탄의 세력이 얼마나 강합니까?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사탄에 넘어가고 있는가를 보십시오.

오늘 본문 바로 앞절 베드로전서 5:8 절에 보면 우리의 “원수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삼킬 자를 찾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항상 용맹해야 합니다. 악을 용서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나라에 해가 되는 일들은 단연 물리칠 수 있는 용기와 담력과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이런 힘이 없이 교회가 여성화되어 죄악과 싸울 용기도 능력도 의욕도 상실한 것이 문제입니다. 물론 이런 힘은 주님에게서 옵니다. 내 힘으로는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매달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금년에는 기도에 전혀 힘쓰는 우리 선교회 회원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선교회가 오늘까지 일을 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여러분꼐서 합심하여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돈독히 하는 한해가 되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넷째로, 견고케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본문에는 “견고하게 되며“ 라고 했습니다. 흔들리지 말고 견고해야 합니다. 신앙이 온전해 지고 제 자리를 잡고 그 신앙을 지켜나갈 힘을 얻으면 그 신앙에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바람에 날리는 겨처럼 이리 저리 밀려다니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특히 중요한 말씀이기 귀담아 들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30년, 40년을 믿었다는 사람들이 모두 이상한 사이비 신앙의 풍조에 밀려 이리저리 뛰어 다닙니다.  우리 툴립 선교회 회원들 중에는 그런 일이 없지만 한국이나 미국이나 신앙이 견고하지 못한 분들이 목사이건 장로이건 신학생이건, 일반 평신도이건 요즘 유행하는 온갖 잘못된 신앙으로 우왕좌왕하는 분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얼마나 많은 목사들이 잘못된 신앙에 빠집니까?  

목사들이 잘못된 신앙에 빠지는 것은 더욱 위험합니다. 그들이 교회에 들어가서 그릇된 복음을 전할 때 그 교인들의 영혼이 입는 피해는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요즘에 얼마나 많은 잘못된 가르침이 풍미하는가를 보십시오.  기복신앙, 세속신앙, 사회복음주의, 신비주의, 관상기도, 알파 코스,

세계 종교통일 운동, 특히 지금 미국의 대학을 휩쓸면서 무서운 힘으로 대학생들의 영혼을 죽이고 있는 Peter Joseph 나 Kersey Graves, Manly P. Hall, D. M. Marduck 의 소위 “Zeitgeist Movement” 는 사탄이 뒤에서 조종하는 무서운 뉴에이지 운동으로 매년 3월15일을 Z-Day 라고 이름하여 기독교의 정통성을 파괴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잘못되어 가는 일들을 열거하자면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잘못된 신앙사상들이 교회를 침식하고 있지만 영적으로 눈이 멀어 장님이 된 일반 성도는 그건 시대 풍조에 밀려 참 신앙을 버리고 딤전 4:1의 말씀대로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깨어야 합니다. 우리 선교회처럼 시대를 분별하여 적군이 습격해 온다는  사실을 바로 신속히 알리는 파수군의 역할을 하는 선교회도 흔하지 않습니다.

놀라운 것은 요즘 “목회자 수련회” 란 이름으로 교회 지도자들을 불러 모아 놓고 “교회 성장의 비결” 을 강의한다고 꾀어 성경말씀을 아전인수격으로 왜곡하면서 교회성장을 위한 인간적인 방법론을 강의합니다. 가령 Robert Schuller 같은 사람이 그런 분입니다. “교회 성장을 원하거든 교회에서 죄 이야기를 하지 말며 회개하라는 말을 하지 말라” 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런 말을 하면 모두 자존심 상해서 교회에 나오지 않으니 교회 부흥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오늘 수없이 많은 이런 종류의 목회자 수련회는 교회를 여지없이 파괴합니다. 금년 2월에  미국 남가주 쌘디아고 에서 열리는 “전미국 목회자 수련회” 에서 강의할 강사의 명단을 보면 그 세미나의 성격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별력이 부족한 오늘의 목회자들은 교회의 “수적 성장” 만 생각하여 이런 집회가 있을 때 마다 앞을 다투어 참석하여 새로운 “사람 끌어 모으는 기술” 을 배워 목회 현장에 도입합니다.

부산의 어느 목사는 교회 성장 속도가 느린 것을 한탄하여 미국에 가서 “빈야드 운동”을 배워 귀국하여 목회에 활용하는데 그 교회에서 집사가 되려는 모든 사람은 반드시 “알파 코스” 를 의무적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지도합니다. 대개 무슨무슨 “신년 교역사 수양회” 라는 것은 목사들로 하여금 시대의 사조에 순종하고 따르도록 교육하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영적 분별력이 어느 때보다 지금 더욱 필요하고 신앙이 온전하여 자리를 잡으면 성령의 힘으로 추진력을 가지고 어떠한 그릇된 신학 사조에도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철저한  개혁주의신앙, 성경적 신앙,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세운 이 진리의 말씀에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주님만 바라보면서 성경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악의 세력은 더욱 기승을 부립니다.

우리 선교회 사이트를 보고 분별력이 생겨 교회를 옮기고 싶은데 좋은 교회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지만 소개할 교회가 없습니다. 대개 교회마다 극장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옮기려는 사람 신학교 전학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이전 보다 부쩍 늘어갑니다. 기성 교회가 타락해 가는 증거입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 “너희가 천기는 분별하면서 시대는 분별하지 못하느냐?” 라고 책망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읽어 봅니다. 분별력이 있는 사람, 개혁주의 신앙을 아는 사람만이 이 시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목사나 장로들 중에서도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 많습니다. 전에 언급한 Zeitgeist 운동만해도 그 운동을 그들이 말하는대로 들어보면 하나도 잘못 된 것이 없는 듯 보이지만 무서운 속임수가
들어 있습니다. Zeitgeist 라는 영화는 미국 대학 300 군데에서 상영되어 기독교를 오해하도록 유도하는데 우리는 모두 속았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애굽의 신화을 모방했다는 것이고 복음서는 점섬학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이며 십자가에 못박힌 “구세주”는 세계에 16명이나 된다는 등, 그 영화에는 “화폐무용론”, “미국 국세청의 착취” “9/1” 등 3부로 구성되어 있지만 모두 “기독교는 거짓이니 각성하라” 는 무서운 사탄의 계략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진리는 하나님 말씀에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신실히 믿고 지키는 신학이 개혁주의입니다.  여러분 어떤 유혹이 있어도 다른 길로 가지 마십시오. 좁은 길로 들어가십시오 넓은 길이 편하고 좋을 듯하지만 그 길에는 멸망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요즘엔 postmodernism 시대라서 절대적인 것이 없고, 권위에 도전하고, 모든 것이 상대적이며 감정위주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John Dewey 의 Pragmatism (실용주의)는 미국의 정체성을 망쳐 놓았습니다. 그의 후예들인 오늘의 실존주의자들은 기독교를 송두리채로 파괴하려 하고 있습니다.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견고하여 흔들리지 맙시다  바울은 일정한 신앙의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초보적인 신앙에서 성숙한 성도의 신앙생활을 가르쳐주고 나서 고린도전서 15장58절에 “흔들리지 말고 견고하여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라” 고 권면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에 견고해 지려면 성경보고,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1647), Belgic Confession, (1561), Heidelberg Catechism (1563), French Confession (1559), Canons of Dord(1619),  Cambridge Declaration (1996) 등에 정통해야 합니다. 금년엔 본 선교회 사이트에 “개혁주의 신학 강좌” 를 시리즈로 게재할 목적으로 원고를 정리중입니다. 이단이 무서운 속도로 교회를 침식하는 이때 속지 않도록 하나님의 백성들을 악에서 지켜줄 책임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책을 많이 보세요. 책은 함부러 보아서는 신앙을 손상 합니다. 얼마 전 남미의 Percey Coley 라는 분이 “내가 본 천국” 이라는 책을 출판하여 사람들을 미혹한 일이 있습니다.  요즘 부흥사 가운데 “천국에 갔다 왔다” 고 거짓말하는 사이비 부흥사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런 간증집을 피하고 교리를 공부할 좋은 책들을 읽으십시오.  Hippo 의 Augustine, John Bunyan, John Calvin, Guillaume Farel, John Milton John Owen, William Perkins, Thomas Brooks, Francis Turretin, Benedict Turretin,  John Flavius, Jonathan Edwards, Jacob Frelinghuysen, Samuel Mills, Gilbert Tennent, Samuel Davies, John Gresham Machen, Benjamin B. Warfield, Archibald Alexander, Cornelius Van Til 의 책을 읽으십시오.

그 밖에 Iain Murray,  Samuel Rutherford, George Gillspie, William Twisse, Friedrich Farrar, Abraham Kuyper, R.B. Keiper, 이런 철저한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책을 사서 읽으세요.  이런 책들은 대개 믿을만한 개혁주의 출판사인 영국의 Banner of Truth Trust,  Evangelical Press, Christian Focus 출판사 와. 미국의 P&R, Still Waters, SOLI DEO GLORIA, Trinity Foundation 에서 출판 되었습니다. 부디 유다서 3절 말씀대로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 고 하신 말씀을 따라 절대로 흔들리지 말고 바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문제는 대개 교인들이 교리를 몰라서 생깁니다. 교리 공부를 해야 믿음이 성장합니다.

III  그 영광의 날을 위하여
    사도 베드로는 본문에서 이런 모든 일을 마치려 함에는 반드시 고난이 따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베드로 당시의 고난도 생각하지만 우리도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같은 고난이 있습니다.  바울과 베드로는 모두 고난을 받으며 전도하다가 순교했습니다. 지금은 주께서 예비한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 계십니다.  베드로전서 전체가 사탄의 세력으로부터 핍박을 받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베드로를 통해서 고난을 받되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믿음을 지켜 가면 영원한 영광이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책입니다. 베드로 당시 얼마나 많은 사도들이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의 제물로 주님의 제단에 바쳐 졌습니까?  John Foxe 가
쓴 “Christian Martyrs” 라는 책을 사서 읽으십시오. 우리 말로 “기독교 순교자들” 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으시면 여러분의 신앙의 자세가 달라 질 것입니다.

    믿음이 온전해지고 믿음이 자리를 잡고, 강해지고 그리고 견고하게 되기까지는 고난이 따릅니다. 성경은 “무릇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저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라고  데모데 후서 3:12에서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그 고난은 잠시 잠간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앞서간  믿음의 선진들이 모두 핍박을 받으며 신앙을 지켜 나갔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친히 자취하셨습니다.  주님이 무거운 편의 십자가를 지면 우리는 가벼운 편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주님의 지신 십자가는 택함을 받은 백성의 죄를 용서하는 대속의 십자가입니다. 한편 우리가 지는 십자가는 갈라디아 2:20 말씀대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란 신앙 고백 때문입니다.  우리들 가운데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갈 약속을 받은 언약백성임을 잊지 마십시오. 이 세상의  
어떤 핍박이 와도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 고 하신 로마인서 8장 끝절 39절에 위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택한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는 우리 주님의 신실한 언약입니다.

    현재의 고난은 잠간입니다.  롬 8:18에 말씀하기를,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라고 했습니다. 고후 4:17-18에는 “우리의 잠시 받은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려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은 것은 영원함이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벧전 5장 10절에서 “잠시 잠간” 이라는 단어, 즉, “올리곤” 이라는 말은  분량이 “지극히 적다” 는 말입니다. 여기서 영어의 oligarchy 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성도가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사는 여정에서 고난은 잠간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생명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주님의 제자라고 사면서도 이 땅에서 고난 없이 부귀영화를 누리며 사는 것을 <주님의 제자의 도> 로 착각하고 따르는 것은 어찌된 영문인가요?  오늘 나오는 책들이 모두 그런 책들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을 견고하게 하여 주십니다.  우리에게 닥쳐오는 시련을 결코 마다하지 말고 기쁨으로 받아 천국 가는 노정기로 삼읍시다. 우리의 앞서 간 모든 믿음의 선진들이 그렇게 좁은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 길이 주님 가신 길입니다.  대장쟁이가 연장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쇠뭉치를 망치로 여러번 마구  때립니다. 그 후에 모양 없던 쇠뭄치는 쓸모 있는 훌륭한 연장이 되어 나오지 않습니까?  해변가의 조약돌은 수 많은 풍상에 시달린 후에야 그처럼 아름다운 조약돌이 된 것이 아닙니까?  고난을 당한 욥은 욥기 23:10에서 “그가 나를 연단하신 후에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잠시 잠간의 고난을 참으며 신앙의 길을 달려 갑시다. 그것이 생명의 길입니다. 요즘, Joel Osteen (조엘 오스틴)이나   Rick Warren(릭 워렌), Bruce Wilkinson (브루스 윌킨스)등의 책을 배척하는 이유는 그 속에 십자가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 친히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셨는데 이런 사람들의 책에 그런 십자가의 모습이 어디에 있습니까?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고로 거짓 복음을 전하는 이런 서적들을 올바를 성도들은  배척하는 것입니다.


결론
금년 한해 동안 “모든 은혜” 로 우리를 돕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우리 모두 믿음이 온전해지고, 믿음의 자리가 잡히고, 강해지며, 견고해 져서 흔들리지 말고 믿음에 성공하는 여러분들 되어 지기 바랍니다.  이런 일을 위해서는 고난을 받습니다. 무서운 고난이 닥칩니다. 그러나 그 고난은 잠시 잠간입니다. 주님은 “그날을 감하지 아니하면 구원을 얻을 육체가 없으니 그날을 감하시겠다” 고 마태복음 24장에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은 장차 우리 앞에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 고
가르쳐 줍니다. 언약의 백성이 들어갈 영원한 영광이 우리 앞에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 영광의 주님이 오늘 새 해 를 맞는 여러분에게 믿음에 부요한 자가 되어 믿음에 성공하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이것이 참다운 성공입니다.  본 선교회를 통해서 1,000 명 가까운 사람들이 지금까지 걷던 길에서 돌이켜 새로운 진리의 <개혁주의 신앙> 으로 돌아섰습니다. 이들에게는 바른 진리의 길을 찾은 것이  최대의 성공입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에게 감사와 찬송을 돌립니다.

우리 모두가 힘을 합하여 금년에 우리 자신이 믿음으로 성공하고 남에게도 성공하는 비결을 전하는 자들이 되어 지기를 바랍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을 들으신 여러분을 강권하여 믿음의  성공을 기도하는 여러분의 새해 결심이 꼭 이루어지도록 도와주실줄 믿습니다.  옷 깃을 여미고 이 새해 첫 예배에서 새로운 결심을 다짐하는 여러분에게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아멘.                       -새해의 결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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