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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가 그의 양을 불러낸다/송영찬목사

송영찬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5. 7. 30.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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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클레시아 3.0> 그 마흔여섯번째 이야기

성신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원칙과 관련해 또 하나 생각할 것이 있는데 “목자가 자기 양을 다 내어놓은 후에 앞서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그 뒤를 따라간다”(요 10:4)는 말이다.

“목자가 그의 양을 불러낸다”는 말은 우리의 시대적인 위치와 역할, 다시 말하면 시대적 사명을 확인함을 의미한다. 그 양의 특성(character)을 찾아 그답게 살아간다는 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처한 위치와 상황에서 우리의 사명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먼저 목자는 자기 양을 빠뜨리지 않고 양 떼들 속에서 모두 불러낸다. 여기에서 목자는 자기 양들의 총수(總數)를 불러냄을 알 수 있다. 양들의 숫자가 만수(滿數)가 되어야 비로소 앞서 가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목자가 어떤 목적지를 향하여 갈 때에는 그 무리를 이루는 양들의 만수가 채워졌는가를 먼저 확인하는 법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만수로서 무리가 충족되어야 비로소 목자가 길을 떠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적당히 몇몇의 수를 불러내어 길을 가지 않고 그 무리를 이루어야 할 양들이 있고 그 숫자를 채워야 할 만수를 다 불러낸다는 말이다.

이것은 유형교회를 이루는 성도들의 충족수를 의미한다. 즉 유형교회를 이루는 데에는 그 교회만의 만수가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 하는데 그리스도의 몸을 이룰 수 있는 그 지체란 무한하지 않고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한정하게 지체들이 있다가 아무 때나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를 이룸에 있어서 이 사람이 되었다가 어떤 사정 때문에 저 사람으로 바뀌는 일이란 없다.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지체로서 독특한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목자가 그의 양들의 만수를 다 불러내어 길을 떠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데에도 만수(滿數)가 있음을 의미한다.

교회를 이룰 수 있는 만수가 될 때 거기에 그리스도의 통치가 실제적으로 발휘된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지체를 이룰 만한 만수가 채워져야 비로소 시대적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길을 떠나게 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각각의 그리스도인들은 그가 속해 있는 무리를 떠나서 또는 그 무리와 상관없이 살아갈 수 없다.

이처럼 무리가 채워지면 그리스도께서 먼저 그 길을 가신다. 모든 성도들 앞에서 앞장서서 길을 가신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를 통치하시는 방법이다. 앞서가시되 그의 백성이 눈으로 볼 수 없도록 멀리 가시는 것이 아니라 항상 어디로 가시는가를 볼 수 있도록 가까이서 가신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을 인도하시는 것은 가시적이다.

그리스도의 인도는 언제나 현실로 드러나는 것이고 바로 그 자리에 하나님께서도 함께 계신다. 언제나 그리스도의 통치 모습은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나 있기 마련이다.

한편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을 인도하실 때에는 결코 맹목적이지 않다. 때문에 지금 우리의 역할은 아주 명백해야 된다. 무엇을 위해서 살 것인가 하는 점이 분명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목자의 뒤를 따라가는 우리에게 왕되신 그리스도께서 요구하시는 시대적인 소명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백성을 구체적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을 “양은 그의 음성을 안다”는 말씀 속에서 알 수 있다. 양이 그 목자의 음성을 안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가는 우리가 각각 존재의 본분으로서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 각성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목자는 양 하나하나를 인도하는 것이 아니다. “목자가 앞서 간다”는 말은 양 한 마리 한 마리를 각각 끌고 간다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자가 앞서가면 그의 양 무리들은 그 뒤를 무리를 지어 따라 가게 된다. 그 무리 중에서 어떤 양은 앞서가기도 하고 어떤 양은 약간 떨어져 가기도 한다. 자기들 성격에 따라 빨리 가는 양이 있고 늦게 가는 양들이 있을지라도 그들은 모두 한 무리를 이루고 목자의 뒤를 따라가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을 인도하실 때에는 직접 각 사람을 일일이 상관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대부분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인도를 받아야만 인도를 받는다고 착각하고 그리스도의 인도를 기대하는 오류에 빠져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직접 한 개인을 부르시고 그 사람에게 직접 말씀하시고 인도하시지는 않는다. 이미 한 무리를 이루는 교회가 있고 그 교회의 나아갈 길을 인도하셔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들이 함께 살아가도록 하심으로써 우리의 삶을 경영해 나가시기 때문이다.

<송영찬, CNB 706 교회와 신앙, 서울: 도서출판 깔뱅, 2007, pp.249-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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