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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주차. 전적 타락과 군중심리

최더함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5. 7. 15.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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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주차. 전적 타락과 군중심리


 

 

본문: 21:27~36

그 이레가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간 줄로 생각함이러라.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그가 급히 군인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그들이 천부장과 군인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그가 누구이며 그가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 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는 이런 말로, 어떤 이는 저런 말로 소리치거늘 천부장이 소동으로 말미암아 진상을 알 수 없어 그를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니라. 바울이 층대에 이를 때에 무리의 폭행으로 말미암아 군사들에게 들려가니, 이는 백성의 무리가 그를 없이하자고 외치며 따라 감이러라


 

 

1. 인간의 전적 타락


 

 

결례를 위한 한 주간이 거의 끝날 무렵에 성전 뜰에서 갑자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로마의 식민지에 사는 유대인들 중에 특히 아시아 지방의 유대인 그중에서도 에베소의 유대인들이 바울에게 적대적이었는데 이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3년간 사역하면서 그들의 반감을 샀기 때문입니다. 이들 중 일부가 오순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는데 마침 원수로 여기던 바울도 그 자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을 해하기 위해 그들에게 이보다 저 좋은 기회가 없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아시아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결례를 치루고 있는 바울을 어떻게 알아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물론 얼굴을 아는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대체적으로 소문으로 들은 사람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하나는 바울의 대머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건 희박한 가능성입니다. 당시 유대인들 중 대머리들도 상당 수 있었다고 치면 대머리라고 해서 금방 바울이라고 단정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다른 이유로는 F. F. 브루스는 29절을 근거로 드로비모를 지목합니다. 그는 에베소 출신의 그리스도인입니다. 유대인들은 드로비모가 내내 바울 옆을 지키는 것을 보고 저 사람이 바울이라는 것을 직감했을 것으로 풀이합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성전 즉, 이스라엘의 뜰에 들어가는 것은 사형죄에 해당합니다. 물론 이방인들을 위해선 성전의 바깥뜰로 불리는 이방인의 뜰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성전의 안뜰에 들어가는 것은 죽음을 면치 못하는 일입니다. 로마 당국도 유대인들의 종교적 금기사항에 대해선 일절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설사 그가 로마 시민이라 할지라도 사형선고가 내려지는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래서 로마 당국은 이방인이 부지중에 성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안뜰 입구에 헬라어와 라틴어로 경계선을 넘으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경고문을 붙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경계선이야 말로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하는 절대 선이요 중간에 막힌 담’(2:14)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유대인들이 갑자기 소동을 벌였습니다. 이제 그 이유가 드러납니다. 물론 바울은 성전에 갈 때 드로비모를 대동하고 갔습니다. 그러나 그 자신은 결례를 행하기 위해 성전 안으로 들어갔지만 그와 함께 한 드로비모는 바깥뜰까지만 가고 안뜰에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29절에서 성경은 드로비모가 성전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증언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바울이 드로비모를 데리고 성전 안을 침범했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성전 모독이요 사형죄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한 오해입니다. 28절에 보니,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 중 하나가 큰 소리를 칩니다. 바울을 지목하며 성전을 모독한 자라고 고발합니다. 아시아의 유대인들은 바울이 아시아에서 행한 것을 근거로 지금도 당연히 모세를 배반하고 율법을 가르침을 무시하는 사람이라고 단정한 것입니다.


 

 

이렇게 오해와 편견은 같은 뿌리에서 자라는 심리적 질병의 하나입니다. 성경은 모든 인간이 자력으로 어떤 선행이나 올바른 판단이나 결정을 할 수 없는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라고 말합니다. 전적으로 타락했기에 모든 생각과 마음과 뜻이 부패한 것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는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완전히 망가진 상태를 말합니다. 어느 정도 손을 쓰면 복구가 가능한 그런 수준이 아니라 어디에도 손을 쓸 수 없는 완전히 병들고 썩고 찌그러진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오해는 당연한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어떤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바른 지식을 소유하지 못합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모든 인간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행위가 정확하고 바르게 전달되고 이해되어지기를 원하지만 모든 사람은 누구도 예외 없이 다른 사람을 오해하고 바르게 인식하지 못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거듭나기 전의 상태입니다.

 

 

바울은 롬3;10-18을 통해 이 사실을 적시합니다.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또 이 상태를 두고 바울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말합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2;3)


 

 

우리가 배운 도르트신조 셋째 교리 제 3항을 다시 기억해 봅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죄악 중에 잉태되며 본질상 진노의 자녀다. 구원의 선을 행할 능력이 없으며, 악으로 기울어져 있고, 죄 가운데 죽었으며, 죄의 노예다. 그리고 사람은 성령님의 거듭나게 하시는 은혜가 없이는 하나님께로 돌아오거나 부패한 본성을 개혁하거나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개혁하시도록 내어 드릴 능력이 없으며 그것들을 원하지도 않는다


 

 

2. 흥분하는 군중


 

 

몇 사람이 선동하자 순식간에 군중은 흥분합니다. 마치 기름에 불을 붙이듯 우르르 몰려듭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사실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유일한 관심사는 지목된 사람을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때 누군가가 죽여라하면 그냥 죽이는 쪽으로 행동합니다. 이것을 군중심리라 부릅니다. 영어로 crowd mind라고 하는데 이는 사회 심리 현상의 하나로 여러 사람들이 집단으로 모였을 때 개별 주체의 일상적인 사고와 다르거나 혹은 같더라도 그 범위를 뛰어넘는 행동을 하게 되는 심리상태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군중 속에 있는 사람은 자기 이상의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상태를 공황(panic)이라 하고, 공황상태에 빠져 한 사람을 향해 공격하는 군중을 폭도(mob)라 칭합니다. 평소에 조용하던 사람도 군중심리에 빠지면 죄 없는 사람을 향해 죽여라고 고함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런 군중심리에 자극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 십자가로 끌려 가셨습니다. 인간은 군중 심리에 함몰되면 모두가 한곳으로 치닫게 됩니다. 이 기울어짐은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한쪽 방향으로 쏠림현상이 일어납니다. 군중심리의 힘은 대단한 것입니다. 모든 공산혁명가들은 이 심리를 자극해 혁명에 성공했을 정도입니다.


 

 

사회심리학의 실험결과, 제아무리 거대한 군중일지라도 세 사람만 합세하면 군중을 한 방향으로 몰고 갈 수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길거리 실험결과 세 사람이 갑자기 길을 가다 멈추어 서서 한 곳으로 바라보면 뒤따르던 모든 사람이 동시에 세 사람과 행동을 같이 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고사성어에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세 사람만 입을 맞추면 없던 호랑이도 만들어낸다는 뜻입니다. 어떤 회사에서 열 명이 회의를 마치고 중국음식점에 갔는데 앞의 아홉 사람이 자장면을 시키면 남은 한 사람은 다른 것을 먹고 싶어도 앞의 사람들을 따라 간다는 것입니다. 군중 속에서 한 사람의 리더가 차지하는 비중을 설명하는 한 예가 됩니다. 사람은 어려서부터 부모나 연장자, 혹은 선배를 추종하고 모방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군중을 이끄는 지도자를 아무런 저항 없이 추종하고 그가 이끄는 방향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대개 이단의 지도자들은 자신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든 광신도들을 군중심리에 빠지게 만드는 현란한 기술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군중심리에 매우 취약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예를 들어, 거수로 어떤 결론을 내릴 때 한국 사람은 반드시 다른 사람을 한 번 쳐다보고 손을 든다고 합니다. 한국인은 집단 내에 들어가면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성적인 판단에 기울어진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 정 의라는 세 요소로 구성하고 창조하셨는데 이 세 가지가 어느 한 쪽으로 쏠리거나 편중됨 없이 질서와 군형과 조화를 이룰 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앙적으로 풀이하면 마찬가지로 지는 성경공부요, 정은 기도생활이요 의는 삶 그 자체로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건강한 신앙생활은 이 세 가지가 잘 조화되고 질서 있게 융합되었을 때 가능할 것입니다.

 

 

, 어쨌든 예루살렘 성에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의 뜰에 있던 군중이 저 자를 잡으라는 고함소리를 듣자 순식간에 바울에게 달려들어 바깥뜰로 끌어냈습니다. 이와 동시에 성전의 경비원들이 문을 닫았는데 이것은 흥분한 군중이 거룩한 경내로 침입하여 소란을 피우는 것을 예방한 조치입니다. 바울은 군중에 의해 바깥뜰로 끌려나와 발길질을 당하고 매를 맞는 등 폭행을 당했습니다. 그러자 이 일은 곧장 예루살렘 성 전체에 알려지게 되었고 드디어 책임자인 천부장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성전의 북서쪽에는 헤롯 대오아이 세운 안토니아 요새가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천부장의 지휘를 받는 로마의 보병부대가 주둔했습니다. 우리 군으로 치면 1개 대대 병력은 족히 될 것입니다. 소동이 일어날 경우에 주둔군이 신속하게 개입하기 위해 이 요새는 중간에 하나의 계단으로 된 연결통로를 만들어 쉽게 바깥뜰로 갈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예루살렘은 늘 소동이 일어나는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유대인들을 다루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언제든지 반란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3. 성경이 응하다


 

 

32절에 보니 천부장은 군사들과 백부장들을 데리고 즉시 달려갔습니다. 백부장을 복수로 기록한 것으로 보아 최소 200명의 군사를 대동한 것으로 보입니다. 군중은 군대가 달려오는 것을 보자 폭행을 멈추었습니다. 만일 때를 맞추어 주둔군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바울은 몇 분이 못 되어 목숨을 잃었을지 모릅니다. 이런 위급한 순간에도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매 맞는 바울을 보자 천부장은 즉시 군중 속으로 들어가 바울을 체포합니다. 33절에 보니 두 쇠사슬로 결박을 당합니다. 드디어 이 지점에서 성령께서 예고한 말씀이 실현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성취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뿐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의 말도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사무엘이 그 좋은 예입니다.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삼상3:19-20)


 

 

사도 바울도 지금 행 9:15-16에서 하나님이 이미 말씀하신대로 결박을 당한 것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성경이 응했다고 합니다. 모든 일은 성경이 말한 대로 이루어집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바울을 하나님의 목적대로 사용하기 위해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결박당하는 것을 허락한 것입니다. 뒤의 이야기이지만 여기서 결박을 당해야 가이사랴로 보내지고 그곳에 있다가 로마로 가는 배를 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하시고 위대하시며 전능하신 섭리의 능력과 은혜를 믿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이해되지 않고 믿어지지 않는다 해도 장대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라는 입장에서 바라보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이것이 한 마디로 섭리적 신앙입니다. 이 신앙을 가진다면 하나님의 일 뿐 아니라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다 이해되고 믿어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천부장은 왜 바울을 결박한 것입니까? 그것은 바울이 비록 범죄자라 할지라도 법에 따라 심문하고 재판을 하는 것이 로마법입니다. 군중에 의해 무고한 한 생명이 죽음을 당한다면 천부장은 로마법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것도 로마시민인 사람이 폭도에 의해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천부장에겐 치명적인 사건이 될 것입니다. 한편으로 이것은 바울이라는 범죄자를 체포하는 목적도 있지만 일단 군중에게서 빼내기 위한 임시적이고 형식적인 조치이기도 합니다. 일단 바울을 수중에 넣어야 소요가 가라앉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천부장은 바울이 무슨 죄를 지었는가를 알아내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그러나 천부장은 바울의 죄를 정확하게 알아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군중이 그에게 퍼붓는 비난의 말들은 서로 엇갈리고 종잡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부장은 바울을 요새 안으로 데리고 갑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노리는 바울을 군사들에게 강제로 빼앗긴 군중이 쉽사리 물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군중은 비록 폭력행사는 그쳤지만 물러나지 않고 군사들의 뒤를 따라갑니다. 그리고 요새에 이르는 층계에 이르렀을 때 마지막으로 바울을 폭행합니다. 바울에 대해 분이 풀리지 않은 것입니다.


 

 

분노한 인간의 특징은 분을 다 쏟아내어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런데 자신의 분노를 폭력으로 풀어내는 습관에 길들여지면 굉장히 위험한 인물이 됩니다. 어릴 때부터 분노조절을 할 수 있도록 잘 교육해야 합니다. 수요일에 분노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대체적으로 분노의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봅니다. 하나는 자존심과 관련된 문제이고 둘째, 억울한 일과 관련되고 셋째로는 기대감이 무너졌을 때 주로 분노한다고 합니다. 가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제사를 거절당했을 때 자존심을 상해 분노했습니다. 사울은 자기보다 다윗이 더 많은 칭송을 받자 억울한 마음이 들어 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하였습니다. 그 시기와 질투가 다윗을 죽이려는 분노의 마음으로 발전했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분노를 긍정적으로 승화시키는 훈련을 받지 못한 인물입니다.

 

 

군중이 끝까지 쫓아와 폭행을 하자 군사들은 바울을 아예 들어 올려 요새로 데려갑니다. 자신들의 손이 더 이상 바울에게 미치지 못하자 군중은 마지막으로 악을 쓰며 소리칩니다. 브루스는 이 때의 상황을 27년 전의 예루살렘에서의 군중이 행했던 것과 비교합니다. 23:18입니다. ‘없애 버려라는 헬라어로 아이레 아우토인데 직역하면 우리에게 돌려 달라는 뜻입니다. 돌려주면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말로는 죽여라 죽여라고 소리치는 것과 같습니다.

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4. 결어


대체 인간의 악함은 어디까지입니까? 이에 성경은 인간의 전적 타락을 지적합니다. 전적으로 타락했다는 것은 인간이 전적으로 악하다는 말입니다. 자기는 선한 일을 한다고, 양심적으로 한다고 하지만 타락한 인간이 하는 일은 결국 자기를 위한 일이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 상태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예수님의 피의 공로를 힘입고 성령의 세례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나의 구속주 되심을 시인하고 그분을 믿는 것으로 가능합니다. 이 믿음은 예수님이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지금도 이 믿음의 효력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 거듭남을 입고 구원을 받고 영생복락을 누리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됩니다.


 

 

다음으로 함께 생각해 볼 것은 악인들에 대해 어떻게 처신해야 합니까?’하는 실제적인 문제입니다. 바울이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예수님에게 죄가 있었습니까? 그럼에도 저들은 무죄한 사람을 죽이라고 소리칩니다. 지금도 기독교를 개독교운운하는 악인들이 득실댑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임을 믿어야 합니다. 아들의 반란으로 인해 다윗왕은 밤 중에 성을 빠져 나와 도망 길에 오릅니다. 그때 시므이라는 악인이 나타나 다윗을 향해 온갖 저주의 막말을 쏟아 붓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시므이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다윗은 시므이라는 악인을 보지 않고 그 악인을 이용한 하나님의 섭리를 보았던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만신창이가 되고 있습니다. 세상의 악인들이 달려들어 교회를 헐뜯고 비난하고 저주합니다. 그러나 이 뒤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저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에 의해 쓰임 받는 줄 추호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또 다른 계획을 가지시고 이 한국 땅의 기독교회를 다루시고 계십니다. 한국교회가 저지른 과오와 허물들, 부족한 부분들을 악인들의 거침없는 저주를 통해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럴 때 그리스도인들은 겸허히 하나님 앞에 나아와 회개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기도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것이든 순종하겠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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