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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주차.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

최더함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5. 9. 23.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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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주차.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


 

 

본문: 27:1~44

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 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항해할 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1~2)”

배가 더디 가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항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바람막이로 항해하여, 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세아 시에서 가깝더라”(7~8)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가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12~14)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25~26)


 

 

1. 로마행 뱃길


 

 

이제 세 번만 더하면 사도행전 강해가 종료됩니다. 오늘은 27장 전체를 강해합니다. 드디어 바울은 로마로 가는 배에 오릅니다. 베스도 총독은 아그립바 왕과 함께 바울을 심문한 결과 아무런 죄목도 정하지 못한 채 백부장 율리오에게 바울을 넘기고 로마로 가는 배에 태웁니다. 오늘 본문은 로마에 도착하기 전에 로마로 가는 뱃길의 과정을 소개하고(1~12), 가는 도중에 유라굴로 광풍을 맞아 아드리아 바다에서 해매는 장면(13~26)과 멜리데 섬에 상륙하는 과정(27~44)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중해 뱃길이 만만치 않습니다. 굉장히 험하고 위험한 길입니다. 먼저 당시 지중해 뱃길에 대한 사전 정보가 필요합니다. 당시 군사목적의 배들을 제외하곤 민간에는 여행객들이 지중해 연안의 도시들을 방문할 때 이용하는 연안여객선이 있고 곡물이나 상거래품들을 실어 나르는 무역선이 있습니다. 특히 로마제국에서 이집트는 중요한 곡물생산지로서 이집트의 곡물을 로마로 실어 나르는 무역선이 지중해 연안을 끼고 자주 운항되었습니다.


 

 

먼저, 오늘 바울이 타는 배 이름이 아드라뭇데노인데 이는 무시아 지방의 작은 항구도시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이 배는 팔레스타인에서 길리기아, 밤빌리아, 소아시아 무시아 등 지중해 연안도시들을 연결하는 여객선입니다. 당시 로마제국은 육로도 잘 발달되어 있었지만 뱃길이 위험도는 높았지만 훨씬 더 빠르고 편한 길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뱃길을 선호한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이 작은 여객선은 로마로 직접 갈 수 없기에 바울 일행은 루기아의 무라 항구에서 큰 배로 갈아탑니다. 그 배 이름이 알렉산드리아 호이고 이 배는 이집트에서 곡물을 싣고 로마로 가는 큰 무역선의 하나입니다. 지도를 보시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항구에서 불발하여 팔레스타인 지중해 연안을 거쳐 구브로 섬을 끼고 돌아 밤빌리아, 앗달리아를 지나 무라에서 정박합니다. 무라 항은 전철로 치면 일종의 교차지점입니다. 그리고 그레데 섬으로 가서 뵈니게 항에서 정박했다가, 그곳에서 아드리아 해를 건너 시칠리아 섬으로 직행하였다가 로마에 도착하는 구간이 됩니다.

 

 

2. 동행자


 

 

다음으로 오늘 바울과 함께 로마로 가는 배에 오른 부류들에 대해 알아봅니다. 먼저 배를 책임지는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이 있고, 상인들과 여행객들로 이루어진 일반인들이 있고, 다음으로 죄수 호송을 책임지는 율리오와 그 군인들이 있고, 나머지는 바울을 비롯한 죄수들이 함께 배에 타고 있습니다. 당시 로마당국이 민간선을 이용하기 위해 협약을 맺었는데 보통의 경우엔 항해 시 모든 권한은 선장에게 있지만 죄수를 호송할 때엔 정부와의 협약에 따라 군대 책임자가 모든 권한을 행사합니다.


 

 

여기서 누가는 우리에게 한 가지 정보를 추가합니다. 그것은 바울의 로마행에 바울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동행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입니까? 본문을 보아서는 누가와 아리스다고가 동행합니다. 아리스다고는 데살로니가 사람으로 바울이 로마에 1차로 투옥된 2년 동안 바울의 수종을 들은 사람입니다(4:10, 24). 그런데 서방 사본에는 세군도 또한 이때 동행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로 보아 바울은 백부장 율리오에 의해 상당히 정중한 대접을 받는 죄수입니다.

 

 

바울 호송을 책임지는 율리오는 누구입니까? 역사가 람세이와 몸젠에 의하면 그는 황제와 주둔군 사이의 연락을 담당하는 아구스도 부대의 책임 장교입니다. 아구스도라는 명칭은 로마 초대 호아제인 아우구스투스를 가리키는 호칭으로 다른 기록에 의하면 이 명칭은 일종의 외인부대에 부여된 명예로운 부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봅니다. 이 부대의 부과적인 임무 중 하나가 임기가 되어 로마로 귀환할 때 죄수 호송을 함께 맡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이 부대원들은 황제 이름을 딴 부대 이름을 명예롭게 생각했기에 군인들의 태도가 상당히 품격이 있고 예절을 다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백부장 율리오 또한 로마시민인 바울을 최대한 존중하고 배려를 한 것입니다


 

 

3. 항해


 

 

1) 가이사랴~무라항(1~6)

 

 

뱃길의 과정을 살펴봅니다. 제임스 스미스라는 전직 요트 조종사 출신이자 항해학자가 1948년에 출간한 자신의 저서를 통해 자신이 누가가 기록한 이 뱃길에 대해 자세히 조사했는데 정확성이 매우 높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습니다.


 

 

배는 유대 총독이 머물고 있는 가이사랴에서 출발하여 하루 걸려 시돈에 도착합니다(3). 시돈은 베니게(페니키아)의 옛 중심도시로서 가이사랴에서 북쪽으로 약 69마일에 소재합니다. 아마 시돈에도 교회가 있었고 바울의 친구들이 살았던 모양입니다. 율리오는 신사답게 바울로 하여금 친구들을 만나볼 수 있도록 호의를 베풉니다.


 

 

시돈을 출발한 배는 구브로 섬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이 지방에서는 여름철에는 서쪽에서 강한 맞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에 섬의 남부 해안을 따라 바람을 피하며 항해해야 했습니다. 거꾸로 소아시아에서 수리아로 여행하는 배는 똑바로 앞으로 나아가 구브로 서남쪽 해안으로 지나는 것이 항해의 기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뱃길을 이미 여러 차례 선교여행 때에 경험한 바가 있습니다(21:1-3). 그런데 여기서 원래는 시돈에서 출발하면 안디옥과 다소를 지나 무라에 도착하는 것인데 바울의 배가 시돈에서 바로 구브로 섬으로 직행한 것인지에 대해선 의문이 남습니다.


 

 

이제 드디어 배를 갈아타는 무라 항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 로마로 가는 큰 배가 대기 중인데 배 이름이 알렉산드리아 호입니다. 무라는 애굽과 로마 사이를 왕래하는 곡물 선단의 주요 항구 중 하나였습니다. 이 무역은 국가가 직접 관장했습니다. 선박의 소유주는 민간이지만 사용료를 지불하고 국가가 이용권을 가지도록 협약을 맺은 것입니다. 백부장과 군인들과 죄수들이 이 배를 탔을 때 배의 갑판에는 밀을 가득 싣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 배의 출발지는 애굽이었습니다(38).


 

 

2) 무라항~미항(7~12)

 

 

무라 앞바다는 거세게 부는 서풍으로 말미암아 육지에서 바람이 불어주지 않는다면 니도까지 항해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대다수 배들은 무라 항에서 가을철 바람이 불어 올 때까지 출항을 미루며 정박했습니다. 왜냐하면 가을에는 바람이 서풍에서 북동풍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알렉산드리아 호는 강한 북서풍이 부는 때에 무라 항을 출발하여 니도로 향합니다. 니도에는 두 개의 항구가 있었는데 그중 동쪽의 항구가 특히 컸으며 정박하는 배들을 위한 여러 가지 좋은 시설들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아마 이곳에서 정박하기 위해 무리하게 배를 출발시킨 모양입니다.


 

 

그러나 바람이 니도 항으로 가도록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무라에서 강한 여름 끝에 부는 북서풍이 불어와서 간신히 니도 연안을 지나 그레데 섬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부 해안을 따라 가다가 미항이라는 곳에 도착합니다. 이곳은 매우 작은 만입니다. 누가는 미항의 인근에 라새스 성이 가깝다고 지리를 밝히고 있습니다.


 

 

역풍 때문에 배는 이곳에서 바람이 바뀌기를 기다리며 여러 날을 지납니다. 기록에 따르면 이 항해에서 가장 위험한 시기는 대력 914일부터 1111일경 무렵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거의 모든 배는 9월 초순부터 겨울이 지나기 전까지 끝을 맺었습니다. 여기서 누가는 당시의 시간을 간접적으로 기록해 두고 있습니다. 바로 9절의 금식하는 절기입니다. 이 절기는 유대사회의 대 속죄일을 가리킵니다. 히브리력으로 티쉬리월 10일인데 주후 59년의 대 속죄일은 계산해 보면 105일이었습니다. 지금 바울의 항해 기간은 시기적으로 주후 58년에서 60년 사이이므로 대략 이 기간에 해당하거나 그보다 조금 늦은 날짜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해하기에 굉장히 좋지 않은 때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일어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9-10절을 정리하면 이런 말입니다. “이제 곧 겨울이 다가옵니다. 그러면 이 바다가 굉장히 위험해 집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여기서 겨울을 지난 후에 항해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바울이 누구입니까? 선교를 위해 바울은 이 바다를 수없이 왔다 갔다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죄수의 신분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형을 확정 받지 않은 미결수입니다. 죄수는 로마에 도착하면 최종 판결을 받고 나면 처형당할 사람입니다. 그런 신분으 사람이 손을 들고 일어나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들어보면 바울이라는 죄수가 로마에 일찍 가기 싫어서 이렇게 말을 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말은 완전히 무시됩니다. 바울의 말보다 선장이나 선원들의 말을 더 신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미결수 주제인 바울의 말은 일고의 가치가 없어 보입니다. 사람들의 다수 의견은 미항이라는 작고 불편한 항구에서 겨울을 나기보다 빨리 크고 시설이 좋은 뵈닉스 항구로 가서 보내자고 합니다. 이것이 여론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대의보다는 대세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지키고자 하는 시도는 많은 저항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진리보다는 유익을 구합니다. 옳고 그른가를 따지는 일보다 무엇이 나에게 유리한가를 따집니다. 대세는 미항에서 떠나자는 것입니다. 이곳에 머물면 불필요한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고 배에 탄 사람들의 일정이 미루어지면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는 등 다수의견에는 합리적인 이유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바울의 의견은 꺼낸 순간 뭉개지고 맙니다. , 이것이 어떤 결과를 맞이할까요?


 

 

3) 유라굴로 광풍(13~26)


 

 

그래서 배는 뵈닉스 항구로 출발합니다. 때마침 바람까지 남풍이 되어 도와줍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자기들의 결정을 반겼습니다. 괜히 바울이라는 죄수의 말을 들었다간 낭패를 당했을 것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그런데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불어닥칩니다. 유라굴로는 바람의 이름이 아니라 바람의 방향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헬라어 유로스와 라틴어 아퀼로’(혹은 쿨로)가 합친 말인데 유로스는 동풍이고 아퀼로는 북풍입니다. 다시 말해 동풍과 북풍이 서로 뒤섞이어 북동풍이 되고, 이것들이 북서풍과 정면으로 바다 한 가운데서 부딪치니 광풍이 일어나는 겁니다. 바다가 바람에 쫓기어 밀려오다가 서로 부딪치니 하늘을 향해 솟구칩니다. 그 솟구친 바닷물이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큰 해일이 되어 육지를 몰아칩니다. 족히 마을 하나가 물에 잠기면 형체도 없이 사라집니다. 지중해 바다, 특히 아드리아 해에는 겨울이 되면 이런 광풍이 시도 때도 없이 불어 닥치는 곳입니다.


 

 

순풍에 돛 단 듯 바다 위를 미끄러져 뵈닉스 항구에 정박하고 쉼을 누리려던 사람들이 아연실색합니다. 배가 바람에 밀려 통제가 안 됩니다. 그냥 바람 부는 대로 맡기는 도리 밖에 없는 것입니다. 무거운 짐을 실은 배가 전복될 위험에 노출되니 배 안에 있던 물품들을 바다에 던지기 시작합니다. 자기들이 아끼던 소중한 물건들을 어쩔 수 없이 바다에 던져야 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오죽하겠습니까? 19절에 보니 사흘 째 되는 날에는 배의 기구들을 버린다고 합니다. 여러 날 동안 이런 상황이 계속되니 구원의 여망마저 사라졌습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순간에 물건이고 뭐고 필요하겠습니까? 이제 여기서 살아나는 것마저 기적처럼 보입니다. 생명조차 담보할 수 없는 절대 절명의 순간 앞에 사람들은 공황상태에 빠집니다. 이른바 아비규환(阿鼻叫喚)입니다.

 

 

바로 이때, 목숨이 경각에 달린 가장 절대 절명의 때에 다시 바울이 일어섭니다. 여전히 광풍이 그치지 않고 며칠 동안 먹지도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 이태 침묵을 지키던 바울이 다시 일어나 사람들을 향해 여러분은 머리카락 하나도 다치지 않을 테니 안심하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 전에 바울은 사람들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 따끔하게 일침을 가합니다. , 내 말을 듣지 않아서 이리 되었다는 것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결과가 어떤 것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일은 바울의 이 말에 누구도 토를 달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며칠 전만 해도 기세등등하던 사람들이 죽을 위기에 봉착하자 겨우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입니다. 속담에 발들에 불이 떨어져야 뜨거움을 안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고집불통이고 어리석은 존재인가를 나타내는 속담입니다. 좋을 때 이야기하면 듣지 않습니다. 잘나갈 때엔 자기에겐 불행이라는 단어는 소용없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행복에 취하면 불행의 그림자를 느끼지 못합니다. 평소에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꼭 무슨 일이 일어나고 불행이 닥쳐야 정신을 차리고 아이구, 하나님하는 것이 일반 사람들입니다. 아무튼 바울의 등장과 함께 드디어 배 안의 주도권이 바울에게 넘어갑니다. 지금까지 백부장과 선장이 주도권을 잡았지만 유라굴라 광풍이 불자 모든 사람이 바울을 쳐다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바울의 입에서 하나의 예언이 선포됩니다. 26절 마지막을 보세요.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신앙을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임을 사람들에게 증거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반드시 목숨을 구해 주시겠다고 약속했으므로 그러므로 안심하라는 것입니다. 위기에 빠진 사람에게 이보다 더 희망을 주는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인간의 희망은 용기를 주고 한 사람의 용기는 유라굴로 광풍을 견디게 하는 힘을 줍니다.

 

 


4) 배가 깨어지다(27~44)

 

 

27절에 이르니, 14일이 경과되었습니다. 이때 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자정쯤 되었습니다. 선원들이 보니 배가 육지 부근에 이른 것을 직감한 것입니다. 그러자 몇몇 선원들이 배를 버려두고 자기들만 살겠다고 도망을 치려고 했습니다. 이런 큰 배는 유사시에 대비해서 옆구리에 거룻배를 달고 다니는데 배가 침몰할 경우 이 배를 타고 탈출하기 위해서입니다. 선원들이 보기에 배는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음을 틈 타 몰래 거룻배를 타고 빠져나가랴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바울에게 들키고 맙니다. 그래서 바울이 군인들을 불러다가 거룻배를 매단 줄을 다 끊어버립니다. 결국 누구도 탈출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백부장을 비롯한 군인들도 바울의 지시에 따라 움직입니다.

 

 

심지어 밥을 먹는 것마저 바울의 지시를 따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두주 째 굶었습니다. 아마 배가 고파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바울이 섬에 도착한다는 예언을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만큼 바울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신뢰한다는 것이지요. 바울은 사람들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권합니다. 먹어야 힘을 냅니다. 육신이 건강해야 신앙도 건강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육신을 혹사시켜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일을 주신 것은 안식을 위해서입니다. 잠과 쉼은 육신의 건강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보약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먹기 시작합니다. 이제 배 안에 타고 있던 276명의 사람들은 바울의 말에 의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 바울의 지시에 따라 사람들은 배 안에 실려 있던 밀을 다 버립니다. 이제 배 안에는 먹을 것이 없습니다. 정말이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오직 바울을 바라봅니다. 바울과 함께 하는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하나님이 자기들을 구원해 주실 것을 간절히 소망합니다.


 

 

4. 교훈


 

 

무엇이 신앙입니까? 신앙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일 것입니다. 폭풍우 속에서 바울이라고 해서 두려움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바울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심을 바울은 분명이 믿고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위기의 순간에 기도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아우성치는 그 순간에도 바울은 무릎을 꿇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내었습니다. 그러자 당당히 일어서서 사람들을 향해 단호히 외쳤습니다.

아무도 죽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약속했으니 안심하세요,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에 관한 올바른 지식이 얼마나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바른 지식이 없이는 바른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지식이 있어야 중요한 순간에 바른 분별을 하고 바른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왜 타락하고 멸망했습니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어떤 분인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호세아 6:3, 6을 읽어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하나님은 어김이 없으신 분이라 노래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아는 것이 제사 드리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임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모르고서 드리는 모든 제사가 무용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종교적인 치성이요 열심과 정성입니다. 이것을 기독교적 믿음으로 착각하는 가짜 신앙인들이 즐비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언제든지 넘어집니다. 특히 유라굴로 광풍이 몰아치면 어쩔 줄 몰라 하며 혼란에 빠집니다.


 

 

신앙은 얼마나 충성하고 얼마나 교회 일을 열심히 하고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송태근 목사는 하나님의 1차적인 관심은 너희가 나에 대해 얼마나 정확하고 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느냐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성도들에게 믿음을 가지고 충성하고 열심을 내라고 강조해 왔습니다. 다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충성하던 사람들이, 열심히 교회 일을 돌보던 사람들이 잘 넘어집니까? 그것은 인간의 충성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딴에는 열심히 했는데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 쉽게 좌절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의 마음, 의지에 근거를 둔 신앙은 언제든지 무너집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말씀신앙이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고 믿도록 인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부요하신 사랑과 자비와 긍휼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정확히 안다면 어떤 불행과 위기와 좌절과 시련 속에서도 넘어지지 않고, 잘 인내하여 극복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잘 알고 믿었기에 유라굴로 광풍의 한가운데서도 흔들림 없이 하나님의 약속을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과연 바울이 선포한 대로 난파당한 이 배의 종착지가 어디이겠습니까? 다음 주에 말씀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성도님들에게 크신 하나님의 은혜가 이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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