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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돌아보며 (시 90:10-17)

김명도박사 설교

by 김경호 진실 2009. 7. 19. 23:32

본문

일시: 2008년 12월 28일  11시
장소: 튤립 교육 선교회
본문: 시편 90:10-17
제목: 한해를 돌아보며
설교: 김명도 목사
길이: 45분
녹음: C-60 cassette

서론
달력을 보면 금년 2008년도 사흘을 남겨 두고 있습니다. 이제 3일이 지나면 우리는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묵은 해 2008년 을 보내고 새해 2009년을 맞게 됩니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일이 처음은 아니건만 해 마다 이때가 되면 사람들은 누구나 회한의 눈물을 흘립니다. “좀 더 잘 살 것을” “좀 더 충실하게 사람답게 살수도 있었는데” “바쁜 살림 속에서도 좀 더 주님 나라위해서 일할 수 있었는데” “좀 더 자식들을 잘 돌볼 수 있었는데” 좀 더 가정에 충실하여 남편과 아내에게 사랑으로 대할 수 있었는데“ 이런 후회하는 말들을 열거하지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 속에 묻혀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못할 한해의 마지막 넘어가는 석양의 낙조를
바라보며 아무리 후회하고 뭄 부림 쳐도 한번 산 인생은 다시 되 돌릴 수 없는 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때가 악하니 세월을 아끼라”고 가르쳐 줍니다 (엡5:16). 그러나  육신의 삶에 고달픈 인생은 영적인 일에 생각할 여유도 없이 향방 없이 분주하게 동분서주하다보면 어느새 일 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갑니다. 모세에게도 그의 인생이 있었고 그의 인생에도 해가 오고 가는 경험이 있었고 해가 바뀔 때마다 우리가 가지는 같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아쉬운 마음으로 한해를 보내는 우리는 오늘 시편 90편 10-17에 나타난 모세의 기도를 통해서  “한해를 돌아보며” 라는 제목으로 피차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 저  합니다. 세 가지 대지로 나누어서 말씀을 전 하겠습니다.

I 우리 날을 계수 합시다 (10-12)
II 회개 합시다 (13-15)
III 주의 일에 힘 씁시다 (16-17)

I 우리 날을 계수합시다 (10-12)
  본문은 이스라엘백성이 애급에서 나와서 아직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광야에서 하나님에게 불순종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쳐 주는 모세의 기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으로 430년간 종살이 하던 애급에서 해방되어 나왔건만 광야에서 그들이 당하고 있는 어려움을 참지 못하여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하나님에게 모두 진멸 당하고 말았습니다. 여기 본문은 그런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가 하나님의 사랑과 진노를 언급하며 회개하기를 촉구하는 기도입니다.

10절 이하에 보면,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 이라” 했는데 인생 80을 살기가 어렵지만 설혹 80을 산다고 해도 그 수고는 슬픔뿐이고 신속이 자나갑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오는 것은 순서대로 우리의 형님이나 누님 다음으로 태어나지만 갈 때는 일정한 규칙도 순서도 없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언제든지 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고 보면 사람이 우리의 날을 계수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여기서 “우리 날 계수할 지혜를 달라” 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땅에 천년만년이라도 살 것처럼 이 세상의 일에만 몰두합니다. 영에 관한 것은 소홀히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천하를 다 얻고도 네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라고 마태복음 16장에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 16:26). 그럼에도 어떤 부자 청년은 재물이 많아 주님을 따르지 못하고 슬픈 기색으로 돌아갔다고도 합니다 (마태 19:16이하). 성경은 잠언서 6:6에 개미에게서 배우라고 가르쳐 줍니다. 개미는 겨울을 대비하여 일을 열심히 합니다.  미래를 내다보기 때문이지요.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현세에만 집착하는 인간보다는 훨씬 지혜로운 곤충이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개미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우리의 연수는 일순간에 다 지나갑니다. 세월이 얼마나 빨리 흘러가는지는 우리 모두가 경험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본문에서는 “신속히 지나간다”고 했지만 그런 말보다는 “쏜살 같이 지나간다” 는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시인 Longfellow 는 시를 쓰면서 Life would be short but that hope prolongs it. 이라는 말을 하였는데 희망이 인생을 연장해 주지 않는다면 인생은 짧을 것이라는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짧지 않은 영원한 생명이 우리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날, 즉 우리 여생이 얼마나 남았을까 계수할 지혜를 달라고 모세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너무 빨리 지나갑니다.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무덤을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음을 누가 부인합니까?  인생은 심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후회 없는 인생을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요 지혜로운 사람에게만 주어진 특권입니다. 그 지혜는 그리스도 안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일 년 동안 362일을 살고 사흘을 남겨 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았건 저렇게 살았건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그 많은 시간동안 사람들은 나름대로 삶을 영위하며 연륜을 더했습니다. 우리가 오늘까지 걸어온 삶이 어떠하든 이제 과거는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흘러간 과거는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 앞에 남은 날들을 생각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남은 날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사람이 반드시 나이들고 병들어야 가는 것만은 아닙니다. <인생대학> 을 졸업하면, 즉 하나님이 맡겨주신 이 세상에서의 일을 마치면 하나님은 불러 가십니다.  

모세는 여기 본문에 보면, 광야에서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으로 인하여, 또 형식적인 신앙생활로 인하여 진노하신 하나님의 진노의 날들을 피할 날이 얼마나 될지 계산하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것은 비단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만 아닙니다. 오늘 우리도 지난 일 년을 살면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한 나태한 생활과 태만과 오만과 방종과 불신의 생활로 인하여 우리 하나닙은 심히 진노하고 계십니다.  언제까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자행자지 하면서 살 것인가요?  우리의 인생은 길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칼을 빼어 들면 우리는 모두 소잔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하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합시다.

II 회개합시다 (13-15)
  모세는 이 기도를 통해서 광야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에게 돌아오기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13절에 “여호와여 돌아 오소서 언제까지 이니까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한이 없지만 가증한 인생은
주의 사랑을 배반하고 주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고 자기 자신이 왕의 자리에 앉아서 자신의
뜻대로 살아갑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 했습니다.   43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하면서 얼마나 고통을 당 했습니까?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버리지 않는 언약의 하나님이기에 그들을  애굽땅 종되었던 처지에서 건져 내셨습니다  

기적과 이적으로 애급의 말 탄 자들과 수례들을 모두 물속에 수장하는 능력으로 그의 백성을 건져 내셨습니다. 광야에서 만나로 먹여 주셨고 반석에서 물이 나서 갈하지 않고 살 수 있었습니다. 메추라기로 입에서 신물이 나도록  고기를 주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날씨가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추운 전형적 사막기후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고 지켜 주셨습니다  광야에 흔한 불 뱀에 물린 자들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만든 <구리 뱀>을 보면 누구나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만족이 없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 보다 애급에서 종살이 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불신앙으로 하나님의 노를 격동하였습니다. 그의 노여움은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었건만 이스라엘 백성은 순종치 않고 끝까지 모세를 원먕 했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결과는 하나님의 진멸뿐이었습니다. 애급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아무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들이 자손들이 여호수아와
갈렙의 인도로 육지가 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갔던 역사적 사건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구원의 모형입니다. 성경은 인물을 통해서, 사건을 통해서, 그리고
이스라엘 나라의 역사를 통해서 모두 모형학적으로 구원의 성질을 가르쳐 줍니다.  이런 맥락에서 성경은 광야를 “현세” 의 모형으로 나타내고,  애급을 “죄악의 상태”로, 그리고 가나안은 “구원” 의 모형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가령 계시록 11장에서 두 증인이 죽는데 그 두 증인들이 죽은 곳은 영적으로 말하면 <소돔 혹은 애급>이라고 하는 곳에서 죽은 곳이며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곳> 이라고 합니다.  계시록 11장은 계시록 중의 계시록인데 두 증인은 <말씀을 바로 전하는 진정한 교회 혹은 사역자> 를 말합니다. 이들이 죽은 곳이 애급이라는 말은 이들이 <불신의 세상에서 순교했다>는 말이고 본문에서 <죽었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죽었다는 말이 아니라 “죄악의 도성에서 말씀을 바로 전하는 하나님의 종들의 설교를 외면하는 모습” 을 “죽는다” 는 말로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는 이 백성이 회개하고 하나님에게 돌아오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전과
같이 회개하는 백성의 회개를 들으시고 이전과 같이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죄를 용서함 받은 기쁨을 누리며 살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14절에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연수대로 기쁘게 하소서” 라고 14-15절에 말합니다. 주님 안에 참 평화가 있고 주님 안에 참
기쁨이 있습니다.

여러분, 시편 51편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까? 다윗이 죄를 짓고 죄로 인하여 번민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가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난 다음에 기록한 시편 32편을 읽어 보십시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라고 시작하는 이 시는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믐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내가 이르기를 내가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라고 시편 32:1-5에 말합니다. 시편 32편은 이렇게 끝납니다.”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루리로다.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줄거워 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더 줄거이 외칠지로다“ 라고  말입니다.  참다운 마음의 평안과 참다운 기쁨은 죄를 용서함 받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산 소망이 있습니다.         

본문은 광야에서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의 배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말하면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기다리는 회개를 촉구하는데 로마인서 15:4 말씀이나 고린도전서 10:11 말씀에 보면 옛날에 기록된 말씀들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에게 교훈으로 주셨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우리들에게도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지난 일 년을 어떻게 살아 왔습니까?  하나님에게 바로 살아 왔습니까? 표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의 표준이 아닙니다.  “그만하면 그대로 잘 살았다” 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았는가? 라고 묻는 것입니다. 모세 시대 광야의 이스라엘 300 만명도 나름대로 바른 생활을 한다고 자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했고 따라서 하나님의 진노를 샀고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이 기도를 통해서 백성들에게 회개하기를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일 년 동안을 회고해 볼 때, 우리의 생활이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의 생활의 표준은 성경이고  <CORAM DEO>  즉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살아 가는 생활을 말합니다. 우리의 가정에서 과연 하나님의 기쁘신 신앙생활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렸습니까?   우리의 자녀들을, 우리의  연로하신 부모님들을, 그리고 내외간에, 또 병약한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베풀며 살았습니까?   직장생활에서 사회생활에서 남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았습니까?  여려 분을 “mentor” 로 삼고 싶어 존경하며 따라다니는 분들이 여러분 개인 주위에 과연 몇 명이나 됩니까?  교회 생활에서 남에게 “나를 본 받으라”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정도로 그리스도인의 참 모습을 보였습니까?  

지금은 한해가 저물어가는 때이니 한번 쯤 깊이 생각하고 불충했던 우리의 지난 날의 신앙 생활을 회개하십시다.  금년 해가 다 하기 전에 하나님에게 돌아와 회개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사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라“ 는  신실하신 말씀 (요일 1:9)과  “너희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 질 것이라” 고 하신 신실하신 말씀 (사 1:18) 에 의지하여 회개하십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수양의 기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시편 51:17절 말씀대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 입니다.  이해가 다 가기 전에 낡을 옷을 벗듯 하나님에게 지은 죄를 모두 자백하고 회개하십시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통회하고 자복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나오기를 기다리십니다.

III 남은 여생 주의 일에 힘 씁시다 (16-17)
   죄를 회개하고 사죄의 기쁨을 누린 우리는 나를 구원하시고 나의 힘과 나의 능력이 되신 하나님에게 몸과 마음을 바쳐 일편단심으로 주를 뜨겁게 사랑하며 주를 위해 살아갈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의 행동철학은 바로 주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며 <summum bonum> (지고의 선) 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일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생활” 이 바로 성도의 생활입니다 (고전 10:31).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 이 성도의 생활패턴이 되어야 합니다 (마 6:33).  

본문에 보면 16절에 “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게 나타 내소서” 라고 말합니다. 죄용서 함 받은 수은자가 할 일은 그 시은자를 위해서 생명 다하도록 충성하는 것입니다. 눈가림으로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리고 단 마음으로 주를 위해 봉사는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하나님이 나라를 우리들 사이에서 만 아니라 우리들 자녀에게도 나타내 달라는 기도입니다.  우리만이 아니라 우리의 자녀손들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이 지식의 근본” 임을  알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하나님에게 효도하는 백성들로 축복해 달라는 말입니다.

죄를 용서함 받은 우리들은 다가오는 새해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데 우리들이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주여, 나는 하나님의 긍휼을 받기에 합당하지 못한 죄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과 은혜로 내 죄를 용서함 받았으니 앞으로 나의 일생을 주님을 위해서 살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자는 말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죽어가는 영혼들이 아우성 칩니다. 지옥으로 내려가는 저들의 음성을 들을 귀가 있어야 합니다.
거짓 복음이 풍미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의 말은 “우리나 하늘로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으리라” 라고 갈라디아서 1:8-9에
두 번씩 반복하여 엄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어느 단어나 구절을 반복하는 것은
반드시 강조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이 말을 그냥 쉽게 넘어갈 말이 아닙니다. “저주를 받는다”는 말은 원문에서는 “anathema" 인데 이 말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놓여 졌다" 라는 말입니다. “ana" 란 말은 ”위에“ 즉 ”하나님에게“ 란 말이고, ”thema "란 말은 “tithemi" 의 파생어인데 ”놓는다“ 의 의미이니 "하나님 앞에 놓여져서 심판을 기다리고 있으니 만일 유죄 판결이 나면 영낙없이 지옥으로 내려 간다“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무서운 단어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엄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 주변에서는 얼마나 많은 교회와 “사이비
목사“들이 잘못된 거짓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죄를 용서함 받은 참 성도는 주님의 도구로 사용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영광에 ”장애물“이 되는 ”거짓 복음“을 모든 힘을 다하여 막는데 앞장 서야 합니다. 그것이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를 기록한 동기이고 당시 사도들이 이단을 용납하지 않고 교리의 순수성을 지켰던 모습입니다.

또한 그것이 Stehe ich hier (Here I stand) 라고 외치던 16세기 Martin Luther가 “거짓 복음”을 용납하지 않던 용감한 신앙의 자세였습니다.

결론
오늘 우리는 금년 마지막 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돌아보면 지난 일년 동안 우리가 몸담고
섬기는 튤립 교육 선교회 사역을 위해서 여러분들 땀과 눈물을 많이 흘리셨습니다.  주님이 갚아 주실 것입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로 우리를 지켜주셔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선교회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개혁주의 신앙을 사랑하는 성도들이나 목회자들과 교신하면서 그들의 필요를 충당해 왔습니다.  가장 가슴 아픈 일은 다년간 출석하던 교회를 떠나 새로운 교회를 찾아 방황하는 분들과, 신학교에 입학은 했으나 선택이 잘 못되어 새로운 신학교를 소개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사역하는 과정에서 교리적 논쟁도 어려번 있었습니다. 해가 갈수록 비성경적 교리들과의 논쟁은 심해집니다.

본선교회 와의 꾸준한 우편교환으로 개혁주의 의 진수를 터득한 분의 수가 늘어가는 것으로 본 선교회는 그간 눈물과 땀을 흘린 보람을 느꼈습니다.  물론 그런 사역 뒤에는  이를 위해서 물심으로 협력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여러 성도님들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재정적으로 힘 든 한해 였지만 주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시 90편 모세의 기도를 통해서 “한해를 돌아보며”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세월은 우리를 위해서 쉬어 갈 줄을 모릅니다. 화살처럼 빨리 달리는 인생길에 우리는 과거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처첨 불순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또한 지난 한해를 돌아볼 때 우리의 생활은 죄로 얼룩졌습니다. 이해가 다 가기 전에 하나님에게 나아가 죄를 자복하고 죄사함을 구합시다.  죄 용서함을 받은 우리는 남은  여생을 주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도구로 쓰임 받아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 몸과 마음을 바칩시다.

지금은 어려운 때입니다. 참 믿음을 지키기 어렵고 참 개혁주의 신앙을 전하기도 어려운
때입니다.  우리 주위에서 Perspectivalism, Reader-Response Criticism,

Contemplative Spiritualism(관상기도), Spiritual Formation, Emergent Church Movement,

 Global Peace Movement, 등 참으로 잘 못된 복음이 교회를 점령하고 있건만 분별력이 전혀 없는 일반 교인들은 그것이 <독약> 인 것 조차 모른채 서서히 독살당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예배드리는 우리는 이런 분들에게 바른 말씀을 전할 사명을 받은 분들입니다.  이 사명을 다하려면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금년에 지금까지 우리를 그냥 두신 것은 아직도 우리를 통해서 하실 하나님의 일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금년에 못 다한 주님에 대한 충성을 오는 새해에 충실히 할 수 있도록

 전제주권을 가지고 역사하시는 우리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능력과 필요한 여건들을 주실 것으로 확신합니다.  

새해를 맞는 여러 성도님들 가정에 주님의 은혜와 평강과 사랑이 충만하시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마칩니다.
                                                                                          -설교, 한해를 돌아보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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