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클레시아 3.0> 그 마흔다섯번째 이야기
성신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몇 가지 원칙을 우리는 요한복음 10장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중에서 가장 특징적인 모습이 목자는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서 인도한다는 점이다(요 10:3). “목자가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낸다”는 말은 많은 양 무리 중에서 목자가 자기 양들의 이름을 불러서 구별해 낸다는 의미이다. 목자가 양 무리 앞에 와서 “내 양들아 다 나와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서 자기 양을 다른 양들 속에서 구별해 내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 비유는 고대 근동 지방에서 목축하고 있는 상황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밤이 되면 목자들은 양떼들을 편히 쉬게 하고 들짐승들로부터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 돌담이나 나무 울타리로 둘러쌓인 안전한 곳에 양들을 쉬게 하였다. 이때 여러 목자들이 이끄는 양떼들이 한 우리 안에서 밤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이른 아침에 목자가 와서 각기 자기 양들을 불러 다음 장소로 이동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 양들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우리에서 나오게 된다. 여기에서 여러 양떼들 속에서 자기의 양들을 불러내는 목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름은 각각의 고유한 특성(character)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름은 고유한 품성을 대표하여 그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존재 의미를 대변하고 있다. 때문에 목자가 양의 이름을 지어줄 때는 생각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지어주는 것이 아니다. 그 양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기질이라든지 성질을 보고 그에 합당한 이름을 지어주기 마련이다. 외모라든지 성품들을 잘 살펴서 그에 합당한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것은 그 양에게는 아주 걸맞은 자기다움이 있음을 의미한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름은 대부분 그 사람의 전부를 표현하기도 한다. 때문에 항상 그 이름과 그 사람이 동질이어야지 이름과 그 사람이 달라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의 전부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바로 거기에 자기다움이 있다. 자기다움이 있다든지 자기다움이 잘 표현되는 것을 가리켜서 자연스럽다고 한다. 즉 ‘그 사람은 그 사람답게 행한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자기 이름에 맞는 것이 자기 성품에 걸맞은 일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그에게는 하나도 억지가 없고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모습이다. 그러므로 목자가 양의 이름을 부른다고 할 때 그 양의 특성을 잘 살펴본 목자가 그 양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 이름을 부른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1) 성신님은 각 사람의 품성을 사용하심
성신께서 이 세상에서 우리 각 사람을 불러내실 때 그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을 잘 살피고 그 특성에 알맞게 불러내신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아주 특이한 성격 또는 성품, 기질, 재질들을 성신께서는 명확하게 분별하고 그것들을 잘 사용할 곳을 알아서 유효 적절하게 불러내 사용하신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매우 자연스러운 우리의 기질 또는 성품의 발로였다고 말할 수 있다. 바로 성신께서 우리의 모든 기질과 성품을 다 아시기 때문에 적절하게 불러 유효하게 사용하여 우리를 이곳까지 인도하셨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실제로 성신께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는가를 알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까지 어떤 상황 속에서 살아왔는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정황 속에서 앞으로 나를 어떤 길로 인도하실 것인가를 판단할 수 있다.
2) 자기의 재능과 환경 알아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이성을 잘 발휘하여 우리가 처한 현재의 정황과 환경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가족과의 관계 또 가족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성품, 성질(가풍) 등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친구간의 관계나 사회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우리가 속한 시대적 성격도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그 사회가 현재 가지고 있는 기질을 아는 것도 성신께서 어떻게 우리를 인도하시는가를 알고 판단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나아가 역사의 방향성을 안다는 것은 우리가 성신님의 인도를 어떻게 받는가를 아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래서 지금까지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는가 하는 것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판단할 필요가 있다. 이런 것들을 우리가 잘 살펴볼 때 우리의 위치가 설정되기 때문이다.
이런 외적인 판단의 요소뿐만 아니라 내적인 판단의 요소도 잘 살펴보아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talent)을 안다는 것은 성신께서 자기를 어떻게 인도하시는가를 아는 데 있어서 큰 역할을 한다. 그래서 자기의 흥미나 관심이 어디에 쏠리는가를 아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어느 방면에 재능이 있다면 성신께서는 그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재능을 자기가 달가워하는가 아니면 억지로 하는가 잘 판단해야 한다.
과연 자기에게 걸맞은 재능과 재질이 있고 그 재능과 재질을 충분히 발휘할 만한 여건이 갖추어져 있는가 하는 것들을 살펴볼 때 성신께서 우리를 어느 곳으로 인도하시는가를 아는 데 있어서 상당히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자기가 그 재능과 재질을 합당하게 발휘하고 드러낼 수 있을만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어떤 재능이 있고 재질이 있다 할지라도 전혀 그것을 발휘할 만한 여건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자기의 재능과 재질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여건들이 잘 갖추어져서 자기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만한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를 포함시켜서 자기에게 재능과 재질이 있다고 해야 한다.
3) 성신님의 인도
이러한 외적인 요소와 내적인 요소는 지금까지 성신께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셨는가를 판단함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판단에 근거하여 우리가 하나님 나라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깨닫게 된다. 비로소 하나님 나라 안에서 자기 자신만이 가지는 고유한 위치와 역할이 설정된다. 우리가 그러한 위치와 역할을 알아갈 수 있도록 모든 여건과 기회를 마련하여 주는 것이 곧 성신님의 인도이며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우리를 지키는 것이 성신님의 보호이다.
성신님의 인도와 보호는 우리 각 사람의 개인적인 안녕과 위로를 위해 발휘되는 어떤 특수한 힘의 작용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성신님의 인도와 역사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 안에서 어떤 위치와 역할이 있는가를 알고, 그 일을 수행해 나갈 수 있는 모든 여건과 기회를 만들어 주시고, 그 일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원동력(energy)을 공급하시는 일이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일과 그 진행에 있어서 긴밀한 관련이 없다면 성신님의 인도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우리가 성신님의 인도를 받는가를 알기 위해 자기의 위치와 역할을 정당하게 발현할 수 있는 터전이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충일한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 한다면 과연 그러한 것을 충분히 발현해 낼 수 있는 터전이 있어야 한다.
나아가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talent)이 하나님 나라의 건설과 확장 그리고 진행에 있어서 어느 모양새로 유익을 가져다 줄 수 있으며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진행이 나에게 그러한 재능을 발휘함에 있어서 얼마만큼의 신변을 보장해주고 있는가 하는 것도 살펴보아야 된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우리가 가져야 될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우리가 발현하고 있는 삶의 정형이 과연 성신님의 인도를 받는 것과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해 나감에 있어서 유효하게 사용되는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4) 자신의 위치와 역할 알아야
우리는 하나님 나라 안에서 지금 내가 존재해야 할 역사적인 요청과 그 역할의 필연성이 무엇인가를 발견해야 한다. 내가 이곳에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필연성과 당위성을 하나님 나라의 역사성이 나에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와 나와의 관계는 절대적인 관계이다. 결코 피상적이거나 관념적이지 않다. 어떤 사상적인 학설로 하나님 나라가 존재하거나 그런 학설이 있나 보다 하는 정도가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내 삶과 직결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내가 속한 환경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현시 되어야 한다. 나의 사상과 직결되며 내가 만나는 사람이나 내가 속해 있는 가족과도 연관되어 있다. 심지어 내가 속해 있는 직장 또 내가 요즈음에 관심을 가지는 그 모든 것까지 관계된다. 그런 관계를 통해 내가 존재해야 할 당위성이 더욱 확실해 진다.
성신님의 인도를 받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라 한다면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만 하나님 나라의 진행에 큰 유익을 가져다 줄 것인가 하는 것을 충분히 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목자가 그 양의 이름을 불러낸다”는 말속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가르침이다.
<송영찬, CNB 706 교회와 신앙, 서울: 도서출판 깔뱅, 2007, pp.244-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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