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주차. 회심하셨습니까?
본문: 행22:2-21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히 있는 자라.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별 받게 하려고 갔더니,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 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22:3~8절) ~ 그가(아나니아)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14~15절).~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21절)”
1. 우리의 과거
인간은 자기가 산만큼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과거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죄인의 삶’입니다. 죄인은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소리를 듣기 싫어하고 저항합니다. ‘내가 왜 죄인이냐?’고 항의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인간은 아담의 후손으로서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며 이 원죄를 가진 상태에서는 착하게 살았든 바르게 살았던 관계없이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원죄에 대해선 두 가지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대표성의 원리입니다. 혹자는 아담이 죄를 지었다고 우리까지 죄를 물려받느냐고 의문을 표하고 이를 수긍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인류의 대표자입니다. 대표자는 모든 권한과 함께 그에 상응한 책임을 가지는 위치에 있는 존재입니다. 대표자의 죄악은 전체 공동체에게 그대로 적용됩니다. 일본의 천황이 항복한 것은 일본이라는 국가가 항복한 것입니다. 축구 국가대표선수들이 게임에서 패배했다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축구시합에서 진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인과성의 법칙’입니다. 원인과 결과는 동전의 양면처럼 같이 맞물려 있습니다.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있습니다. 아담의 죄가 있었기에 모든 인간은 죄악을 일삼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추악하고 더럽고 퇴폐적이며 이기적이고 악마적인지를 성경은 낱낱이 기록하였습니다. 나는 죄인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은 성경 몇 구절만 읽어도 그런 소리를 입 밖에 꺼내지 못할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인간의 추악함은 곧 인간의 원죄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담의 후손인 인류에게 부여된 창조주의 엄중한 공의와 심판의 결과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렇게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저주 아래에서 인생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은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참된 인생을 꾸려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죄는 행복을 방해합니다. 잠시 행복감에 도취될 수 있지만 영원한 행복은 결코 누릴 수 없습니다. 죄라는 녀석은 이렇게 인간에게 있어서 최대의 원수입니다. 또 성경은 죄인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구원을 받지 못하고 구원을 받지 못하면 지옥에 간다고 선포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자기를 구원할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자기 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합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여 원래 지음을 받았던 기능들을 상실하여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부합하는 인생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특히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는 완전히 무능력하고 타락하여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이 상태를 다른 말로 ‘자연상태’라고 부릅니다. 원래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고 신뢰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관계 속에서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도록 작정하시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 후 인간은 부패하고 타락하여 하나님에 관한 모든 정상적인 기능들을 상실하여 하나님 없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후 모든 인생은 비참과 파탄이었습니다. 영원하고 특별했던 인생은 시간 안에 제한을 가진 존재로 전락했습니다. 지성과 이성과 감성과 의지에 있어서 완벽했던 능력과 기능들이 완전히 망가져 버렸습니다. 인간은 그렇게 한시적이고 제한적이며 무능력한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마치 건전지인생이 된 것입니다. 건전지에 에너지가 남았을 때에는 작동되다가 건전지가 다 떨어지면 멈추어 버리는 것처럼 하나님 없는 인생들은 이렇게 하나의 소모품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저도 자연상태에서 살았던 시절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제 과거를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붉어지고 창피함을 느낍니다. 솔직히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고 모조리 숨기고 지워버리고 싶은 것들뿐입니다. 그만큼 저는 주님 앞에 서기가 두려운 사람입니다. 저의 모든 과거를 종합하여 정리하면, 저의 인생은 ‘자기의’를 추구하는 것들이었고 자기만족과 성공과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비열한 싸움이었습니다. 물론 제 딴엔 선을 행한답시고 봉사도 하고 구제도 하고 사회적 윤리와 도덕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주님 안에서 살펴볼 때 그것들은 한 마디로 육체의 쾌락과 만족과 안위와 정욕의 발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거듭나기 전의 제 인생은 정상궤도를 이탈한 폭주하는 기관차였습니다. 오늘 주보에 기차가 나오는 그림을 실었는데 저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2. 회심
만약 하나님이 인간의 이 불쌍한 처지를 돌아보시지 않았다면 인간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시고 긍휼하시고 인간이 죄악으로 인해 멸망의 길로 달리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자를 보내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바로 그 구원자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어 우리에게 이 땅의 삶의 전부가 아님을 가르치셨습니다. 육신의 목숨이 다해도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곳이 영적 세계요, 바로 천국과 지옥이라는 곳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누구든지 천국에 가려면 죄의 문제를 해결 받고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이 다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바로 그 길이 자신에게 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믿고 영접하면 하나님에게로 돌아갈 수 있다고 확증하신 것입니다. 드디어 예수님은 자신이 약속하신대로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로부터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면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고 영생복락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바로 이 소식을 가장 큰 기쁨의 소리라고 하는 ‘복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이 문제를 지금까지는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다루어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고 영원하시고 무한하시고 불변하신 분이시며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시면서 죄악에 대해선 무서우신 공의의 하나님이시오 심판주이심을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이것을 ‘계시’라고 말합니다. 이 계시에 따르면 하나님은 영원 전에 이미 당신의 자녀를 택하여 두시고 필요에 따라 시대마다 각 인종과 민족과 국가의 시민으로 태어나게 하시고 하나님이 정하신 계획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름을 받도록 예정하셨습니다. 이것을 ‘소명’이라 부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 때 소명을 받은 자는 하나님에게로 마음을 돌리게 됩니다. 한 번도 하나님을 생각하거나 교회에 대해 관심이 없던 사람이 어느 날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하나님을 생각하고 마음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이것을 구원의 서정에 있어서 우리는 ‘회심’이라고 부릅니다.
회심은 글자 그대로 ’마음이 돌아오다‘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떠났던 마음이 다시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는 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회심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 의해 회심을 한 사람들입니다. 회심을 했다는 것은 이제 세상적인 삶의 방식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방식대로 인생을 살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세상적인 방식은 당장은 이로울지 모르나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옳은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마음을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공부에 관심이 없던 아이가 갑자기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나선 것은 마음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 어떤 동기나 결정적인 계기가 일어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에게로 회심을 했다는 것은 성령님이 그 사람의 마음에 어떤 동기부여를 하신 것입니다. 성령님이 개입을 하시어 마음을 바꾸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 함은 회심과 반드시 연관이 있습니다. 제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니고 성경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고 기도를 그럴싸하게 한다 해도 회심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그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회심은 속이 거듭나는 것입니다. 속이 달라져야 겉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그리스도인의 속이 달라졌다는 것은 거듭났다는 뜻이 됩니다. 거듭났다는 것은 죄의 종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더 이상 죄의 지배를 받지 않고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은혜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거듭나기 전까지는 어둠의 권세자인 사단의 통치를 받고 살았지만 이제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고 살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드디어 성령님이 내 안에 오심으로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다는 것입니다.
3. 바울의 증언
자, 오늘의 본문은 결박당한 채로 대중을 향해 바울이 목청을 높여 연설을 하는 장면입니다. 내용적으로는 3-4절에서 자신의 출생과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5-16절에서는 오늘 설교의 핵심인 자신의 회심에 관한 간증을 하고 17-21절에서는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증언합니다. 그러나 가장 하이라이트는 무엇보다 바울의 회심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회심만큼 극적이고 결정적인 사건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나도 바울처럼 저렇게 결정적이고 극적인 회심의 경험을 했더라면 하고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바울일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오직 이런 일을 결정하시고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은 매우 특수한 회심의 체험을 했을 뿐입니다. 꼭 이렇게 극적인 회심만이 진짜 회심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체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회심에 대한 뚜렷한 체험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주님 앞으로 나온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은 회심을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바람처럼 흔적도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중생의 역사입니다.
자, 이제 바울의 회심을 본격적으로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에는 바울의 회심을 세 차례 다룹니다. 9장과 오늘 본문과 26장에 있는 것인데 같은 내용이지만 각각 다른 청중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에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울의 회심에 대한 성경의 기록방식이 매우 특수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히브리 문학 중 ‘묵시문학’이라 부릅니다.
구약성경 중 에스겔서와 다니엘서를 묵시문학서라 부릅니다. 이 책들에는 유달리 환상이 많이 등장합니다. 좀 쉽게 설명하자면 성경은 한 마디로 ‘비밀의 계시의 책’입니다. 즉,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비밀이라 말합니다. 비밀은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골 1;26을 보니,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이라 말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인간이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쪽에서 비밀을 열어주셔야만 인간이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비밀을 인간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을 ‘계시’라고 하는 겁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는 나타나신 특별계시입니다.
그러면 이 계시를 어떻게 인간에게 전달합니까? 그 답이 히브리서 1장 1절에 있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어느 한 사람을 택하여 전달하셨습니다. 이 택한 사람을 성경은 선지자라 부르며 선지자를 통해 주신 말씀이 곧 계시인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시대에 계시는 직접적인 말씀으로 주어지기도 했지만 환상이나 꿈의 방식을 통해서도 주어졌습니다. 이런 방식의 계시는 계시를 받은 사람이 여러 문학적인 형태로 기록했는데 이를 묵시문학이라 하고, 대표적인 책이 다니엘서와 에스겔서입니다. 이 책에서는 많은 환상으로 본 하나님의 계시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이사야서에도 이런 문학형태가 담겨 있습니다. 6장 1~3절을 살펴봅니다.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이것은 성전에서 이사야가 소명을 받는 모습인데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사야가 환상 가운데 바라본 모습을 문학적인 형태로 기록한 장면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영광이 하늘에서 찬란한 빛으로 내려옵니다. 그러자 성전에 영광이 가득합니다. 이 찬란한 영광의 빛 안에서 이사야는 자신의 추하고 얼룩지고 오염되고 부족하고 더러운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나는 망하게 되었다고 절규합니다. 이때 하나님이 스랍을 보내어 단에서 숯불을 취하여 화저에 담아 이사야의 입에 대니 그 죄가 사하여집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정리하면 묵시문학의 공통적인 내용은 먼저 하늘에서 빛의 영광이 어느 택한 사람에게 내려오고 영광에 싸인 인간은 완전히 환상 가운데서 그 광경에 취하여지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사명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다메섹에서 겪었던 사건도 이와 거의 유사한 그림입니다. 바울은 구약에 능통한 사람입니다. 힐렐학파의 가말리엘 문하생이었으니 당시로서는 최고의 학문을 터득한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구약의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실 때 어떤 이적으로 나타나시어 말씀을 하셨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구약의 그 사건이 다메섹에 가던 자신에게 그대로 일어난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영광의 빛이 땅으로 비추어지고 곧이어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입니다. 이 음성은 오직 바울에게만 들렸습니다. 초자연적인 빛의 강림 속에서 함께 가던 동료들은 그것이 무엇이지 몰라 어리둥절할 뿐이었습니다. 7-8절을 읽어봅니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바로 이 순간 사도 바울에게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이 특별계시로 인하여 바울은 완전히 새 사람으로 개조되었습니다. 구약의 사람에서 신약의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하늘로부터 영광의 빛이 바울을 둘러 비추자 바울의 과거가 무너지고 바울을 사로잡았던 의문의 모든 것들이 다 깨트려지고 가슴과 영혼이 뻥 뚫어진 것입니다.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온 영혼과 육신이 찌릿찌릿해 진 것입니다. 순간 충격을 감당치 못한 육신의 눈이 멀어버렸습니다. 그 속에서 바울은 주님의 음성을 분명히 들었습니다. 바울이 얼마나 기절초풍했으면 바닥에 납작 엎드렸겠습니까? 위급한 순간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땅바닥에 엎드립니다. 지진이 날 때마다 사람들의 본능적인 모습을 보세요.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너도나도 일시적으로 땅에 엎드리거나 몸을 낮춥니다. 이것은 인간의 기초가 땅에 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실은 우리의 기초는 하늘에 있음에도 타락한 인간은 자신의 기초를 땅에다 두고자 하는 것입니다.
드디어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미리 예고하신 메시아요 구주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 순간이 바울이 소명을 받고 회심하고 중생한 순간입니다. 땅에서는, 육신의 능력으로는 깨달을 수 없는 진실을 위로부터 임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의 계시를 받자 지혜가 열린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이방인의 사도가 되라는 주님의 명령을 듣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사도직의 기원입니다.
4. 계시 의존적 인생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지금 이 순간까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깨닫고 신앙을 가지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각자의 공로나 노력이나 선행이나 선택이나 배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임한 알 수 없는 능력과 지혜와 은혜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계시의존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계시가 있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고 사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계시적인 측면에서 우리는 가장 은혜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일일이 필요할 때마다 계시를 받고 선지자의 가르침을 받고 그렇게 의존하며 살았지만 이제 신약 이후시대에 사는 우리는 일일이 일이 생길 때마다 하나님의 계시를 따로 받을 필요가 없이 하나님이 모든 계시를 성경이 기록해 주셨기에 성경만 알면 그곳에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만나게 되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 달리 계시를 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하나님에 관한 필요한 모든 지식과 구원에 필요한 모든 지식과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모든 가르침을 성경에 기록해 두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의 완성작품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계시는 육신으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충만해졌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충만한 계시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시대를 사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은혜를 받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결론적으로, 오늘 이야기를 통해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는 계시의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 그것은 하나님 중심, 성경중심, 교회중심의 삶을 의미합니다. 게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고 그 계시는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로 종합되고 완성되었으며 계시는 교회로부터 세상으로 전파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이 ‘세 가지 중심’을 기억하고 명심하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회심에 대해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 회심 없이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합니다. 회심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회심 없이 구원이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바울처럼 특별한 회심에 대한 체험을 할 수는 없습니다. 회심에 대한 뚜렷한 기억을 하지 못하는 성도들도 부지기수입니다. 그것은 회심에 대하여 스스로 경각심을 가지라는 하나님의 비밀의 듯과 계획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내가 회심하지 못한 삶일 수도 있다는 스스로의 경계심을 가진 상태에서 늘 회심의 중요성을 일깨우고자 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구원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자기 구원에 대한 의심을 하는 그 태도가 바로 구원의 확신을 가져온다는 역설적인 주님의 가르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마음가짐을 가질 때 우리는 교만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스스로의 회심을 염려해야 합니다. 그것이 겸손과 순종으로 당신을 이끌기 때문입니다. 아멘.
[출처] 30주차. 회심하셨습니까? (아리엘 개혁교회) |작성자 아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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