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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의 삼위일체 ‘축도’에 대한 이해 / 송영찬

송영찬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5. 7. 31.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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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

 

이 놀라운 삼위일체 축도(Benediction)는 오늘날 교회에서 구원으로 인한 모든 유익함을 누리기 위한 선포를 대표하고 있다.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인 고린도 교회를 향해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삼중적인 이해는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4-7)에서 이미 예상되었다.

아울러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 9:15)는 바울의 찬송에서 보는 것처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성령님을 따라 살아가는 은혜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삼위일체적 찬송과 관련이 있다.

 

1. 삼위일체적 찬송에 대한 바울의 이해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연보와 관련된 내용(고후 8-9장)을 마치면서 바울은 하나님을 찬양함으로써 자신의 논증을 마치고 있다.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 9:15). 이 찬송은 바울이 교훈과 권면의 끝부분이나 중간에서 감사와 찬양의 탄성을 발하는 습관이다(롬 1:25; 9:5; 고전 15:17; 딤전 1:17).

여기에서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로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언급하고 있다. 이 구절, 즉 ‘그의 은사(charisma)’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문맥을 통해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런데 고후 8-9장의 흐름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은사는 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시하거나, ② 줄곧 바울이 말하고 있는 은혜(charis)이거나 아니면 ③ 이 둘을 모두 포함한다.

바울은 여기에서 독특한 단어인 은사(charisma)를 사용함으로써 오히려 모든 은사를 포괄하는 하나의 지극히 큰 은사를 묘사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은사와 그의 무한한 사랑을 강조하고 있다(고후 8:9; 엡 5:1). 이런 점에서 이 찬송은 하나님의 아들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표시하고 있다.

한편 이 찬송에서는 명시되고 있지는 않지만 신약에서 ‘하나님의 선물’은 성령을 가리키는 전문적인 용어이다(요 4:10; 행 2:38; 8:20; 10:45; 11:17; 엡 3:7; 4:7). 특히 고린도후서 8-9장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은혜(charis)와 은사(charisma)를 볼 때 이 ‘은사’는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믿음에 의한 일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찬송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성령님을 따라 살아가는 은혜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다. 이러한 삼위일체적 찬송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라는 축도에서 완성되어 다시 나타나고 있다.

 

2. 삼위일체 축도에 대한 바울의 이해

① ‘주 예수 그리스도’는 복되신 구세주의 양성을 나타내는 명칭이다. 이 명칭은 주님으로서 신성과 예수로서의 인성 그리고 그리스도로서의 직임 곧 그분이 오시기 오래 전에 약속된 메시아이심을 가리킨다. 여기에서 바울이 이 서신을 받는 모든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신인(神人) 양성을 지니시고 메시아로서 자기 백성을 다스리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그의 과분한 사랑과 그것으로 오는 모든 은사들에 대한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죄로 오염된 무력한 죄인이 필요로 하는 것들이다. 이처럼 영광스럽고 신비로운 양성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자 인자(人子)이신 높이 올리우심을 받은 구세주께서 성도들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면 현재의 안전은 물론 궁극적인 구원까지도 확실하게 보장된다.

②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獨生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는 말씀에서 확인된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주심으로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롬 5:10)는 말씀처럼 죄있는 성도들과 화목하는 길을 열어주셨다.

하나님의 사랑은 기꺼이 성도들을 자녀로 입양하셨으며 과거에 죄 때문에 증오하고 가증스럽게 취급하던 자들을 그의 사랑으로 존귀케 하신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화목하게 하는 말씀(고후 5:19; 6:1)으로 만나게 되며 그것을 통해 성도들은 부요하게 된다(고후 8:9). 이 과정의 결과로써 성도들은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은 성령이 성도들의 영혼과 교제하는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 성도들 사이에 나누는 교제의 길을 열어 주신다.

③ 그리스도는 성령의 약속(갈 3:13-14)을 받도록 하기 위해 율법의 저주로부터 성도들을 구원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중보의 은혜를 성도들에게 적용시키는 분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구속 언약에 보증되어 있는 성령이시다.

성령의 은사, 즉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에게 보증되어 있기 때문에 성도들 모두는 성령의 교통하심에 참여하게 되어 한 몸을 이룬다(Chrales Hodge). 성령의 교통은 성령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며 성령이 가져다주는 교제에 참여한다는 말이 아니다. 성령의 교통이야말로 보편 교회가 성도의 교통 안에서 신앙을 고백하는 근거이다.

 

3. 언약의 선포로써 삼위일체 축도

삼위일체 축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주님의 백성으로서 무리를 이룬 성도들(교회) 가운데 확인되는 하나님 언약의 선포이다. 동시에 삼위일체 축도는 말씀의 선포 가운데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언약의 확증이다. 그리고 교회는 그 하나님 언약의 확인을 통해 소망을 확인하며 언약 공동체로서 교회의 존재를 증거하게 된다.

축도의 주체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목사는 말씀 사역의 직분을 수행하는 위치에서 삼위일체 축도를 통해 그 언약의 말씀을 선포함으로써 교회의 교회됨을 확증하게 된다. 이때 교회는 삼위일체 축도의 언약 아래 있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에 영원토록 참여하는 복을 누리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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