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무슨 일이든지 자기의 지혜나 사회 세력이나 수단과 술수를 통하여 혹은 친구를 의지하려는 마음이 먼저 발생할 때가 무서운 시험이 닥칠 때이다.
차라리 예수를 부인하라고 요구해 오면 신앙에 대한 경각심이라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로 혹은 사회의 정황이나 주변 여건의 변화로 인하여 어려운 문제가 발생할 때 자칫하면 신앙의 원리를 포기하고 사회적인 영향력을 받고 그 안에서 살아보려고 애를 쓰는 경우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 문제를 풀기 위해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제쳐두고 우선 자신의 생존을 염려하여 세상과 타협하거나 잠정적으로 그 앞에 굴복해 버린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배교하는 자리에 빠지게 된다.
배교의 두드러진 특성은 자신의 인생을 경영함에 있어 하나님을 차선에 두는 것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최선의 방편은 늘 자기 안에서 혹은 이웃이나 주변의 사회적인 세력 안에서 얻으려 한다는 것이 배교의 첫걸음이다.
따라서 이러한 미혹이나 유혹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도 자신이 왜 존재하고 있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를 먼저 찾아야 한다. 사람이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이 세상에 보내신 고유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함이다. 그것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제일되는 목적이다. 이에서 벗어난 그 어떤 목적이라 할지라도 사람이 이 땅에 존재할 명분은 없다. 따라서 한 개인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명을 수행해야 할 것인가는 그 사람이 처한 교회적인 형편과 교회가 나가야 할 길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인간에게 주어진 궁극적인 목적,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만은 어느 시대나 바뀌지 않는 법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송축하기 위해 정당한 예배를 드리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고 살아 있어야 할 의무가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신앙의 정신이다. 이 신앙이 분명할 때 하나님을 섬겨야 할 이유도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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